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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시네마 패밀리

아내, 두 아들까지 총출동해 영화 만든 하명중 감독 가족

기획·김명희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2007. 09. 22

70년대 인기배우이자 영화감독인 하명중씨 가족은 영화 제작자인 아내와 감독 지망생인 두 아들까지 모두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시네마 패밀리’다. 아내가 제작하고 남편이 감독을 맡고 아들들은 주연·프로듀서로 힘을 모아 영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만든 이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 두 아들까지 총출동해 영화 만든 하명중 감독 가족

영화를 빼고는 이 가족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하명중씨(60)는 70년대 당시, 지금으로 치면 장동건·배용준 같은 최고 인기 꽃미남 배우였다. 84년 그가 감독을 맡아 내놓은 영화 ‘땡볕’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했다. 그의 부인 박경애씨(60)는 18년째 뤼미에르 극장을 운영하며 1백여 편의 영화를 수입, 배급했고 20여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큰아들 상원씨(34)는 경희대 연극영화과 겸임교수이자 영화제작사 IHQ의 기획팀장이며, 둘째 준원씨(31)는 영화 ‘괴물’의 시나리오 작가(봉준호 감독과 공동집필)다. 또 두 아들은 모두 아버지의 대를 이어 감독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영화라는 공통분모가 있기는 해도 각자 자기 일에 정신없이 바빴던 네 식구가 모처럼 뭉쳐서 일을 벌였다. 9월13일 개봉하는 영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에서 아버지는 감독을, 어머니는 제작을, 큰아들은 남자 주인공을, 작은아들은 프로듀서를 맡은 것. 두 아들은 준비 중이던 데뷔작 시나리오 작업을 잠시 미뤄놓고 달려와 영화 작업을 도왔다고 한다.

“아내는 나를 영원한 ‘영화 청년’으로 살게 해준 은인”
아내, 두 아들까지 총출동해 영화 만든 하명중 감독 가족

하명중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큰아들 상원군(왼쪽)이 주연을 맡는 등 하 감독 가족이 총출동해 만든 영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의 한 장면.


하명중 감독이 영화를 내놓은 건 지난 90년 ‘혼자 도는 바람개비’ 이후 무려 17년 만이다. 다들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고 묻지만 정작 그는 그동안 한 번도 영화계를 떠나거나 영화작업을 쉰 적이 없다고 말한다.
“작품 준비를 꾸준히 해왔어요. 몇 년씩 준비했다가 결국 세상에 나오지 못한 게 두어 편 돼요. 작가 이문열씨의 ‘여우사냥’을 영화로 만드는 프로젝트도 꽤 오래 전부터 진행 중인데 워낙 규모가 커서 여러 해 걸리고 있고요.”
그러던 중 지난 2004년 출간된 최인호 작가의 자전적 소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영화로 만들기로 하고 2년 반 동안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하 감독 가족은 최씨와 인연이 깊다. 최씨의 소설 ‘별들의 고향’을 읽고 74년 영화로 기획한 사람이 하 감독의 아내인 박경애씨이기 때문. 게다가 ‘별들의 고향 2’는 하명중 감독의 형인 고(故) 하길종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둘째 준원씨는 최씨의 단편 ‘유령의 집’을 영화화해 2003년 칠레 국제 단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고, 큰아들 상원씨도 최인호 소설 ‘몽유도원도’를 영화로 기획 중이다.

아내, 두 아들까지 총출동해 영화 만든 하명중 감독 가족

자신들이 하던 일을 잠시 중단하고 기꺼이 아버지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선 큰아들 상원씨와 프로듀서를 맡은 둘째 준원씨(왼쪽부터).


하 감독의 다른 작품들처럼 ‘어머니…’ 역시 부인 박씨가 제작했다. 박씨의 아버지는 60년대 영화 수입으로 시작해 ‘별들의 고향’ ‘만다라’ ‘바보선언’ 등 한국영화 역사에 굵은 획을 남긴 영화들을 제작한 40년 전통의 영화사 화천공사의 설립자였다. 두 사람이 결혼하던 72년 당시 하 감독은 한창 주가가 오르는 신인 배우였고 박씨는 영화사 집안 딸이었지만 그런 걸 떠나 두 사람은 고교 시절부터 서로 눈빛이 오간 사이였다고 한다.
“우리가 결혼할 때 7년 열애한 사이라는 기사가 나왔는데 그런 건 아니었고 학교 다닐 때 (하 감독이) 저한테 몇 번 편지를 보낸 적이 있어요. 그때 이미 남편은 저를 자기 여자라고 찍었대요.”
하 감독은 “감독과 제작자가 대립하다 보면 감독의 작가적 생명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 아내는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게 해줘서 보통 감사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제작 중간에는 아예 영화를 보지 않는다고.
“제가 참견을 하면 만드는 사람의 자기 색깔이 흐려질 수 있으니까요. 물론 나중에 ‘내가 좀 간섭할걸 그랬다’고 후회할 때도 있어요(웃음). 그래도 자기 작품이니 감독 자신이 책임지는 걸 원칙으로 해요. 그래도 이번 작품 ‘어머니…’는 ‘어머니 이야기다 보니’ 제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더라고요.”
큰아들 상원씨는 이번 영화에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영화 만드는 동안은 이 일에 전념해달라”는 아버지 말에 따라 재직 중인 회사와 대학에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휴직계를 냈다고 한다.
상원씨가 아버지 부름을 받고 하던 일을 접고 달려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영화연출 석사 학위를 받고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 ‘쿠키스 포춘’의 프리 프로덕션팀에서 일하던 지난 99년에도 아버지가 준비하던 ‘명성황후’에 일손이 필요하다고 하자 주저 없이 돌아왔었다.
“제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투자사와의 미팅 자체가 안 잡히는 겁니다. 투자사의 실무자들이 다 30대인데 그 사람들 생각에 50대가 무슨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랴 싶었나봐요. 생각다 못해 큰아들을 공동감독으로 세우기로 하고 불러들인 거죠(웃음).”

아버지가 찍어온 필름 집에서 보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한 꿈 키운 두 아들
상원씨는 “일흔이 넘은 로버트 알트만 감독도 휠체어 타고 다니며 영화 현장을 지휘하는데 50대인 아버지더러 나이 많아 안 된다고 말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갔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영화인 부모 아래서 자란 상원씨는 영화가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인지 생각해볼 틈도 없이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영화를 하게 됐다고.
“우스운 얘기지만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있듯이 영사기가 있는 줄 알았어요.”
16mm 영사기로 아버지가 찍어온 필름들을 집에서 보고 편집하는 아버지 곁에서 형제가 같이 필름을 감으며 컸기에 “영화는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고 다른 길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동생 준원씨는 형과 달리 “가족이 다 영화 일을 하고 있으니, 나라도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한때 생각했다고 한다. 어머니 박씨도 둘째 아들은 다른 일을 하기를 은근히 기대했다고. 그러나 결국 그도 ‘피는 못 속이고’ 영화판으로 뛰어들었다.
“형이 유학시절 방학 때 집에 와서 자기가 찍은 단편 필름을 보여주는데 무척 좋아 보였어요. 형도 ‘이 재미있는 일을 너는 왜 안 하느냐’는 식으로 말하고요. 그럼 나도 한번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지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정신차려 보니 어느새 영화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겁니다.”

아내, 두 아들까지 총출동해 영화 만든 하명중 감독 가족

준원씨는 단편 세 편을 만든 데 이어 자신의 장편 데뷔작을 준비하던 중 이번 영화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스태프를 구성하고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제작 일정을 진행시키는 책임을 맡았다. 그에게나, 그가 데려온 젊은 영화 스태프들에게 하 감독과의 작업은 흔하지 않은 흥미로운 경험이었으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한다.
“젊은 감독들과는 스타일이 다르지만 아버지께는 뭐라 말하기 힘든 깊은 연륜이 있습니다. 현장의 젊은 친구들이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이라며 만족스러워했어요.”
프로듀서가 해야 할 일 중 가장 큰 것은 감독이 예산을 초과하지 않고 촬영일수를 연장하지 않도록 독려 내지 감시하는 일이다. 준원씨는 “아버지는 감독으로서 당연히 더 찍고 더 담고 싶은 마음이 컸을 텐데도 포기할 때는 포기하고 밀고 나갈 때는 밀고 나가는, 타협의 기준이 명확해서 새삼 놀랐다”고 말했다.
두 아들을 좌청룡 우백호처럼 든든하게 거느린 덕분에 하 감독은 영화 촬영에 혼신의 힘을 다 쏟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전력투구를 했던지 편집이 끝나자마자 긴장이 툭 풀어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고.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었더니 척추 디스크가 다 터졌대요. 영화 만든다는 일념으로 건강이고 뭐고 돌아볼 여지없이 달려온 결과죠.”



영화 주인공 맡은 배우 한혜숙과는 35년 친구
영화 ‘어머니는…’의 주인공을 맡은 한혜숙과 하 감독은 72년 TV 드라마 ‘꿈나무’를 통해 처음 만나 지금까지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사이다. 주연 여배우를 캐스팅하기 전 원작자인 최인호씨는 “우리 엄마가 실제 미인은 아니었지만 마음속 엄마는 미인”이라면서 “무조건 아름다운 여배우에게 어머니 역을 맡길 것”을 요구했다고. 50대 여배우들을 물망에 올려놓고 고민하다 한혜숙이 어떻겠냐고 하자 최씨가 무릎을 치며 “최고”라고 기뻐했다고 한다.
“한혜숙씨와는 여러 번 상대 배우로 만나면서 항상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감독과 배우의 관계로 만나 새삼 감탄했어요. 그렇게 철저한 자세로 작품에 임하는 배우를 처음 봤어요. 촬영 현장에서 후배 배우들을 얼마나 자상하게 아껴주는지 글자 그대로 ‘작품의 어머니’ 역할을 맡아 했어요.”
하 감독은 한혜숙과 더불어 공동 주연을 맡은 큰아들의 연기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인기 배우들을 강력 추천했지만 그는 “감독의 역할은 신인 배우를 발굴하는 것”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가 ‘엑스’ ‘땡볕’ ‘태’ 등을 연출하면서 주연을 맡겼던 이미숙·조용원·이혜숙 등은 당시 모두 신인 배우였다.
그는 “관객들에게 배우 하상원이 낯선 얼굴이라 처음에는 어색할지 몰라도 차츰 인물 캐릭터에 매료돼 빨려들어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옆에서 부인 박씨가 “아들 칭찬은 잘해야 본전이니 그만 하라”고 하자 진지한 얼굴로 그는 “연기를 못했으면 아무리 아들이더라도 당장 잘랐을 것”이라며 “상원이는 감독이 주문한 인물 캐릭터를 완벽하게 해냈다”고 강조했다.
이날 인터뷰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인터뷰 끝날 시간이 돼가자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각자 다음 일정을 챙기는 눈치였다. 앞으로도 영화라는 공통의 목표를 좇아가는 길에 이 가족들이 ‘따로 또 같이’ 달려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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