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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연기돌 넘어 단단한 배우로 이 준 호

editor 김지영 기자

2017. 05. 02

악역이 이토록 잘 어울릴 줄 몰랐다. 서글서글한 웃음 뒤에 짙은 절실함이 숨어 있는 줄도 몰랐다. 화제의 드라마 (김과장)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준 2PM 출신 연기돌 이준호가 들려준 뜻밖의 고백.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던 4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최근 KBS 드라마 (김과장)을 통해 인상적인 연기력을 보여준 그룹 2PM 멤버 겸 배우 이준호(27)다.

무대 위에서는 섹시한 의상과 진한 아이 메이크업으로, 드라마에선 고급 슈트와 중저음의 목소리로 범접하기 힘든 오라를 발산하던 그가 이날은 완전히 딴사람이었다. 캐주얼한 옷차림에 달뜬 표정으로 취재진을 맞은 그는 궂은 날씨에도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고 포토그래퍼의 요구대로 포즈를 취했다. 이 순하디 순한 남자가 정말 (김과장)에서 직원들을 괴롭히던 그 서율 이사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드라마 속 서율은 검사 출신으로, 독선과 아집이 몸에 밴 안하무인에 괴팍한 냉혈한이다. 소년 같은 이미지를 빼고는 서율과 이준호 사이에서 닮은 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제작진은 왜 서율 역에 이준호 씨를 캐스팅했을까요.  
캐스팅 디렉터가 저를 추천하셨대요. 뒤풀이할 때 그 이유를 여쭤보니 “서율이 그냥 이준호 같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도 처음에는 저를 생각지 못했는데, 캐스팅 디렉터가 제 얘기를 했을 때 제작진이 모두 “그래, 준호!”하고 반겨서 바로 오케이하셨대요. 저도 (김과장) 대본을 보고 악역이라는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었고요. 2PM 멤버, 솔로 가수로도 활동하고 있어서 연기할 작품을 자주 만나지는 못해요.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만으로도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청자들에게 너무도 큰 사랑을 선물받아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웃음).

▼실제 모습은 서율과 닮은 점이 별로 없어 보여요.
분명 있을 거예요. 자신과 완전히 다른 인물을 창조하긴 힘들거든요. 서율은 나쁜 면이 많지만 착할 때도 있고, 불같이 화낼 때도 있고, 수줍어할 때도 있는데 그런 모습들이 다 제 안에도 있다고 생각해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걸 토대로 완벽한 서율이 되기 위해 촬영 두 달 전부터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서율이 느끼는 고독감과 외로움을 경험해보고 싶어서요.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면서 그런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서율을 연기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김 과장’ 남궁민 씨와의 남남 케미가 압권이었어요.
남궁민 선배님이 저한테 뽀뽀를 많이 했죠(웃음). 다 애드리브였어요. 선배님과 말장난을 하면서 재미있게 풀어가다 보니 브로맨스가 극대화됐죠. 이런 색다른 도전이 가능했던 건 다 감독님 덕분이에요. 배우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셨거든요.

▼남궁민 씨가 한참 선배인가요.
선배님이 정말 동안이세요. 처음엔 나이 차가 많지 않은 줄 알았는데 저보다 열한 살이 많으시더라고요. 그런데도 저를 편하게 대해주셔서 선배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어요.  
서율 이사는 연애에 숙맥이던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저는 서율 이사처럼 주저하지 않아요. 좋아하면 진짜 잘해줘요(웃음).

▼연기할 때 참고한 롤 모델이 있나요.

다른 사람의 연기를 참고하면 그 매력에 사로잡혀서 그 이상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제가 마음으로 그리는 캐릭터를 제 느낌대로 만들어보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지금까지 누군가를 롤 모델로 하거나 별도로 연기 수업을 받은 적이 없어요. 언젠가 한계에 부딪히면 지도를 받겠지만, 아직은 제가 가진 것들로 저만의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슈트를 원 없이 입었을 것 같아요.
3개월 동안 슈트만 입어서 숨 쉬기도 힘들었어요. 서율이 넥타이 풀고, 단추 풀고 일하는 캐릭터가 아니잖아요. 전작인 tvN 드라마 (기억)에서도 슈트만 입었지만 그때는 그래도 풀어진 모습으로 찍어서 의상 때문에 힘든 적은 없어요. 다음에는 편안한 옷을 입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교복을 입고 싶어요. 예전부터 교복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20대가 끝나기 전에 교복 입을 수 있는 작품을 만나면 좋겠어요(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뭔가요.  
서율이 경리부 해체를 지시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오면서 웃는 장면요. 제가 봐도 제가 아닌 것 같아 모니터링을 하면서도 몇 번을 돌려 봤어요. 웃을 때 저도 모르게 “미쳤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진짜 재수 없어 보이더라고요. 그 장면을 보고 주위 사람들도 문자 메시지를 많이 보냈고요.



▼어떤 음식이든 폭풍 흡입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어요. 먹는 장면이 유난히 많았잖아요.
서율은 성공에 대한 갈망과 욕구를 먹는 걸로 풀었어요. 그래서 턱이 격하게 움직일 정도로 게걸스럽게 먹는데 그런 모습을 많이들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집에서도 먹는 연기를 많이 했어요. 먹으면서 말할 때 발음이 부정확하게 들리면 안 되니까요.  

촬영하며 하도 먹어서 슈트 핏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겠어요.  
핏보다는 얼굴에 신경이 많이 쓰였어요. 얼굴이 잘 붓거든요. 처음 한두 달은 얼굴이 붓지 않게 하려고 새벽에 일어나 촬영장에 도착할 때까지 잠을 안 잤어요. 대사를 외울 때도 아메리카노 커피를 물처럼 마시며 얼굴 근육을 계속 풀어줬고요. 그렇게 한두 달이 지나니까 저도 사람인지라 살려고 발악하게 되더라고요. 1일 1식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아무 때나 막 먹고 차로 이동할 때마다 잤어요. 하하.

▼가수 겸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데 어느 쪽이 더 적성에 맞나요.
둘 다 잘 맞아요. 노래와 연기는 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생겨요. 특히 연기는 끊임없이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분야죠. 그런데 예능 프로그램과는 정말 안 맞아요. 몸을 많이 쓰는 예능 프로그램이면 상관이 없는데 순발력과 유머 감각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에 나가면 웃는 포인트나 타이밍을 못 맞추겠더라고요. 2008년 데뷔 초 예능 프로그램에 나갔다 왕창 편집을 당했어요.

▼그 일로 많이 상심했나요.
제겐 큰 상처가 됐죠. 데뷔 초 예능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많이 들어왔는데 다른 멤버들에 비해 저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크로바틱 댄스뿐이었어요. 그마저도 어깨를 다쳐 아예 못 하게 됐을 때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어요. 2012년 어깨 수술을 받은 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죠. 일주일간 병상에 누워 있다가 영화 (감시자들)에 출연할 배우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퇴원해 오디션을 봤는데 운 좋게 배역을 따냈어요. 그 영화에 출연한 건 제 인생의 ‘신의 한 수’였어요. 그해 일본에서 솔로 활동을 하게 된 것도요. 2012년에만 투어 공연을 16회나 하고 거기서 앨범도 냈어요. 정말 꿈만 같았고 지금도 꿈 같아요.

▼그만큼 절실했기에 운도 따른 게 아닐까요.
정말 절실하고 절박했어요. 다치기 전부터요. 들어오는 일이 없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기회가 오면 절대 놓치지 말자고 생각했죠. 그런데 제가 그나마 잘한다고 믿었던 아크로바틱도 못 하게 되니까 너무 괴롭고 힘들었어요. 다친 게 원망스럽고 화가 났어요. 그런 심정을 당시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멤버들에게도요. 혼자 숙소에 처박혀 있었어요. 마음을 비우며 깨달았죠. 혼자 힘으로 스스로 일어서야만 한다는 걸요.

▼연습생일 때는 힘든 일이 없었나요.

소속사에서 한 번 잘릴 뻔했어요. 잘못해서라기보다 실력이 안 늘어서요. 그때부터 독해졌어요. 제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서요. 연습생 때는 밥도 빨리 먹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한 번은 알밥을 먹다 혀를 씹었어요. 피가 막 흘러 흰밥이 빨간 밥으로 변했죠. 그래도 쉬지 않고 연습하러 갔어요. 그런 오기와 깡으로 지금껏 버틴 것 같아요.

인생의 나침반으로 여기는 좌우명이 있나요.
‘진심은 언젠가 통한다’는 말을 좋아해요. 진심을 다해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인정받는 날이 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2PM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20대를 함께 보내고 있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함께할 영원한 동반자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희 멤버들끼리 정의를 내렸어요. “2PM이란 이름으로 가수 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2PM이다”라고요.

▼쉴 때는 뭘 하나요.
너무 일이 하고 싶어서 쉴 생각이 안 들어요. 저는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일이라고 말해요. 평상시 심심하면 곡을 만들거나 드라마를 보면서 연기 연습을 하거든요.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은 순간이 있긴 한데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에요. 제 자신에게 격려를 보낼 수 있을 때 쉬고 싶어요.

▼가수나 배우로서 바람은 뭔가요.
제가 하는 일에 무조건 떳떳하고 싶어요. 대충대충, 설렁설렁 넘어가는 건 자존심이 용납지 않거든요. 어떤 무대에서든, 어떤 역할이 주어지든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커요. 지금처럼 앞으로도 일을 즐기며 차곡차곡 내공을 다질 생각이에요.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JYP엔터테인먼트 디자인 박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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