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2NE1의 맴버 씨엘의 아빠는 서강대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이기진(56) 교수다. 무대 위 카리스마 넘치는 씨엘의 노래와 퍼포먼스를 떠올린다면 부모로부터 무언가 어마어마한 끼를 물려받았을 것만 같은데, 난데없는 물리학 교수라니 안 어울려도 이렇게 안 어울릴 수가 없다 싶다. 그는 지금도 매일 아침, 지하철 6호선을 타고 출근한다. 큰딸이 유명한 가수가 된 것도, 둘째 딸이 홍콩으로 유학을 떠나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것도 그의 삶에 폭풍 같은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어쩌면 그가 펴낸 일러스트 에세이 〈20up〉(김영사ON)을 읽고 ‘별거 아니네’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내보일지도 모른다. 그가 하고픈 이야기도 그런 것이었다. “별거 아니네.”
그가 매일 이용하는 지하철 6호선 대흥역 인근에는 고등학교가 몇 군데 있다. 그래서인지 지하철을 탈 때부터 아이들과 힘겨루기를 하듯 부대끼다 그 틈에 끼어 우르르 내리는 것이 그에겐 일상인 듯 자연스럽다. 그리고 함께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어김없이 어깨가 축 처진 채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괜한 오지랖에 어깨라도 툭 치며 다가가 기운 좀 내라고, 인생이 얼마나 즐겁고 신나는 것인지 아이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는 지하철을 타는 횟수만큼이나 쌓여갔지만 낯모르는 아저씨가 다짜고짜 인생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었다.
〈20up〉은 그가 큰딸 채린(씨엘의 본명)이와 둘째 딸 하린이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직접 그린 그림과 글로 재구성한 것이다. 책은 딸에 대한 질투심에서 나왔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하린이와 유럽을 여행하던 그는 세파에 찌든 듯 지쳐 있던 딸의 어깨를 보며 펜을 들었다. 사랑, 연애, 공부, 건강, 시간, 열정…. 하린이가 넘치도록 가졌지만 자신의 것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묘한 질투와 안타까움, 그것은 지하철 6호선에서 만난 어린 학생들의 지친 어깨에서 느낀 감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사실 그에게 어떻게 딸들을 그렇게 멋지고 훌륭하게 키워냈나, 하는 질문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모든 것은 아이들 스스로가 발견하고 해낸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잘 자라준 것에 대한 감사나 겸양의 표현이 아니다. 그는 ‘아이들도 어른처럼 다 생각하는 바가 있다’고 굳게 믿는 쪽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라면 어릴 때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린아이라 해도 마냥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는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아이들의 행동에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게 마련이고 그런 생각과 판단을 존중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물론 위험한 순간을 겪거나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부모 입장에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아이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성장해나가는 거니까요.”
그가 말하는 자녀 교육의 핵심은 ‘존중’이다. 부모가 아이의 생각과 판단을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존재인지 깨닫지 못한 채 청춘을 지나버릴지도 모른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중요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는지 모른 채 불행을 어깨에 한가득 짊어지고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채린이를 스타로 키운 비결에 대해 묻는데, 채린이의 재능을 발견한 것은 채린이 자신입니다. 아이가 가수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어요? 등록금이나 학원비 같은 것을 내주는 정도이지 같이 춤을 춰줄 수도, 노래를 불러줄 수도 없으니까요. 어린 시절의 채린이는 여느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 노래와 랩을 즐기며 연예인에 관심을 갖는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음악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고, 누구나가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본인이 강력하게 원하는 무언가를 찾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YG엔터테인먼트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던 씨엘은 돌연 자퇴를 선언했다. “공부는 기술일 뿐”이라는 딸의 말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래도 고등학교까지는…”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곧 입을 다물었다. 모름지기 공부란 원하는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기술일 뿐이고, 그 기술을 연마하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방법도 한 가지만이 아님을 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이런 일들을 딸의 문제로 맞닥뜨렸을 때의 곤혹스러움까지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공부에 관해서라면, 이 교수 자신도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잘 알고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에게 물리학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까지 삼았으니 말이다.
그가 마이크로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의 길을 걷게 된 데는 역시 물리학자였던 아버지, 이병혁 전 서강대 교수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접하게 된 물리학은 흥미진진한 학문이었다. 물리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좋아하던 일도 ‘업’이 되면 그때부터 상황이 달라진다. 흥미만 가지고 하는 일과 직업이니까 해야 하는 일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학문의 과정에서 오는 고통은 둘째 치고서라도 직업인으로서, 연구실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도 논문을 통과시키고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51:49, 그에게 물리학이 주는 즐거움과 고통의 비율이다.
로봇의 최고 장점은 딴짓하지 않고 시키는 일만 잘한다는 것이다. 인간 최고의 장점은 딴짓을 한다는 것이다.
- 〈20up〉 中
물리학 말고도, 그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것들은 또 있다. 대표적인 것이 그림 그리기다. 애초에는 물리학도 그랬지만,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프로가 되려는 것도 아니니 그야말로 ‘나 좋은 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화집이며 그림도 찾아보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공부도 해가며 꾸준히 몰두해온 일 중 하나다.
그의 연구실 책상 위에서 낙서 같은 그림이 발견되거나 그가 6개월간 신문에 만화를 연재했을 때, 혹자는 그랬다. 물리학 교수답지 않게 나름 열심히 딴짓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는 정말 의문스럽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아트 페어에 출품하고, 서울 종로구 창성동 낡은 한옥을 구매해 작업실 겸 갤러리 그리고 지인들과의 아지트로 사용하는 ‘창성동실험실’을 오픈한 것도, 오는 사람들과 나눠 먹을 수 있도록 창성동실험실 뒤뜰에 토마토며 가지 · 고추 · 대파 · 상추 같은 채소를 심어두는 것도 죄다 딴짓이라면 사람이 일만 하는 기계와 다를 바가 뭐가 있을까.
“수업을 하다 보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거나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듯한 학생이 눈에 뜁니다. 그런 걸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딴짓을 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그게 남들 보기엔 딴짓 같아도 본인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거든요. 어떻게 사람이 50분 내내 한 가지에만 집중을 합니까. 중간 중간에 다른 생각을 하거나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수업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인 겁니다. 그런 것을 두고 교수가 딴짓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거죠. 술을 마시거나, 놀러 다니거나, 사람들이 딴짓이라 말하는 것들 중에는 오히려 당사자에게는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딴짓도 열심히, 진지하게만 하면 되는 겁니다.”
학생이 공부 외에 하는 모든 행동을 딴짓이라 여기는, 이 지독한 편견의 사회로부터 두 딸을 지켜준 그의 확고한 인생 철학이 없었다면 2NE1 씨엘의 탄생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은 별로 한 일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말이다.
딴짓과 더불어, 그에게 가장 큰 삶의 활력소가 되는 것은 ‘고독’이다. 고독은 가솔린 자동차의 연료와 같다. 사람도 자동차처럼 매일같이 떠들고 돌아다니면 금세 에너지가 고갈되어 기운을 쓰지 못한다. 혼자서 책을 볼 때, 홀로 생각에 잠기거나 공부에 몰두할 때 사람은 그 일상의 시간 속에서 무언가에 도달할 힘을 얻는다. 굳이 외로움을 즐길 필요는 없다. 하지만 받아들이고 생각할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가 굳이 종로의 뒷골목, 으리으리한 갤러리들을 지나 작고 소소한 한옥에 혼자 또 같이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한 것도 고독의 시간이 주는 힘, 오롯이 그것을 즐기기 위함이다. 세상 모든 고통과 힘겨움을 짊어진 듯 에너지가 고갈된 청춘들에게 그가 책을 통해 토닥이듯 고독을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어쩌면 그가 펴낸 일러스트 에세이 〈20up〉(김영사ON)을 읽고 ‘별거 아니네’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내보일지도 모른다. 그가 하고픈 이야기도 그런 것이었다. “별거 아니네.”
그가 매일 이용하는 지하철 6호선 대흥역 인근에는 고등학교가 몇 군데 있다. 그래서인지 지하철을 탈 때부터 아이들과 힘겨루기를 하듯 부대끼다 그 틈에 끼어 우르르 내리는 것이 그에겐 일상인 듯 자연스럽다. 그리고 함께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어김없이 어깨가 축 처진 채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괜한 오지랖에 어깨라도 툭 치며 다가가 기운 좀 내라고, 인생이 얼마나 즐겁고 신나는 것인지 아이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는 지하철을 타는 횟수만큼이나 쌓여갔지만 낯모르는 아저씨가 다짜고짜 인생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었다.
〈20up〉은 그가 큰딸 채린(씨엘의 본명)이와 둘째 딸 하린이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직접 그린 그림과 글로 재구성한 것이다. 책은 딸에 대한 질투심에서 나왔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하린이와 유럽을 여행하던 그는 세파에 찌든 듯 지쳐 있던 딸의 어깨를 보며 펜을 들었다. 사랑, 연애, 공부, 건강, 시간, 열정…. 하린이가 넘치도록 가졌지만 자신의 것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묘한 질투와 안타까움, 그것은 지하철 6호선에서 만난 어린 학생들의 지친 어깨에서 느낀 감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하철 6호선에서 생긴 일
“청춘은 인생 최고의 시기입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수는 없기에 더없이 소중한 것이고, 그래서 더더욱 즐기면서 보내야 하죠. 책에 실린 내용들은 제가 두 딸에게 했던 이야기이자 이 시대 청춘들에게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사실 그에게 어떻게 딸들을 그렇게 멋지고 훌륭하게 키워냈나, 하는 질문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모든 것은 아이들 스스로가 발견하고 해낸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잘 자라준 것에 대한 감사나 겸양의 표현이 아니다. 그는 ‘아이들도 어른처럼 다 생각하는 바가 있다’고 굳게 믿는 쪽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라면 어릴 때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린아이라 해도 마냥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는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아이들의 행동에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게 마련이고 그런 생각과 판단을 존중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물론 위험한 순간을 겪거나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부모 입장에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아이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성장해나가는 거니까요.”
그가 말하는 자녀 교육의 핵심은 ‘존중’이다. 부모가 아이의 생각과 판단을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존재인지 깨닫지 못한 채 청춘을 지나버릴지도 모른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중요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는지 모른 채 불행을 어깨에 한가득 짊어지고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채린이를 스타로 키운 비결에 대해 묻는데, 채린이의 재능을 발견한 것은 채린이 자신입니다. 아이가 가수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어요? 등록금이나 학원비 같은 것을 내주는 정도이지 같이 춤을 춰줄 수도, 노래를 불러줄 수도 없으니까요. 어린 시절의 채린이는 여느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 노래와 랩을 즐기며 연예인에 관심을 갖는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음악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고, 누구나가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본인이 강력하게 원하는 무언가를 찾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YG엔터테인먼트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던 씨엘은 돌연 자퇴를 선언했다. “공부는 기술일 뿐”이라는 딸의 말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래도 고등학교까지는…”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곧 입을 다물었다. 모름지기 공부란 원하는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기술일 뿐이고, 그 기술을 연마하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방법도 한 가지만이 아님을 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이런 일들을 딸의 문제로 맞닥뜨렸을 때의 곤혹스러움까지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공부에 관해서라면, 이 교수 자신도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잘 알고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에게 물리학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까지 삼았으니 말이다.
그가 마이크로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의 길을 걷게 된 데는 역시 물리학자였던 아버지, 이병혁 전 서강대 교수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접하게 된 물리학은 흥미진진한 학문이었다. 물리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좋아하던 일도 ‘업’이 되면 그때부터 상황이 달라진다. 흥미만 가지고 하는 일과 직업이니까 해야 하는 일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학문의 과정에서 오는 고통은 둘째 치고서라도 직업인으로서, 연구실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도 논문을 통과시키고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51:49, 그에게 물리학이 주는 즐거움과 고통의 비율이다.
고독은 힘이 세다
로봇의 최고 장점은 딴짓하지 않고 시키는 일만 잘한다는 것이다. 인간 최고의 장점은 딴짓을 한다는 것이다.
- 〈20up〉 中
물리학 말고도, 그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것들은 또 있다. 대표적인 것이 그림 그리기다. 애초에는 물리학도 그랬지만,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프로가 되려는 것도 아니니 그야말로 ‘나 좋은 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화집이며 그림도 찾아보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공부도 해가며 꾸준히 몰두해온 일 중 하나다.
그의 연구실 책상 위에서 낙서 같은 그림이 발견되거나 그가 6개월간 신문에 만화를 연재했을 때, 혹자는 그랬다. 물리학 교수답지 않게 나름 열심히 딴짓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는 정말 의문스럽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아트 페어에 출품하고, 서울 종로구 창성동 낡은 한옥을 구매해 작업실 겸 갤러리 그리고 지인들과의 아지트로 사용하는 ‘창성동실험실’을 오픈한 것도, 오는 사람들과 나눠 먹을 수 있도록 창성동실험실 뒤뜰에 토마토며 가지 · 고추 · 대파 · 상추 같은 채소를 심어두는 것도 죄다 딴짓이라면 사람이 일만 하는 기계와 다를 바가 뭐가 있을까.
“수업을 하다 보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거나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듯한 학생이 눈에 뜁니다. 그런 걸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딴짓을 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그게 남들 보기엔 딴짓 같아도 본인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거든요. 어떻게 사람이 50분 내내 한 가지에만 집중을 합니까. 중간 중간에 다른 생각을 하거나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수업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인 겁니다. 그런 것을 두고 교수가 딴짓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거죠. 술을 마시거나, 놀러 다니거나, 사람들이 딴짓이라 말하는 것들 중에는 오히려 당사자에게는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딴짓도 열심히, 진지하게만 하면 되는 겁니다.”
학생이 공부 외에 하는 모든 행동을 딴짓이라 여기는, 이 지독한 편견의 사회로부터 두 딸을 지켜준 그의 확고한 인생 철학이 없었다면 2NE1 씨엘의 탄생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은 별로 한 일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말이다.
딴짓과 더불어, 그에게 가장 큰 삶의 활력소가 되는 것은 ‘고독’이다. 고독은 가솔린 자동차의 연료와 같다. 사람도 자동차처럼 매일같이 떠들고 돌아다니면 금세 에너지가 고갈되어 기운을 쓰지 못한다. 혼자서 책을 볼 때, 홀로 생각에 잠기거나 공부에 몰두할 때 사람은 그 일상의 시간 속에서 무언가에 도달할 힘을 얻는다. 굳이 외로움을 즐길 필요는 없다. 하지만 받아들이고 생각할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가 굳이 종로의 뒷골목, 으리으리한 갤러리들을 지나 작고 소소한 한옥에 혼자 또 같이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한 것도 고독의 시간이 주는 힘, 오롯이 그것을 즐기기 위함이다. 세상 모든 고통과 힘겨움을 짊어진 듯 에너지가 고갈된 청춘들에게 그가 책을 통해 토닥이듯 고독을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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