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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3년 만에 초고속 승진한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사장

“어려서부터 정주영 명예회장의 사랑과 밥상머리 교육 받으며 후계자의 꿈 키워”

■ 기획·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글·한상주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3.01.29 11:38:00

지난 연말부터 올해초까지 계속된 대기업들의 인사이동에서 눈에 띄는 현상이 재벌 2·3세들의 초고속 승진바람이다. 이 가운데 가장 화제를 모은 것은 현대자동차 부사장으로 승진한 정의선씨. 창업주인 할아버지 정주영과 아버지 정몽구에 이어 현대의 상징인 현대차를 이끌어가기 위한 후계자 수업을 착실히 받고 있는 정의선씨가 누구인지 집중분석했다.
입사 3년 만에 초고속 승진한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사장

2001년 3월25일 오전 8시35분. 한국 재계의 거목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영정을 안은 30대 초반의 젊은이가 장례행렬의 맨앞에 나서며 청운동 골목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정명예회장의 장손이며 정몽구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회장의 외아들 정의선씨(33)였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정 명예회장의 어린 장손으로만 각인돼 있던 그가 최근 현대자동차 부사장에 올라 주목을 받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한국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며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중동 건설시장 진출, 오일달러를 벌어들여 제조업 불모지였던 한국에 자동차와 중공업 발전의 기틀을 다지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런 정 명예회장을 쏙 빼닮은 의선씨에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실제로 정의선씨와 정 명예회장은 할아버지와 손자 이상의 각별한 관계였다. 정 명예회장은 다른 손자들에겐 매우 엄격하게 대했지만 장손 의선씨에게는 예외였다. 우선, 의선씨를 어릴 때부터 자신의 청운동 집에서 지내도록 했다. 정 명예회장은 사람들에게 곧잘 “우리 집은 인왕산 산골 물 흐르는 소리와 산기슭을 훑으며 오르내리는 바람소리가 좋은 터”라고 자랑했다. 의선씨를 청운동 집에서 지내게 한 것은 좋은 기를 많이 쐬게 하려는 배려였던 것이다. 지난 2001년 청운동 자택을 정몽구 회장에게 물려준 것도 장손인 의선씨에게 청운동 집이 돌아갈 것을 염두에 두고 한 일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손자들 중 가장 먼저 의선씨에게 밥상머리 교육을 했다. “밥상머리 교육은 나도 아버지한테 받은 거야. 같이 아침을 먹으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 자신을 낮추면서 남을 높일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기본 예절을 생각나는 대로 말하곤 하지” 하는 할아버지의 말을 어릴 적부터 항상 귀담아온 의선씨는 결혼 후에도 청운동에 와서 정 명예회장과 같이 아침식사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정 명예회장은 항상 새벽 5시경에 아침식사를 한다는 점. 전날 과음을 하거나 외박을 한 손자들은 자칫 지각을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어려서부터 오누이처럼 자란 정지선씨와 95년 결혼
“명예회장님은 아침식사 시간에 지각을 하는 손자들에게 아주 엄하게 대하셨습니다. 보통 지각한 손자들은 정 명예회장의 솥뚜껑 같은 손맛을 보는 예가 다반사였는데, 글쎄요, 의선씨가 지각을 한 것을 본 기억은 없네요.”
정 명예회장을 10년간 모신 한 비서의 이야기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 미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은 뒤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에서 근무했던 의선씨는 99년말 현대차 구매본부 구매담당 이사로 입사, 2000년 중순부터 국내 영업본부에서 국내 영업담당 및 기획담당을 맡아왔다. 그후 2001년엔 상무, 2002년엔 전무로 승진한 데 이어 지난 1월 부사장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의선씨는 지난 95년 강원산업 정도원 부회장의 딸 지선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정몽구 회장과 정도원 부회장은 경복고 선후배 사이로 이미 오래 전부터 양가가 친분이 있었던 것. 게다가 의선씨는 부인 지선씨의 사촌오빠인 대우씨와 중·고교 동창이다. 그래서 둘은 어려서부터 오누이처럼 자랐으며 대학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교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선씨는 듬직한 체구를 갖고 있다. 주변에서 전하는 그의 성격은 활달한 편이지만 업무 처리 스타일은 아주 꼼꼼한 편이다. 특히 자신의 일은 절대 남에게 떠넘기는 법이 없기로 유명하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비서나 부하직원들에게 항상 높임말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입사 3년 만에 초고속 승진한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사장

정의선씨는 95년 어릴 때부터 알고지낸 정지선씨와 결혼했다.


정의선씨는 2001년 국내 영업본부 담당 상무를 맡았을 때 영업현장 직원들과 자주 술자리를 갖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눠 좋은 평판을 듣기도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의선씨는 현장점검 활동을 할 때도 대부분 별도의 수행자 없이 혼자서 나서는 경우가 많고, 보통 20∼30명의 직원들과 식사를 함께하면서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눠 직원들이 오너의 아들에게 갖는 거리감이 없는 편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자신이 말하기보다는 직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스타일로 업무를 지시하기보다는 직원들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데 주력하는 편이라고 한다.
정의선씨가 현장 경영활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현장을 잘 알아야 올바른 경영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아버지 정몽구 회장의 경영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회장은 정 명예회장에게 경영자 수업을 받을 때도 철저하게 현장 위주로 배운 것으로 유명하다.
의선씨에 대한 정회장의 신뢰는 아주 대단하다. 의선씨에 대한 후계자 수업과 관련한 세간의 관심이 처음 표면화할 무렵인 지난 97년 1월경이었다. 현대자동차 고위 관계자는 “적어도 앞으로 5년 정도는 의선씨의 경영수업 계획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밝히고 “이것은 그 자신(정의선씨)이 원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당시 의선씨는 학위를 취득한 뒤 스스로 일본 이토추 상사 근무를 자원했다. “그동안 현대그룹이 너무 미국중심으로 치우쳐 일본 쪽에는 소홀했으므로, 그쪽 진출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정회장은 의선씨의 의견을 들어주었다.
정회장은 의선씨의 후계수업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의선씨는 특이하게 구매담당 이사로 현대차에 첫발을 내딛었는데, 이는 정몽구 회장이 정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수업을 받은 코스 그대로다. 아들에게 엄격한 정회장이지만 지난해 월드컵 때는 정의선씨와 스카이 박스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등 부자관계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정회장은 지난해 1월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사장의 후계수업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얼마나 능력 있고 일을 잘 하느냐가 중요하며 나이가 32세밖에 안된 만큼 수련하는 과정”이라고 말하면서 “외국에도 40대 사장이 많다”고 말했다. 정회장의 이같은 발언은 후계자인 의선씨가 아직 30대 초반이어서 적어도 10년 간은 정회장이 경영을 맡아 탄탄한 기반을 닦은 후 물려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의선씨는 놀랄 정도로 정회장의 화통한 성격을 닮았다. 그는 지난 2001년 자동차용 전자부품 업체인 본텍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이라는 논란이 일자 이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의선씨는 고려대 재학시절 은사이자 강력한 재벌개혁론자인 고려대 장하성 교수를 찾아가 자문을 요청한 끝에 이런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입사 3년 만에 초고속 승진한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사장

정주영 명예회장의 장례식 때 영정을 모시고 장지로 향하는 정의선씨.


의선씨와 가장 친한 사람은 사촌인 정일선(33) 비앤지스틸 부사장. 정주영 명예회장의 4남인 몽우씨(작고)의 장남인 정일선 부사장은 의선씨와 동갑으로 어려서 정명예회장의 청운동 집에서 함께 자랐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정일선 부사장은 골프와 스쿼시, 축구 등 못하는 운동이 없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중학교 때 스키 국가대표 상비군이 되기도 했다. 의선씨는 정부사장과 종종 내기 테니스를 했다. 실력은 정일선 부사장이 나았지만 정의선씨의 승부욕이 대단해 경기내용은 지켜보는 사람들이 손에 땀을 쥘 정도로 팽팽했다고 한다.
의선씨는 대학 선배들과는 그리 가까운 편은 아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재벌 2∼3세들로 허창수 LG건설 대표이사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 부회장, 정몽진 금강고려화학 회장 등이 있지만 이들과 별도의 모임에 참석하거나 어울리는 일은 거의 없다. 다른 재벌가 3세들과 어울리는 것을 정몽구 회장이 좋지 않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예술계 사람들과는 사업에 도움을 받기 위해 친분을 맺고 있는 일도 있다.
가수 이현우와의 우정이 좋은 예다. 두 사람은 남다른 친분을 맺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의 만남에 가교 역할을 한 것은 현대차 투스카니. 현대차는 지난 2001년 10월에 발표된 이현우의 노래 ‘디 엔드(The End)’의 뮤직비디오 제작비 10억원 가량을 부담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호주 시드니 근교 이스턴파크 자동차경주장에서 촬영한 이 뮤직비디오는 국내 뮤직비디오 역사상 가장 많은 1천여명의 출연자가 등장했고 수많은 레이싱 명차들이 쉴새없이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신형 스포츠카 투스카니 홍보를 위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제작 협찬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친분은 이현우가 7집 앨범 재킷에 ‘특별히 고마운 사람들’이라며 현대자동차와 의선씨의 이름을 나란히 넣으면서 한층 더 가까워졌다. 앨범이 나온 직후에는 이를 눈여겨본 사람이 없었지만 낯선 이름을 발견한 팬들이 이현우에게 물어보면서 이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이현우의 콘서트 때에는 의선씨와 어머니 이정화씨를 비롯한 일가족 6명과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이현우 매니저는 “정의선씨 가족이 이씨의 노래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콘서트 참석 이후 두 사람은 가끔 만나 술자리를 함께할 정도로 친숙해졌다”고 말했다.


여성동아 2003년 2월 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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