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로 ‘모든 것을 먹는 자’를 의미하는 옴니보어(omnivore)가 소비 트렌드 키워드로 주목받고 있다. 옴니보어의 사전적 의미를 들여다보면 ‘무엇이든 먹는 사람’ ‘잡식동물’을 뜻한다. 뭐든 잘 먹는 잡식동물처럼 여러 분야에 두루 관심을 갖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소비자의 시대가 온 것이다. 특히 마케팅 영역에서 성별이나 나이, 거주지 등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취향을 갖고 소비하는 이들을 ‘옴니보어 소비자’로 이름 붙이며 시선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그간 나이와 성별, 지역, 인종 등은 마케팅 영역에서 가장 일반적인 소비자 분류 기준으로 활용돼왔다. 동일한 백화점 이용 고객이더라도 20대 여성에게는 뷰티 브랜드 샘플을, 40대 여성에게는 식품관 할인 정보를, 50대 남성에게는 주류 시음권을 제공하는 식이다. 2030 여성 고객에게는 웨딩 프로모션 DM을 발송하고, 50대 이상의 여성 고객에게는 모피 브랜드 론칭 초대장을 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비자의 취향이 다변화되면서 이런 소비 패턴이 깨지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5’를 통해 이런 현상을 ‘소비의 전형성이 무너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급 위스키 한 병과 귀여운 경차 한 대, 그리고 60대 남성 소비자와 20대 여성 소비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60대 남성과 고급 위스키, 20대 여성과 경차를 연결해 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런 고정관념의 대척점에 선 개념이 바로 옴니보어다. 60대 남성이 경차를 구매하고, 20대 여성이 위스키를 소비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시장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경차 ‘모닝’의 주 구매 연령층이 5060 세대라는 사실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23년에 모닝을 구매한 고객 연령을 조사한 결과 5060 세대가 전체의 41.7%를 차지했다. 50대가 전체 판매량의 25.3%, 60대가 16.4%, 40대가 15.8%였다. ‘경차=사회 초년생’이라는 고정관념과 전혀 다른 결과다. 이에 대해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미 차가 있는 집에서 경차를 세컨드 카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유지비가 많이 드는 기존의 중대형 차량 대신 가성비 좋은 경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노후를 대비하는 것이다.
20대 여성의 소비 패턴에도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흔히 노년 여성의 취미로 분류되던 뜨개질이 큰 인기를 끄는 동시에, 남성들의 공간처럼 여겨지던 야구장에 20대 여성 팬이 몰리기도 한다. 각 구단이 출시한 MD상품이 줄줄이 매진되고, 야구장 인근 식당들이 호황을 누리는 것도 여성 팬들 덕분이다. 반면에 화장품은 다이소 쇼핑이 대세가 됐다. 가격보다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는 ‘가심비’ 아이템으로 분류되던 화장품이 ‘가성비’의 영역으로 이동한 것. 실제로 포털사이트에 ‘다이소 화장품’을 검색하면 ‘가성비 꿀템’ ‘피부과 의사 추천템’ 등의 연관 검색어가 따라붙는다. 이에 화장품 기업도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서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은 아예 다이소 전용 브랜드를 론칭해 적극적으로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옴니보어 소비자는 다양성, 트렌드, 융합 키워드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다양성은 말 그대로 하나의 장르나 브랜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특정 브랜드의 충성고객이 되는 대신, 새로 나온 브랜드나 신상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며 트렌드를 정복해 나가는 성향이 강하다. 주말마다 다이소를 찾아 화장품 매대를 둘러본다는 대학생 이누리 씨의 소비 패턴도 이에 부합한다. 이 씨는 “다이소에는 소용량 화장품이 많아서 좋아요. 립글로스나 틴트는 기분에 따라 다양한 컬러를 사용하고 싶은데, 굳이 용량이 많을 필요가 없잖아요. 소용량 제품을 저렴하게 파니 그 돈으로 여러 개를 살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트렌드와도 연결돼 있다. 수없이 많은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인 만큼 트렌드를 최대한으로 캐치하기 위한 소비자 나름의 방법인 셈이다. 실제로 다이소 화장품을 구매한다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신제품이 나와 잘 맞는지 궁금할 때 다이소 제품으로 테스트해본다’는 의견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융합은 다양한 제품과 브랜드를 믹스 매치하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맞춰 소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트레이닝팬츠는 SPA 브랜드에서 샀지만 운동화는 명품 브랜드의 제품을 신는다거나, 빈티지 숍에서 발굴한 워크웨어를 입고 하이엔드 브랜드의 헤드폰을 쓰는 등이다.
이렇듯 유행이라는 큰 흐름보다 개인의 취향을 우선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인구구조의 변화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꼽는다. 예전처럼 20대 중반에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해 20대 후반 또는 30대 초반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비율이 급감하는 것이 가장 가시적인 이유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보편적인 삶의 궤적대로 살아간다면, 예전처럼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여성이 육아용품의 주요 소비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연령대의 소비자가 육아용품을 소비할 가능성보다는 고양이 사료나 캠핑용품, 야구장 티켓, 뜨개질 도구를 살 가능성이 높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것도 또 다른 변수로 꼽힌다. 은퇴 후에도 30년 이상의 여생을 살아가야 하는 노년층이 시장에 등장하면서, 60대에 새롭게 대학에 진학하거나 대학원에 입학해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문화센터를 찾아 제과제빵이나 목공을 배우는 등 취미 생활을 하는 한편, 자산을 잘 배분해 사용하기 위해 경차를 구매하는 등의 새로운 소비 패턴이 나타나는 것이다.
SNS의 발전은 이런 경향을 더욱 세분화한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틱톡을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이 노출되면서 관심만 있다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쉽게 체득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통해 ‘은퇴 후 세계 일주를 떠난 노부부의 여행기’를 시청한 사람에게는 ‘동남아 한 달 살기 브이로그’와 ‘한국인이 은퇴 후 이민 가기 좋은 국가 추천’ 영상이 알고리즘으로 이어진다. 인스타그램에서 ‘채식 요리 레시피’에 좋아요를 남긴 사람에게는 이내 비건 요리 전문 인플루언서가 노출되고, 그의 채널에서 공동구매 형식으로 판매하는 채식 조미료와 식재료가 피드에 뜬다. 브랜드 역시 이런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해야만 마케팅이 용이하고 판매로 이어지는 만큼, 좀 더 세분화한 마이크로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인플루언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타깃 고객에게 제품을 추천함으로써 소비를 촉진하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마이크로 마케팅을 통해 기업과 소비자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이어가며 개인의 취향은 더더욱 또렷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옴니보어 #2025소비트렌드 #여성동아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뉴시스 뉴스1
사진출처 다이소블로그
그간 나이와 성별, 지역, 인종 등은 마케팅 영역에서 가장 일반적인 소비자 분류 기준으로 활용돼왔다. 동일한 백화점 이용 고객이더라도 20대 여성에게는 뷰티 브랜드 샘플을, 40대 여성에게는 식품관 할인 정보를, 50대 남성에게는 주류 시음권을 제공하는 식이다. 2030 여성 고객에게는 웨딩 프로모션 DM을 발송하고, 50대 이상의 여성 고객에게는 모피 브랜드 론칭 초대장을 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비자의 취향이 다변화되면서 이런 소비 패턴이 깨지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5’를 통해 이런 현상을 ‘소비의 전형성이 무너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정관념을 깨야 소비자가 보인다
남성들의 공간으로 여겨지던 야구장에 20대 여성 팬이 몰리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시장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경차 ‘모닝’의 주 구매 연령층이 5060 세대라는 사실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23년에 모닝을 구매한 고객 연령을 조사한 결과 5060 세대가 전체의 41.7%를 차지했다. 50대가 전체 판매량의 25.3%, 60대가 16.4%, 40대가 15.8%였다. ‘경차=사회 초년생’이라는 고정관념과 전혀 다른 결과다. 이에 대해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미 차가 있는 집에서 경차를 세컨드 카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유지비가 많이 드는 기존의 중대형 차량 대신 가성비 좋은 경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노후를 대비하는 것이다.
노년 여성의 취미로 분류되던 뜨개질이 20대 여성들에게 인기다.
옴니보어 소비자는 다양성, 트렌드, 융합 키워드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다양성은 말 그대로 하나의 장르나 브랜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특정 브랜드의 충성고객이 되는 대신, 새로 나온 브랜드나 신상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며 트렌드를 정복해 나가는 성향이 강하다. 주말마다 다이소를 찾아 화장품 매대를 둘러본다는 대학생 이누리 씨의 소비 패턴도 이에 부합한다. 이 씨는 “다이소에는 소용량 화장품이 많아서 좋아요. 립글로스나 틴트는 기분에 따라 다양한 컬러를 사용하고 싶은데, 굳이 용량이 많을 필요가 없잖아요. 소용량 제품을 저렴하게 파니 그 돈으로 여러 개를 살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트렌드와도 연결돼 있다. 수없이 많은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인 만큼 트렌드를 최대한으로 캐치하기 위한 소비자 나름의 방법인 셈이다. 실제로 다이소 화장품을 구매한다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신제품이 나와 잘 맞는지 궁금할 때 다이소 제품으로 테스트해본다’는 의견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융합은 다양한 제품과 브랜드를 믹스 매치하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맞춰 소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트레이닝팬츠는 SPA 브랜드에서 샀지만 운동화는 명품 브랜드의 제품을 신는다거나, 빈티지 숍에서 발굴한 워크웨어를 입고 하이엔드 브랜드의 헤드폰을 쓰는 등이다.
삶의 방식만큼 다양해진 소비 패턴
‘가심비’ 아이템으로 분류되던 화장품이 ‘가성비’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다이소 쇼핑이 대세가 됐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것도 또 다른 변수로 꼽힌다. 은퇴 후에도 30년 이상의 여생을 살아가야 하는 노년층이 시장에 등장하면서, 60대에 새롭게 대학에 진학하거나 대학원에 입학해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문화센터를 찾아 제과제빵이나 목공을 배우는 등 취미 생활을 하는 한편, 자산을 잘 배분해 사용하기 위해 경차를 구매하는 등의 새로운 소비 패턴이 나타나는 것이다.
SNS의 발전은 이런 경향을 더욱 세분화한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틱톡을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이 노출되면서 관심만 있다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쉽게 체득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통해 ‘은퇴 후 세계 일주를 떠난 노부부의 여행기’를 시청한 사람에게는 ‘동남아 한 달 살기 브이로그’와 ‘한국인이 은퇴 후 이민 가기 좋은 국가 추천’ 영상이 알고리즘으로 이어진다. 인스타그램에서 ‘채식 요리 레시피’에 좋아요를 남긴 사람에게는 이내 비건 요리 전문 인플루언서가 노출되고, 그의 채널에서 공동구매 형식으로 판매하는 채식 조미료와 식재료가 피드에 뜬다. 브랜드 역시 이런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해야만 마케팅이 용이하고 판매로 이어지는 만큼, 좀 더 세분화한 마이크로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인플루언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타깃 고객에게 제품을 추천함으로써 소비를 촉진하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마이크로 마케팅을 통해 기업과 소비자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이어가며 개인의 취향은 더더욱 또렷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옴니보어 #2025소비트렌드 #여성동아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뉴시스 뉴스1
사진출처 다이소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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