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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지난 세월의 아픔을 딛고…

‘사랑과 야망’으로 인기 끄는 감초 조연 박준금

“불임으로 맘고생하다 10년 만에 브라운관 복귀...”

기획·송화선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2006. 09. 21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홍조 새엄마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중견 탤런트 박준금. 청순가련형 청춘 스타로 사랑받다 결혼 후 홀연히 브라운관을 떠났던 그를 만나 10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사연과 그간의 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사랑과 야망’으로 인기 끄는 감초 조연 박준금

SBS 드라마 ‘사랑과 야망’은 주연보다 조연들의 연기가 더 볼만한 드라마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이 드라마의 막강 조연진 가운데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이는 홍조(전노민) 새엄마 역을 맡고 있는 중견 탤런트 박준금(44). 그는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한 성질’ 하지만, 한편 겪어보면 앞뒤가 다르지않은 솔직한 성품이어서 미워할 수 없는 시어머니 역을 ‘이보다 더 자연스러울 수 없게’ 연기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박준금은 80년대 여리고 선이 고운 ‘청순가련형’ 여주인공을 주로 연기하던 배우다.
그의 데뷔담은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 같다. 경희대 무용과에 재학 중이던 80년, ‘국풍 80’이라는 대학생 축제에 참가했는데 이때 알게 된 KBS PD가 어느 날 “방송국으로 좀 와달라”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당시 KBS에서 방송되던 주말드라마 ‘순애’의 주인공이 개인 사정으로 중도하차하자 그 역을 이어 맡을 배우로 박준금을 부른 것이었다고. 아무 생각 없이 방송국에 갔다가 얼떨결에 카메라 테스트를 받은 박준금은 잠시 후 담당 PD가 드라마 대본을 건네주며 “이 작품의 주인공을 맡아보지 않겠느냐”고 물어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대의 인기 배우 서인석과 유동근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역할이었기 때문. 박준금은 바로 다음 날부터 촬영에 들어갔고, 데뷔 일주일 만에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알아보는 ‘스타’가 됐다.
“좋게 말하면 ‘신데렐라 스토리’지만 실은 아픔이 많았어요. 무명 시절이나 조연 생활을 전혀 지나지 않고 주인공이 됐기 때문에 방송국 내 텃세와 질시가 말도 못했거든요. ‘‘순애’의 박준금은 미스 캐스팅’이라는 기사가 실린 신문을 들고 엉엉 울면서 방송국에 간 적도 있어요. 연습실에서 유동근 오빠를 붙잡고 한참을 더 울었죠.”

결혼과 함께 연예계 생활 접고 소박한 행복 꿈꿨지만 계속된 임신 실패로 큰 좌절 겪어
하지만 이를 악물고 연기에 매달린 끝에 드라마가 끝날 무렵엔 ‘첫 출연치고는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즐거운 우리집’ ‘사모곡’ 등에 잇달아 출연하며 인기를 모으다 서른두 살이 되던 94년, 결혼과 함께 브라운관을 떠났다.

‘사랑과 야망’으로 인기 끄는 감초 조연 박준금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홍조 새엄마 역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박준금.


“서른 살이 넘으면서 차츰 나이 어린 후배들에게 밀려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이걸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떠나느냐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죠. 10년 넘게 열심히 일했으니 이쯤에서 떠나도 후회는 없겠다 싶어서 연기생활을 접었어요.”
그는 아이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꿈을 꾸었지만 ‘불임’이라는 시련이 찾아왔다고 한다. 온갖 검사를 다 해봐도 그와 남편 두 사람 모두 아무 이상이 없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나이가 서른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초조한 마음에 인공 수정에 매달렸다고.
“시험관 시술을 12번이나 했어요. 그동안 흘린 눈물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지금은 이렇게 담담히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임신이 인생의 전부 같았어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저 자신이 미웠고, 인생 전체가 실패인 것처럼 느껴졌죠.”
그는 인공 수정을 위해 호르몬 주사를 계속 맞았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로 자학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30대 후반을 보냈다고 한다.
“마흔 살을 넘기면서 조금씩 마음을 접었어요. 이제 그만 하자, 자연적으로 생기면 생기는 거고 안되면 내 팔자에 자식이 없는 걸로 여기자고요.”
힘겨운 시간이 지나가자 다시 일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연기자로 복귀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마침 ‘사랑과 야망’ PD의 캐스팅 전화를 받았다고. 그가 TV에 출연하지 않을 때도 “당신은 연기자니까 늘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조언할 만큼 그의 직업을 인정해줬던 남편 박영호씨(51)도 박준금의 복귀 결정을 환영했다.

“10년 만에 돌아온 브라운관에서 신인 배우된 마음으로 연기하고 있어요”
엄마가 되고 싶은 꿈을 끝내 이루지는 못했지만 안방극장에 돌아온 박준금은 “나는 인생에서 참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행복한데, 평소 좋아하던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 출연하게 돼 더 기쁘다고.
“매주 화요일 아침마다 대본이 이메일로 도착해요. 대사를 읽다보면 어쩌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가슴이 뭉클해지죠. 요즘들어 새삼 연기의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특히 어떻게 하면 화면에 예쁘게 나올까 고민하던 젊은 시절을 뒤로하고 머리를 하얗게 칠하고 얼굴에 주름살을 그려넣은 채 연기를 하게 되니 이제야 진정한 연기자가 된 것 같다고 한다. 처음에는 배역 이름도 없고 비중도 크지 않은 역할이었는데, 그가 본격적으로 연기를 한 뒤부터 조금씩 관심을 받기 시작해 이제는 많은 이들이 ‘잘 보고 있다’는 인사를 건넬 만큼 주목받게 된 것도 뿌듯하다고.
“사실 올 초 제작발표회 때까지만 해도 제게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인터뷰 요청도 심심찮게 들어와요(웃음). 아마 다시 신인이라는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한 게 좋게 보인 모양이에요.”
며느리를 ‘달달 볶으면서도’ 마음 한 자락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음이 슬며시 드러나는 ‘홍조 새엄마’를 연기하기 위해 박준금은 고시생이 된 마음으로 연습을 거듭했다고 한다. 화를 내며 악을 쓰는 장면을 연습할 때는 혼자 차를 몰고 한적한 곳에 가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고. 그 덕분인지 이제는 조금씩 연기에 자신이 붙어 하루 종일 촬영을 한 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갈 때도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마음에 행복할 때가 많다고 한다.
“이제야 연기가 천직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10여년의 공백을 메우려면 아직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정말 좋은 연기자라고 평가받을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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