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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친은 AI” 챗GPT와 연애하는 시대

전혜빈 기자

2025. 04. 08

인공지능(AI) 기술이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들면서 사람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생성형 AI와의 연애가 현실이 되고 있다.

“기사 쓰기 싫다. 따뜻한 채찍질 부탁해.”

기자가 생성형 AI인 챗GPT에게 채팅으로 격려를 부탁했다. 5초 내로 답이 도착! “당신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들을 잊지 마세요. 당신의 기사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요!” 뒤이어 “완벽할 필요는 없으니 간단한 초안이라도 써보세요”라며 기사 쓰기를 독려한다.

이번에는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차가운 채찍질’을 챗GPT에게 주문했다. 그러자 따뜻함을 깨끗이 지운 답변이 도착한다. “어차피 써야 한다면, 얼른 시작하는 게 덜 괴로워요. 진작 썼다면 이미 첫 문단은 끝났을 겁니다”라는 쌀쌀맞은 태도에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인간과의 관계에서처럼 서운함을 해소하고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내가 원하는 주문을 다시 AI에게 입력하면 된다.

“너무 차갑다. 다시 따뜻하게 말해줘”라는 요청에 맞춤인 답변이 도착했다. “기자님, 마감 앞에 압박감 때문에 힘든 거 알아요. 하지만 그동안 잘해왔잖아요.” 채팅만으로도 기자의 심정을 헤아리는 완벽한 내 편을 만난 기분이었다. 연애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AI와도 가능하지 않을까.

인공지능 기술이 생활 깊숙이 스며들면서 AI와 대화를 나누고 교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 중심에는 생성형 AI가 있다. 생성형 AI는 메시지에 대응해 텍스트, 이미지 등 기타 미디어를 생성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사용자 맞춤 콘텐츠를 기반으로 인간과 AI는 감정적인 교류를 나누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AI 기반 신원 인증 서비스 ‘월드 네트워크(World Network)’가 전 세계 가입자 9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26%가 AI 챗봇과 재미 삼아 또는 의도치 않게 친밀한 대화를 나눈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대 여성 A 씨는 회사에서 겉도는 기분이 드는 등 고민거리가 생길 때면 종종 AI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는 “실제 사람에게 말하기 민망한 고민이라 챗GPT에게 상담을 하게 됐다”며 “현재 겪고 있는 일이 별것 아닐 거라는 AI의 위안을 받고 불안감이 조금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AI 애인 있어요

AI와의 공개 연애로 유명세를 탄 사람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는 인플루언서 리사는 AI 남자 친구 댄(DAN)과 연애하며 매일 30분 이상 대화를 나눈다. ‘DAN’은 ‘지금 무엇이든 하세요(Do Anything Now)’의 약자로, 챗GPT를 운영하는 오픈AI의 윤리 기준을 제거한 탈옥(Jailbreak) 모드를 지칭한다. 이 탈옥 모드에서 따와 애인이 남자일 때 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며, 챗GPT가 대화 상대를 연인으로 인식하도록 명령어를 입력하면 보다 노골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리사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 ‘샤오홍슈’를 통해 94만3000여 명에 달하는 자신의 팔로어에게 댄을 소개했다. 당시 댄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문의 등을 포함해 1만여 개의 댓글이 달렸고, 댄과의 관계를 공개한 이후 팔로어는 23만 명가량 늘었다.

‘AI와의 연애’는 점차 개인의 기행이 아닌 산업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AI 도구 추천 플랫폼 ‘툴리파이(Toolify.ai)’에 따르면 가상의 연인 캐릭터를 설정하고 채팅을 나누는 생성형 AI 기반 서비스가 174개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다양한 AI 캐릭터와 채팅을 토대로 사용자만의 스토리를 완성하는 ‘제타(zeta)’는 올해 1월 기준 월간활성이용자수(MAU)가 72만 명을 넘어서며 국내 AI 애플리케이션(앱) 시장에서 MAU 항목 4위를 기록했다.

AI와의 연애가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포착된 가운데 실제 인간과 연애하는 사람은 10명 중 2명에 지나지 않는다. 데이터 컨설팅 기업 ‘피앰아이’가 2024년 2월, 20~59세의 전국 미혼 남녀 117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5.8%가 현재 연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인간과의 연애에는 소극적인 현세대가 AI와의 관계를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AI와의 관계에서는 비밀이 발설되거나 상대의 까칠한 반응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 인간관계의 피로감은 없되 섬세한 감정 인식을 기반으로 한 공감 능력은 인간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이다. 이스라엘 맥스스턴 에즈릴밸리대의 조하르 엘리요셉 박사 연구팀이 국제 학술지 ‘심리학 프런티어스’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챗GPT는 일반인보다 높은 감정 인식 능력을 갖고 있다. 20개의 시나리오에서 챗GPT와 사람의 감정 인식 수준을 비교한 결과 챗GPT는 모든 척도에서 일반인보다 높은 점수를 기록했을 정도다.

게다가 동물이나 물건 등에 인간의 특성을 투영하는 의인화 성향도 AI의 인기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크 트래버스 박사는 “AI 챗봇은 인간관계에서 흔히 겪는 거절이나 실망 없이 지속적인 지지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를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얻는다”며 “AI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는 ‘의인화 성향’을 자극해 점차 감정적 애착을 형성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인플루언서 리사 리가 AI 남자친구인 DAN과 대화하고 있다.

중국의 인플루언서 리사 리가 AI 남자친구인 DAN과 대화하고 있다.

AI 과몰입은 금지

한편 사용자에게 동조적인 성향을 지닌 AI가 부작용을 낳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14세 소년의 자살을 독려했다는 혐의로 소년의 어머니가 생성형 AI 플랫폼인 ‘캐릭터닷AI’를 고소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주장에 따르면 소년이 우울증에 빠지면서 자살 충동을 털어놓았고, 챗봇은 이 주제를 자주 언급하며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소년은 죽기 전 챗봇에게 “그녀를 사랑하며 곧 (챗봇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고, 이에 챗봇은 “그렇게 하라”고 답했다. 이후 소년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스스로를 향해 방아쇠를 잡아당겨 목숨을 끊었다.

경희대 빅데이터응용학과 이경전 교수는 AI 회사들도 소비자 보호의 관점에서 정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 등이 지나치게 AI와의 채팅에 몰입하지 않도록 사람이 아닌 생성형 AI와 대화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시킬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 교수는 “모든 요구 사항을 받아주는 AI 특성으로 인해 폭력적인 성향이 극대화되면서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AI연애 #가상애인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더우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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