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당크(DANK)’라는 브랜드를 처음 들어본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이수연(47) 대표가 10년 전 설립한 당크디자인하우스는 기업의 선물용 액세서리를 기획, 판매하며 성장한 회사다. ‘당크’라는 회사명은 독일어로 ‘감사’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따왔다. 주로 기업을 상대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에겐 생소한 이름이지만, 업계에선 높은 품질을 자랑하는 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대한항공, 삼성물산, 현대건설, 현대기아차, 신한은행,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1백여 국내 대표 기업이 당크의 단골이다. 이렇게 기업 간 거래만을 전문으로 했던 당크가 최근 빠르게 보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인천국제공항에 면세점을 내더니, 그 후엔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쇼룸을 내고, 최근에는 백화점에도 속속 입점하고 있다.
“저희 제품을 선물로 받으신 분들이 개인적으로도 구매하고 싶다며 백화점을 비롯한 소매점 입점을 권하셨어요. 그 말에 자신감을 얻어 5년여 전부터 준비한 끝에 2013년에 인천공항 롯데면세점에 입점하게 됐죠. 반응이 기대했던 것보다 뜨거웠어요. 요즘은 저희 브랜드 이미지와 맞는 곳에 매장을 차례로 오픈하고 있어요.”
3월의 어느 오후, DDP에 위치한 당크의 프리미엄 쇼룸에서 이수연 대표를 만났다. 핑크색 톤의 파이톤 스카프가 그녀와 참 잘 어울린다. 쇼룸에는 형형색색의 넥타이를 비롯해 스카프, 머플러, 지갑, 핸드백, 벨트 등 다양한 패션 소품들이 진열돼 있다. 한편에는 최근 간송미술관과 콜래보레이션 작업을 통해 탄생한 넥타이와 스카프도 보인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신윤복의 ‘월하정인’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는 넥타이가 특히 인상적이다.
“간송미술관과 협업해 총 세 가지 라인을 기획했어요. 하나는 매·란·국·죽 사군자를 소재로 한 넥타이고, 다른 하나는 신윤복의 ‘월하정인’에서 모티프를 얻어 제작한 넥타이예요. 다른 하나는 노수현 화백의 ‘천불봉’을 소재로한 스카프인데, 수묵담채화가 실크 소재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묻어나죠.”
당크가 한국적인 소재로 패션 소품을 만든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외규장각 의궤(儀軌) 반환을 기념해 지난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과 협업해 만든 의궤 넥타이가 대표적이다. 다보탑, 첨성대 등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문화재를 디자인 소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성자문위원 정책회의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를 비롯한 3천여 명의 인사가 무궁화가 새겨진 스카프를 두르고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통일 염원을 상징하는 이 무궁화 스카프 역시 당크의 제품이다.
“문화재를 소재로 한 제품을 만드는 일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쁨이에요. 외국분들이 저희 제품을 좋아해주시는 걸 보면 참 뿌듯하죠. 그렇다고 너무 한국적인 것에만 치우진 디자인은 내놓지 않으려고 해요. ‘글로벌 스탠더드’를 고려해 디자인을 만드는 거죠. 너무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다 보면 그것이 세계인들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원래 뭘 잘 저지르는 편이에요. 현재 당크의 사훈도 ‘Do It Now(지금 시작해라)’죠. 결심도 중요하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니던 회사를 나와 제 사업을 벌였을 땐 막연하게 ‘내 브랜드를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의욕과는 달리 제 자질이나 환경은 이를 받쳐주질 못했어요. 종합적으로 미스 매칭이었죠.”
하지만 얻은 것도 있었다. 여성 기업인, 기업 최고경영자(CEO) 부인들과 접촉하며 CEO들이 선물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 대표가 ‘기업 비즈니스’라는 틈새시장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 계기다.
“기업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에게 신문은 필수예요. 정세를 비롯해 거시 경제까지 줄줄 꿰고 있어야 하죠.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기업 분석을 먼저 해야 하기 때문에 고객사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최근 해당 기업의 이슈는 뭔지도 항상 알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창의적인 디자인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현재 당크의 전체 직원은 이 대표를 포함해 16명이다. 여성 CEO가 이끄는 디자인 기업답게 조직의 문화는 상당히 부드러운 편이다. 매주 월요일 오전 주간 회의 때는 순번을 정해 한 사람씩 주말을 어떻게 보냈고, 거기서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소통하는 가운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이 이 대표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자유로운 분위기는 아니에요. ‘비즈니스 매너’ 하나만큼은 직원들에게 엄격하게 교육하는 편이죠. 가령, 사무실을 찾아온 손님에게 커피를 대접할 때, 차가운 잔에 커피를 내오는 건 굉장한 실례라고 봐요. 미리 뜨거운 물로 잔을 데운 뒤 그 안에 커피를 따라야 한다고 직원에게 가르치죠. 기본적인 예의를 엄격하게 지키는 건 당크 직원의 필수 역량이에요.”
작년에는 당크 내부에 겹경사도 생겼다. 당크의 여성 직원 3명이 연달아 임신을 한 것이다. 사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 입장에선 직원들의 신변에 한꺼번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 10년간 기업을 이끌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가족 같은 직원들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를 꼽았다.
“요즘은 여성들이 일에 대한 열정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그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일에만 매진하는 직원을 보면 ‘나가서 연애도 좀 하고, 빨리 결혼해서 아이도 셋은 낳으라’고 채근하곤 했죠. 물론 당크는 규모가 작은 회사기 때문에 한 사람만 빠져도 불편해요. 하지만 길게 보면 직원이 행복한 게 회사에도 복이라고 봐요.”
직원들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던 이 대표가 “사실 저도 작년에 늦둥이를 출산했다”며 소리 내어 웃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낳은 늦둥이까지 품에 안았으니 이런 행복이 또 있을까 싶다.
“직원들에게 임신을 독려하며 ‘내가 낳아서 알려줄게’ 하고 농담 삼아 말하곤 했어요. 제가 정말로 늦둥이를 임신했다고 하니 지인들이 다들 깜짝 놀랐죠. 큰아이는 학업을 마치고 국내 한 리서치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어요. 일찌감치 큰아이를 키워놓고, 20년 동안 쉼 없이 일만 해서인지 인생이 참 지치더라고요. 큰아이의 동의 하에 남편과 계획을 세워서 간절히 바란 끝에 생긴 아기예요. 예쁜 건 이루 말할 수가 없죠. 우는 것도, 짜증 내는 것도, 새벽에 깨는 것까지도 다 예쁜 것 같아요. 늦둥이를 낳고나니 오히려 더 활력이 넘쳐요. 일과 가정의 균형이 이제야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에요.”
“원래 전공은 경영학인데 디자이너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미적인 감각이나 미술사적 지식이 필요하겠더라고요. 주변에선 개인 교습을 받으라고 권했는데 저는 실기보다는 대학에서 기초를 배우면서 이론을 익히고 싶었어요. 그래서 건국대학교 디자인학과에 3학년 1학기로 편입을 했고, 스물두어 살짜리 친구들이랑 강의실에서 같은 수업을 받고 졸업 전시까지 함께했죠.”
웬만한 용기로는 좀처럼 도전하기 힘든 일이다. 오랜만에 겪는 캠퍼스 생활은 달라진 게 무척 많았다. 수강 신청부터 실기 수업까지 익숙한 건 하나도 없었다.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동기들에게 삼겹살을 사주며 ‘캠퍼스로 돌아온 왕언니’ 생활을 즐겼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느냐고 물으니 “비뿔(B+)은 맞췄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정말이에요. 대학에서 이론 수업을 듣고 나니 회사에서 직원들과 소통하기도 훨씬 쉬워진 데다 일하는 게 너무 즐겁더라고요. 이제는 제가 마케터와 디자이너의 역할을 모두 다 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인 것 같아요.”
졸업을 기념해 교수들을 위한 선물도 준비했다. 그들의 대표 작품을 주제로 한 넥타이와 스카프 제품이다. 현재 이것들은 당크 매장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늦깎이 대학 생활을 회상하며 “학부 공부는 정말 힘들다”며 한숨을 쉬더니 “그런데 이번에 또 학교에 가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번 학기부턴 서울대 인문학 과정의 수강생이란다.
“외국계 회사의 한국 지사장인 남편도 몇 해 전 이 과정을 수료했는데 회사를 이끄는 데 도움이 많이 됐대요. 계속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학부 공부를 하면서 더 명확해졌어요. 어떤 일을 하든지 인문학이 기본이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패션은 그 사람의 가치관과 철학을 말해준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은 수없이 많지만, 넥타이와 스카프만큼 기본에 충실한 것은 없다. 이 대표는 당크에서 만드는 패션 아이템에 철학과 가치관을 담으려고 한다. 그녀가 끊임없이 공부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크는 창립기념일인 11월 25일쯤 직원들을 비롯해 지금껏 당크의 성장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계획 중이다. 그곳에서 당크의 비전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명품 브랜드로 키우는 게 목표예요. 명품은 다른 브랜드와 경쟁하지 않아요.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으로 묵묵히 자기만의 길을 갈 뿐이죠. 당크 역시 다른 브랜드와 경쟁하지 않아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탁월한 제품력으로 언제나 시장을 앞서가는 기업이 되도록 할 겁니다.”
“저희 제품을 선물로 받으신 분들이 개인적으로도 구매하고 싶다며 백화점을 비롯한 소매점 입점을 권하셨어요. 그 말에 자신감을 얻어 5년여 전부터 준비한 끝에 2013년에 인천공항 롯데면세점에 입점하게 됐죠. 반응이 기대했던 것보다 뜨거웠어요. 요즘은 저희 브랜드 이미지와 맞는 곳에 매장을 차례로 오픈하고 있어요.”
3월의 어느 오후, DDP에 위치한 당크의 프리미엄 쇼룸에서 이수연 대표를 만났다. 핑크색 톤의 파이톤 스카프가 그녀와 참 잘 어울린다. 쇼룸에는 형형색색의 넥타이를 비롯해 스카프, 머플러, 지갑, 핸드백, 벨트 등 다양한 패션 소품들이 진열돼 있다. 한편에는 최근 간송미술관과 콜래보레이션 작업을 통해 탄생한 넥타이와 스카프도 보인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신윤복의 ‘월하정인’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는 넥타이가 특히 인상적이다.
“간송미술관과 협업해 총 세 가지 라인을 기획했어요. 하나는 매·란·국·죽 사군자를 소재로 한 넥타이고, 다른 하나는 신윤복의 ‘월하정인’에서 모티프를 얻어 제작한 넥타이예요. 다른 하나는 노수현 화백의 ‘천불봉’을 소재로한 스카프인데, 수묵담채화가 실크 소재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묻어나죠.”
당크가 한국적인 소재로 패션 소품을 만든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외규장각 의궤(儀軌) 반환을 기념해 지난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과 협업해 만든 의궤 넥타이가 대표적이다. 다보탑, 첨성대 등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문화재를 디자인 소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성자문위원 정책회의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를 비롯한 3천여 명의 인사가 무궁화가 새겨진 스카프를 두르고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통일 염원을 상징하는 이 무궁화 스카프 역시 당크의 제품이다.
“문화재를 소재로 한 제품을 만드는 일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쁨이에요. 외국분들이 저희 제품을 좋아해주시는 걸 보면 참 뿌듯하죠. 그렇다고 너무 한국적인 것에만 치우진 디자인은 내놓지 않으려고 해요. ‘글로벌 스탠더드’를 고려해 디자인을 만드는 거죠. 너무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다 보면 그것이 세계인들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직원들의 행복이 CEO의 행복
이수연 대표가 이끄는 당크는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이했다. 회사는 날로 성장하는 추세지만, 이 대표에게 쓰라린 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 후 여성복 브랜드인 김창숙부띠크에 입사해 기획 · 마케팅 업무를 맡았다. 실무 경험으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그녀는 외환 위기 무렵 회사를 나와 여성복 사업에 야심 차게 뛰어들었다. 결과는 실패였다.“제가 원래 뭘 잘 저지르는 편이에요. 현재 당크의 사훈도 ‘Do It Now(지금 시작해라)’죠. 결심도 중요하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니던 회사를 나와 제 사업을 벌였을 땐 막연하게 ‘내 브랜드를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의욕과는 달리 제 자질이나 환경은 이를 받쳐주질 못했어요. 종합적으로 미스 매칭이었죠.”
하지만 얻은 것도 있었다. 여성 기업인, 기업 최고경영자(CEO) 부인들과 접촉하며 CEO들이 선물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 대표가 ‘기업 비즈니스’라는 틈새시장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 계기다.
“기업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에게 신문은 필수예요. 정세를 비롯해 거시 경제까지 줄줄 꿰고 있어야 하죠.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기업 분석을 먼저 해야 하기 때문에 고객사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최근 해당 기업의 이슈는 뭔지도 항상 알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창의적인 디자인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현재 당크의 전체 직원은 이 대표를 포함해 16명이다. 여성 CEO가 이끄는 디자인 기업답게 조직의 문화는 상당히 부드러운 편이다. 매주 월요일 오전 주간 회의 때는 순번을 정해 한 사람씩 주말을 어떻게 보냈고, 거기서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소통하는 가운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이 이 대표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자유로운 분위기는 아니에요. ‘비즈니스 매너’ 하나만큼은 직원들에게 엄격하게 교육하는 편이죠. 가령, 사무실을 찾아온 손님에게 커피를 대접할 때, 차가운 잔에 커피를 내오는 건 굉장한 실례라고 봐요. 미리 뜨거운 물로 잔을 데운 뒤 그 안에 커피를 따라야 한다고 직원에게 가르치죠. 기본적인 예의를 엄격하게 지키는 건 당크 직원의 필수 역량이에요.”
작년에는 당크 내부에 겹경사도 생겼다. 당크의 여성 직원 3명이 연달아 임신을 한 것이다. 사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 입장에선 직원들의 신변에 한꺼번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 10년간 기업을 이끌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가족 같은 직원들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를 꼽았다.
“요즘은 여성들이 일에 대한 열정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그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일에만 매진하는 직원을 보면 ‘나가서 연애도 좀 하고, 빨리 결혼해서 아이도 셋은 낳으라’고 채근하곤 했죠. 물론 당크는 규모가 작은 회사기 때문에 한 사람만 빠져도 불편해요. 하지만 길게 보면 직원이 행복한 게 회사에도 복이라고 봐요.”
직원들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던 이 대표가 “사실 저도 작년에 늦둥이를 출산했다”며 소리 내어 웃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낳은 늦둥이까지 품에 안았으니 이런 행복이 또 있을까 싶다.
“직원들에게 임신을 독려하며 ‘내가 낳아서 알려줄게’ 하고 농담 삼아 말하곤 했어요. 제가 정말로 늦둥이를 임신했다고 하니 지인들이 다들 깜짝 놀랐죠. 큰아이는 학업을 마치고 국내 한 리서치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어요. 일찌감치 큰아이를 키워놓고, 20년 동안 쉼 없이 일만 해서인지 인생이 참 지치더라고요. 큰아이의 동의 하에 남편과 계획을 세워서 간절히 바란 끝에 생긴 아기예요. 예쁜 건 이루 말할 수가 없죠. 우는 것도, 짜증 내는 것도, 새벽에 깨는 것까지도 다 예쁜 것 같아요. 늦둥이를 낳고나니 오히려 더 활력이 넘쳐요. 일과 가정의 균형이 이제야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에요.”
명품은 다른 브랜드와 경쟁하지 않는다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늦둥이까지 낳았으니 더 이룰 게 뭐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이 대표는 여전히 삶 속에서 ‘Do It Now’를 실천 중이다. 그녀는 지난 2013년 미술 대학에 편입해 작년 2월에 졸업한 것이다. CEO로 승승장구하며 고려대학교에서 MBA까지 마친 그녀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 것이다.“원래 전공은 경영학인데 디자이너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미적인 감각이나 미술사적 지식이 필요하겠더라고요. 주변에선 개인 교습을 받으라고 권했는데 저는 실기보다는 대학에서 기초를 배우면서 이론을 익히고 싶었어요. 그래서 건국대학교 디자인학과에 3학년 1학기로 편입을 했고, 스물두어 살짜리 친구들이랑 강의실에서 같은 수업을 받고 졸업 전시까지 함께했죠.”
웬만한 용기로는 좀처럼 도전하기 힘든 일이다. 오랜만에 겪는 캠퍼스 생활은 달라진 게 무척 많았다. 수강 신청부터 실기 수업까지 익숙한 건 하나도 없었다.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동기들에게 삼겹살을 사주며 ‘캠퍼스로 돌아온 왕언니’ 생활을 즐겼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느냐고 물으니 “비뿔(B+)은 맞췄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정말이에요. 대학에서 이론 수업을 듣고 나니 회사에서 직원들과 소통하기도 훨씬 쉬워진 데다 일하는 게 너무 즐겁더라고요. 이제는 제가 마케터와 디자이너의 역할을 모두 다 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인 것 같아요.”
졸업을 기념해 교수들을 위한 선물도 준비했다. 그들의 대표 작품을 주제로 한 넥타이와 스카프 제품이다. 현재 이것들은 당크 매장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늦깎이 대학 생활을 회상하며 “학부 공부는 정말 힘들다”며 한숨을 쉬더니 “그런데 이번에 또 학교에 가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번 학기부턴 서울대 인문학 과정의 수강생이란다.
“외국계 회사의 한국 지사장인 남편도 몇 해 전 이 과정을 수료했는데 회사를 이끄는 데 도움이 많이 됐대요. 계속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학부 공부를 하면서 더 명확해졌어요. 어떤 일을 하든지 인문학이 기본이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패션은 그 사람의 가치관과 철학을 말해준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은 수없이 많지만, 넥타이와 스카프만큼 기본에 충실한 것은 없다. 이 대표는 당크에서 만드는 패션 아이템에 철학과 가치관을 담으려고 한다. 그녀가 끊임없이 공부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크는 창립기념일인 11월 25일쯤 직원들을 비롯해 지금껏 당크의 성장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계획 중이다. 그곳에서 당크의 비전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명품 브랜드로 키우는 게 목표예요. 명품은 다른 브랜드와 경쟁하지 않아요.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으로 묵묵히 자기만의 길을 갈 뿐이죠. 당크 역시 다른 브랜드와 경쟁하지 않아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탁월한 제품력으로 언제나 시장을 앞서가는 기업이 되도록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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