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 호서대 청소년상담학과 교수
‘히키코모리’에 대한 연구를 1990년대부터 진행해온 일본에서는 꾸준히 관련 조사를 이어오고 있다. 일본 내각부가 2016년 발표한 ‘청년 생활 조사’ 자료에 따르면 15~39세 히키코모리는 약 56만 명. 일본의 인구(한국의 2.5배)를 고려할 때 청년층 은둔 비율이 은둔형외톨이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일본 정부는 청년 시절부터 은둔 상태가 지속돼 중장년으로 이어지는 숫자도 만만치 않다고 보고 있다.
김혜원 호서대학교 청소년상담학과 교수는 2015년 은둔형외톨이를 학교밖·사회밖 청년이라 명명하고 20대 은둔형외톨이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 교수는 “최근 은둔형외톨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은 반갑지만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하는 등 오해가 많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은둔형외톨이는 매일 죄책감 느낀다”
범죄 성향과 은둔 생활을 연결하기도 하는데요.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은둔 생활을 오래하거나 고립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이른바 ‘묻지마범죄’를 저지를 공격성이나 타인에 대한 분노, 세상에 대한 원망이 거의 없어요. 오히려 ‘자신이 잘못했다’ ‘세상을 살아가기에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라고 자책하는 경우가 많아요. 타인을 공격할 이유를 찾지 못하죠.
최근 묻지마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은둔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요.
범죄 계획과 목표를 갖고 은둔 생활을 한 거라고 봐야 합니다. 은둔 생활을 오래 한다고 해서 범죄자가 된다는 건 전혀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주장입니다.
은둔형외톨이는 질병의 일종인가요.
아닙니다. 일본 사회는 1980년대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30년 이상 대응해왔습니다. 연구 논문도 많고요. 하지만 일본에서도 은둔형외톨이를 질병으로 명명하지는 않습니다. 개인이 어떤 상태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 의미는 누구나 은둔형외톨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고요.
질병이 아니라면 자연적으로 상황이 달라질 수 있지 않나요.
많은 분이 은둔형외톨이를 가만히 두면 벗어날 거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이건 개인이 회복할 수 있는 정도의 무너짐이 아닙니다. 짧게는 은둔 생활이 6개월에서 1년 정도 지속되다 끝날 수도 있지만, 일본 상황을 보면 20년 넘게 지속되는 경우도 보이거든요. 구덩이에 빠진 것과 늪에 빠진 건 다르잖아요. 늪에 빠진 걸 질병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가만히 두면 계속 늪으로 들어가니 도움이 필요한 겁니다.
은둔형외톨이는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있나요.
자신의 상황을 모르고 있다는 오해가 제일 큰데요. 은둔 생활을 하다가 사회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단 하루도 편한 적이 없었다고. 대부분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어찌 됐든 의존하는 상태에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피해를 준다고 생각해요. ‘나로 인해 가족들에게 고통을 준다.’ 그래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지만 안 되는 거죠. 방에만 있으면 얼마나 편하냐,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큰 오해입니다.
은둔형외톨이를 정의하는 기준이 있다고요.
일주일, 열흘 정도 집에만 있다고 해서 그걸 은둔형외톨이로 정의하진 않습니다. 3가지 기준이 있어요. 우선 일정한 공간에 머물러야 합니다. 방이나 집 안에만 머무르죠. 편의점에 가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물리적으로 제한된 공간에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아야 합니다. 글을 쓰거나 음악 작업을 하는 경우에도 방 안에만 머무를 수 있잖아요. 이런 생산 활동을 하지 않아야 하고, 연락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간인데, 일본에서는 6개월 이상 은둔 상태에 머무르는 걸 위험하다고 봐요. 한국에서는 3개월 정도 됐을 때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이 역시 앞의 두 조건을 충족한 상태에서의 3개월을 의미합니다.
은둔형외톨이가 되는 원인은 뭔가요.
원인을 하나로 짚을 수는 없습니다.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죠. 누구나 가정, 학교,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있죠. 모두가 벽돌을 이고 살아가는 거라고 하면 그 벽돌이 2〜3개일 때는 견딜 수 있지만 늘어나면 어느 순간 무너지는 겁니다. 성격적인 요인도 있습니다. 타인에게 강하게 자기주장을 못 하는 이들이 많아요.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싫다”고 말하거나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으면 심리적인 문제가 좀 해결되죠. 하지만 순응해오거나 맞추려고 노력한 사람들은 오히려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죠.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착하다’ ‘조용하게 잘 지냈다’ 이런 내용을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에 은둔형외톨이가 있다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나요.
보통은 방문을 닫고 대화를 안 하면 “네가 이러면 안 된다” “이건 나쁜 거다”라고 하기 쉽죠. 그건 그 상태를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된다, 안 된다를 넘어서 우선 이미 발생한 일이잖아요. 우리가 넘어져서 피를 흘리는 사람에게 왜 넘어졌냐고 묻는 건 적절치 않아요. 이게 얼마나 위급한 상태인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죠. 우선 넘어졌구나, 다쳤구나 인정을 해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인정을 하면 마치 그걸 잘한 행동으로 지지해준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에요. 그리고 이들에게 “지금 너 왜 그러는 거야” 물어본들 그들도 설명할 길이 없어요. 그들도 충분히 혼란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이죠. 여러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더 이상은 못 하겠다” 정도까지밖에 설명하지 못해요.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도 힘들 텐데요.
그렇죠. 기간이라도 정해주면 편하겠죠. 하지만 사실 스스로 정할 수 없어요. 우선은 수용해주고 그 상태를 인정해주고, 마음의 아픔을 공감해줬을 때 회복하는 속도가 더 빠르죠.
대화를 계속 시도해야 하나요.
‘세상은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살 수 있다’고 하잖아요. “네가 잘 이겨 낼 거야” “오죽 힘들면 네가 그럴까”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해요. 은둔형외톨이는 이 상태를 장난처럼 선택한 게 아니란 말이죠. 이런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대화면 좋지만 그래서 전문가가 필요한 거죠. 저희 단체에서는 부모님 교육을 진행하기도 해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알고 대화하는 게 좋아요.
은둔의 징후가 있나요.
부모님들은 갑자기 집 밖을 안 나가기 시작했다고 설명하시죠. 하지만 은둔의 원인은 차곡차곡 쌓여왔고 장작과 기름이 다 준비된 상태에서 성냥이 발화를 시켰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순응적으로 살았던 경험이 많기 때문에 사실 힘든 상황을 주변에 공유하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예요.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은 그런 걸 물어봐주고 본인이 인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챙겨줄 필요가 있죠.
은둔형외톨이는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나요.
최소 인구의 1%, 서울시 조사에서는 청년 인구의 약 5%가 은둔 상태에 있다고 보기도 해요. 허리가 돼야 하는 청년층이 은둔하고 있다는 건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죠. 또 가족 구성원도 영향을 받아요. 자녀가 은둔하고 있는 경우에 부모님은 외출도 피하고 모임도 잘 나가지 않습니다. 자녀에 대해 물을 게 뻔하니까요. 그러면 가족 구성원 전체가 고립된 섬이 되는 겁니다. 부모님들은 우울증이나 신체적 질병을 앓게 되는 경우도 많고요.
김 교수는 “경제적 문제로 접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한 사람이 청년기부터 중장년기까지 은둔하게 되면 16억 원이 든다고 합니다. 생산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기회비용과 복지비용을 합친 거죠. 한국은 복지비용이 없다고 봐야 하니 그걸 뺀다고 하더라도 6억~7억 원이 드는 셈이죠. 이건 사회적으로 정말 큰 문제죠.”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요.
사회적 관심이 커진 만큼 첫발을 잘 디뎌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년 정책은 사실상 일자리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취업을 위한 교육이나 금전 지원은 은둔형외톨이 청년들에게 가닿지 못해요. 이들에게는 다시 도전할 마음을 회복하는 게 필요하죠. 우선 자존감을 되찾아야 하고요. 비슷한 경험을 한 또래와의 감정 공유나 함께하는 활동도 필요합니다.
중요한 건 은둔형외톨이를 위한 정책은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현재는 지자체나 민간 수준에서 은둔형외톨이들을 위한 센터 운영 또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요. 저희 단체에 오는 청년들은 “어차피 이러다가 그만 둘 거잖아요”라는 걱정을 많이 합니다.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플랜이 있어야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은둔형외톨이를 만드는 구조적인 원인도 있나요.
은둔형외톨이는 일본과 한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가 대두됐을 때 일본만의 특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게 한국에 똑같이 나타났어요. 그러니까 일본 사회와 한국 사회가 닮은 점에 대해 생각해봐야 해요.
어떤 점이 닮았나요.
저는 한국 사회에서 3가지 시옷을 하지 못한다고 설명하는데요. 시도, 실수, 실패입니다. 우선 어떤 삶을 사는 게 옳다는 문화가 있어요. 튀지 않아야 하고, 조직에서 대인관계가 좋아야 하죠. 그게 아니면 비정상으로 보고요. 결국 개인의 다양성이 덜 존중받는 거죠. 더 중요한 건 시기에 대한 인식입니다. 10대에는 공부를 하고 20대에는 취업, 30대에는 결혼을 하고 40대엔 가정이 원활하게 굴러가야 해요. 50대에는 노후를 준비해야 하고요. 사회적 시계에 맞추지 못하면 뒤처지는 느낌을 받죠. 그러니까 은둔이 2~3년 진행되면 더 포기하기 쉬워요. 처음부터 따라잡기 어렵다고 생각해 은둔을 선택한 건데 은둔이 지속되다 보면 또 시간이 지나가니까요. 다시 컨베이어벨트에 올라타기가 너무 어려운 겁니다.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습니다”
파이나다운청년들에서 청년들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파이나다운청년들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15년 뜻이 맞는 분들과 법인을 만들었는데요. 당시엔 정말 은둔형외톨이에 대한 관심이 전무했어요. 상담심리 전공으로 대학교수 생활을 하면서 간단한 질문들이 생기기 시작했죠. 모두가 대학에 진학하는 게 아니고, 취업하는 게 아닌데 그들은 어디로 갈까. 삶의 모습은 어떨까. 그러니까 소외된 청년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당시엔 은둔형외톨이라는 단어도 생소해서 ‘학교밖·사회밖 청년’ 이렇게 이름을 붙인 거예요. 학교밖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센터는 있었지만 성인이 되면 그들이 갈 곳이 없어지거든요. 그래서 법인을 만들고 이들을 위한 작은 프로그램이라도 시작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에서 어떤 활동을 하나요.
우선 청년 당사자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요. 마음을 회복하고 자신에 대한 신뢰를 되찾는 겁니다. 내가 뭘 잘하는지,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뭔지, 내가 가진 어려움이 뭔지를 알아야 해요. 그건 공부의 개념이라기보다 함께 노는 것처럼 진행돼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거죠. 운동을 하거나 문화생활을 함께하기도 하고요.
다시 시작하는 거네요.
큰 쉼표를 찍은 다음의 재시작이죠. 우선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있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마음을 열고 관계에 있어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거죠. 부모님의 경우에는 은둔 상태에 있는 자녀를 대할 때의 노하우를 많이 알고 싶어 해요. 이로 인해 무기력함을 느끼는 분들은 상담도 필요하고요. 또 중요한 게 은둔형외톨이를 대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절실해요. 저희 단체에서는 2년째 전문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은둔형외톨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계실 거예요. 내 잘못이니까 남에게 도움을 요청할 문제는 아니라고요. 하지만 혼자 자책하는 걸로는 해결이 어렵습니다. 은둔의 원인을 생각해보면 주변의 요인 때문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시는 게 당연하고,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거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은둔형외톨이 #김혜원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김혜원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