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한국에서 안소영 가슴 따라올 사람 없다 그랬는데 오늘 보니 그것도 아니에요. 저보다 글래머인 사람이 많더라고요. 저는 이제 아이 엄마 돼서 가슴이 다 없어졌어요(웃음).”
지난 1월 중순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디자이너 김영세 패션쇼에 모델로 나서며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안소영(50). 쇼가 끝난 후 기자에게 연신 “내 모습 어땠냐, 워킹이 어색하지 않았냐”고 묻는 그의 표정이 몹시 상기돼 있었다. 작고 또렷한 이목구비, 날씬한 몸매는 여전했지만, 눈가의 주름이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선 소감을 묻자 그는 “배우는 무대 위나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가장 행복하고, 살아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오늘 그런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안소영은 자의반 타의반 카메라 밖 인생을 살았다.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한 그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비비안 리의 허리 사이즈가 19인치라는 이야기를 듣고 21인치까지 허리를 줄인 적도 있다고 한다. 허리에 비해 가슴이 큰 편이어서 항상 어깨를 구부리고 다녔다고. 연극으로 연기와 인연을 맺은 그가 스크린의 에로 스타로 이름을 알린 건 이런 신체적인 조건이 큰 몫을 했다. 88년 ‘합궁’까지 20편 가까운 에로 영화에 출연한 그는 어느 날, 한계를 느꼈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출연하는 등 이미지 변신을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대중은 그에게서 에로배우가 아닌, 다른 면을 보려 하지 않았다.
“벗는 연기만 하다 보니 연기하는 법을 잊었어요. 감독들도 그런 역에만 계속 캐스팅하려 하고….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체계적으로 연기 공부를 하려고 했어요. 그러던 차에 아이가 생겼죠.”
그가 한국을 떠난 건 아이가 첫돌 될 무렵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그는 “한국에서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 미국행을 택했다. 서울 강남에서 운영하던 패션 사업이 잘 풀리지 않은 것도 미국행을 결심한 계기가 됐다. 그는 미국에서 김치 사업, 식당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홀몸으로 타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사회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믿었다. 사업이 잘될 리 만무했다.
“뭐든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제가 사업할 머리는 아닌가봐요(웃음). 여러 번 실패 끝에 깨달았어요.”
김영세 패션쇼 모델로 나선 안소영은 “오랜만에 살아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엄마가 배우였다는 사실 자랑스러워하는 아들
그는 지난 2005년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여전히 한국에서 혼자 아이를 키울 자신은 없었지만 자기 생각만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이가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거 같았어요. 저도 한국이 그리웠고요.”
한국에 돌아온 후 아이는 안정감을 되찾았다고 한다. 엄마가 유명 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고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고.
“사람들이 알아보니까 아이가 ‘정말 엄마 배우였냐’고, ‘그런데 엄마는 왜 돈을 많이 못 벌었냐’고 묻더라고요(웃음).”
요즘도 길에 나가면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사람들이 알아보고 안타까워해요. 왜 이렇게 늙었냐고 하는 사람도 있고, 말랐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말 들으면 속상하고 저 스스로에게 미안해요. 사는 게 바쁘고 힘들어 저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거든요.”
그의 삶의 희망은 아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에 진학하는 아들은 착하고 예의 바르다고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을까.
“먹고살기 힘들어 외롭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어요. 일하고, 아이 챙기다 보니 세월이 훌쩍 지나가더라고요. 지금도 아들이 제 인생의 전부고요.”
그는 요즘 연예계 복귀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더 이상 ‘에로배우’가 아닌 사람 냄새 나는 평범한 연기자로 대중과 만나고 싶다고 한다.
“전 어쩌면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거 같아요(웃음). 요즘은 섹시 스타가 많은 사랑을 받지만 제가 활동할 당시만 해도 따가운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전 그것 때문에 아픔을 많이 겪었고, 포기해야 했던 것도 많았죠. 앞으론 시트콤 같은 데 출연해서 사람들에게 가벼운 웃음을 주고 싶어요.”
숱한 길을 돌아 다시 사람들 앞에 나선 그는 “어렵게 뻗은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달라”고 말했다. 그를 조만간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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