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정호 회장은 부친 조중훈 회장의 사업이 자리가 잡힌 1958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큰형 조양호와 둘째 형 조남호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국내에서 마친 것과 달리 셋째 형인 조수호와 조정호는 고등학교 때 일찌감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나란히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고 1983년 대한항공에 차장으로 입사, 구주지역본부에서 일하다가 한일증권, 한진투자증권(현 메리츠증권)을 거쳐 한진그룹 계열 동양화재해상보험(현 메리츠화재) 부사장으로 입사했다.
2002년 조중훈 회장의 별세 이후 조정호는 한진투자증권과 동양화재해상보험을 물려받았다. 큰형 조양호가 대한항공, 둘째 형 조남호가 한진중공업, 셋째 형 조수호가 한진해운을 맡았던 것에 비하면 ‘막내가 받은 몫은 초라하다’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룹 내 변방으로 취급받던 금융 계열사를 맡아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만들어냈다. 한때 퇴출 우려까지 제기됐던 두 회사를 독립시켜 오늘날 각각 손해보험과 증권업계의 상위권 기업으로 키워낸 것. 소유와 경영 분리 원칙 아래 최희문·김용범 부회장 등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고 실적에 기반한 명확한 보상 체계를 정립해 조직 내 성과 문화를 정착시켰다. 그는 “성과 없는 보상은 회사를 해친다. 하지만 성과를 내고도 보상을 받지 못하면 유능한 인재는 떠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용범 부회장도 조정호 회장의 인재 경영 방식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연봉은 달라는 대로 주고 업무는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철학은 메리츠 특유의 성과 중심 인사로 구현됐으며, 메리츠증권은 2020년 증권업계 최초로 평균 연봉 2억 원을 돌파했다. 메리츠화재 역시 업계 최고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다.
조정호 회장은 철저히 미디어 노출을 꺼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회사 측도 조 회장이 공식적으로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한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조직 내 소통 방식은 다소 독특하다는 평이다. 과거 우수 영업 직원 격려 행사에서 직접 만든 와인 폭탄주, 이른바 ‘드라큘라주’를 직원들에게 건네며 분위기를 주도했던 일화는 잘 알려진 에피소드다. 예순 나이에 뒤늦게 기타를 배워 밴드 활동을 하기도 한다고.
조 회장의 자산 증식에는 감액 배당 전략도 크게 작용했다. 보통 기업이 실시하는 일반 배당은 영업이나 재무 활동을 통해 쌓은 이익잉여금을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지만, 감액 배당은 자본준비금을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한 뒤 배당하는 방식이다. 일반 배당은 배당소득세 15.4%를 내야 하지만, 감액 배당은 배당소득세는 물론 연간 금융소득 2000만 원 초과 시 부과되는 금융소득종합과세(최고 49.5%) 부담도 없어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2022~2023년에 걸쳐 자본준비금 2조7500억 원을 이익잉여금으로 전환, 총 6890억 원을 감액 배당했다. 그 결과 조정호 회장은 2년간 총 3626억 원의 배당금을 세금 없이 수령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같은 기간 약 6000억 원의 배당을 받아 그중 절반가량을 세금으로 낸 것과 대조를 이룬다. 감액 배당을 하면서 메리츠금융의 주가도 크게 치솟았고 조 회장의 지분 가치도 상승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들을 전수 조사한 결과, 자본준비금을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한 기업이 2022년 31곳에서 2025년에는 130곳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더스인덱스 측은 “기업이 이익잉여금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음에도 자본준비금을 줄여 세금을 면하는 감액 배당을 택해 조세회피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감액 배당에 대한 논란이 잇따르자 정부는 최근 관계 부처와 함께 과세 검토에 착수했다.

1998년 ‘한진 오슬로호’ 앞에서 한진가 가족이 기념 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 고 조중훈 창업주,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LG가 구명진 씨와 슬하에 1남 2녀, “경영 승계 안 할 것”
조 회장의 결혼은 한국 재계 혼맥의 상징적 교차점다. 배우자 구명진 씨는 LG그룹 창업주 고(故) 구인회 회장의 손녀이자 아워홈 창업주 고(故) 구자학 회장의 딸이다. 구명진 씨의 모친은 삼성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의 둘째 딸 이숙희 씨다. 때문에 조 회장과 구명진 씨의 결혼은 한진, LG, 삼성이라는 재계 세 가문을 잇는 결합으로 평가받았다. 1987년 결혼한 조 회장과 구명진 씨는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으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장녀인 효재 씨만 메리츠금융 지분을 0.09%(약 190억 원) 보유하고 있다. 현재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있는 조정호 회장은 “(자녀들에게) 경영 승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실제로 가족 구성원들은 회사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공교롭게도 최근 조 회장의 본가인 한진과 처가인 아워홈 모두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다. 아워홈은 구명진 씨의 동생 구지은 전 부회장 측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 부사장이 이끄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지분 58%를 확보, 한화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조정호 회장의 조카인 조원태 회장이 이끄는 한진그룹은 호반그룹과의 지분 경쟁이 본격화되며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호반은 2020년 한진과 한 차례 경영권 분쟁을 벌인 바 있는 사모펀드 KCGI로부터 2022년 한진칼(한진그룹 지주회사) 주식을 매입한 이후로 지분을 꾸준히 늘려 현재 조원태 회장 측과 격차를 1.5%로 줄였다.
조정호 회장은 2005년 선친의 유산 분할 과정에서 현금 1000억 원과 정석기업 주식 누락 건을 두고 형제간 법정 다툼을 벌인 바 있다. 이 여파로 한때 업계에서는 “메리츠금융은 출장 시 대한항공 이용을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다만 2019년 조양호 회장의 장례식장에는 조문을 통해 형제애를 표현하며 인간적 도리를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목할 점은, 조 회장이 현재 막강한 자산을 보유한 재계 ‘큰손’으로 한진 경영권 분쟁에 개입할 경우 판도를 바꿀 수도 있다는 점이다. 메리츠증권은 과거 한진과 경영권 분쟁 중이던 KCGI의 종속회사 그레이스홀딩스에 한진칼 주식 550만 주를 담보로 약 1300억 원을 빌려주며 경영권 분쟁에 간접적으로 참여한 바 있다.
그가 가진 막강한 자산과 영향력이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 등 앞으로 펼쳐질 재계 구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정호 #메리츠금융 #여성동아
사진 동아DB 사진제공 메리츠금융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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