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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여전히 뜨거운 전도연

글·진혜린 |사진·이기욱 기자

2013. 12. 17

대한민국에 전도연을 대체할 배우가 있을까? 그가 맡은 어떤 역이든 그보다 더 어울리는 배우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전도연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여전히 뜨거운 전도연
전도연(40)은 몸값 높은 흥행 배우다. 장르와 캐릭터를 불문하고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칸의 여왕’. 하지만 그는 여느 톱 여배우들처럼 콧대를 높이 세우고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12시까지 촬영 허가를 받아놓았는데, 11시 반부터 독촉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결국 ‘안 나가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도장 찍는 장면만 남겨둔 상황이라 스태프와 한마음으로 ‘Just 5 minute, 1 minute’ 하면서 애원을 해도 쫓아내더라고요. 촬영을 접고 허탈하게 앉아 시계를 보니 아직 12시가 안 된 거예요. 12시까지 이용료를 다 지불했는데, 그보다 일찍 쫓아낸 거죠. 억울한 마음을 누르고 돌아오는 길에서야 제가 프랑스에서 기사훈장(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은 게 생각나더라고요. 그 훈장이 프랑스에서는 꽤 인정을 받는 거라 그것만 내밀었어도 그렇게 어이없는 대우를 받지는 않았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때의 억울함이 떠올랐는지 손까지 휘휘 저어가며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다. 정점에 올랐다고 할 만큼 높은 곳에 서 있는 이 여배우에게 이토록 뜨거운 열정이 흐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카메라 앞에서 전도연은 사라지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서 전도연은 친구에게 속아 마약을 운반하다 프랑스 공항에서 발각돼 영문도 모른 채 대서양 건너 외딴섬 마르티니크 교도소에 수감돼 2년여를 보낸 주부, 정연을 연기했다. 이 영화를 위해 전도연은 프랑스와 도미니카 로케이션을 다녀왔다. 40일간의 대장정이었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 가슴 아프고 슬프기보다 솔직히 재미있고 흥미로웠어요. ‘정말 마약인 줄 몰랐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궁금증으로 시작했는데, 촬영을 하면서 그 인물이 겪은 상황과 그 사람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간접적으로 경험을 한 거죠. 얼마나 막연하고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갑갑했을까요?”

그는 배우로서 캐릭터를 분석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힘이 탁월하다. 모든 배우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이해해보려 하지만 모두 결과가 똑같지는 않다. ‘집으로 가는 길’의 방은진 감독은 “중요한 감정 신을 앞두고는 제가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을 배우에게 열심히 설명하죠. 그런데 도연 씨는 항상 그것보다 더 많은 모습을 보여줘요. 카메라 앞에서 전도연이라는 인물은 사라지고, ‘그냥 그녀(맡은 배역)구나’라고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죠” 하며 그에게 받은 감명을 털어놓는다.

‘연기력’으로 감독을 실망시킨 적이 없는 배우 전도연은 “성실함이나 책임감으로도 누구를 실망시켜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 똑 부러진 성실함과 책임감은 ‘집으로 가는 길’ 촬영을 위해 떠난 도미니카에서도 발휘됐다.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고, 무명 배우의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고, 실제 죄수들과의 촬영도 두려워 하지 않았으며, 범죄 소굴이라 불리는 마을에서 옛 달동네의 정취를 엿보는 감성까지 지녔다.

“촬영하다가 쓰러진다는 게 딱 이런 거구나 싶더라고요. 뭘 잘못 먹었는지 급체를 했는데,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었거든요. 날씨는 덥고, 어지럽고, 쓰러지겠더라고요. 민간요법으로 손발을 다 땄는데, 원래 체했을 때 손을 따면 검은 피가 나오잖아요. 그런데 아예 피도 안 나요. 얼굴은 하얗게 뜨고. 그런 얼굴색이 정연이라는 캐릭터랑은 잘 맞았지만(웃음). 모든 스케줄이 딱 맞게 짜여 있는 거라 쉴 수가 없잖아요. 그때 고수(종배 분) 씨가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어요. 본인은 촬영이 없는데도 찾아와서 손을 계속 주물러줬거든요(웃음). 그 고마움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여전히 뜨거운 전도연

다섯 살 어린 고수와 부부 연기를 해야 했던 전도연. 외모적으로 젊어 보이려는 노력 대신 서로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감정을 극대화해 나이 차를 뛰어넘는 부부의 사랑을 그렸다.

사실 전도연이 도미니카로 장기 로케이션을 떠날 때 걱정한 건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던 것은 다섯 살 난 딸과 너무 오래 헤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 그는 딸을 낳은 후 이토록 오래 떨어져 지낸 적이 없다고 했다.

“아이가 더 어릴 때는 몰랐는데 크면 클수록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이렇게 오래 떨어져본 적이 없어서 나 없이도 괜찮을지 걱정됐어요. 처음에는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촬영장 여건상 전화가 잘 연결되지 않을 때도 많았고, 인터넷이 잘 안 돼서 ‘어떻게 이런 곳이 다 있을 수 있지?’ 싶었던 때도 있었죠. 그런 답답한 마음에 몸이 지치고 힘들다 보니까 어느 순간 그리움이 육체적인 고통에 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잘 견뎌낸 것 같아요. 저도, 가족들도 잘 참고 견뎌주었던 거죠. 막상 촬영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니까 집이 낯설더라고요.”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가 영화 속에서 간절하게 표현해야 했던 주된 이야기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가장 무서운 감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전도연. 숨소리로도 연기한다던 그답게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라는 한 줄의 내레이션만으로도 그가 선택한 작품이 왜 꼭 그여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내 안에는 지금도 아직 채 피지 못한 열정이 가득해요. 점점 더 자라나고 있는 것 같아요. 가끔 하고 싶은 연기가 떠오르면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피가 막 빨려드는 느낌이 들어요.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뜨거워서 주체하지 못하는, 그런 느낌.”

이게 신인 시절 혹은 10년 전쯤의 이야기가 아닌 올 5월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최정상에 선 이 여배우가 가진 열정은 예상보다 훨씬 뜨겁다.

1990년 CF 모델로 데뷔해 1992년 장동건과 함께 출연한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서 앳된 얼굴에 깜찍한 여배우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전도연. 그리고 1997년 첫 영화 ‘접속’ 이후 ‘해피엔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피도 눈물도 없이’ ‘너는 내 운명’ ‘밀양’ ‘하녀’ 등으로 한 땀 한 땀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정성껏 수놓았다. 12월 개봉되는 ‘집으로 가는 길’ 외에도 이병헌과 함께 출연 예정인, 2014년 개봉을 앞둔 영화 ‘협녀: 칼의 기억’ 촬영도 남아 있다. 2007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내 인생의 서프라이즈일 뿐”이라고 말하던 그는 이제 “나이 먹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방부제 미모’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작품마다 다른 매력을 가진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나이 듦이 영화 팬들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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