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소리 나는 살림꾼으로 유명한 아나운서 오영실(41)이 방송활동을 잠시 접고 사업가로 변신했다. 요리연구가 박민주씨와 함께 경기도 분당 정자동 카페골목에 쿠킹클래스를 겸한 카페 스타일의 반찬가게를 연 것. 사업은 이번이 처음인 그는 요즘 들어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새삼 깨닫고 있다고 말한다.
“사업을 시작하고 좋은 점은 돈 쓸 시간이 없다는 거예요. 백화점 세일이 언제 끝났는지도 모른다니까요.(웃음) 나쁜 점은 아이가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는 거예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모든 집안일을 제가 다 했는데 날마다 아이와 남편에게 식은 밥 먹이는 게 싫어서 도우미 아주머니한테 가사 일을 맡기고 있어요.”
그가 갑자기 사업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평소 요리와 관련된 사업에 관심이 있기도 했지만,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방송인으로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2002년 삼성의료원 외과과장인 남편 남석진씨(45)가 1년 반 동안 미국 워싱턴에 교환교수로 가면서 아이들과 함께 3년 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다 지난해 돌아온 그는 3년이라는 공백기를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방송의 흐름을 쫓아가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방송일 그만두고 우울증 앓았지만 사업 시작하면서 삶의 활력 되찾았어요”
“물론 저는 방송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하지만 방송만 고집할 게 아니라 더 나이 들기 전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제가 자존심이 강해서 누구한테 무릎 꿇는 걸 절대 용납하지 못하거든요.(웃음) 남편도 제 사정을 알고는 ‘당장 그만둬’ 하고 큰소리치더라고요.”
그는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전업주부로 생활하면서 또 다른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남편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는데, 아침에 자고 있는 남편에게 “당신은 우리 가족의 등불, 얼른 일어나서 병원 가세요. 딸랑딸랑~” 하면서 온갖 아양을 다 떨었다고. 남편 또한 그런 아내의 모습에 흐뭇해했다고 한다.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각자의 수입을 따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경제적인 부분을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자 그 모습을 낯설어하면서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는 것.
‘휴대전화 사건’으로 이혼 위기까지 갔던 오영실은 미국에 머무는 동안 ‘사랑의 삶은 달걀’사건으로 부부사랑을 회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그는 20년 가까이 해온 일을 하루아침에 그만두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한다.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친구들도 만나기 싫고, 그렇게 좋아하던 각종 모임에도 발길을 뚝 끊게 됐다고. 무엇보다도 그는 매번 남편에게 생활비를 타 써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자’ 주의인 그와 달리 남편은 ‘오늘보다는 미래가 중요하다’ 주의라 신혼 초부터 돈 쓰는 일로 자주 다퉜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이유가 겹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우울의 늪에 빠져든 그는 하루 종일 거실 소파에 앉아 넋을 놓고 있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아내를 걱정스럽게 바라본 남편은 그를 애써 밖으로 내몰았고, 결국 사업을 시작하면서 다시금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고.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돈’이다. 며칠 전에는 가게 인테리어 비용문제로 남편과 또 한 차례 티격태격했다고 한다. 남편에게 돈을 빌리기로 한 그가 출근길에 돈 얘기를 꺼내자 남편은 ‘알았다’는 말 대신 한숨을 길게 내쉬었던 것. 그 모습에 상처를 받은 그는 한동안 남편과 말도 안 하고 침묵으로 투쟁했다고 한다.
신혼 초부터 돈 문제로 자주 다투다 ‘휴대전화 사건’으로 이혼 위기까지 처해
“한번 주기로 한 거면 기분 좋게 줘야지, 남자가 한숨을 쉬는 건 뭐예요. 내가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알뜰한 건 좋지만 남편이 저한테 너무 인색하게 굴 때면 저도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들어요.”
그날의 사건이 어찌 보면 사소한 문제인 것 같지만 신혼 초부터 돈 문제로 남편과 신경전을 벌여야 했던 그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연애시절부터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뒷바라지했다고 믿고 있는 그에게 남편의 그런 행동은 때로 배신감으로 다가온다고.
“저는 어려서부터 애교가 많아서 엄마한테 용돈을 잘 타 썼고, 남편은 알뜰한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대학시절 주머니가 넉넉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엄마한테 책 산다고 만원을 삥땅(?)치면 둘이 오천원, 오천원씩 나눠 쓰면서 남다른 사랑을 쌓았단 말이죠.(웃음) 하루는 남편이 다 해진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파서 그길로 바로 당대 최고의 브랜드였던 리바이스에 데리고 가 남방과 청바지로 한 벌을 쫙 빼줬어요. 제가 그렇게 남편을 보필했는데, 그런 남편이 저한테 돈을 아낀다는 것에 대해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가 더욱 서운했던 건 그에게는 인색한 남편이 아이들에게는 관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아직도 자신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사건 하나를 들려줬다. 때는 큰아이가 첫돌을 맞을 무렵, 장소는 남편 동료 아들의 돌잔치 집이었다. 당시 아이들에게 한복 대신 유명 브랜드의 청바지를 입혀서 사진을 찍는 게 유행이었는데, 그 집 아이가 그 청바지를 입은 걸 보고 그는 자신의 아이에게도 청바지를 입히고 싶은 마음에 동료 부인에게 청바지를 빌려달라고 부탁을 했으나 단칼에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그 사실을 알고 덩달아 화가 난 남편은 아이에게 당장 청바지를 사주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그는 그 틈을 이용해 “그럼 나도 하나만…”이라고 말했는데, 남편의 반응은 예상대로 ‘No’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부부에게는 ‘청바지 사건’에 버금가는 일들이 수차례 반복됐고,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드디어 그가 이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만 해도 휴대전화가 귀한 시절이었는데, 너무 비싸 직접 사지는 못하고 친한 선배한테 ‘전화기를 새 걸로 바꾸면 헌 것은 나를 달라’고 부탁을 해놨었어요. 그런데 얼마 뒤 선배가 휴대전화를 새 걸로 바꾸고도 저한테 연락을 안 하는 거예요. 제가 왜 안 주냐고 물었더니 선배가 한참을 망설인 끝에 ‘니 남편이 주지 말라고 했어’라고 말하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선배가 남편을 만나서 전화기를 주려고 했는데, 남편이 가입비가 20만원이면 너무 비싸니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는 거예요. 제가 얼굴이 얼마나 뜨겁던지, 순간 그동안 힘겹게 쥐고 있던 인연의 끈을 저도 모르게 놓아버렸죠.(웃음)”
오영실은 3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미국에 머물면서 가족 사랑이 더욱 돈독해졌다고 말한다. 사진 왼쪽은 큰아들 혁수(15), 오른쪽은 둘째 아들 종수(12).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남편에 대한 원망이 도를 넘어 한(恨)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남편도 자식도 모두 소용없다고 느낀 그는 ‘허무주의’에 빠져 오랫동안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고. 더 이상 마음을 둘 데가 없다고 느낀 나머지 ‘골프의 세계’로 빠져들었는데, 날마다 방송국 PD, 아나운서, 연예인 매니저들과 함께 골프를 치러 다니면서 밤늦게 귀가하는 날이 잦았다고 한다. 아내가 밖으로만 돌자 남편 또한 화가 날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 두 사람의 싸움은 더욱 격해졌다고.
“제가 말이 많은데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커요. 밤늦게 부부싸움을 할 때면 남편은 창문 닫기에 바빴어요. 그렇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 내뱉었죠. 콧방귀를 뀌며 ‘흥! 아나운서와 의사의 조합? 남들이 보면 환상적인 커플이라 생각하겠지. 이렇게 속이 곪아터지는 건 모르고’ 하면서 비아냥거리기도 많이 했어요.(웃음)”
남편에 대한 미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가 더욱 세졌다고 한다. 심지어 자는 모습까지 밉게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그런 그에게 몇몇 친구들은 심지어 이혼을 권했다고. 그 역시 새해 첫날 남편에게 “내 소원이 뭔지 알아? 둘째아이까지 장가보내고 당신하고 이혼하는 거야” 하고 극한 말까지 던졌다고 한다. 그는 “친정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만큼은 편부 편모 밑에서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며 털어놓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 부부에게 어느 순간 기적이 찾아왔다. 그의 눈에 다시금 남편이 멋있게 보이기 시작한 것. 그는 “남편을 미워하면서도 ‘제발 남편을 다시 사랑하게 해달라’며 눈물로 호소한 나의 기도가 통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이 점점 예쁘게 보이자 친구들 앞에서도 “요즘 우리 남편이 더 멋있어진 것 같지 않냐. 역시 남자들은 중년의 모습이 더 멋있어” 등의 칭찬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아내의 반응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하던 남편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화해 모드로 전환했다고. 그러다 4년 전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낯선 외국 생활을 하면서 부부간의 정이 돈독해졌다고 한다. 특히 ‘사랑의 삶은 달걀’ 사건 이후로 모든 불화가 사라졌다고.
“삶은 달걀에 칼집을 내 소금을 넣어 건네준 남편, 그동안의 원망이 눈 녹듯이 사라졌어요”
“미국에 있는 동안 저도 학교에 다녔는데, 아침 일찍 한 시간 반 정도 운전을 해서 학교에 가야 했어요. 하루는 남편이 운전하면서 먹으라고 토스트랑 달걀을 싸주더라고요. 속으로 ‘운전하면서 이걸 어떻게 까나’ 하고 달걀을 집어 들었는데, 이미 껍질이 다 까져 있는 거예요. 순간 감동이 밀려왔죠. 고마운 마음에 달걀을 한입 베어 물었는데 세상에, 달걀에 소금간이 돼 있지 뭐예요. 남편이 달걀을 3등분으로 나눠서 십자로 칼집을 낸 뒤 거기에 소금을 밀어넣었더라고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그동안 남편에게 품고 있던 모든 원망이 한순간에 눈 녹듯이 사라지더라고요.”
‘삶은 달걀 사건’으로 남편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그는 더 이상 과거 일로 남편에게 시비를 걸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그는 “남편이 보고 싶어서 집에 빨리 들어가려 하고, 밖에 나와 있어도 남편의 얼굴이 아른거린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두 사람은 대학시절 선배의 소개로 만났다고 한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근처 다방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전까지 남편을 ‘킹카’로 알고 있었던 그는 양복바지에 와이셔츠 차림의 남편을 보고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당시 ‘킹카’라 함은 적어도 ‘죠다쉬 남방을 입고, 어깨에는 스포츠 색을 둘러야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혀 킹카스럽지(?) 못한 차림으로 소개팅 장소에 나온 남편과 달리 파란색 공주풍 원피스를 차려입고 나간 그는 남편을 한눈에 사로잡아 애프터 신청까지 받아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다시는 안 만나려고 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두 번째 만났을 때 남편이 구수한 된장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심지어 속으로 ‘하느님, 저 남자와 결혼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를 했다니까요.(웃음)”
7년간 긴 연애를 하고도 결혼 후 서로 다른 성격에 많이 부딪치고 싸우면서 이혼의 고비까지 넘겨야 했던 그는 “부부간의 사랑은 도미노 현상과 같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쌓아온 사랑의 조각들도 하나가 쓰러지기 시작하면 눈 깜짝할 사이 끝도 없이 허물어지고 말지만, 누군가 용기를 내 쓰러지는 조각을 손으로 받치면 더 이상 도미노 현상은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 남편과의 갈등으로 힘들 때마다 연애시절을 떠올리며 첫사랑을 회복시켜달라고 맘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는 그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남편과 다시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다. 신혼 초에는 남편의 과묵함에 숨이 막혔지만, 지금은 진중하고 속 깊은 남편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고.
“죽는 날까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하잖아요. 누구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인생을 배워가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첫아이 낳았을 때도 우울증을 앓았어요. ‘이 아이를 어떻게 책임져야 하나’하는 걱정 때문에요. 그런데 둘째를 낳으니까 그제야 자식이 얼마나 사랑스런 존재인지를 알겠더라고요. 남편과도 많은 갈등을 겪었지만 그러면서 우리 부부의 사랑이 더욱 단단해졌다고 믿어요.”
자신의 아픔을 숨기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지만 위트 있는 말솜씨로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오영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밝은 웃음은 솔직함과 당당함에서 나오는 것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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