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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독점취재

국내 처음 공개 결혼식 올린 레즈비언 커플 한미진·이주경

“우리는 사랑 외에 그 어떤 조건도 없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 올렸어요”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이승재 ■ 사진·신석교(동아일보 편집국 사진부 기자)

2002. 12. 17

동성애자 하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눈으로 인해 쉬쉬하며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가운데 레즈비언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올리며 당당하게 사랑을 선포한 두 여자의 사연.

국내 처음 공개 결혼식 올린 레즈비언 커플 한미진·이주경

여자를 사위로 맞아들인 장모 손씨는 딸의 결혼식을 가장 적극적으로 권한 사람이다.

10월5일 토요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이색적인 결혼식이 열렸다. 웨딩드레스와 턱시도가 아닌, 정장 커플룩 차림의 ‘신랑’ ‘신부’가 동시에 입장했고 결혼행진곡 대신 ‘매일 그대와’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회자로 나선 권모씨(여·38·회사원)가 입을 열었다.
“소크라테스, 차이코프스키, 셰익스피어, 랭보, 버지니아 울프와 앙드레 지드, 알렉산더 대왕, 나이팅게일, 입생 로랑, 조디 포스터…. 이 수많은 저명 인사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 대답은 놀랍게도 동성을 사랑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10년쯤 후엔 오늘 같은 결혼식이 매우 자연스러운 자리가 될지 모릅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 그 길의 첫 발을 내딛는 이 한쌍을 축하하고 축복하기 위해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결혼식을 시작한다는 사회자의 말과 동시에 장내가 숙연해지면서 주례사가 이어졌다.
“<주홍글씨>에서 주인공 헤스터 프린은 ‘간통한 여자’를 뜻하는 주홍색 표식을 가슴에 단 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사회는 그를 받아들였다고 볼 수 없지만, 그는 결코 사회를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용기를 갖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부디….”
주례사를 하던 Y씨(여, 44)는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Y씨가 재직중인 회사(유아 관련 업체)에선 그가 주례를 맡는 것에 극구 반대했다. “주례 사실이 혹시 알려지면 아이 부모들이 회사를 비난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Y씨는 주저하지 않았다.
결혼식 주인공인 한미진씨(가명·37·자영업)와 이주경씨(가명·39·자영업)는 둘다 여자다. 이 동성 커플은 지난해 9월 각자의 후배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우연히 만나, 한달 뒤인 10월부터 동거에 들어갔다. 한씨는 레즈비언이었고, 이씨는 한씨를 만나기 직전까진 이성애자였다.
주례가 끝나자 이씨의 홀어머니 강숙자씨(가명·67)가 단상에 올라왔다. 두 사람에게 자신이 직접 맞춘 커플링을 끼워주고 뺨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너희들 절대로 헤어지면 안 된다. 여자이고 동성애이기 때문에 변하고 그런다면 다 가짜다. 사랑한다면서 헤어지면 다 가짜다.”
강씨의 생활한복은 땀에 완전히 젖었다.
한씨는 강씨를 위해 준비한 글을 80여 명의 하객 앞에서 읽었다.
“드디어 제가 결혼을 합니다. 오랫동안 가정을 이루는 것이 꿈이면서도 결코 평범한 꿈이 아니었기에 접어야 했던 꿈이었습니다. 오늘 그 꿈을 이뤘습니다. 저희들의 꿈이 현실이 되도록 해주신 가장 소중한 분이 여기 계십니다. 어머니. 편견 따윈 아랑곳없이 ‘너희들은 꼭 만나야 될 사람들이다’면서 ‘죽어도 떨어지지 말라’고 격려해 주신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어머니. 언니랑 저 꼭 잘 살게요(울음). 서로 위하고 사랑하면서 욕심 없이 예쁘게 살아갈게요. 사랑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참석자들이 모두 손에 촛불을 들고 <사랑으로>를 노래하는 가운데 결혼식은 끝났다.
‘딸’겸 ‘아들’겸 ‘사위’로 생각한다는 장모
피로연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한씨와 10년간 가까이 지냈던 동갑내기 남자친구 양모씨(37·광고기획사 근무)는 한씨에게 “야, 너는 시집갈 줄 알았더니 장가를 가냐?”고 큰소리로 말해 장내엔 폭소가 터졌다. 이어 “방이 몇개예요?” “침대는 싱글인가요? 더블인가요?” 하는 짓궂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두 사람은 대학 후배들이 잡아놓은 서울 우이동의 한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다음날 오후 8시, 부부가 살고 있는 서울의 아파트를 찾았다. 어머니 강씨는 지난 5월부터 딸이 동성 애인과 아파트에서 자신과 함께 사는 것을 허락했다. 강씨는 차돌박이를 넣은 된장찌개에다 아귀찜, 부추를 넣은 부침개를 해놓고 기자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33세 때 사고로 남편을 잃은 강씨는 34년간 홀로 이씨를 뒷바라지했다.
기자 : 결혼을 반대하진 않았습니까.
강씨 :혼자 사는 것보다는 둘이 사는 게 낫지 않습니까.
기자 : 따님의 판단이 그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따님은 원래 이성애자였으니까요.
강씨 : 딸이 평소 빈틈이 없고 제 앞가림을 분명히 해왔기 때문에 믿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딸은 어긋나는 짓을 단 한번도 안 했어요. 항상 정확하고 실수를 하지 않으니까 내가 믿었죠. 나이 마흔이 된 딸이 이제야 제짝을 만났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기자 결혼식을 강하게 권하신 이유는….
강씨 : 나는 돌아간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뭔지 압니다. 사랑하면 떨어지면 안 되고, 떨어지지 않으려면 결혼해야 합니다. 결혼은 믿음과 함께 책임감을 키워줍니다. 지난 2월에 둘이 저에게 커플링을 보여주며 “평생 함께 살기로 약속했다”고 해서 제가 “이건 무효다. 둘이서만 (약속)하는 건 너무 외롭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다시 해주고 싶다. 어머니가 해주는 반지가 진짜 결혼반지다”라고 주장했어요.
강씨는 남편이 긴 머리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지금도 머리를 기른다.
기자 : 따님의 배우자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씨 : 없으면 전 못 삽니다. ‘딸’겸 ‘아들’겸 ‘사위’ 하나 얻은 걸로 생각합니다. 막내(강씨는 한씨를 이렇게 불렀다)의 목소리는 제가 저승에 가도 들릴 겁니다.
기자 : 따님의 배우자가 ‘여자’라는 걸 언제 눈치채셨습니까?
강씨 :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어요. 지난 2월쯤이었나, 딸이 전화로 미진이 자랑을 하면서 “사윗감으로 어때?” 하고 농반진반으로 묻는 거였어요. 순간적으로 알아차렸죠. 딸은 중매로 들어온 좋은 자리도 마다하고 “독신으로 평생 살겠다”고 해왔거든요.
강씨는 매일 퇴근하는 두 ‘딸’에게 뽀뽀를 해주며 “어이구, 내 새끼 왔네”하고 반긴다. 결혼식을 앞두고는 친구들에게 전화해 “우리 딸 시집간다”며 자랑했다. 부부는 서로를 “여보야” “자기야” “애기야” 하고 부른다.
“어머니, 오늘은 퇴근하면서 이이가 차안에서 얼마나 애교를 떨던지…(웃음). ‘동해물꽈 백두산이’ 하면서….”(딸 이씨가 한씨의 뺨을 쓰다듬으며)
“뽀뽀는 안 했니?”(어머니 강씨가 흐뭇한 표정으로)
“어머니, 부럽죠?”(이씨가 한씨의 목을 간질이며)
“아이, 간지러워. 나 간지럼 잘 타잖아.”(한씨)
“막내는 내가 마사지해준다고 손만 대도 간지럽다고 난리더라.”(어머니 강씨가 웃으며)
강씨는 커플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밤이 늦으면 “늙은이하고 있는 게 뭐가 재밌겠냐”면서 방을 나선다. 방문 안쪽 잠김 버튼을 누르고 문을 닫는 것을 잊지 않는 섬세한 ‘시어머니’이자 ‘장모’다.

국내 처음 공개 결혼식 올린 레즈비언 커플 한미진·이주경

딸, 사위, 장모가 똑같은 ‘결혼반지’를 끼고 결혼식에 참가했다.

기자 결혼식을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법적으로는 부부가 아닙니다. 두 사람의 ‘이혼’이 그만큼 손쉬울 수도 있다는 뜻이죠. 만약 두 사람이 갈라선다고 하면 어쩌시겠습니까….
강씨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못 헤어집니다. 죽어서도 지켜보겠습니다, 꼭.
기자 사회 통념상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강씨 남들이 볼 때는 이상한 눈으로 안 볼 수가 없죠.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저 할매 미쳤다”고 하겠지만…. 그럴 때 전 말해요. “에이, 자기들이나 잘 살라”고요. 쟤네 둘이 그렇게 원하는데….
식사를 끝내고 신혼방을 둘러보았다. 코를 맞대고 있는 두 마리 새끼 기린 인형과 웃으며 이들을 쳐다보는 어미 기린 인형이 화장대 위에 놓여 있었다. 부부와 어머니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침대는 싱글이었다. 기자는 “어느 분이 침대에서 주무시죠?”하고 물었다. 부부는 “둘이 자기에도 넓어요” 하고 대답했다.
침대 위에 놓인 이씨의 4㎝ 두께 다이어리를, 부부의 양해를 얻어 펼쳐보았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이메일 전문(全文)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육필로 옮겨놓은 메모 1백62건, 함께 갔던 공연 및 영화 티켓, 한씨의 건강검진표, 2002 월드컵 대진표(축구를 좋아하는 한씨를 위해 이씨가 컴퓨터에서 출력해놓은 것)와 경기 스코어 기록, 한씨가 허리를 삐끗한 날짜와 증상에 관한 메모 등이 담겨 있었다.
다음은 2001년 12월3일 오후 4시11분 12초, 한씨가 이씨에게 보낸 청혼 이메일과 그로부터 한시간 뒤 이씨가 보낸 회신.
“첫눈 오는 날 당신께 청혼하고 싶어 그동안 입이 간지러워도 꾹 참았습니다. 사랑합니다.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도록 제 청혼을 받아주십시오. 부디 나의 청혼을 받아들여 앞으로 남은 인생살이를 함께 벗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한씨)
“청혼받으면 조금 빼야 되는데…. 당신을 너무너무 사랑하기에 당신과 행복하게 살고 싶고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살아가며 힘든 일 있다 하여도, 서로 함께 도우며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할게. 그리고 당신 마음 아프지 않도록 당신만 사랑할게. 영원히. 변함없이…. 당신의 사랑에 감사하며 청혼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제가 부족함이 많다 하여도 이해해주고 지적해준다면, 당신을 위해 앞으로 많이 노력하고 고쳐 나가겠습니다. 당신과 나만의 행복을 위해서….”(이씨)
직장에 다니던 이씨는 동거와 동시에 한씨의 자영업에 동참했다. 이들은 24시간 함께 있으면서도 수시로 이메일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애정을 확인한다. 지난해 11월15일 이씨가 한씨에게 보냈던 ‘바람’이란 제목의 이메일.
“감상에 치우쳐 현실을 저버리지 말게 하소서. 현실에 얽매여 메마르지 않게 하소서. 곁에 있는 이를 사랑하며, 윗사람을 존경하고 멀리 있는 이를 그리워하는 평범한 감정을 느끼게 하소서. 사랑하기 원하고 사랑받기 바라는 당연한 느낌으로 날 채우소서. 멀어질 때 안타까워하며 다가올 때 가슴 떨리는, 항상 같이 있음을 행복해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당신을 위한 자리는 언제나 비워두겠습니다. 내 가슴 내 마음 속에 영원히….”
이씨의 다이어리에는 두 사람의 생리일을 다달이 기록해놓은 이씨의 메모도 눈에 띄었다. 용도를 물었다.
“생리하면 심적으로 불안해지고 예민해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날짜가 가까워오면 미리 알리며 ‘서로에게 조심하자’고 하죠.”(이씨)
신혼의 단꿈에 젖은 부부이지만, 미래에 대한 대비를 잊지 않고 있었다. 부부는 분양받은 아파트를 공동명의로 하기로 결정했다. 30년 뒤 실버타운에 입주하기 위해 적금도 붓고 있다. 한씨는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아기에 대한 관심이 없다. 나이 들어서는 함께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한씨는 대학 앞에서 카페를 운영하면서 자신이 알게 된 괜찮은 신랑감들을 대학 여자 후배들에게 소개시켜주며 청춘을 보냈다. 한씨가 가장 자주 쓰는 말은 “아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후배들”이었다. 그 후배들 대부분은 그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결혼식이 임박해서야 알았다. 후배들은 충격을 수습하기 전에 더 큰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이 결혼식을 남편에게 이해시킬까’하는 것이었다. 남편들 중 일부는 허탈해했고, 일부는 “왜 그런 쓸데없는 자리에 가느냐”며 야단이었으며, 일부는 “아이는 내가 돌볼 테니 걱정하지 말고 결혼식에 잘 다녀오라”고 했다.
결혼식 하객 80여명 중 남자는 3명이었다. 한씨의 남자친구 양씨와, 후배 신모씨(33)의 남편 송모씨(38), 후배 이모씨(33)의 남편 이모씨(37)였다. 9월 초 본가인 강릉을 향해 차를 몰고 올림픽대로를 달리던 이씨에게 옆에 앉아 있던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보, 미진 언니가 결혼한대.”
“어, 그래? 미진씨가 결혼을 해? 허허, 남자에겐 관심도 없어 보이더니….”
“근데, 문제가 있어. 여자래, 상대가….”
당황한 남편은 중부고속도로 입구로 핸들을 꺾는 것을 잊었다. 결국 미사리까지 가버렸다. 남편은 강변에 차를 세우고 2시간 동안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며 마음을 정리했다.
후배 신씨의 남편 송씨 역시 자신과 신씨를 중매선 한씨가 레즈비언이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아내로부터 얘기를 듣고, ‘미진씨가 레즈비언이었다면 혹시 아내에게 그동안 접근하지는 않았을까?’하는 의심이 솔직히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결혼식 때까지 한 달간 고민했습니다. 결혼식에 갈까 말까…. 일단 <화>란 책을 사서 읽으며 마음을 누그러뜨렸습니다. 사랑이 뭔가, 사람이 만나서 사랑하고 생활을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걸까… 깊은 생각을 했습니다.”
송씨는 아내와 상의한 끝에 딸을 결혼식 들러리로 세우기로 결심했다. 딸은 한씨를 ‘삼촌’이라고 불러야 할지 ‘이모’라고 불러야 할지 헷갈려했다. 부부는 딸에게 “느낌이 오는 대로 불러라.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국내 처음 공개 결혼식 올린 레즈비언 커플 한미진·이주경

신랑, 신부와 어머니를 상징하는 인형.

“막상 결혼식에 참석해 어머니가 두 ‘딸’에게 반지를 끼워주고 뽀뽀를 하는 장면을 보니 선입견이 순간적으로 날아갔습니다. 부지불식간에 ‘당당하게 사세요’하고 당부하며 ‘신랑’ ‘신부’의 손을 꽉 잡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송씨는 “남자들끼리는 동성애가 가능하더라도 이렇게 함께 살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여성과 달리 교만함이라든가, 우월감이라든가,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이렇게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주며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며 “두 사람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허니’ ‘달링’ ‘마이 러브’ 같은 사탕발림 호칭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고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송씨는 아내로부터 결혼 10년 만에 처음으로 “여보, 고마워. 정말 고마워”란 말을 듣고 콧등이 시큰해졌다고 한다.
결혼식에는 이성애 성향의 다수와 동성애 성향의 소수가 하객으로 참석했다. 그 소수 중에는 이모씨(여·39·자동차회사 근무)도 있었다. 이씨는 한씨가 카페를 하던 무렵 인근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다 알게 돼 10년이 넘도록 가깝게 지내온 사이다. 서울 가양동의 한 음식점에서 이씨를 만났다.
기자 : 한씨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이씨 : 부러웠습니다. 배우자를 만나서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은 우리 같은 레즈비언들의 꿈입니다. 미진이가 자신의 성 취향 때문에 고민하고 배신도 당하고 하면서 고통받는 걸 오랫동안 보아온 나로서는 ‘지금까지 착하게 살아온 것이 이제야 복이 되어 돌아오는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기자 : 이들 부부와 함께 사는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씨 : 레즈비언보다도 더 레즈비언을 이해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동 받았습니다.
기자 :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씨 : 유부녀도 동성애를 합니다. 결혼해 아이를 낳고도 동성애를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감정’ 때문입니다. 동성(同性) 이성(異性)의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고 감정에만 충실하면 사랑에 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진이는 레즈비언이었지만, 주경이는 이성애자였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이 감정에 충실했다는 증거입니다.
기자 : 한씨 부부를 보고 다른 레즈비언 커플과 다르다고 생각한 점이 있다면….
이씨 : 레즈비언 중 남성 역할을 하는 쪽을 ‘부치(butch)’라 부르고, 여성 역할을 하는 쪽을 ‘팸(femme)’이라고 흔히들 나눕니다. 내가 볼 때는 미진이가 ‘부치’에 가깝고, 주경이는 ‘팸’에 가까운데, 시장에 갈 때 무거운 것은 주경이와 그 어머니가 도맡아 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진이 건강이 좋지 못한 것도 이유겠지만, 그만큼 주경이와 어머니의 사랑이 크기 때문으로 봅니다. 공개된 장소에서의 스킨십도 미진이보다는 주경이가 훨씬 적극적입니다. 미진이는 오랜 시간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고민하고 폐쇄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스킨십을 드러내는 것을 참 부자연스럽게 여겼거든요.
(‘부치’ ‘팸’이라는 단어가 성 역할을 고정시키고 이성애 제도의 모방 또는 고착화를 나타낸다고 하여 이 표현을 거부하는 레즈비언들도 상당수 있다.)
한씨의 선후배들은 한씨의 동성결혼 사실에 혼절할 뻔하면서도, 조용히 역할을 분담해 결혼식을 준비했다. 어떤 이는 집에 있는 커튼 레이스를 통째로 뜯어와 카페의 창가를 단장했고, 어떤 이는 시장에서 카펫을 구입해 신랑 신부의 행진 길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두 사람의 결혼식 복장에 대해서는 “월계관을 씌워야 한다” “둘 중 한명은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제기됐다. 두 사람은 “복장이 다르면 성 역할을 규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동반자일 뿐”이라며 똑같은 옷을 고집했다. 옷가게를 하는 후배가 골드베이지와 와인색의 커플룩을 마련했다. 이에 보답하기 위해 한씨 부부는 결혼식 당일 소래에서 싱싱한 횟감을 구해왔다.
사회를 맡은 한씨의 대학 선배 권씨는 결혼식이 끝날 무렵 커플 행진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한미진님과 이주경님이 선후배, 동료, 그리고 어머니 앞에서 평생의 동반자로서 결혼식을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한가족 탄생의 증인으로서, 이들을 믿고 이해하고 힘들 때 격려해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입니다. 부부 행진이 시작되면 힘찬 박수와 환호로 이들의 앞날을 축복하여주시기 바랍니다. 한미진, 이주경, 밝은 미래를 향해 행진!”
한씨와 이씨는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두 사람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5천년 역사에 남을 결혼식을 마치겠다”는 말로 결혼식 사회의 마지막 코멘트를 대신했던 권씨는 “돈도 명예도 아닌, 그야말로 사랑밖에는 어떤 조건도 없는 결혼식을 참으로 오랜만에 보았다”며 “지극히 평범한 결혼식이었다. 그래서 아름다웠다”고 했다.
한씨 부부는 10년 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감사 파티를 열기로 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자’고 부부는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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