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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수상해 미국에서 일시 귀국한 소설가 은희경

“오랜만에 느끼는 평온함 속에서 소설 안 쓰는 게으름을 만끽하고 있어요”

■ 글·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3.01.09 10:24:00

지난해 7월, 미국 워싱턴대학 객원연구원으로 초청받아 1년 일정으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던 작가 은희경.
올해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그가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국에 들렀다. 검정 벨벳 원피스를 입은 그는 마음이 편안한지 살이 살짝 오른 모습. 5개월째 접어든 미국에서의 생활이 궁금했다.
한국일보문학상 수상해 미국에서 일시 귀국한 소설가 은희경

이날 시상식에는 어머니와 동생 내외까지 참석, 그를 축하해주었다.


지난 12월 13일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는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문학계 인사들이 다 모인 듯 보였다. 심사위원인 소설가 이문구씨, 문학평론가 최원식 김치수 황종연 백지연씨를 비롯해 시인 채호기 이문재씨, 소설가 이제하 현기영 이윤기 구효서 신경숙 함정임 서하진 이혜경 천운영씨와 심지어 중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는 김인숙씨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1백50여명의 쟁쟁한 문단 선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제35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를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자리여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이날의 주인공은 작가 은희경(45).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시상식장으로 달려왔다는 그는 축하 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밝은 표정에, 몸에 딱 맞는 검정 벨벳 원피스와 목에 붙는 목걸이를 한 차림새가 여성스러우면서도 생기있게 보였다.
이날 시상식장에는 그의 어머니와 남동생 부부 내외, 조카들까지 한자리에 모여 그의 수상을 축하해줘 더욱 훈훈했다. “몇번 상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만 오셨다”면서 “동생까지 와서 축하해주니 정말 기쁘다”고 소감을 밝힌 그는 기념촬영 때도 밝게 웃었다.
은희경은 90년대 문단에 혜성과 같이 등단한 이른바 ‘스타작가’다. 그는 ‘삶의 이면과 허위를 발가벗기는 가차없는 시선’을 모토로, 특유의 위트와 냉소적 유머가 돋보이는 소설들을 발표해 독자와 평론가 모두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난 열두살에 이미 세상을 알아버렸다”고 고백하는 당돌한 진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90년대 대형 베스트셀러 장편소설 을 비롯해 등의 작품을 출간했고, 중편 ‘아내의 상자’로 데뷔 2년 만에 이상문학상을, 그리고 동인문학상과 한국소설문학상 등 문단의 주요 문학상을 연거푸 수상했다.
유년기의 자전적 체험 담아낸 소설로 문학상 수상해
한국일보문학상 수상해 미국에서 일시 귀국한 소설가 은희경
이번에 수상작으로 선정된 소설은 ‘누가 꽃피는 봄날 리기다소나무 숲에 덫을 놓았을까’.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완벽한 아이’가 되려고 너무 애쓴 나머지 어린 시절에는 어른인 척한다며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커서는 어린애 같다며 무시당하는 한 소녀의 비극적 인생유전을 그린 소설이다. 심사위원들은 “착한 아이·모범생·현모양처 콤플렉스와 같은, 타자의 시선에 얽매여 살아온 한 여자의 비극적 삶을 탁월한 상상력으로 빼어나게 형상화한 점을 높이 산다”고 심사경위를 밝혔다.
상패와 상금 2천만원을 수령하고 단상에 오른 은씨는 “수상작 ‘누가 꽃피는 봄날…’은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간 소설이었기에 스스로 객관화를 못 시키는 것이 아닐까 많이 걱정하며 쓴 작품”이라고 전제한 후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이 자리에 서니, 제 유년기와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지난해 아버지는 말기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부친이 병상에 계실 때 속으로 전 ‘상을 받아봤으면…’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유년기처럼 아버지께 상을 받는 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꿈은 결국 이루지 못했네요.”
그는 약간 목이 메였다. 오래도록 투병생활을 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떠나리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빈 자리는 예상 외로 컸다. 은씨가 미국에 건너가기 직전 묶어낸 소설집 의 표제작 ‘상속’의 경우는 직접적으로 아버지의 죽음이 오버랩된 소설이기도 하다. 그는 “상속을 쓸 때 너무나 많이 울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실제 그는 아버지에게 무한한 애정을 받았던 큰딸. 시상식장에서 만난 은씨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는 자랑스럽기 짝이 없는 딸이었으며, 너무 착해서 매는커녕 성장기에 ‘공부해라’ 하는 흔한 잔소리 한번 해본 적이 없다”고 딸의 유년기를 자랑스레 추억했다. 하긴, 그 자신도 자신의 삶에 대해 “서른여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문단에 이름을 올리기 전까지 대학졸업-대학원 공부-결혼-출산-육아와 집장만이라는 세간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며 전업주부의 일상을 그야말로 모범적으로 살아냈다”고 평가하지 않았던가. 이런 그이기에 소설 쓰기란 ‘자아 정체성 찾기’에 다름 아니었을 터다.
그는 얼마 전 캐나다에 산다는 독자의 요청으로 직접 차를 몰고 캐나다로 여행을 간 일이 있다. 체류 일정이 끝나고 헤어질 때쯤 독자는 그에게 “어딜 보나 평범한 주부인데 성깔 깨나 있는 글을 쓰시네요?”라는 말을 던졌다고 한다.
“곧잘 그런 말을 들어요. 실제로 보니 친근하고 착한 사람 같다는 거죠. 글만 보면 굉장히 차갑고 못될 거 같은데 기대와 다르니까 놀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전 이런 말들이 ‘넌 참 평범해’라는 말로 들려요. 실제 평범하기 짝이 없고요. 그러나 평범한 보통사람이 갖춰가는 삶의 조건에 누구보다 열심히 복무해왔기 때문에, 세간의 규칙이나 조건이 인간을 어떻게 길들이는가 누구보다 잘 알죠. 그게 아마 제가 소설을 쓰는 이유일 거예요.”

한국일보문학상 수상해 미국에서 일시 귀국한 소설가 은희경

은씨는 “도서관에서 책 읽고 여행하며 벌써 5개월째 접어든 미국생활을 여유롭게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수상소감에 따르면 ‘소설 쓰는 나’는 ‘일상의 나’를 비난하고 조롱하고 부정한다. 그렇기에 작가인 ‘나’는 ‘실제의 나’와 가장 멀리 있는 나를 ‘소설적 나’로 잡고 쓴다. 독하고 부도덕해 보이는 ‘소설의 나’는 내 안의 적인 ‘일상의 나’를 불러내 발가벗긴다. 말하자면, 그의 소설 속에 드러나는 조롱이나 부정의 시각은 모두 이렇게 나와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7월 워싱턴대 객원연구원으로 초청받아 미국으로 떠났다. 한 시사잡지사 간부로 일하는 남편도 때마침 미국 특파원으로 발령이 나 온 가족이 함께 미국행을 결정했다. 체류기간은 1년. 출발하기 전까지 일이 끊임없이 터지는 바람에 정작 살 집도 구하지 못한 채 부랴부랴 떠나야만 했다고 한다.
워싱턴대 객원연구원으로 초청받아 오랜만에 작가로서 재충전 기회 가져
“다행히 집은 수월하게 구했어요. 정원이 달린 아담한 주택인데, 아파트에만 살다가 이런 진짜 ‘집’에 사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요. 가재도구와 살림살이 장만하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들었는데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가 참 좋아요. 마음의 안정을 찾는 기분이고요.”
외롭지는 않다고 했다. 지척에 한국인 교민도 있는 데다가 그동안 관광하러 몇번 미국에 왔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 교민들을 만나는 일은 자제하고 있다. ‘타인’의 시선을 느끼지 않고 누리는 자유가 너무나 소중한 까닭이다.
그의 신분은 객원연구원. 워싱턴대로부터 개인 연구실을 제공받았고 대학 내 모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자유 수강증도 받았다. 주기적으로 리서치 해달라는 요청 외에는 어떤 의무나 책임도 주어지지 않으니 썩 마음에 드는 조건이다.
“지금은 도서관에서 도스토예프스키, 플로베르와 같은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으며 보내고 있어요. 책 읽는 것만큼은 어딜 가도 계속 되는 일상이니까요.”
미국으로 떠나기 전, 그는 데뷔 이후 10년 가까이 쉬지 않고 작품을 써온 터에 많이 지쳐있었다고 했다. 작가로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에 던져진 미국 체류의 제안. 무엇보다 작가로서 꼭 필요한 ‘재충전’의 경험이 되어줄 거란 기대가 됐다. 시애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이방인’으로서 보내는 문화적 체험은 분명히 그의 소설 쓰기에 새로운 소재를 더해줄 터였다. 그래서 용감하게도 시애틀에 있는 동안 문학 계간지에 장편을 연재하겠노라 약속을 하고 떠났다. 한 사람은 현실에 뿌리내기를 원하고 다른 한 사람은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서로 다른 ‘두 형제 이야기’라고 대강의 구상도 해두었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도착하니 한 줄도 못 쓰고 있다고 쑥스러워했다.
“아, 정말 그것 때문에 걱정이에요. 마음이 너무 평화로워서 그런지, 글 쓸 생각이 별로 안 들거든요. 다행히 이번에 한국에 들어왔으니 나가면 제대로 시작해야죠.”
미국생활에 잘 적응한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고1, 고2인 두 아들 역시 수월하게 적응을 하고 있어 다행이라고 한다.
“애들의 영어실력이 저보다 나아요(웃음). 전 일상생활이 겨우 가능할 정도의 영어실력이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은 벌써 수업도 잘 따라가고 있는 눈치예요. 저야말로 좀 있으면 강의도 들어야 하고 레포트도 내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사실 미국행을 결정하기까지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이 아이들 문제였다. 고1, 고2라는 시기는 대입의 당락을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 그도 대한민국의 어머니인 만큼 아이들이 이왕이면 좋은 대학에 갔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 이민도 아니고 1년 있다가 돌아올 건데, 아이들까지 데리고가는 모험을 굳이 할 필요가 있는가 갈등했다.
“아이들이 먼저 가겠다고 하길래 결국 그러자고 했어요. 사실, 아이들을 두고 가도 마음이 놓이지 않긴 매한가지잖아요. 이참에 미국 교육 시스템을 체험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계속 미국에서 공부하겠다고 할지도 모르죠. 전 아이들도 나름의 인생계.획과 꿈이 있다고 믿는 편이에요. 스스로 잘 알아서 선택할 거라고 믿어요.”
그는 12월말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갖는 외유 체험을 통해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이 보다 깊고 웅숭해질 것을 기대한다. 6개월 후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그가 앞으로 써낼 소설에는 그 대답이 씌어있을 것이다.

여성동아 2003년 1월 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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