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에디 슬리먼이 합류한 이후에 매출이 엄청나게 급신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생 로랑 측은 그의 사임을 만류하지 못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바로 그 엄청난 성공이 결별의 원인이 됐다. 업계 관계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에디 슬리먼은 브랜드를 정상에 올려놓은 자신보다 경영진이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회사에 사장과 비슷한 수준의 연봉을 요청했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브랜드를 떠나기로 결심했다는 게 정설이다. 에디 슬리먼은 패션계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소문을 곧이곧대로 해석해 그가 금전적인 부분을 더 요구했다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예우를 더 표시해달라는 일종의 제스처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가 지금의 시점에 생 로랑을 떠나는 것은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슬퍼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 모 패션 브랜드에서 그에게 러브 콜을 보내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컴백이 머지않아 보인다. 패션계가 어떤 곳인데 에디 슬리먼 같은 대어를 그냥 방치해두겠는가.
셀린느 ‘풍’ 빅토리아 베컴

현재의 패션계에서 셀린느라는 브랜드와 셀린느의 디자이너 피비 파일로의 디자인이 얼마나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는 트렌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아무리 셀린느가 대단하다고 해도 빅토리아 베컴이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에 과연 셀린느를 카피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난 시즌 피비 파일로 밑에서 일했던 셀린느의 디자인팀 중 상당수가 빅토리아 베컴 브랜드로 대거 이동했다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셀린느 디자이너들이 자발적으로 빅토리아 베컴 측에 가지는 않았을 테니 결국 스카우트를 했다는 것이 되는데, 이 역시 패션계의 보이지 않는 쟁탈전의 산물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한편 2015년 10월 디올을 이끌어왔던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가 돌연 떠나게 되면서, 디올의 수장이 공석이 되었다. 이후 반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를 메우지 못하고 있는데,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명망 있는 패션 브랜드 중 하나인 디올 역시 보이지 않게 고군분투 쟁탈전을 벌이고 있음이 분명하다. 물망에 오르고 있는 이름들을 열거해보면, 지금 막 생 로랑을 사임한 에디 슬리먼을 비롯해서 라프 시몬스와 비슷한 시기에 랑방을 그만둔 알버 엘바즈, 그리고 죽어가는 브랜드를 다시 살려냈다는 평과 함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발렌티노의 듀오 중 여성 디자이너인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등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모종의 물밑 작업이 한창이겠지만, 패션계에선 본연의 디올에 가장 어울리는 이는 알버 엘바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화려한 패션계 이면의 물고 물리는 스카우트 전쟁

디자이너 쟁탈전은 유행에 민감한 패션 하우스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가볍고 편안하고 패셔너블하기까지 한 플라이니트 시리즈 덕분에 오랜만에 여성 고객들을 제대로 사로잡았다. 그런데 이 플라이니트를 개발한 팀의 핵심 인원 전체가 라이벌 브랜드인 아디다스로 스카우트됐다. 이들이 야심 차게 새로 선보인 것이 EQT 시리즈인데, 신축성이 뛰어난 니트 소재가 플라이니트와 닮았다면 닮았다고나 할까.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와 아디다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쟁탈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오늘도 패션계는 마치 스포츠계의 그것처럼 이적과 탈퇴, 스카우트와 퇴출 등으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고객을 유혹하는 화려한 간판과 쇼윈도 그리고 매거진을 수놓는 광고 이미지의 이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쟁으로 바람잘 날이 없다. 얼마 전까지 질 샌더의 디자이너라던 라프 시몬스가 금세 디올의 디자이너가 되었다가 이제는 캘빈클라인의 디자이너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니 대체 뭔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패션 브랜드들은 나날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고객들을 만족시키는 그 무언가를 창출해내지 않으면 결국 도태되고 말기에, 이러한 능력자들을 영입하기 위한 노력은 생존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Joel Kimb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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