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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ANCIENT FUTURES

패션, 위대한 유산 9

Heritage of Fashion

기획·배보영 프리랜서 | 사진제공·REX

2015. 01. 28

패션 브랜드의 역사를 바꾼 아이템이 뭐냐고 당신에게 묻는다면? 패션하우스의 명예와 부를 만들었고 대중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 지금도 새롭게 태어나며 팔리고 있는 헤리티지 패션을 여기 소개한다. 당신의 욕망이 어느 정도 싱크로율을 보일지 우리도 궁금하다.

패션, 위대한 유산 9
샤넬

트위트 재킷

샤넬의 트위드 재킷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멋있는 디자인에 한정되지 않는다. 활동적인 여성을 위해 기능적으로 만들어진 옷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디자인은 다트를 없애 일자 실루엣을 만들었고, 어깨 패드와 심을 제거해 움직임이 편하도록 했다. 또 1930년대 당시 여성용 재킷에는 사용된 적 없었던 앞 주머니를 넣었으며, 실크 안감에 섬세한 체인 장식을 넣어 재킷이 평평하게 유지되도록 했다. 가브리엘 샤넬의 노고가 깃든 트위드 재킷은 칼 라거펠트가 샤넬의 수장을 맡은 이후 더욱 번창한다.

칼 라거펠트는 매 시즌 컬렉션에서 트위드 재킷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다. 특히 2012년에는 ‘더 리틀 블랙 재킷’ 전시를 통해 세계 각국의 천차만별 스타일링을 선보였다. 사라 제시카 파커는 트위드 재킷에 펜슬 스커트를 입어 여성스러움을, 알렉사 청은 찢어진 데님 쇼츠를 매치해 개성을, 송혜교는 스팽글 쇼츠와 롤러스케이트로 귀여움을 표현했다. 셀레브러티의 새로운 스타일링을 통해 사람들은 트위드 재킷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꿀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2014년 F/W 컬렉션에서 트위드 재킷은 박시한 실루엣이 되었는데, 광고 사진에서는 힙합 스타일 트위드 재킷을 볼 수 있다. 청바지와 흰 셔츠, 그리고 샤넬 재킷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패션이라고 말한 칼 라거펠트의 자신감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패션, 위대한 유산 9
버버리



트렌치 코트

버버리의 개버딘 소재 레인코트는 방수성과 내구성, 보온성이 좋아 원래 군인용으로 제작됐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레인코트 역시 진화했다. D자형 고리를 부착해 수류탄, 칼, 지도 등의 장비와 견장을 달 수 있도록 했고, 장총 사용 시 옷이 마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오른쪽 가슴에 단을 덧대어 내구성을 강화했다. 활동하기 편하도록 소매는 래글런 스타일로 바꾸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 여밈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컨버터블 프런트, 바람이나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손목의 조임 장치인 커프스 플랩 등 새로운 부속품을 더했다. 그리고 현재 버버리에서 생산하는 트렌치코트 역시 재단에서부터 디테일까지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만들어진 트렌치코트와 근본적으로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스타일은 매 시즌 새로운 소재와 컬러 및 실루엣을 적용해 변화한다. 특히 2013년에는 은박지처럼 반짝이는 소재의 트렌치코트를, 2014년에는 전체 레이스로 이루어진 사랑스러운 트렌치코트를 선보였는데, 이것이 군복에서 진화한 패션이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구찌

뱀부 백

‘구찌=뱀부 백’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로 구찌의 상징과도 같은 아이템인 뱀부 백은 탄생 역시 드라마틱하다. 1947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탈리아에 물자 수급이 어려워지자 구찌는 대책을 강구하다 일본에서 대나무를 공수해 핸드백 손잡이로 차용했다. 위기 극복을 위해 나온 디자인은 오히려 혁신적인 아름다움으로 찬사를 받았고, 대나무에 열을 가해 변형시키는 고유의 기술력은 현재까지 가방 손잡이는 물론, 슈즈의 굽 등 여러 장식에 적용되고 있다. 70세 가까이 되는 뱀부 백은 다른 시그니처 백과 달리 소재와 색상, 크기는 물론, 형태 역시 자유로워 무한한 진화 가능성을 지녔다. 톰 포드가 구찌에 들어와 가장 처음 한 일이 뱀부 백의 재해석이며, 프리다 지아니니 역시 2010년에 뉴 뱀부 백 컬렉션 라인을 만들어 진화에 일조했다. 2013년에는 뱀부 핸들을 높이고 자물쇠를 장착해 미니 사이즈로 만든 ‘레이디 록’으로 20대 숙녀를 공략했다. 2015년 크루즈 컬렉션에서는 아예 ‘뱀부 데일리’라는 타이틀 아래 일상에서 늘 사용할 수 있도록 실용적인 측면을 고려한 가방을 선보인다. 지극히 단조롭고 평범해 보이지만 뱀부가 곳곳에 활용되었고 장인이 수작업으로 컬러를 입힌 특별한 가방이다.

에르메스

버킨 백

잘 알려진 대로 버킨 백은 가수이자 배우인 제인 버킨을 위해 만들어졌다. 1984년에 탄생했지만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에르메스만의 숙련된 장인 한 명이 평균 일주일에 두 개의 버킨 백도 완성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천만원대부터 시작하는 이 고가의 가방을 사기 위해서는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 최소한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기 때문에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인데, 이 대기 명단 자체가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 돼 여러 브랜드에 파급 효과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몇 년 전에는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버킨 백을 애용하는 사진이 종종 공개되면서 남자들 사이에서도 버킨 백 스타일이 유행했다. 지난해 말 배우 남편인 가수 카니예 웨스트로부터 선물받은 버킨 백에는 아티스트 조지 콘도(George Condo)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화제가 되었다. 클래식한 아이템이 가장 힙하게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그런가 하면 가장 최근에 선보인 ‘40 flag’ 모델은 캔버스와 가죽을 혼합하고 바랜 듯한 색상을 넣어, 초창기의 여행용 짐가방을 연상시키는 레트로 스타일이다. 트렌드에 동요되지도, 고지식하지도 않은 버킨 백의 디자인은 여전히 아름다운 제인 버킨과 가장 닮았다.

패션, 위대한 유산 9
루이비통

알마 백

작년에 탄생 80주년을 맞은 루이비통의 알마 백은 처음에 코코 샤넬의 개인적인 의뢰로 만들었다가 후에 대중에게 판매된 모델이다. 특유의 C 형태 몸체 덕에 80년 동안 다채롭게 컬러가 바뀌고,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다카시 무라카미의 프린트가 입혀지고, 심지어 로고를 숨겨도 한눈에 알마 백임을 알아볼 수 있다. 시대를 반영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디자인 덕에 매년 알마 백 판매는 증가하고 있다. 소재의 변형은 물론, 손바닥만 한 미니 사이즈부터 높이 40cm를 웃도는 빅 사이즈까지 다양해 가격 및 선택의 폭이 넓은 것도 인기의 한 요인이다. 국내에서는 김남주가 드라마에서 로고나 장식이 없는 알마 백을 색상별로 착용해 완판 리스트에 알마 백을 올리기도 했다. 2014년 루이비통 F/W 컬렉션에서는 퀼팅을 연상케 하는 다이아몬드 모양 프린트의 알마 백을 선보였다. 블랙, 아이보리, 레드가 따뜻하면서 날카롭게 조화를 이루는 이 백은 이제 셀레브러티의 영향 없이도 완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펜디

바게트 백

그렇다. 바게트 빵과 닮아서 바게트 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펜디 하면 떠오르는 모피 코트와 고급 가죽 가방의 이미지에 간결하면서 편리하고 실용적인 기능까지 갖춘 바게트 백은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동시에 브랜드에 젊고 긍정적인 새 이미지를 주었다. 최소한의 무게와 크기를 강조한 이 가방은 1997년 휴대전화 시대와 절묘하게 맞아 유행을 선도하게 되었다. 1997년 이후 현재까지 1천 개 이상의 버전이 만들어졌다. 장인정신이 깃든 수공예 작업과 고급 가죽부터 젊은 데님 소재까지 매 시즌 변화를 거듭한다. 론칭 10주년을 맞은 2007년부터 아티스트 바게트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아티스트들이 흰 캔버스 바게트 백 위에 고유의 정신을 담은 바게트 백을 만드는 것이다.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등을 비롯한 수많은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아카이브를 모은 바게트 북을 출간했다. 또한 시그니처 백이지만 시대를 반영하는 아이템답게 2014년 6월에는 자신만의 바게트 백을 디자인할 수 있는 앱을 개발했다. 이 앱을 통해 바게트 백을 가지고 놀 수도, 자유롭게 자신의 영감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바게트 백은 가장 클래식하면서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영리한 가방이다.

패션, 위대한 유산 9
보테가베네타

놋 클러치

콤팩트하며 활용도가 다양한 놋 클러치는 40년 동안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고유의 형태와 변화무쌍한 겉옷으로 보테가베네타의 아이콘이 되었다. 작은 라운드 박스 프레임과 세련되고 창의적인 표면의 소재, 안감 작업에 이르기까지 모두 장인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 오스카, 칸 등 중요한 시상식에 참석할 때마다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니콜 키드먼이 놋 클러치를 손에 든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으며, 영화배우 제니퍼 로렌스는 매니시한 랑방의 베스트에 놋 클러치를 든 모습을 보여줬다. ‘인간 패션하우스’라 불리는 킴 카다시안은 다양한 놋 클러치를 보유한 것으로 유명한데, 주로 청바지 등의 수수한 스타일에 놋 클러치를 착용해 포멀한 드레스에만 어울릴 것 같은 클러치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다. 2백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으로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박스 중 하나지만 정교한 기법과 혁신적인 소재, 그리고 일상에서도 활용 가능해 스테디셀러 아이템이 되었다.

랄프로렌

소프트 리키

랄프 로렌이 부인(리키 로렌)을 위해 만든 가방으로 알려져 더 로맨틱한 리키 백. 말 안장을 보관하던 가방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리키 백은 장인이 통가죽 위에 직접 패턴을 그리고 잘라 각각의 가죽 조각을 촉감이 일정하도록 다듬고 나무 모형 위에 씌운 상태에서 입체적으로 손바느질해 합체한다. 그 때문에 디자인 형태는 완벽하게 유지되면서 사용자의 손에 맞춰 자연스럽게 구겨지는 모양이 리키 백의 포인트다. 2007년부터는 국내 플래그십 매장에서 개인을 위한 주문 제작 서비스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하이 클래스를 위한 가방만 있었다면 대중적으로 지금만큼 인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 리키 백을 조금 더 편안하게 변형한 ‘소프트 리키’가 그 해답이다. 소프트 리키 백 덕에 랄프로렌은 좀 더 젊은 이미지로 도약했다. 리키 백 고유의 클래식한 매력을 품으면서 가벼운 컬러와 소재의 미니 사이즈는 어느새 20대 여성들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또한 2014년에는 트렌드를 반영해 사이드 패널을 펼치도록 디자인된 제품을 선보였다.

페라가모

바라

로고 버클이 중앙에 배치된 단정한 리본, 매끈하게 빠진 타원형 앞코, 그리고 3cm의 안정감 있는 굽은 페라가모 바라 슈즈의 변함없는 룰이다. 매년 컬러와 소재는 조금씩 바뀌어도 이 기본 룰은 변하지 않는다. 그 덕에 바라 슈즈는 35년 넘게 페라가모 매장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이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바라 슈즈는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첫째 딸인 피암마 디 산 기우리아노가 1978년에 만들었으며, 그후 시즌 트렌드를 반영해 좀 더 캐주얼한 느낌의 후속 버전인 베시와 바리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2014년에는 페라가모 웹사이트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라와 바리나의 소재와 컬러를 선택하고 배치해 주문할 수 있게 했다. 이를 통해 바라는 브랜드 고유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세대와 소통하며 매일 진화하고 있다.

디자인·최정미

일러스트·손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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