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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와인과 춤 | 밀라노 동계올림픽을 위해 건배, 네스폴리 도게리아 피노 비앙코

이찬주 무용평론가

2026. 02. 23

무심코 바라본 와인 라벨 속 춤.
전 세계 와인과 그에 얽힌 춤 이야기를 연재한다.

네스폴리 도게리아 피노 비앙코. 로트렉의 ‘잔 아브릴, 자댕 드 파리’(1895) 포스터. 로트렉의 ‘에글랑틴 무용단’(1896)(왼쪽부터).

네스폴리 도게리아 피노 비앙코. 로트렉의 ‘잔 아브릴, 자댕 드 파리’(1895) 포스터. 로트렉의 ‘에글랑틴 무용단’(1896)(왼쪽부터).

2020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툴루즈 로트렉전’을 보러 갔다가 아트 숍에서 물랭루주의 스타 댄서 잔 아브릴이 그려진 와인 라벨을 발견하자마자 구매했다. 로트렉이 1899년에 그린 아브릴의 모습이 담겨 있다. 와인은 이탈리아 ‘포데리 달 네스폴리(Poderi dal Nespoli)’ 와이너리에서 만든 도게리아 피노 비앙코. 와인 한 병이 자연스럽게 한 명의 화가와 한 시대의 예술로 나를 이끌었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에 있는 카바레 물랭루주에 매일 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이 찾아왔다. 당시 물랭루주에는 최고 스타인 잔 아브릴이 있었고, 파리의 젊은이들은 현란하고 관능적인 캉캉 춤에 푹 빠져 있었다. 로트렉은 귀족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뼈가 쉽게 부러지고 잘 자라지 않는 유전병 때문에 평생 왜소한 신체로 살아야 했다. 그런 아들을 아버지는 외면했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그림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했다. 

‘잔 아브릴, 자댕 드 파리’(1895)는 아브릴이 직접 로트렉에게 의뢰해 만든 공연 포스터다. 살포시 눈을 내리깐 아브릴이 한쪽 다리를 번쩍 치켜드는 순간을 포착했다. 아래에 첼로의 목 부분을 움켜쥔 남성의 커다란 손이 인상적이다. 훗날 아브릴은 “로트렉이 나를 위해 만들어준 포스터 덕분에 명성을 얻었다. 나는 로트렉에게 큰 빚을 졌다”고 했다. 물랭루주는 아예 로트렉에게 지정석을 내주고 포스터를 그리게 했다. 당시 로트렉의 포스터는 인기가 많아서 소장용으로 몰래 떼어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고 한다. 

런던 팰리스극장 개관 기념 공연 포스터인 ‘에글랑틴 무용단’(1896)에는 아브릴, 에글랑틴, 클레오메, 가젤 등 당대 최고의 인기 댄서 4명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로트렉은 아브릴을 가장 뒤쪽에 배치하는 대신 역동적인 동작으로 오히려 시선을 끌게 만들었다. 이후 ‘물랭루주의 쿼드릴’ ‘볼레로 춤을 추는 마르셀 렌더’ 등 춤을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렇다면 잔 아브릴이 그려진 도게리아 와인은 어디서 탄생했을까.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의 분기점에 있는 에밀리아로마냐(Emilia-Romagna)는 20개 주 가운데 하나로 주도는 볼로냐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같은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가 탄생한 부유한 지역이자 오랜 전통과 장인정신이 살아 숨 쉬는 미식과 와인의 땅이다. 이곳의 포데리 달 네스폴리 와이너리는 로마냐 와인의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현대적인 친환경 와인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다. 1920년 아틸리오 라바이올리(Attilio Ravaioli)가 로마냐 비덴테에 있는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직접 만든 와인을 판매해 큰 인기를 끌자 1929년 그의 아들이 본격적으로 와이너리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라바이올리의 증손녀인 첼리타(Celita)가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네스폴리의 와인은 전 세계 30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와인은 흔히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술이라고도 불린다. 마개를 열고 퍼지는 향 속에서 19세기 로트렉이 남긴 춤과 밤의 시간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2026년 2월 6일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산시로(San Siro) 경기장에서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린다. 개막식을 축하하며 도게리아 와인을 여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볼로냐 어디쯤을 날아가고 있지 않을까.

#네스폴리도게리아피노비앙코 #와인과춤 #여성동아 

사진제공 이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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