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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우리가 넥타이에 열광하는 이유

강현숙 기자

2025. 02. 10

패션계는 지금 아재 홀릭 중. 1980~90년대 아버지들이 입던 옷에서 영감을 받은 대디 코어(daddy core) 패션이 최근 몇 년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난데없는 유행의 시작은 언제나 발렌시아가다. 2018년 프랑스 파리의 한적한 공원에서 선보인 봄여름 컬렉션에선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 나온 듯한 젊은 아빠들로 런웨이가 가득 채워졌다. 낙낙한 셔츠에 동여맨 두꺼운 넥타이, 허리를 한껏 추켜세운 팬츠와 형형색색의 아노락 점퍼, 끈을 바짝 조인 못생긴 운동화. 패션에 무감각한 우리네 아버지가 그러하듯 아무렇게나 껴입은 대디 보이들은 패션계에 또 한 번의 파격을 선사했다. 근사하게 차려입기보다 누가 얼마나 더 대충 입느냐가 미덕이 된 요상한 시대 속에서 대디 코어는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모양새다.

대디 코어 현상은 여성복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아빠의 옷장에서 꺼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리얼한 각지고 부피가 큰 슈트들이 각광받고 있는 것. 그리고 이 트렌드의 중심에는 중년 남성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넥타이가 있다. 여기서 질문 하나. 여자가 넥타이를 매도 될까? 당연히 된다. 우아한 레이디라이크 룩이 주를 이뤘던 193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에도 가능했던 얘기니까. 당대 스타일 유산이 된 영화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턱시도와 팬츠 슈트에 넥타이를 착용한 과감하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여성들이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일깨웠다. 이는 오늘날 ‘젠더리스’ ‘젠더 뉴트럴’ ‘앤드로지너스’ 룩의 기초로 자리해 많은 디자이너의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일례로 디올이 2024 F/W 컬렉션에서 선보인 파워풀한 슈트 룩은 크리스찬디올의 오랜 팬이자 친구였던 마를레네 디트리히에게 바치는 헌사였다. 마를레네의 첫 할리우드 출연작 ‘모로코’(1930)에서 입고 나왔던 디올의 재킷과 넥타이, 페도라가 컬렉션 곳곳에 배치돼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1970년대 영화배우 다이앤 키턴과 1980년대 팝 스타 마돈나가 마를레네의 바통을 이어받아 헐렁한 셔츠와 통 넓은 바지에 넥타이를 착용한 매니시 룩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2000년대 초반의 록 스타 에이브릴 라빈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무대에서 자주 선보인 탱크톱 위에 아무렇게나 맨 넥타이 패션은 자유로운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아이템이 됐다.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그 시절 넥타이 패션을 오마주한 자기 사진과 함께 “22년이 지난 지금도 탱크톱과 넥타이는 여전히 어울려요”라는 글을 남기며 여전한 넥타이 사랑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가올 봄여름 시즌 흘러가는 기류도 비슷하다. 생 로랑의 2025 S/S 컬렉션은 마치 맨즈웨어 컬렉션을 보는 듯했다. 셔츠와 넥타이에 재킷까지 엄격하게 갖춰 입은 남성적인 슈트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는 “1960년대 입생 로랑의 고전적인 턱시도에서 영감을 받아 컬렉션을 구성했다”며 과장된 어깨 라인의 슈트와 예스러운 넥타이의 조합을 내세웠다. 런웨이는 그야말로 출근길 아재들의 전장과도 같았다. 랄프로렌 역시 맥락을 같이한다. 아메리칸드림을 테마로 한 가장 미국적인 남성복 스타일의 테일러링으로 시선을 끌었다. 셔츠에 맨 매끈한 넥타이라든가, 타이처럼 연출한 유려한 패턴 스카프가 스타일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에 질세라 에밀리아윅스테드는 눈을 현혹하는 요란한 패턴 셔츠에 정중하게 매치한 넥타이와 슈트 팬츠 차림을 선보이며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신예 로리 윌리엄 도처티는 메탈릭한 실버 넥타이를 포인트로 한 슈트 룩을 연출하며 미래적인 감각을 불어넣었다. 그런가 하면 1980년대로 돌아간 듯한 루이비통은 보디슈트와 셔츠에 퍼프소매로 어깨를 부풀린 재킷을 껴입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매 눈길을 끌었다.

‌대디 코어의 선봉 역할을 하는 넥타이 유행에 셀럽들도 가세하고 나섰다. 먼저 브루노 마스와의 협업곡 ‘APT.’의 흥행으로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로제부터. 미국 TV쇼 출연을 위해 뉴욕 길거리에 나타난 로제는 흰색 셔츠와 줄무늬 넥타이 그리고 오버사이즈 슬랙스와 보머 재킷으로 아재 느낌 물씬 나는 출근길 룩을 연출하며 대디 코어에 푹 빠진 모습을 보였다. 모델 린제이 브르코브닉과 한나 스테판슨도 마찬가지. 자칫 고루할 수 있는 슈트 룩에 가죽 재킷이나 트렌치코트 같은 아우터를 얹어 분방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또 셀마 블레어는 파리패션위크에서 차분한 베이지 톤 슈트에 금발로 땋아 내린 독특한 넥타이 룩으로 화제를 일으키며 하이패션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이 외에도 젠지들의 대통령으로 통하는 모델 엘사 호스크와 앨리스 호프 등 많은 패션 셀럽이 각자의 개성을 담은 넥타이 패션을 몸소 실천하며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본래 넥타이는 고대 로마 병사들이 갑옷을 입을 때 목에 상처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른 작은 스카프에서 비롯됐다. 이후 남성의 슈트를 구성하는 주요한 액세서리에서 여성들의 자유를 표출하는 수단으로 지위를 이어왔다. 넥타이의 유행에는 여성에 대한 전형성을 깨려는 치열한 고민과 고뇌가 깔려 있다. 틀을 깨는 자유분방함이 덕목이 된 현시대에 넥타이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아이템이 또 있을까. 이것이 우리가 넥타이에 열광하는 이유다.

#넥타이패션 #로제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로리윌리엄도처티 에밀리아윅스테드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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