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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눈물겨운 부성애

백혈병 앓는 아들 치료차 호주 보낸 ‘맥도날드 아저씨’김명국

“훗날 우리 주호가 복무하는 군대에 통닭 들고 면회가는 게 제 소망입니다”

■ 기획·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글·이현희 ■ 사진·최문갑 기자

입력 2003.01.14 13:46:00

‘맥도날드’CF에 등장, 유명해진 배우 김명국. 그에게는 벌써 3년 넘게 백혈병과 싸우고 있는 아들이 있다. 얼마전 아들을 요양차 호주로 보냈다는 그와 만났다. 다행히 올 6월이면 항암치료도 끝날 것 같다며 희망에 찬 그가 털어놓은 그동안 겪어야만 했던 남모를 고통과 안타까움, 아들에 대한 사랑.
백혈병 앓는 아들 치료차 호주 보낸 ‘맥도날드 아저씨’김명국

우리에겐 CF ‘맥도날드 아저씨’로 더 잘 알려진 배우 김명국(39). 그에게는 백혈병에 걸려 벌써 3년 넘게 투병중인 어린 아들이 있다. 이 안타까운 사연은 그가 지난 2001년 ‘희귀병 어린이 돕기 캠페인’ 관련 마라톤대회에 참여하면서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얼마전 바로 그 아들이 백혈병 치료를 위해 호주로 건너갔다는 말이 들려왔다. 그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위치한 17평 전세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집사람이 없다 보니까… 집안이 엉망이라서 죄송합니다.”
그의 아내는 아들 주호(6)의 치료를 위해 딸 소슬(9)이와 함께 현재 호주에 머물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출연 제의가 잇따르고 있는 그는 아내의 내조가 절실하지만, 아들 주호의 치료가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가족과의 생이별을 감수하고 있다.
“아이가 면역성이 약해서 겨울에는 따뜻한 곳에 있는 게 좋거든요. 그래서 작년 겨울에도 호주로 아이를 보냈어요. 아이가 완치될 때까지 계속 겨울에는 호주로 보내려고 해요. 날이 풀리는 3월이 되면 가족들과 다시 만날 수 있겠죠.”
비록 짧은 기간이라 해도 소중한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과 떨어져 ‘홀아비 생활’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그는 한동안 집에 들어가기 싫어 일부러 밤늦게 약속을 잡기도 했다고 한다.
“불 꺼진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냉기가 쏟아지는 것 같아요. 정말 쓸쓸하고 가족이 보고 싶죠. 하지만 어떡하겠어요. 애가 건강해지려면 감수해야죠.”
아들이 급성 림프성 백혈병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그에게 전해진 건 지난 2000년 3월. 그가 ‘맥도날드’ CF로 얼굴을 알리면서 브라운관에서 이런 저런 조역으로 활약할 때였다. 10년 동안의 무명기를 끝내고 ‘이제 좀 먹고 살 만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차에 당한 일이라 충격이 더욱 컸다.
“처음엔 그저 감기인 줄만 알았어요. 개인병원에 다니면서 감기약을 받아 먹였는데 통 낫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상하다 싶어 다른 병원으로 갔더니 혈액검사를 해보자고 그래요. 검사 결과를 앞두고 있던 밤에 주호가 오줌이 마렵다고 하더군요. 애 엄마가 옷을 들추는데 등에 어른 손바닥만한 시퍼런 멍이 들어있는 거예요. 느낌이 안 좋았어요. 그 길로 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갔죠.”
아이 등에 왜 그렇게 멍이 크게 들었는지 처음엔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안다. 몸속에서 백혈구가 이상 증식하면서 혈소판과 적혈구가 자리 잡을 공간을 주지 않아 지혈작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멍이 되는 것. 가슴 졸이며 아이의 상태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 4년여. 이젠 그도 백혈병 관련 용어며 치료법을 줄줄 읊는 ‘의사’가 다 됐다.
“처음엔 아이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뭐랄까. 백혈병은 같은 방송에나 나올법한 병인데, 우리 애가 그런 병에 걸리다니 뭐가 잘못됐다 이런 생각만 들었어요.다른 부모들도 다 마찬가질 거예요. 아이의 병을 부인하고픈 단계가 지나니까, 이번에는 죄의식이 찾아오더군요. 내가 살면서 뭔가 잘못한 게 많은가 보다, 그래서 우리 애가 이런 병에 걸린 것 같다고 괴로워했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죄의식에 시달렸다. 그래도 그는 다른 소아 백혈병 환자들의 부모들에 비하면 아이의 병명을 일찌감치 받아들인 편이다. 그러나 아내는 달랐다. 6개월이 지나도 아이의 병을 인정할 수 없어할 만큼 충격을 받았다. 그는 하루하루 야위어가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식음을 전폐하고 매일 울음으로 지새는 아내를 보는 일이 가슴 아팠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암세포와 싸워야 하는 아들 앞에서, 그리고 아들을 간호하느라 하루하루 시름에 젖어가는 아내 옆에서 약한 아빠, 힘 없는 남편이고 싶지 않았던 그는 일부러라도 웃고 떠들며 밝은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그런데 아내 눈에는 그런 그가 도리어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제가 웃고, 병원에 있는 아이들이랑 농담하고 그러니까 하루는 아내가 그래요. ‘당신은 애를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뭐가 그렇게 좋아서 실실 웃고 다니느냐’고. 아내가 그 말을 할 때는 정말 속이 상하더군요. 저라도 자꾸 웃는 모습을 보여야 애가 힘든 치료과정을 견딜 수 있을 거 같아 그런 건데, 제 마음을 그렇게 몰라주니 야속하고 서운하더군요.”
이정재 이영애 주연의 영화 에는 죽을 병에 걸린 아내를 위해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개그 연기를 펼치는 코미디언이 등장한다. 그 역시 속으로 눈물을 삼키면서 겉으로 환하게 웃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고난도의 연기를 아내와 아이 앞에서 해낸 셈이다. 그리고 그의 속마음을 뒤늦게나마 헤아린 아내는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울먹였다고 한다.

백혈병 앓는 아들 치료차 호주 보낸 ‘맥도날드 아저씨’김명국

김명국씨는 소아 백혈병 환자인 아들 주호에게 힘이 돼 주기 위해 일부러 늘 밝게 행동하려 노력했다고.

다행히 주호의 경과는 양호한 편이다. 백혈병 치료단계상 관해요법을 마치고 유지요법에 들어간 상태. 관해요법은 백혈병 세포가 100%라고 가정할 때, 그걸 5% 이내로 떨어뜨리기 위해 고도의 항암치료를 행하는 단계를 가리킨다. 당연히 항암제도 가장 독한 걸로 쓰고, 양도 많이 투여한다. 백혈병 치료 단계 중에서도 가장 강도가 센 편이기에 이 시기에 백혈병 환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애가 자고 일어나면 베개에 머리카락이 수북해요. 하룻밤 새에 수도 없이 빠지는 거죠. 독한 주사를 맞으니 아무것도 못 먹고 토하기 일쑤고요. 아침저녁으로 혈액검사를 해야 되는데, 혈관이 보이질 않으니까 찌르고 또 찌르고…. 지금도 그 갸날픈 팔뚝에 주사 자국이 수두룩해요. 정말 마음이 아파요.”
다행히 올해 6월이면 항암치료가 완전히 끝난다. 그렇다고 해도 안심은 금물. 일단 위급한 상황은 지나갔지만, 백혈병은 항암치료가 끝난 후 1년 이내에 재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치료를 끝낸 시점을 기준으로 봤을 때 길게 5년까지 재발이 되지 않아야 최종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는다고.
주호가 암세포와 싸우는 동안, 그는 아이의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려고 항상 노력했다. 아무리 바빠도 치료가 있는 날은 스케줄을 비우고 병원에 동행했다. 2001년 SBS 창사 10주년 특별 생방송 의 마라톤 완주에 도전한 것도 자신이 마라톤 구간을 완주하면, 아들도 힘든 투병 과정을 끝까지 견뎌내 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끝까지 뛰지 못한다면, 한발 한발 걸어서라도 꼭 결승점에 골인하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겠다고 다짐했어요. 주호가 제 모습을 보고 힘내서 병마와 싸울 수만 있다면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힘겹게 마라톤을 끝내고 무려 열흘 동안 걷지도 못했지만, 마음만은 뿌듯했어요.”
5시간 25분 만에 마라톤 전구간을 완주하고, 그는 제일 먼저 분장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주호를 만나러 갔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빠의 다리를 꼭꼭 주물러주던 주호의 얼굴을 그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아무리 아빠가 많이 돕는다 해도 결국 아들의 병상 옆에서 꼬박 밤을 새우는 건 엄마 몫이게 마련이다. 아내는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아들을 돌봤다. 평소 집을 꾸미고 가꾸기 좋아하던 아내는 아이의 병명을 알자마자 벽지는 흰색으로 새로 바르고, 화초와 수족관, 커튼을 모조리 없앴다. 먼지나 세균에 민감한 아들에게 혹시라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봐서였다. 늘 쓸고 닦으며 위생에 신경 썼고, 없는 살림이지만 대형 냉장고를 두대나 들여놨다. 매일 야채즙을 먹는 주호에게 더 신선한 야채를 공급하기 위해서 거금을 투자한 것이다. 냉장고 말고도 ‘과용’한 물건은 또 있다. 대형 벽걸이 TV가 그것. 백혈병 치료에 TV가 웬말이냐고 하겠지만 이유를 들으면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평소 TV를 좋아하는 아들이 ‘꼭 나아서 집에 가서 근사한 텔레비전으로 만화영화 보겠다’는 생각으로 힘겨운 치료과정을 버텨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던 것이다. 투병 과정을 얘기하던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했다.
“집사람에게 그동안 너무 고생이 많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주호, 꼭 나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다른 가족들의 삶도 그늘지게 마련이다. 부모의 관심이 모두 동생 주호에게 쏠려 있는 걸 느끼는 누나 소슬이가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아픈 동생이 불쌍하고, 엄마 아빠가 동생에게만 매달리는 걸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모든 애정을 독차지하는 동생에게 불만이 생길 법하다. 소슬이도 아직은 마냥 어리광만 부리고 싶은 어린 나이가 아닌가.
“소슬이가 왜 주호만 예뻐하냐고 투정을 부려요. 얼마나 큰 스트레스겠어요. 그래서 주호를 안아 줄 땐 소슬이도 한번 더 꼭 안아주려고 노력해요.”
그는 지난 한해 MBC 드라마 에서 전과자 양동근을 괴롭히는 비정한 형사, 영화 의 피도 눈물도 없는 계엄군 대장 역 등으로 다양한 연기를 선보이며 비중 있는 조역 배우로 탄탄히 자리를 잡았다. 현재 영화 에서 형사 역할을 맡아 촬영중이며, 2월에는 KBS 드라마 에도 출연해 색깔 있는 연기를 보여줄 참이다.
무명의 설움을 딛고 연기자로서 ‘제2의 인생’을 열고 있는 김명국. 그러나 연기자이기에 앞서 한 아빠로서 그가 가진 바람은 너무나 소박하기만 하다.
“우리 주호가 건강한 대한의 남아로 군대에 가는 것, 그래서 주호가 복무하는 군부대에 통닭을 들고 찾아가 면회를 하는 것, 그게 제 소망입니다.”

여성동아 2003년 1월 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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