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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유모차가 아니라 행복을 끄는 기분이에요”

19년 만에 찾아온 기적, 난임을 극복한 신동석·유경희 부부의 이야기

이혜진 프리랜서 기자

2026. 03. 10

50여 차례의 시험관 시술과 4번의 유산. 숫자로는 담기지 않는 시간이지만, 두 사람은 그 시간을
고통이 아니라 “사랑을 완성해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신동석·유경희 부부가 부모라는 이름을 얻기까지는 19년이 걸렸다. 유경희 씨는 20대에 결혼해 마흔세 살에 엄마가 됐다. 결혼 직후만 해도 아이 셋을 키우는 단란한 가정을 꿈꿨지만 현실은 달랐다. 4번의 유산과 수십 차례의 시험관 시술이 이어졌고, 유치원 교사로 일하며 하루 종일 아이들 곁에 있었던 유경희 씨에게 ‘자신의 아이를 품는 일’은 유독 멀게만 느껴졌다. 밖에서 유모차만 봐도 눈물이 쏟아지던 시간이 쌓였지만 부부는 멈추지 않았다. 남편 신동석 씨는 매번 병원에 동행했고, 긴 시간 끝에 아이가 찾아오면서 두 사람의 삶은 비로소 다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임신 유지 역시 순탄치 않았다. 혈전이 잘 생겨 태아에게 산소를 공급하지 못하는 난치성 질환인 ‘항인지질 항체 증후군’ 진단을 받았고, 혈전을 막기 위한 주사를 매일 스스로 놓아야 했다. 허벅지와 배에 멍이 사라질 날이 없었지만 경희 씨는 그 시간을 아이와 연결된 시간으로 받아들였다. 고통보다 컸던 건 아이가 숨 쉬고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유엘이가 태어난 지금, 집안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두 사람의 대화는 대부분 아이 이야기다. “오늘은 조금 더 오래 잤다” “표정이 어제랑 다르다” 같은 사소한 말들이 하루를 채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아이이기에 작은 변화도 크게 다가온다고 부부는 말한다. 오전 햇살이 거실 창으로 스며들 무렵이면 유경희 씨는 자연스럽게 유모차를 끌고 집을 나선다. 집 근처 공원이나 마트, 동네 카페까지 이어지는 짧은 산책길이 이제는 일상의 루틴이 됐다. 집에서는 보채던 아이가 바깥 공기만 맡으면 깊이 잠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여전히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유경희 씨는 아이를 낳으면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던 일이 ‘유모차를 끌고 걷는 것’이었다고 한다. 19년 동안 마음속에만 그려왔던 장면이 이제야 현실이 된 셈이다. “요즘은 유모차를 끄는 게 아니라 행복을 끌고 다니는 기분이에요.”

부부에게 이 평범한 일상은 단순한 육아의 시작이 아니다. 마흔세 살과 쉰한 살에 처음 얻은 아이, 긴 시간을 지나 마침내 그 아이를 품에 안은 두 사람을 만나 그날들의 이야기를 나눴다.

19년의 기다림 끝에 만난 유엘이.

19년의 기다림 끝에 만난 유엘이.

쉰 번의 도전 끝에 찾아온 행복

출산 이후, 요즘 세 식구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유경희(이하 유) | 유엘이를 데리고 거의 매일 밖에 나가요. 집에서는 계속 울며 보채는데, 밖에 나오면 큰 소리에도 안 깨고 통잠을 자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산책이 일상이 됐어요. 사실 아이를 낳으면 제일 해보고 싶었던 게 유모차 끌고 다니는 거였거든요. 막상 해보니까, 유모차를 끄는 게 아니라 행복을 끌고 다니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하루라도 안 나가면 괜히 허전해요.

신동석(이하 신) | 2월에는 백일 사진 촬영도 했어요. 울고 보채기도 했지만 방긋 웃는 사진 한 장 건지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더라고요.

처음 시험관 시술을 시작할 때,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유 | 전혀요. 처음 시험관 시술을 할 때, 인터넷에서 어떤 분이 11번 했다는 글을 보고 “어떻게 11번이나 해?”라고 남편한테 말했거든요. 지금은 누군가가 제 이야기를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하겠죠(웃음). 임신 기간에는 항인지질항체 증후군 때문에 매일 크녹산 주사를 맞았어요. ‘멍주사’라고 불릴 만큼 많이 아픈 주사인데,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는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이 주사를 맞아야 산소랑 영양이 아이에게 간다고 생각하니까, ‘우리 아이, 맘마 먹자’ 하면서 맞았거든요. 출산 후 6주 동안 이 주사를 더 맞아야 했는데, 신기하게도 출산 후 맞을 때는 정말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울음이 나왔어요. 같은 주사인데도 뱃속에 아이가 있을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더라고요.

긴 시간 동안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유 | 신기하게도, 단 한 번도 ‘진짜로’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어요. 주변에서 포기해야 아이가 온다고 하도 말해서, 말로는 “나 포기했어” 하면서 1년 정도 쉬었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시술 비용 때문에 남편에게 “우리 그만할까?”라고 말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속으로는 남편이 “그래, 그만하자” 할까 봐 너무 무서웠어요. 그만큼 마음이 떠나지 않았던 거죠.

몸의 고통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컸을 것 같아요. 다시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나요.

유 | 제 인생의 절반을 아이 갖는 데 쓴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전혀 후회는 없어요.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유엘이가 온 거니까요. 무엇보다 가족들의 힘이 컸어요. 특히 남편이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해줬어요. “그만하자”는 말은 단 한 번도 안 했고, 늘 “금방 아이 생길 거야”라고 응원해줬어요. 그 말이 정말 큰 힘이 됐어요.

신 | 사실 시험관 시술이나 매일 맞는 주사 같은 신체적인 고통은 오롯이 아내 혼자 감내해야 하는 몫이잖아요. 저는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기도하는 것밖에 해줄 게 없어 늘 미안했어요. 아내가 포기하지 않고 버텨준 덕분에 우리 가족에게 기적이 찾아온 거라 생각하며 평생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시술 비용과 경제적 부담도 상당했을 텐데요.

유 | 솔직히 말하면 공포였어요. 초반에는 지원도 거의 없어서 정말 힘들었거든요. 많을 때는 시술비가 한 번에 700만 원 가까이 나왔던 적도 있어요. 카드빚도 내보고, 대출도 받아봤어요.

시험관 시술을 여러 차례 하신 분들은 아마 다 비슷할 거예요. 국가 지원에서 횟수 제한만 조금만 더 풀려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분들이 훨씬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난임 부부들에게 비용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국가적 지원이 더 두터워지고, 더 많은 가정이 저희 같은 기쁨을 꼭 누렸으면 좋겠어요.

힘든 과정에서도 부부관계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요.

유 | 시험관 시술 때문에 크게 싸운 적은 거의 없어요. 배란 유도제가 호르몬 제제라 감정 조절이 안 된다고들 하는데, 저는 오히려 시술할 때마다 너무 행복했어요. 아이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요. 남편도 그걸 잘 알았고요. 서로가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빈자리를 느낄 틈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인간극장’ 출연 이후 반응도 인상적이었다고 들었어요.

신 | 정말 신기한 일들이 많았어요. 지인 친척분이 식사를 사주시기도 했고요. 한번은 차를 타고 가는데 옆 차에서 창문을 내리라고 하는 거예요. 그 차에 조영남 선생님께서 타고 계셨는데, 저희 차 뒤에 붙인 문구를 보시고 엄지척을 해주셨어요(웃음). 인생에 없을 줄 알았던 경험들이었죠.

긴 시간 동안 ‘아이’ 말고 두 분만의 행복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 | 힘들 때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해줬어요. 그리고 남편이 뒤끝이 없어요. 싸워도 하루 지나면 먼저 말을 걸어요. 그런 작은 부분들이 쌓여서 지금의 우리를 만든 것 같아요.

신 | 서로를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시험관 시술에 실패하고 돌아올 때면, 누구보다 아내가 가장 힘들다는 걸 아니까 제가 먼저 웃으려 노력했어요. 19년 동안 단 한 번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기에, 지금의 유엘이가 우리에게 올 수 있었다고 믿어요.

유엘이를 바라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눈에도 웃음이 먼저 번진다.

유엘이를 바라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눈에도 웃음이 먼저 번진다.

가장 듣기 싫었던 말과 가장 힘이 됐던 말은 무엇이었나요.

유 | “무자식이 상팔자야”라는 말이요. 그렇게 말해놓고, 또 자식 자랑은 하세요. 반대로 “이번엔 꼭 될 것 같아”라는 말은 정말 힘이 됐어요. 그냥 하는 말인 걸 알면서도, 그 말 하나에 다시 희망이 생기더라고요.

아이를 처음 안았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할 것 같아요.

유 | 중환자실에 있던 유엘이를 8일 만에 안으러 가던 날이요. 잠도 거의 못 자고 갔어요. 안는 순간, ‘이제 됐다’는 안도감이 밀려왔어요. 조리원에서는 악몽을 꾸고 새벽에 뛰쳐나간 적도 있어요. 꿈에서 아이가 죽는 꿈을 꿔서요. 숨 쉬는 걸 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어요. 그만큼 매 순간이 불안이었어요.

신 | 중환자실 유리창 너머로 인공호흡기를 찬 아이를 처음 봤을 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죠. 며칠 뒤 제 품에 처음 안았는데, 예상보다 훨씬 작고 가벼워서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19년이라는 세월이 이 작은 생명을 만나기 위해 지나온 먼 길이었구나’ 싶어 미안하고 또 고마웠어요.

둘의 시간이 셋의 시간이 되기까지

유엘이의 탄생이 두 분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나요.

유 | 예전에는 솔직히 내일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할 만큼, 제 삶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니까 완전히 달라졌어요.

신 | 자격증도 따면서 더 열심히 일하고 있고, 저는 하루라도 더 오래 살아서 아이 곁에 있고 싶어 건강 관리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그냥 의무감으로 출근했다면, 이제는 문밖을 나서는 발걸음부터가 달라요. 유엘이가 웃어주는 한 번의 인사가 저에게는 세상을 다 얻은 것보다 큰 힘이 됩니다. 

40대와 50대에 시작한 육아, 현실은 어떤가요.

유 | 유엘이의 첫 손톱을 깎던 날, 신랑이 눈이 안 보인다고 했을 때 ‘아… 우리가 정말 많이 늦었구나’를 또 한 번 실감했어요. 앞으로 유치원 운동회 같은 데 가면 더 실감하겠죠(웃음).

19년 준비된 엄빠라 육아는 완벽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나이만 먹었지, 모르는 것투성이더라고요. 매일 하나하나 배우면서 진짜 엄마, 아빠가 되어가고 있어요.

신 | 사실 50대면 친구들은 벌써 자식들 대학 보내고 여유 부릴 나이죠. 하지만 전 지금 유아 세례받는 아이를 보며 울컥하는 초보 아빠예요. 19년이라는 세월이 참 길었지만, 그 기다림이 있었기에 지금 유엘이가 주는 웃음 한 번이 얼마나 귀한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조금 늦었지만, 그래서 더 뜨겁게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가족의 기쁨 유엘이는 세 식구를 넘어, 온 집안을 다시 뛰게 하는 존재다.

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가족의 기쁨 유엘이는 세 식구를 넘어, 온 집안을 다시 뛰게 하는 존재다.

지금도 난임으로 힘들어하는 부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유 | 난임은 빛 한 점 없는 산길을 혼자 걷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는 뒷산일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는 끝없는 산행이거든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면 정상은 있어요. ‘그곳에서 우리 아이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더해 남편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옆에서 손 꼭 잡고, 따뜻한 말로 끝까지 함께 걸어주세요.

앞으로 어떤 가족으로 살아가고 싶으신가요.

유 | 말로 사람을 높이고, 행동으로 사람을 세워주는 가정이 되고 싶어요.유엘이에게도 꼭 말해주고 싶어요. “엄마가 너를 만나기까지 19년이 정말 힘들었지만, 희망을 놓지 않으니까 이렇게 큰 행복이 왔다”고요. 그 이야기가 아이 인생에 힘이 되길 바라요.

신 | 지금까지 19년이 저희 둘의 믿음을 단단하게 다지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유엘이와 함께 그 믿음을 세상에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훗날 아이가 자라 ‘우리 아빠는 나를 정말 사랑했고, 엄마는 참 위대한 분이었다’고 기억할 수 있도록, 매 순간 웃음이 끊이지 않는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주겠습니다.

#난임극복 #신동석유경희부부 #여성동아

사진제공 유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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