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여자가 생긴 사실을 알았을 때 아내가 느끼는 고통의 무게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내 남편은 절대 바람피울 사람이 아니다’고 믿고 살다가 발등을 찍힌 경우라면 그 고통은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한다. 부러진 팔다리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낫지만 남편의 외도로 인해 생긴 마음의 상처에는 명약이 없다.
MBC ‘전원일기’에서 ‘부녀회장’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중견 탤런트 이수나. 최근 인기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핑크레이디’로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그도 가슴 깊은 곳에 말 못할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그를 헤어날 수 없는 고통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남편의 외도였다.
이수나와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또다시 아픈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장성한 딸이 부모의 좋지 않은 과거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하지만 그가 어렵게 마음을 바꿔 먹었다. 남편의 외도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아내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기로 한 것이다.
“이제는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섬뜩할 정도예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모를 겁니다. 아픔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충격적인지. 5년 전, 그날 아주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했어요.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 무턱대고 베풀기를 좋아해 그것 때문에 제가 잔소리를 좀 심하게 했거든요. 평소 속정이 깊지만 화가 나면 욱하는 성격인 남편은 말다툼이 시작되면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가곤 했어요. 보통은 그럴 때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달려가서 집 나가는 남편을 붙잡고 ‘여보, 내가 잘못 했어’ 하고 무조건 빌었어요. 남편이 (집) 나가서 좋을 게 하나도 없잖아요.”
남편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 듣고 달려간 병원에서 ‘남편의 여자’ 만나
하지만 그날은 ‘언제까지 내가 다투고 집 나가는 남편의 비위를 맞추고 살아야 되나’ 하는 생각에 남편을 잡지 않았다고. 예전에도 집 나간 남편이 사흘쯤 지나 화를 가라앉히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 귀가한 전력이 수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3일 전쟁’으로 끝날 줄 알았죠.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남편으로부터 전화 한 통 없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오기가 발동하데요. 저도 전화를 안 했죠. 그런데 3주가 아니라 3개월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더라고요. 걱정은 됐지만 ‘전에 남편이 경영하던 회사 근처에 마련해 둔 오피스텔에서 지내겠지’생각하고 무작정 기다렸어요.”
그가 남편의 전화를 받은 것은 집을 나간 지 4개월 만이었다. 반가운 마음이 앞섰지만 자신도 모르게 쌀쌀한 목소리로 “그동안 잘 지냈냐”고 묻자 남편은 풀 죽은 목소리로 “나, 암에 걸렸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목소리가 이상해서 ‘무슨 암 걸렸어?’ 하고 물었더니 ‘위암인데 3기말’이라고 하더라고요. 남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 나가서 몹쓸 병이나 걸렸냐’고 쏘아붙였어요. 그런 후에 ‘걱정하지 말라고, 탤런트 누구도 위암 걸렸는데 수술하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고 위로를 했죠. 전화를 끊고 나서 조금 있으면 (남편이) 들어오겠거니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의 후배가 전화를 걸어 ‘오늘 5시에 형님(남편)이 수술한다’고 알려주더라고요. ‘혹시 수술이 잘못되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면서.”
그는 딸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에는 시집 식구들이 모여 있었고 그 옆에 못 보던 여자가 한 명 앉아 있었다.
“날씬한 몸매 갖기 위해 꾸준히 운동하는 것처럼 부부관계도 쉼없이 노력하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시집 식구들은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라고 자리를 피해주는데 그 여자는 꿈쩍도 안 하고 있기에 남편의 간병인인 줄 알고 ‘(남편과) 할 얘기가 있으니까 잠깐 나가달라’고 했어요. 힘없이 누워 있는 남편에게 ‘죽을 병 걸리니까 마누라를 찾냐’면서 막 화를 냈어요. 남편이 집을 나가 있는 동안 쌓인 미움, 섭섭함 등이 폭발한 거죠. 마음을 가라앉힌 후 남편을 간병하기 위해 촬영일정 등을 미룰 계획을 세우는데 (남편이) ‘간병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간병해줄 여자가 있다면서.”
그는 순간 뒤통수를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남편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도 믿기 어려운데 ‘여자가 있다’는 엄청난 충격까지 더해지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면서 눈앞이 캄캄해지더라는 것.
“그제야 간병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남편의 여자라는 걸 알아챘죠. 무작정 그 여자를 찾아 병원 구석구석을 뒤졌는데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만날 수 없더라고요. 병원을 다녀온 이후부터 제 삶은 악몽 그 자체였어요. 나에게 닥친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죠.”
그 당시 이수나는 ‘남편에게 왜 딴 여자가 생겼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딱히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억울해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수면제를 먹고 억지로 잠자리에 들었어요. 가슴이 답답하고 음식물이 얹혀 있는 것처럼 명치끝이 꽉 막혔는데 죽을 것만 같더라고요.”
그래도 남편의 건강이 궁금해서 전화를 걸어 수술을 무사히 마친 것을 확인한 그는 열흘 만에 다시 남편의 병실을 찾았다. ‘그 여자’는 남편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 여자가 미인이었다면 그나마 이해가 되겠는데 저보다 나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여자더라고요. 남편에게 인사를 건넨 후 그 여자와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죠. ‘어떻게 만났냐, 뭐하는 사람이냐’ 등의 얘기는 하지 않았어요. ‘나하고 남편의 인연이 끊긴 사이에 당신과 인연이 닿은 것 같다. 남편이 내가 간병하겠다는 걸 거절하고 당신이 해주길 원하니 나는 달리 방법이 없다. 남편을 잘 부탁한다’고 했죠.”
계룡산 수련원에서 마음 다스리는 법 배운 뒤 남편 용서해
학창시절 전교 1, 2등을 다투는 수재였던 이수나는 ‘집안에 판·검사가 한 명쯤 있으면 좋겠다’는 부모의 바람에 따라 고려대 법학과에 진학했지만 주체하는 끼를 억누르지 못해 연기자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여러 동아리에서 손짓을 하더라고요. 그중에서 연극부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그때부터 공부는 뒷전이었고 연극에 미쳐 살았죠(웃음).”
대학 때 경험을 살려 자연스럽게 연기자의 길로 접어든 그는 ‘수사반장’에 출연하던 시절 선배 연기자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고 한다.
“남자답고 포부도 큰 데다 리처드 기어를 닮아서 한눈에 반했죠. 친정식구들에게도 잘했어요.”
부부금실은 연예계에 소문날 만큼 좋았다고 한다. 남편은 두 남매에게도 더없이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고.
“남에게 베푸는걸 너무 좋아하고 저와 말다툼을 하면 욱해서 집을 나가는 점만 빼면 남편은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런 남편이 외도를 했으니 배신감에 치가 떨려서 죽고만 싶었어요. 한강에 뛰어들까도 생각해봤죠. 남편과 함께 보낸 기억들이 떠오르니까 견디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에게 알리지도 않고 이혼소송을 제기했죠. 인연이 끊어지지 않으려고 그랬는지 ‘소장’이 남편에게 전달되지 않은 채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왔더라고요. 법률사무소에서 남편이 병원에 있는 걸 모르고 오피스텔로 소장을 보냈었나 봐요. 솔직히 저 역시 정말로 이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이혼소송을 제기한 줄 알면 남편이 겁을 먹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거죠. 지금도 남편은 제가 이혼소송을 했다는 걸 모르고 있어요(웃음).”
호탕하게 웃으면서 당시를 회상하는 이수나. 하지만 그는 숯처럼 까맣게 타버린 가슴을 안은 채 가정만은 깰 수 없다는 신념으로 고통스런 나날을 견뎌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딸과 함께 한 이수나. 그는 남편을 용서한 후 다시 신혼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혼자 힘으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어서 술로 세월을 달래고 살았는데 아는 사람이 ‘계룡산에 있는 수련원에 가서 수양을 쌓으면 좀 나을 것’이라고 조언을 하더라고요. 그곳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어요. 가장 먼저 남편에 대한 집착을 끊고 용서하는 방법을 일깨워주더라고요. 그동안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잘못했던 행동을 고백하고 반성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남편에게만큼은 ‘잘못했다’는 마음이 안 들더라고요. 그만큼 (남편에 대한) 미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거죠.”
이수나는 수련원에서 생활한 지 일주일이 흐른 뒤에야 ‘남편이 나 때문에 저 지경이 된 게 아닌가’ 하고 반성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남편이 자신에게 잘못한 점만 되새기며 그것 때문에 분을 참지 못하고 속을 끓였는데 그 원인 제공자가 ‘자신’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남편을 용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마음 속 깊이 남편을 사랑했지만 베풀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곧잘 해댔는데, 결국은 그게 문제가 됐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미워하는 마음을 털어낸 뒤 그 길로 남편의 병실을 찾았어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안 후 5개월 만에 용서를 한 거죠. 수술은 잘 됐지만 항암치료를 8번이나 받아서 대머리가 된 남편의 모습을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런데 그 여자가 제 눈에 안 보이데요. 남편 곁을 떠난 것 같았어요. 왜 헤어졌는지 묻지 않았어요. ‘혼자 살던 40대 후반의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 남자가 중병에 걸렸다’ 그러면 어떤 여자가 그 남자 곁을 오래도록 지키겠어요. 그 뒤로 남편은 제가 간병을 했고 다행히 건강이 많이 좋아졌어요.”
부부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강조하는 이수나는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해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지내는 것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외부와 담 쌓고 오랫동안 생활하다 보니 우울증이 심해지더라고요. 종교가 없다면 운동에 몰두하는 게 나아요. 저는 아픔을 겪은 후부터 북한산에 자주 가는데 마음 다스리는 데는 등산이 최고인 것 같아요. 홧김에 친구들하고 카바레에 가서 춤추다 딴 남자 만나 맞바람 피우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건 해결책이 아니에요. 자기 자신만 초라해질 뿐이죠.”
이수나는 자신이 남편의 ‘여자’로 인해 너무나 큰 고통을 경험했기에 주변에서 ‘싱글녀’가 유부남을 만나는 것을 알게 되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유부남과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고 갈 데까지 가고. 아내가 있는 남자와 즐기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여자들을 보면 마치 제 남편을 뺏긴 것처럼 화가 나요.”
대화를 나눌수록 친구처럼 편안한 느낌이 드는 이수나는 한마디로 ‘솔직 담백한’ 여자였다.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계산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부부에게 있어 성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예상대로 숨김없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인간에게 성욕은 식욕 못지않게 중요해요. 평소에도 저는 친구나 주변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생활에 대해 자문을 구하면 ‘남편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해주라’고 권해요. 만족할 만한 섹스는 노력해야 되는 거예요. 남편에게 몸을 맡긴 채 가만히 누워 있지만 말고 적극적으로 (섹스에) 임하는 게 좋아요. 부부간의 성생활은 두 사람만이 아는 행위잖아요.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변태적인 행위라서 안 되고.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죠.”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주를 지닌 이수나는 “우리나라 접대문화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며 “접대 중에서도 ‘여자 접대’를 최고로 쳐주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풍토가 가정의 화목을 깨는 요인 중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목포에서 요양 중인 남편과 신혼부부처럼 지내고 있어요”
“사업하면서 가장 힘든 점 중 하나가 접대라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제 주변에는 적지 않아요. 룸살롱에 가서 술 사주고, 아가씨 딸려서 2차 보내고. 법으로 성매매를 금지하고 있어도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는 게 현실이잖아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접대했다는 사람은 많은데 ‘접대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못 봤어요. 하긴, 그게 뭐 자랑할 일이라고 떠벌리고 다니겠어요.”
그는 우리나라 접대문화뿐만 아니라 남자들의 의식 또한 문제가 있다고 꼬집는다. 술집여자와 나눈 행위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남자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수나는 자신에게도 원인이 있었던 것을 깨닫고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게 됐다고 한다.
“술집 여자와 그런 사실을 알고 괜찮다고 할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거기다 아내에게 성병이라도 옮겨 봐요. 어디 그뿐인가요. 동남아 여행 중 일부가 ‘매춘 여행’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잖아요. 저도 남편이 동남아 출장가기 직전 ‘여보, 나 몹쓸 병 걸리지 않고 내 명대로만 살게 해줘’ 하고 농담을 한 적이 있어요. 한마디로 여자를 멀리하고 오라는 경고였던 셈이죠.”
미국에서 조종사 공부를 마치고 최근 귀국한 예비 파일럿인 아들과 대학을 졸업한 딸을 둔 그는 남편과 요즘 제 2의 신혼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봄부터 남편이 서울을 떠나 고향인 목포에서 요양 중인 까닭에 한 달에 한두 번 만나게 된다는 그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부 사이가 돈독해졌다고 한다.
“암은 재발할 가능성이 높아서 좋은 환경 속에서 면역력을 높이는 게 중요한데, 남편이 고향에서 쉬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데 친지와 친구, 후배들이 많아서 외롭거나 생활하는 데 크게 불편해하지는 않아요. 아침에 눈뜨면 남편에게 먼저 전화를 걸고 자기 전에도 꼭 서로에게 ‘잘 자’라는 인사말을 잊지 않죠. 요즘 저희 부부는 서로를 ‘땅콩’이라고 부르면서 살아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고소한 땅콩처럼 살자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그는 올해 결혼 25주년을 맞는다.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그는 “날씬한 몸매를 갖기 위해 꾸준히 운동하는 것처럼 부부관계도 쉼없이 노력하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부간에 예의는 사소한 것부터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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