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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부부가 함께 보세요 │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떡두꺼비 같은 손자들 돌보면서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갑시다”

부부 사랑 단단히 묶어줄 비법 공개

■ 글·김인숙(54·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대화동·결혼 27년차 주부)

입력 2002.11.11 14:05:00

“떡두꺼비 같은 손자들 돌보면서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갑시다”
여보. 이렇게 편지라는 것을 써 보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불현듯 막내를 시집 보내고 나서, 이렇게 편지라는 걸 써 보고 싶어졌습니다. 식장에서 남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던 당신을 본 까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편지를 써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미자 아주머니가 청을 넣어 처음 선이란 것을 본 후에 몇번인가 만난 뒤 당신은 제게 편지를 주었지요. 그때 전 가진 것 없는 가난한 당신의 집안이 싫어 완곡하게 거절을 했던 상태였습니다. 그 편지에는 “가진 건 없지만 숙을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주겠노라”는 요지의 글이 시원시원한 필체로 쓰여있었습니다. 그 글도 글이었지만, 그때 절 보던 당신의 그 눈빛 때문에 결국 응낙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때의 당신은 키는 작지만 잘생긴 얼굴에 눈빛이 살아있는 호남이었거든요.
그 흔한 호마이카 장롱도 없어서 사과궤짝에다가 옷가지를 집어넣고 살던 신혼시절.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살림 꾸리느라 참 고생스러웠습니다. 그때 속으로 많이 울었답니다. 특히 첫아이 가졌을 때 먹고 싶은 건 많은데 먹을 게 없어서 삶은 고구마만 줄창 먹었을 때, 말은 안했지만 그땐 정말 당신이 미웠어요. 제 앞에서 늘 미안해 하는 당신 때문에 속 시원히 화 한 번 내보지도 못했지만요.
악착스레 적금 붓고 운 좋게 아파트 분양이 되고 성실한 당신도 승진을 하면서 우리집은 먹고 살 만해졌습니다. 두 아이 모두 말썽 없이 건강하게 커주었고, 이제 다들 제 짝을 찾아가게 되었으니 우리는 복 받은 사람이지요.
당신이 정년 퇴임한 후 자꾸 밖으로만 떠돌 때도 있었습니다. 답답하면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당신은 그런 양반이었습니다. 속상한 것, 힘든 것 내색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속이 꺼멓게 썩어서야 밝히고는 하니, 답답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안사람인 제게는 말을 해야 할 일도 당신은 그렇게 부담을 주기가 싫었던 것입니까.
그런 당신이 소중하게 키우던 막내딸이 품을 떠난다고, 그렇게 아이처럼 울다니요. 딸은 남자의 마지막 애인이라는 말이 맞긴 맞나 봅니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콧등이 시큰하더군요. 이젠 정말 우리 둘밖에 없는 거지요.
여보. 아이들이 어서 떡두꺼비 같은 손자들을 낳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손자들 똥기저귀 갈아주고 안아주면서 보낼 우리의 미래가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물 흐르듯 그렇게 근근하게 행복하게 삽시다. 무엇보다 건강 지키시고요.
한자 한자 적는 게 참으로 쑥스럽습니다. 늙어서 주책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여보. 당신과 결혼해서 그동안 참 행복했습니다.
도연이 엄마가

여성동아 2002년 11월 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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