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획기적인 예술 작품 같다.” “흰 세트장에서 카메라 구도와 CG로만 만들어내는 강력한 임팩트.”
에스파의 ‘Whiplash’ 뮤직비디오는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에스파의 ‘쇠맛’ 감성을 살린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Whiplash’ 발표 당시 이 곡의 3D 그래픽을 담당한 아티스트가 만 열아홉 살이었다는 사실은 뮤직비디오의 세련된 미감만큼이나 큰 화제가 됐다. 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김온유 씨다. 그는 ‘Whiplash’ 뮤직비디오 외에도 스트레이키즈 ‘JJAM’의 인트로 작업과 세븐틴 ‘MAESTRO’ 트랙 샘플러 작업을 했다.
에스파 ‘Whiplash’ 뮤비에서 김온유 감독이 작업한 자동차 CG 이미지. 실제와 유사하게 만드는 데에 공을 들였다.
김온유 감독은 서울영상고등학교 재학 시절 이미 무신사 광고에서 3D 그래픽 작업을 선보이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물론 어린 천재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고3 때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공부하는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곤 했다.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밀려올 때면 ‘그렇다고 포기할 거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김 감독은 ‘포기하고 싶진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침내 뚝심이 빛을 발했다. 고3 시절을 모두 쏟아부었던 단편 애니메이션이 3D 아티스트 커리어의 시작점이 됐다. 그는 언젠가 넷플릭스에 자신의 이름을 건 작품을 올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간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머지않아 넷플릭스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을 듯싶다.
고3 시절 만든 애니메이션이 길을 열다
유튜브 조회수 527만을 기록한 로제의 아파트 레고 버전 애니메이션.
이렇게 화제가 될 줄은 전혀 몰랐어요. 깜짝 놀랐죠. 에스파는 제가 좋아하는 그룹이어서 팬심으로 작업한 것도 있거든요. 좋아하는 팀의 작업이 화제가 돼서 굉장히 기뻤습니다.
영상 중에서도 3D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중학교 때 ‘애프터 이펙트’라는 툴을 공부했었어요. 애프터 이펙트는 모션 그래픽이나 타이포그래피에 많이 사용되는 2D 툴이에요. 고등학생 때 그 툴 안에 3D 내장 기능을 사용해서 간단한 3D 작업을 해봤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원래 고등학교 1학년부터 2학년까지는 영화를 전공했어요. 단편영화를 찍으면서 비용, 장소 등 현실적 한계에 부딪혔죠. 3D 애니메이션은 그런 제약이 없으니까 자유로운 작업이 가능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부터 3D 애니메이션으로 진로를 틀게 되었습니다.
김온유 감독의 첫 번째 3D 애니메이션 ‘Jerry Beer’
첫 3D 애니메이션은 ‘Jerry Beer’라는 5분 분량의 단편영화였어요. 영화를 제작할 때가 3D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지 6개월 정도 된 시점이었어요. 제대로 된 멋있는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도전한 첫 작품이었습니다
‘Jerry Beer’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강아지 장난감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먹이를 기구 안에 넣어놓고 강아지들이 기구를 발로 굴리면 먹이가 나오는 장난감 있잖아요. 강아지들은 장난감 안의 먹이가 엄청나게 먹고 싶을 텐데, 힘들게 움직여야만 꺼낼 수 있어요. 그때 ‘이 장난감이 강아지 입장에서는 고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모순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이 로그라인을 기반으로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계속 발전시킨 게 ‘Jerry Beer’의 시나리오예요. ‘Jerry Beer’에는 지구 온난화가 진행돼 바다를 보기 힘들어진 미래를 배경으로 바다에 가고 싶은 소라게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러나 소라게가 염원하던 바다는 실은 ‘Jerry Beer’의 옥외광고였고요. 소라게는 결국 그 앞에서 시위하던 환경보호 단체의 발에 밟혀 죽죠. 인간의 모순성을 표현한 단편 애니메이션입니다.
고3 때 제작했다는 게 놀라워요.
입시 공부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어요. 고3 대부분의 시간을 3D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데 쏟아부었죠. 학교에서 자습 시간에 친구들이 공부할 때 저는 노트북을 펴고 작업에 매진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학 입학이 아닌 ‘단편 애니메이션 완성’이 목표가 됐습니다.
제작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고3 때니까 친구들은 입시 공부를 하잖아요. 저는 수능 공부나 내신 준비는 완전히 포기하고 애니메이션 제작에만 몰두했어요. 그러다 보니 ‘Jerry Beer’를 제작했던 6개월의 기간이 도박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친구들은 대학도 가고 취업도 할 텐데, 남들과 다른 나의 선택이 틀린 거면 어떻게 하지?’ 하는 고민이 많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포기를 할 거냐’고 스스로에게 반문했을 때 그것도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왕 시작했으니 어떻게든 끝을 보자는 생각으로 ‘Jerry Beer’를 완성했어요.
불안감을 어떻게 이겨냈나요.
사람은 자기만의 줏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면 끝이 없거든요. 비교를 멈추고 ‘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거야’라고 스스로를 세뇌했어요.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서 생각이 자꾸 그쪽으로 떠내려가는 걸 멈춰야 했으니까요. 마음을 다잡고 제 의지대로 밀어붙였죠.
스트레이키즈의 ‘JJAM’ 뮤직비디오 인트로.
3D 특기자 전형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어요. ‘대한민국청소년미디어대전’에서 서울시장상도 받았고요. 그리고 어떤 분이 ‘Jerry Beer’를 보고 그 감상을 DM으로 보내면서, 광고 프로젝트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왔어요. 단번에 좋다고 말씀드렸죠. 다음 날 한 단톡방에 초대됐는데, 단톡방 이름이 ‘뉴진스 무신사의 무진장 광고 콜라보 영상’이었어요. 그게 저의 첫 데뷔작이 됐죠. ‘Jerry Beer’ 영상 하나로 많은 기회를 얻은 셈이에요.
무신사의 무진장 광고에서는 어떤 파트를 제작했나요.
수산시장의 물고기를 제작하는 파트를 맡았어요. 당시 클라이언트가 픽사의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물고기와 비슷한 느낌을 원했어요. 수산시장에서 볼 수 있는 참돔이나 광어, 돌돔 등의 생선을 캐릭터화해서 귀엽게 만드는 데 중점을 뒀던 것 같습니다.
작업할 때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저는 매 작업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해요. 예를 들어 스트레이키즈 ‘JJAM’ 뮤직비디오에는 할리우드 프로세스를 활용하고 싶었어요. 단순히 겉모습만 3D 그래픽으로 만들지 않고 속에 있는 뼈, 근육, 스킨까지 시뮬레이션해서 생동감을 주는 방법인데요. 영화 ‘혹성탈출’이나 ‘아바타’ 보시면 CG가 굉장히 현실적이잖아요. 인트로에 등장하는 쥐를 만들 때 그런 진짜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죠.
일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과 힘든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열심히 만든 뮤직비디오 영상이 세상에 나왔을 때죠. 특히 유튜브 댓글에 제가 작업한 파트 부분 언급이 있으면 정말 뿌듯해요. 가장 힘든 순간은 시간의 압박이 느껴질 때예요. 마감은 다가오는데 기술적으로 어려운 작업이거나 수정 요청이 계속해서 오는 경우죠. 그때는 잠을 못 잘 정도로 작업해야 해서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주 힘듭니다.
서울영상고 진학은 ‘이렇게’
고등학교 졸업작품 ‘Champ’. 모기와 상상의 결투를 벌이는 모습을 애니메이션에 담았다.
아홉 살 때부터 카메라를 공부하면서 스톱모션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영상을 계속 만들다 보니 중학교 때 공모전에도 많이 나가게 됐죠. 신기하게도 나가는 공모전마다 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의 진로가 영상 제작 쪽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진로를 영상 제작으로 정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나요.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저희 부모님은 완전히 방목형이거든요. 제가 수능 공부를 하지 않고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했을 때도 열렬히 응원해주셨어요. 그리고 처음 서울영상고에 가겠다고 했을 때도 “한번 해봐” 하면서 용기를 북돋아주셨어요. 또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보니 작업에 집중이 잘 안 돼 부모님께 자취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때도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제가 좋은 작업물을 만들 수 있었던 데는 부모님 덕이 가장 커요.
서울영상고에 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요.
본인의 작업물에 대해 욕심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간단한 작업일지라도 ‘내가 영상을 이 정도까지 제작해봤다’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필요해요. 요즘엔 다양한 영상 제작 툴이 있어서 접근 가능성이 높잖아요. 무엇보다 자신만의 열정이 느껴지는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면접에서는 인성 부분도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예의 바른 태도에 신경 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작업을 하다 보면 다른 학생들처럼 딴짓하고 싶진 않나요.
저희도 작업하다가 다른 학생들처럼 인스타도 보고 유튜브도 봐요. 그리고 너무 놀고 싶을 때는 회사 직원들과 같이 나가서 산책을 하거나 생각을 환기하곤 하죠. 하지만 작업물에 대한 마감 기한이 닥치거나 시간적 압박이 오면 놀고 싶다는 생각조차 안 들어요. 오로지 ‘이걸 끝내야겠다’는 마음뿐이죠. 기한 안에 끝내지 못하면 금전적 피해가 오니까요.
3D 아티스트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안 될 것 같은 것도 막상 시도하면 되는 경우가 많아요. 3D 아티스트는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해요. 저는 아직 노력이 배신하는 일은 없었거든요. 여러분도 포기하지 않고 꼭 끝까지 해내셔서 멋진 결과를 이룰 수 있길 바랍니다.
김온유가 기다리는 서른살
요즘은 어떤 콘텐츠를 즐겨 보시나요.저는 쉴 때 넷플릭스 정주행을 즐겨요.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하고요. 또 마블 시리즈도 무척 좋아해서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어벤져스’ 등을 다양하게 보고 있어요.
작업물의 영감은 주로 언제 얻나요.
좋아하는 콘텐츠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요. 샤워할 때도 많은 게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일상생활이나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에서도 아이디어를 떠올리죠. 무언가 재밌는 게 생각나면 바로 메모장에 적어서 작업의 재료로 활용해요.
예를 들면요.
고3 때 복층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했는데, 층고가 높다 보니 여름에 모기가 들어오면 잡기가 힘들더라고요. 할 수 없이 3일 동안 모기랑 원치 않는 동거를 해야 했죠. 그때 모기를 때려잡아서 저의 한을 푸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저는 액션 신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모기를 때려잡는 아이디어와 액션 신을 결합해 모기와 복싱 경기를 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졸업 작품 ‘Champ’예요.
서른 살의 김온유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 생각을 정말 많이 했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서른 살에 원하는 걸 얼마나 이룰 수 있을지 궁금해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 같아요. 커리어의 목표는 넷플릭스에 제가 만든 작품을 올리는 것입니다. 또 커리어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3D아티스트 #서울영상고등학교 #에스파Whiplash #김온유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김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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