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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대를 위한 인터넷 음악방송 <사공의 나루터> 진행하는 아줌마들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박진숙 ■ 사진·정경진(프리랜서)

입력 2003.01.14 16:53:00

컴퓨터 세대가 따로 있을까. 음악을 좋아한다면 컴퓨터를 몰라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추억의 노래를 들으며 30, 40대들의 쉼터로 자리잡은 인터넷 음악방송국 <사공의 나루터(www.40netroute.co.kr)>. 인터넷 바다에서 열심히 노를 젓는 아줌마 사이버자키들을 만나 그들만의 유쾌한 방송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3,40대를 위한 인터넷 음악방송  진행하는 아줌마들

인터넷 방송을 위해 틈만 나면 레코드점에 가서 노래를 살펴본다는 방선희씨(왼쪽)와 남영지씨.


“일요일에 관악산을 다녀왔어요. 많이 힘들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었어요.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이 참 아름답더군요. 여러분도 꼭 한번 가보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하늬바람님이 신청하신 곡을 들려드릴게요, 사월과 오월이 부릅니다. 장미.”
청아한 목소리의 CJ(사이버자키)가 사연을 소개하자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려온다. 컴퓨터를 통해 듣는 것만 아니라면 라디오 방송과 다를 것이 없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음악을 신청하면 신청곡을 바로 들을 수 있는 곳. 바로 인터넷 음악 방송국 다. 여기서 사공은 뱃사공이 아니라 사(4)공(0), 즉 40대들을 말한다.
요즘 노래를 들려주는 매체도 참으로 다양해졌다.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을 DJ라고 한다면, 비디오를 매개체로 하는 사람은 VJ,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들은 CJ로 부른다. 개국한 지 2년이 조금 넘은 는 인터넷 음악방송 순위 1, 2위를 다투는 인기 만점의 음악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있다.
인터넷 방송 들으며 대화방을 통해 즉석 신청곡을 올리거나 채팅도 할 수 있어
“아직도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는 가슴이 콩당콩당 뛰어요. 한 시간 정도 진행하고 나서야 조금씩 안정이 되지요. 방송하는 내내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 항상 물을 옆에 가져다놓고 몇 컵씩 마셔가며 해요.”
아무리 방송 경험이 많아도 생방송이기 때문에 늘 긴장한다는 CJ 방선희씨(35). 자신을 CJ라고 소개하는 것이 아직은 쑥스럽다고 하는 방씨는 한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인터넷 음악방송 진행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아는 언니의 소개로 사공의 나루터에 합류해 명실상부한 CJ가 됐다. 월, 수, 금, 일요일 오후 4시부터 7시30분까지 방송을 진행하는 방씨의 대화명은 ‘무지개’.
“60년대 노래부터 최신 곡까지 모두 들을 수 있는 가요 방송을 하고 있어요. 중고등학교 시절에 들었던 음악들을 찾아서 방송하면 청취자들이 어디서 그런 음악을 찾았냐면서 마치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며 무척 좋아해요. 그래서 틈나는 대로 옛날 음악 파일을 찾아 모아두죠.”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방씨가 컴퓨터를 유난히 잘 다루는 것은 아니다. 2000년 들어서 처음 컴퓨터를 장만했을 때만 해도 전원 켜는 것조차 두려워하던 그였기에 지금의 CJ 활동은 방씨로선 스스로 무척 대견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아직도 컴퓨터는 두려워요. 뭘 만지다가 오류 창이 하나만 떠도 아는 사람에게 전화하기 일쑤죠. 다른 것은 하나도 모르고 딱 방송 진행하는 법, 음악 파일 내려받는 법만 알고 있는 걸요(웃음).”
방씨가 컴맹으로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면 남영지씨(45)는 그 나이 또래들과 달리 컴퓨터를 무척 좋아해 3년 전에 이미 자신의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놓은 베테랑 CJ다.
“원래 컴퓨터를 좋아해서 워드 자격증이나 홈페이지 제작하는 법 등을 미리미리 배워뒀죠. 그러다 보니까 인터넷을 자주 접하게 되었어요. 그때 사이버상에서 만난 사공의 나루터 운영진들과 함께 인터넷방송국을 열게 되었죠. 우리 세대들을 위한 방송을 하고 싶었거든요. 지금 어느 정도 경력이 붙어서 그런지 방송 시작 10분전까지 떨리다가 방송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유가 생기죠. 이제는 한주라도 방송을 안하면 몸이 근질근질하답니다(웃음).”
일주일에 세번(화·목·토)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방송하는 남씨는 강릉 오죽헌 근방에서 태어난 것을 이유로 ‘사임당’을 대화명으로 쓰고 있다. 남씨는 30~40대를 위해 70, 80년대 발라드 음악을 위주로 진행하기 때문에 자신도 공감이 가고 편하다고 한다.
“우리 또래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들을 만한 공간이 별로 없잖아요.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는 더하죠. 공중파 방송에서도 소외되고, 사이버 공간에서도 소외되면 아줌마들, 너무 서럽잖아요(웃음). 그래서 제 방송을 듣는 분들은 잊혀진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서 무척 반가워해요. 제가 보유하고 있는 ‘그때 그 시절’ 음악 파일만 3천곡이 넘어요.”

3,40대를 위한 인터넷 음악방송  진행하는 아줌마들

방송을 하다보면 주변의 잡음이 그대로 흘러나오는 ‘방송사고’가 많지만 그게 더 정겹다고 한다.


이들의 방송은 언제나 ‘생방송중’이다. 뿐만 아니라 항상 열려있는 ‘대화방’으로 인해 인터넷 음악방송만의 색다른 재미도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한다. 대화방을 통해 사연과 신청곡을 올리면 바로 소개되기 때문에 한번 듣기만 하면 누구나 그 재미에 쏙 빠져들게 된다. 컴퓨터와 비교적 거리가 먼 30, 40대 아줌마들이 젊은 시절 음악다방 DJ에게 신청하던 추억을 사이버 공간에서 그대로 되살리고 있는 셈이다.
“방송 멘트요? 그런 거 없어요(웃음). 올라오는 사연을 읽어주면서 그때그때 분위기에 맞춰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거죠.”
현재 사공의 나루터에 소속되어 있는 CJ는 14명. 대부분이 주부들이다. 그러나 각기 다른 지방에 거주하기 때문에 이들은 1년에 4회 정도 정기 모임을 가지며 친목을 다진다. 특히 이 모임 때는 청취자들도 함께 참여하기 때문에 대화명으로만 불렀던 궁금한 얼굴들을 볼 수 있다. 정기 모임을 하는 날에는 자질구레한 방송 장비들을 모아놓고 정기 모임 내용을 생중계한다. 그리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CJ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사(4)공(0)의 나루터는 이름 그대로 30대 중반부터 40대를 위한 방송을 추구하고 있어요. 우리 방송국을 통해서 이 세대의 사람들은 사이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죠. ‘인터넷이란 걸 몰랐는데 덕분에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는 사연을 올리시는 분들이 참 많아요. 그럴 땐 무척 뿌듯해요.”
그러나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버티기’에는 CJ 생활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요, 살림하는 주부이기 때문이다. 하루 2~3시간씩 언제나 같은 시간에 꼼짝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쉬운 일을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너무 재미있어서 힘든 줄도 몰랐죠. 하지만 하면 할수록 버겁게 느껴지기 때문에 지금은 취미생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로 생각하며 하고 있어요. 비록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말이죠(웃음). 시간 맞춰 방송을 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매일 자신과 싸움을 해야 돼요. 그래야 방송을 펑크 내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어요.”
방씨는 자신을 찾아주는 네티즌과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며 사명감을 불태웠다. 덧붙여 남씨도 철저한 준비만이 좋은 방송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공을 많이 들이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정작 방송하는 시간보다 준비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리기 때문에 아무래도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인터넷 사이트 구석구석을 뒤져 좋은 음악 파일을 내려받아야 하거든요. 또 제가 어제 했던 방송을 다시 들으며 모니터링도 해야 되고요.”
그래서 남편에게 “아예 컴퓨터와 살아라”는 소리를 들으며 구박 아닌 구박도 받는다고. 남씨는 때문에 가끔 남편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가게 운영하랴, 아이 셋 키우랴, 살림하랴, 거기다 방송까지 하느라 늘 파김치가 되는 남씨를 보다 못한 남편이 방송을 그만두라고 하기 때문이다.
남씨는 아침에 가게문을 열자마자 컴퓨터부터 켠다. 1년전 옷가게를 열게 되어 할 수 없이 가게에 컴퓨터를 설치하고 방송을 하고 있다.
“가게를 열기 전엔 집에서 방송을 했는데 밤 9시가 되어야 끝났죠. 그러면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은 제가 방송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저녁밥을 먹곤 했어요. 이렇게 잘 도와줄 때도 있지만 인터넷을 잘 접하지 않는 남편은 제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이해 못할 때가 많아요. 여자 나이 마흔을 넘기면 아이들도 다 커버리고 무언가 몰두할 일이 필요하죠. 음악 방송과 제 홈페이지는 제게 작은 쉼터와 같은 곳이에요. 남편은 힘들어하지 말고 그만두라는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요?”
아이들 우는 소리, 싸우는 소리까지 고스란히 방송되기도
가게에서 방송을 하다 보면 때로 어려움도 많다. 방송 진행중에 손님이 갑자기 들어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땐 손님들도 들어오다가 뭐 하는 거냐며 깜짝 놀란다는 것. 그런가 하면 여덟살, 여섯살 두 아들을 둔 방씨는 집에서 방송을 하기 때문에 툭하면 ‘방송 사고’를 낸다고 한다.
“방문을 아무리 꽁꽁 닫고 방송을 해도 바깥에서 아이들 싸우는 소리, 우는 소리들이 항상 마이크를 통해서 나가요. 더군다나 아이들이 어려서 뭘 모르니까 느닷없이 방문을 열고는 ‘엄마, 배고파. 뭐 사줘’ 하지를 않나, ‘엄마, 응가 마려’ 하지를 않나 정말 난감할 때가 많아요. 이제 네티즌들이 우리 아이들 목소리를 들으면 저건 큰아이 목소리, 저건 작은아이 목소리 하면서 정확히 알아맞혀요(웃음).”

3,40대를 위한 인터넷 음악방송  진행하는 아줌마들

방송을 펑크내지 않기 위해 늘 긴장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사는 맛을 느끼게 해줘 좋다고 하는 두사람.


이렇게 아이들로 인한 방송 사고로 청취자들에게 미안해하는 방씨에게 네티즌들은 오히려 “무지개님, 음악 걸어놓고 가서 아이들 밥 차려주세요”라며 따뜻한 한마디를 던진다고. 네티즌들 대부분이 아이 키우는 아줌마, 아저씨들이라서 실수를 해도 서로 감싸주고 덮어주는 편안함이 있는 곳이 바로 사공의 나루터라는 것.
이처럼 이들에게 언제나 힘을 주는 것은 방송을 듣는 네티즌들이다. 남편과 싸워 기분이 우울하거나 몸이 불편한 날 방송을 진행하면 “목소리가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요?” 하며 네티즌들이 어김없이 알아채고 격려해준다. 주부 입장에서 일상생활과 병행하며 매일 같은 시간에 방송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매일 찾아오는 자신들의 음악 팬을 위해 컴퓨터 앞에 다시 앉게 된다고 한다.
사이버 에티켓을 지키지 않으면 가차없이 강퇴시켜
남씨는 요즘 늘 참여하던 한 음악 팬이 자취를 감춰 걱정하고 있다. 건강이 좋지 않은 네티즌이라서 혹시 병원에 입원한 건 아닌지, 건강이 악화된 건 아닌지 염려가 된다고.
“그분이 처음 대화방에 들어왔을 때 삐딱한 말을 하면서 시비를 걸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그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고 말하면서 혹독하게 조언을 좀 했어요. 조금 있다가 자신은 시골에서 요양중인데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그랬다고 말하더군요. 이 일을 계기로 그분과 마음의 문을 열고 친하게 지냈죠. 제가 가게 오픈 하는 날 어떻게 알았는지 축전을 보내주기도 하셨어요. 정말 고맙더라고요.”
그러나 그들 곁에 항상 이렇게 좋은 팬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매체의 특성상 신원이 노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채팅을 통해 대화를 하는 터라 예의 없는 네티즌들로 인한 마음 고생도 적지 않다.
“가끔 이상한 분들이 와요. 채팅방에 여러 사람들이 있으니까 괜히 ‘작업한다’면서 물을 흐리죠. 처음에는 당황해서 그냥 두고봤는데 점점 더 심해지길래 강퇴(강제퇴장)시켰죠. 음악을 들으러 오는 다른 순수한 분들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그 뒤로 방 관리를 아주 엄하게 하는 편이에요.”
방씨는 자신을 찾아주는 네티즌들을 보호하는 것이 CJ의 또 다른 의무라고 강조했다. 때로 그런 예의 없는 사람들로 인해 곤경에 처한 이들을 네티즌들이 구해줄 때도 있어 한결 부담이 덜하다. 이렇게 서로서로 배려하며 만들어가는 방송이 또 어디 있겠냐며 방씨는 연신 자랑을 쏟아냈다.
그런 한편 채팅에 대해 사회 인식이 부정적이어서 그들이 활동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 안타까울 때도 많다고 한다.
“채팅을 무조건 좋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남편이나 친구들은 신문에서 채팅과 얽힌 이상한 사건을 다룬 기사만 읽으면 당장 그만두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부정적인 부분은 극히 일부예요. 그러니까 편견 없는 눈으로 바라보면 좋겠어요.”
고등학교 3학년 큰딸과 1학년 작은딸, 그리고 중학교 1학년생 아들을 둔 남씨도 아이들의 채팅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처음엔 난감할 때도 많았다고 한다.
“아이들도 채팅을 안 좋게 생각해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저를 은근히 이상한 눈으로 보곤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인가 막내아들 선생님께서 제 이야기를 듣고는 ‘엄마가 참 좋은 일을 하시는구나, 좋겠다’고 칭찬을 했나 봐요. 그날은 신나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선생님 이야기를 하며 자랑을 하대요. 그 뒤로 제가 하는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더라고요.”
방씨는 결혼 8년차 전업주부지만 집안에서 살림만 하는 아줌마가 아닌, 당당하게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어 사회생활하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이 일을 한 뒤로 오히려 집안일도 부지런히 하게 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쪼개서 쓰게 되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집착하지 않고 매사에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성격이 많이 달라졌어요. 방송하기 전에는 무척 내성적이었는데 지금은 아무하고 이야기도 잘하고 쾌활한 성격으로 바뀌었어요”라며 활짝 웃어보였다. 그것은 남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두 사람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앞으로 그저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으로 봐주길 바란다는 이들은 자신들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며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인터넷 바다에서 노를 저어갈 것이라고 한다.

여성동아 2003년 1월 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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