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제50보병사단 소속 장병들.
“이대로 데뷔해주세요” “아이돌, 배우, 영화, 드라마보다 더 많이 봤어요” “‘위문열차’가 이런 거였다니, 이제라도 알아서 기쁘다” 등 열렬한 댓글의 주인공은 여느 유튜버나 틱토커, 인플루언서가 아닌 국군 장병들이다. 국군방송(KFN) ‘위문열차’ 속 장병 장기자랑 코너 ‘생활관 스타워즈’에서 장병들이 선보인 K-팝 커버 댄스가 소셜미디어를 휩쓸었다. ‘위문열차’는 국내 최장수 공개방송으로, 군인 대상 음악 프로그램이다. 공군 제17전투비행단 소속 군사경찰대대 이준형 병장 등 5인이 커버한 ‘Magnetic’(아일릿)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약 190만을 기록했다. 육군 제55보병사단 신병교육대 정인성 병장 등 5인이 ‘Supernova’(에스파) 노래에 맞춰 춤을 춘 영상은 조회수 144만에 달한다. 에스파 멤버들이 인스타그램 릴스에 직접 댓글을 달고, 리액션 영상도 찍을 만큼 화제가 됐다. ‘군통령’의 요람이자 스타들의 등용문으로 여겨졌던 ‘위문열차’가 이제는 군 장병들이 주역인 무대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차기 군통령은 ‘진짜’ 군인들?
해군 제3함대 소속 장병.
정작 무대에 오른 장병들은 그만큼의 인기를 모을 줄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다. 공군 제17전투비행단 소속 조명식 병장은 ‘위문열차’ 무대에서 가장 주목받은 장병 중 한 명이다. ‘손오공’(세븐틴), ‘꿈빛 파티시엘 챌린지’ 등을 선보인 그는 ‘센터남’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인기를 모았다. 해당 영상들은 ‘위문열차’ 유튜브 채널 ‘위날 we nal’에서 각각 조회수 75만, 62만을 기록했다. 유선으로 이야기를 나눈 조 병장은 “커버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함께 무대에 선 5명 모두 좋아요와 댓글이 늘어나는 것을 보며 기뻐했다”고 당시의 들뜬 마음을 전했다. 기존 장병 장기자랑 코너에서 댄스 팀은 주로 걸 그룹의 섹시 댄스를 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건장한 청년들이 쑥스러워하면서 뚝딱뚝딱 춤을 추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호응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이들도 당초 EXID나 KISS OF LIFE 등 핫한 걸 그룹 노래를 고민했지만, 방송에 나갈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아찔했다고. 결국 이들은 차라리 멋있으려면 아예 멋있어야겠다는 판단에 보이 그룹 세븐틴의 노래를 선정했다. 일과가 끝나면 다 같이 체력 단련실에 모여서 거울을 보며 1시간씩 2주 동안 연습했다. 조 병장은 “당시 지원한 20팀 가운데 댄스가 6팀, 나머지는 노래나 악기 연주였지만 최종 선발된 4팀 중 3팀이 댄스였다”며 “‘위문열차’ 무대에 서고 싶다면 댄스로 지원하는 것이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이어 “분위기를 신나게 업시킬 수 있는 팀을 원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공군 제17전투비행단 소속 장병들.
육군 제2공병여단 소속 한재구 상병은 지난해 11월 16일 방영된 ‘위문열차’에서 ‘Fire’(2NE1)를 선보였다. 해당 무대는 인스타그램 릴스 조회수 약 16만을 기록했다. 한 상병은 사회에서 전문 댄서로 활동한 까닭에 무대에 서는 것은 익숙했지만 ‘위문열차’ 무대는 또 달랐다고. 그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군복 입고 군화 신고 춤을 추는 것이 낯설기도 하고 불편했다”면서도 “연예인이 아닌 댄서의 무대를 보여줄 기회가 거의 없는 만큼, 댄서가 추는 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하던 대로 팝송에다가 안무를 짜서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다 다른 병사들과 단합할 수 있는 노래를 고민하면서 2NE1의 노래로 결정했다”며 “현장 반응은 좋았지만, 무대를 본 다른 댄서들로부터 ‘실력이 많이 줄었다’는 연락이 왔다”고 멋쩍게 웃어 보였다.
통통 튀는 댓글과 독보적인 썸네일 구성이 ‘위문열차’의 인기에 한몫했다.
‘위문열차’를 기획·연출하는 박민우 PD는 “기존 장병들의 무대 영상이 인기가 높아지자 이후 출연하는 장병들도 약간의 경쟁심이 생긴 것 같다”며 “대부분의 부대 장병들의 참여도가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부대의 경우 무대에 설 인원을 선발하기 위해 부대 내에서 자체적으로 1차, 2차 경연을 진행할 정도다. 박 PD는 “최근 ‘생활관 스타워즈’에 출연하는 장병들이 본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공연 현장 주변에서 땀 흘리며 연습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군 장병들이 이토록 ‘위문열차’ 무대에 진심인 이유 중 하나로 ‘포상 휴가’를 빼놓을 수 없다. 포상 휴가는 지휘관 재량에 따라 받을 수 있는데, 앞서 조 병장은 하루, 한 상병은 2박 3일을 받았다고. 휴가만이 원동력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딱 하나의 부대만 찾아가는 ‘위문열차’ 특성상 무대에 설 기회는 군 복무 기간 중 한 번 주어질까 말까 한다. 학창 시절 빠지지 않고 장기자랑에 참여했다면 놓칠 수 없는 찬스다. 연예인이 아닌 이상 무대에 선 경험이 드문 만큼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잡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위문열차’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병사들이 늘어나면서 의외로 선임의 강요에 의한 참석은 거의 없다고. 이미 참여를 원하는 병사가 포화 상태라는 후문이다.
‘위문열차’가 대중의 주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때는 ‘위문열차’에서 장병들의 인기를 얻어야 스타 대열에 합류한 것이라는 공식이 있을 만큼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아이유,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 주요 걸 그룹과 솔로 가수들이 빠지지 않고 ‘위문열차’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인기 가수들을 ‘위문열차’에서 보는 일은 힘들어졌다. K-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해외 투어가 늘어나고 스케줄 조정 등이 어려워져서다. 위문공연 출연료가 낮은 만큼 기획사 입장에서는 연예인들이 ‘위문열차’에 출연하는 것이 비효율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2013년 국회 국방위원회 이석현 의원이 국방부에서 제출받은 ‘2010~2013년 위문열차 출연료 지급 현황’에 따르면 연예인들의 ‘위문열차’ 출연료는 100만~600만 원 수준이었다. 헤어와 메이크업 비용, 이동 경비 등을 제하면 남는 것이 없는 게 사실이다.
다시 불어오는 ‘위문열차’ 붐
인기 아이돌 QWER(위), 김재중 등이 최근 ‘위문열차’ 무대에 섰다.
인기 스타들의 출연 빈도가 줄어들면서 ‘위문열차’는 무대에 설 기회 자체가 소중한 신인 그룹들의 전초지가 됐다. 그야말로 마이너한 격전지가 된 ‘위문열차’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은 2021년 브브걸(옛 브레이브걸스)의 ‘Rollin’이 역주행하면서다. ‘밀보드(밀리터리+빌보드)’ 차트의 인기가 대중적인 인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서 기회를 본 아이돌 그룹들이 다시 하나둘 ‘위문열차’로 돌아왔다. 최근에는 QWER, 로켓펀치, 시그니처 등 활발히 활동하는 걸 그룹들도 ‘위문열차’에 참여하는 추세다. 걸 그룹만이 아니다. 김재중은 지난해 6월 컴백하면서 신곡의 오프라인 첫 무대로 ‘위문열차’를 택하기도 했다.
이제 ‘위문열차’는 장병들을 ‘위한’ 무대를 넘어서 장병들에 ‘의한’ 무대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박 PD는 “‘위문열차’는 전국에 있는 부대를 직접 방문하여 진행하는 공연 프로그램이다 보니 무대 설치와 해체 등을 고려해 일반 음악방송처럼 세트에 많은 투자를 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공연 전 해당 부대 출연 장병들의 안무 등을 참고해서 조명, 영상, 카메라 워킹 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밤을 새우면서까지 열심인 장병들의 의지에 보답하겠다는 설명이다. ‘Fire’ 무대를 선보인 한 상병은 장병들에게 “기회가 된다면 ‘위문열차’에 꼭 도전해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병사들과 같이 ‘위문열차’를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고, 서로 다툴 수도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끝나고 나면 생활관 들어가서 잠들기 전까지 함께 얘기하고, 시간이 지나도 같이 영상을 보며 웃을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된다”고 전했다. 이어 “전역 후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입하면 소소하게 웃을 일이 많지 않다”며 “‘위문열차’는 정말 어른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해맑게, 계산적이지 않게 함께 무언가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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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유튜브 채널 ‘위날 we 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