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정보기술(IT) 시장 규모는 100조원에 달한다. 4월 7일 미국 IT 시장 조사 기업 가트너는 올해 한국 IT 전체 투자 금액이 100조961원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이는 2022년 정부 예산안의 6분의 1에 달하는 액수로, 천문학적인 돈이 IT로 몰린다는 얘기다.
“하루 종일 바쁘네요. 오전에는 ‘대한민국 4차산업혁명 페스티벌’ 행사가 있었고, 끝나고 바로 한국디지털윤리학회 세미나에 참석했어요. 인터뷰 요청도 수시로 들어오네요.”
박현주 IT여성기업인협회장도 최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IT여성기업인협회는 2001년 설립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단체로, IT 분야 여성 기업인들의 경쟁력 강화와 여성 IT 인재 양성을 위해 힘쓰고 있다. 미래 차 보안 기업 ‘시옷’의 대표이기도 한 박 협회장은 지난 2월 ‘IT 여성 기업의 스케일업(scale-up)과 지속 성장’을 협회의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며 취임했다. 9월 15일 박 협회장을 서울시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만났다.
약 450개의 회원사를 500개까지 늘리려고 하고 있어요. 특히 최근 2030 여성 CEO(최고경영자)가 늘고 있는데, 이들을 모집하려고 합니다. 협회 규모와 예산도 ‘스케일업’하려고 했습니다. 작년에 비해 6배 예산의 사업을 수주했어요. 예산이 많아야 협회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죠. 지속 성장을 키워드로 제시한 건 여성 기업인이 운영하는 IT 기업은 규모가 작은 편이기 때문이에요. 그만큼 회사를 영위하기가 어렵다 보니 협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IT여성기업인협회는 멘토링 사업에 오랫동안 신경을 써왔습니다.
협회는 기본적으로 네트워킹을 통해 서로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사람들을 연결하고 정부에 정책을 제안하는 역할을 합니다. 멘토링 사업은 이른바 ‘경단녀’를 다시 사회로 끌어내기 위해 시작했어요. IT 쪽을 전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가방끈’이 길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버드대를 졸업하고도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있어요. 교육을 통해 기업에 다시 돌아오도록 돕고 있습니다. 비교적 선배 숫자가 적은 여대생들의 선배 역할도 하고 있고요.
IT 관련 전공 학생들인가요.
남성 기업인이 IT업계에서 활약하는 데 비해 여성 IT 기업인이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하고 싶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는 거죠. 어떤 정책을 살펴봐야 하는지,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알려줍니다. 비전공생, 문과 계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IT 교육도 있습니다. 문과 계열 학생들 중에는 취직이 어려워 고생하는 친구가 많거든요.
비전공생도 교육을 통해 IT업계에 들어갈 수 있나요.
IT라고 하면 개발자를 주로 떠올립니다. 과거에는 실제로 그랬어요. 백엔드(back-end)의 비중이 높았죠. 하지만 지금은 프런트엔드(front-end)도 중요한 시대입니다. UI·UX(사용자 환경·경험)를 디자인하거나 스토리를 기획한다거나, 여성이 잘할 수 있는 일들이 많죠. 협회에서는 6개월간 하루 8시간씩 교육하고 있어요. 대학교 4년 다니는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배울 수 있다는 뜻이죠. 또 실무에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니 취업이 잘됩니다. 이제는 정말 IT가 들어가지 않는 분야가 없어요. 협회에 들어오는 분들도 과거에는 IT 소프트웨어 대표님이 많았는데 이제는 법률, 특허, 패션, 교육 사업 등 다양해졌어요.
어떤 분들이 협회에 들어오면 도움받을 수 있나요.
아이디어는 있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분들이죠. 그러면 협회에 속한 개발업체와 매칭해드려요. 규모가 큰 IT 기업에 임원으로 계신 분들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사업을 구상하기도 할 텐데 협회로 오시면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본인의 경험으로 후배들의 역량을 키우는 데 봉사를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IT와 관련 있는 건 모두 물어보는 곳’, 이렇게 자리 잡혔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도 부정적인 편이었어요. 남자와 함께 경쟁하면 되지 왜 여성으로 구성된 단체가 필요한가 생각했죠. 하지만 모두가 이야기하듯, 수적으로 동일해야 가장 공평한 거잖아요. 제가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만나는 사람이 다 남자예요. 무조건 여성이니까 도와달라기보다는 여성이 양적으로 성장할 때까지, 동수가 될 때까지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거죠. 지금 협회에 소속된 분들은 남성 위주의 IT업계에서 4050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이에요. 그만큼 능력은 되지만 주변에 아는 사람이 적어서 불리한 경우가 생기죠. 협회는 그럴 때 콘택트 포인트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30 세대 사이에서는 과거와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되나요.
특히 해외에는 IT업계에 종사하는 여성이 엄청 많아요. 특히 CEO 중에요. 미국·홍콩·일본 등 서로 다른 곳에 거주하는 젊은이들이 차린 IT 스타트업의 대표와 만난 적이 있어요. 홍콩에 사는 여성이었습니다. “왜 대표를 맡게 됐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말도 잘하고, 발표도 잘해서 됐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여성 숫자가 더 늘어나는 건 시간문제일 거라고 봐요. 과거와 달리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졌고, 시험으로만 뽑는 분야는 여성이 훨씬 많잖아요.
IT 중에서도 주로 어떤 분야에 진출하나요.
사실 너무 다양해서 딱 어디라고 말할 수 없어요. 협회만 봐도 인공지능(AI)·데이터·게임·펫·디지털 장의사·교육·지식 서비스 등 다채로워요. 통계를 내는 게 무의미할 만큼이죠.
IT 기업인들은 주로 어떤 어려움을 겪나요.
결국 기본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필요한 것들이에요. 해킹이나 지식재산권 문제도 있지만, 아무래도 투자 문제가 커요. 이건 여성이 운영하는 기업 규모가 작기 때문이고도 하고요. 저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정 비율을 할당해서 투자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여성 기업인이 스스로 어떻게 규모를 키울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투자를 잘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죠. 협회 차원에서 IR(Investor Relations·투자 유치를 원활하게 하는 활동) 자료를 만드는 걸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소위 ‘잘나가는 기업’의 대표시기도 합니다.
여기서도, 다른 협회에서도 제안이 많이 들어왔는데 사실 고사를 해왔어요. 이젠 제가 맡을 수밖에 없겠다 생각해서 하게 됐죠. 또 하다 보니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요(웃음). 제가 앞만 보고, 일을 하면 거기에 몰두하고 집중하는 스타일입니다.
회사 일과 병행하기 어렵지 않나요.
회사를 두 개 운영하는 느낌이죠(웃음). 생각보다 참석해야 하는 행사가 너무 많더라고요. 하지만 그만큼 협회 인지도가 높아졌구나 생각하기도 하고, 그게 시옷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죠. 홍보의 기회잖아요. 또 회사 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됐기 때문에 홍보도 필요하거든요. 시옷 임원들도 그런 지점을 숙고해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요즘엔 전자 결재도 다 되니까 병행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내 여성 임원 비율이 높습니다.
여자라고 해서 선호하지는 않아요. 회사의 CTO(최고기술책임자), CFO(최고재무책임자) 다 여자인데 능력을 보고 뽑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시옷의 전문 분야인 ‘미래 차 보안 솔루션’ 개념이 생소합니다.
2015년 설립 당시 IoT 보안 기업으로 시작했어요. 사물인터넷의 시옷에서 따 회사 이름을 만들었죠. 영어로는 CIoT인데 크립토그래피(cryptography·암호) IoT라는 뜻이에요. 이제는 사물, 그러니까 차량에도 소프트웨어가 필수죠. 자동차를 업그레이드하려면 예전에는 공장에 가야 했지만 지금은 휴대폰처럼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하잖아요. 그게 미래 차의 시작이고요. 유럽에서는 차량에 무조건 보안 시스템을 깔도록 법으로 의무화했어요. 저희가 만든 기술로 소프트웨어 다운로드 과정에서 변조가 되는지, 중간에 해킹을 당하는지를 체크하죠.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보안의 중요성은 더 커질 거라고 봐요.
처음 보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서 통신 펌웨어 개발을 했었어요. 이건 사실 우연인데,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죠. 만약 그때 전산실에 들어갔으면 지금까지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둘째를 임신하고 몸이 안 좋아서 잠시 일을 쉬다가 다시 회사를 알아보던 그때 시큐어소프트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통신 프로토콜을 잘 알고 있으니 보안 일도 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2005년 모바일 보안업체, 엠큐릭스의 대표가 됩니다.
시큐어소프트가 어려워지면서 네트워크, 암호, 컨설팅 분야로 회사가 쪼개졌어요. 그 과정에서 암호 분야를 맡은 엠큐릭스의 대표가 됐죠. 사실 당시에 저는 학계로 가려고 했어요. 일과 함께 박사 공부, 겸임교수도 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직원들이 함께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한 달 정도 고민하다가 하늘이 못 하는 걸 시키겠나 해서 시작했습니다.
후회는 없었나요.
했죠(웃음). 회사 일에다 박사 학위를 준비할 때라 더 힘들었죠. 게다가 두 딸은 초등학생이었거든요. 집에서는 교수를 하지, 무슨 사업을 하냐고 그랬어요.
육아가 힘드셨겠네요.
당시에 고려대에 다녔거든요. 그래서 일단 주말마다 딸들을 데리고 학교에 갔죠. 오전에는 학내에 있는 아이스링크장을 끊어주고 저는 도서관에 갔어요. 그리고 점심때 만나서 같이 밥을 먹고, 딸들을 다시 영풍문고에 보냈죠. 학내 잔디광장에도 많이 갔고요. 딸들이 그랬어요. 고대는 지겨워서 절대 안 간다고(웃음).
그래도 자녀분들이 엄마 말을 잘 따라줬나 봐요.
굉장히 독립적인 아이들이 됐고요. 엄마한테 세세한 걸 기대하는 게 없죠(웃음).
외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요즘에는 다 IT 관련 전공을 시키더라고요. 인사이트가 있는 사람들의 판단이니 의미가 있는 거겠죠. 저도 딸들에게 IT 전공을 시키고 싶었지만 말을 안 듣더라고요. 절대 안 들어요(웃음). 컴퓨터공학이 과거에는 테크니컬한 영역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범위가 넓어졌어요. 그만큼 유연한 성향의 여성들이 할 역할이 많죠. 다만 겸임교수나 멘토링을 하다 보면 아직까지는 실습에서 남학생들이 우위를 보이는 것 같아요. 같은 팀에서 남학생들이 개발하면 여학생들이 발표하는 역할을 하죠. 사업에서는 여자가 사람 만나는 걸 하고요. 실무적인 훈련도 스스로 많이 해야 한다고 봐요.
박 협회장은 “어린 자녀들에겐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요즘엔 로봇 블록 같은 것도 시중에 많이 나와 있어요. 대학생들은 미국 실리콘밸리 같은 곳에 견학을 가보면 좋겠죠. 판교만 가도 IT 기업이 정말 많잖아요. 결국은 경험입니다.”
“반복을 싫어하신다”는 인터뷰를 봤습니다.
맞아요. 그래서 IT가 좋아요. 만약에 다른 쪽 일을 했으면 지겨웠을 거예요. 모바일이든, 사물인터넷이든 보안 환경이 계속 바뀌잖아요. 사업도 마찬가지고요. 매일매일 배워야 하지만 그게 저한테 잘 맞아요.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IT 쪽은 세대교체가 훨씬 빠르지 않나요.
그렇죠. 하지만 역할이 달라지니까 괜찮아요. 제가 계속 개발자로 일하면 젊은 사람들과 경쟁하기 어렵죠. 저는 현재 매니징을 하는 역할이고, 지금까지 쌓은 경험이나 노하우를 이용하기 때문에 똑같은 경쟁 선상에 있지는 않아요.
17년의 경험으로 성장하는 단계에 있는 창업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유연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는 매번 1등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요. 1등 하려고 깊이 파는 순간 기술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있어요. 계속 2등이어도 상관없으니,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하죠. 그러려면 계속 공부해야 하고요.
어떻게 트렌드를 파악하세요.
결국은 사람이죠. 요즘엔 매체가 많아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창구도 많지만 결국 사람을 만나서 듣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넓은 시야를 가지기 어려워요. 특히 사업을 하려면 더 그래야 하고요.
#박현주 #IT여성기업인협회 #시옷 #IT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하루 종일 바쁘네요. 오전에는 ‘대한민국 4차산업혁명 페스티벌’ 행사가 있었고, 끝나고 바로 한국디지털윤리학회 세미나에 참석했어요. 인터뷰 요청도 수시로 들어오네요.”
박현주 IT여성기업인협회장도 최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IT여성기업인협회는 2001년 설립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단체로, IT 분야 여성 기업인들의 경쟁력 강화와 여성 IT 인재 양성을 위해 힘쓰고 있다. 미래 차 보안 기업 ‘시옷’의 대표이기도 한 박 협회장은 지난 2월 ‘IT 여성 기업의 스케일업(scale-up)과 지속 성장’을 협회의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며 취임했다. 9월 15일 박 협회장을 서울시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만났다.
“IT 관련 모든 고민은 협회로 오라”
취임하신 지 7개월이 지났습니다. 그간 어떻게 보내셨나요.약 450개의 회원사를 500개까지 늘리려고 하고 있어요. 특히 최근 2030 여성 CEO(최고경영자)가 늘고 있는데, 이들을 모집하려고 합니다. 협회 규모와 예산도 ‘스케일업’하려고 했습니다. 작년에 비해 6배 예산의 사업을 수주했어요. 예산이 많아야 협회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죠. 지속 성장을 키워드로 제시한 건 여성 기업인이 운영하는 IT 기업은 규모가 작은 편이기 때문이에요. 그만큼 회사를 영위하기가 어렵다 보니 협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IT여성기업인협회는 멘토링 사업에 오랫동안 신경을 써왔습니다.
협회는 기본적으로 네트워킹을 통해 서로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사람들을 연결하고 정부에 정책을 제안하는 역할을 합니다. 멘토링 사업은 이른바 ‘경단녀’를 다시 사회로 끌어내기 위해 시작했어요. IT 쪽을 전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가방끈’이 길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버드대를 졸업하고도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있어요. 교육을 통해 기업에 다시 돌아오도록 돕고 있습니다. 비교적 선배 숫자가 적은 여대생들의 선배 역할도 하고 있고요.
IT 관련 전공 학생들인가요.
남성 기업인이 IT업계에서 활약하는 데 비해 여성 IT 기업인이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하고 싶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는 거죠. 어떤 정책을 살펴봐야 하는지,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알려줍니다. 비전공생, 문과 계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IT 교육도 있습니다. 문과 계열 학생들 중에는 취직이 어려워 고생하는 친구가 많거든요.
비전공생도 교육을 통해 IT업계에 들어갈 수 있나요.
IT라고 하면 개발자를 주로 떠올립니다. 과거에는 실제로 그랬어요. 백엔드(back-end)의 비중이 높았죠. 하지만 지금은 프런트엔드(front-end)도 중요한 시대입니다. UI·UX(사용자 환경·경험)를 디자인하거나 스토리를 기획한다거나, 여성이 잘할 수 있는 일들이 많죠. 협회에서는 6개월간 하루 8시간씩 교육하고 있어요. 대학교 4년 다니는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배울 수 있다는 뜻이죠. 또 실무에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니 취업이 잘됩니다. 이제는 정말 IT가 들어가지 않는 분야가 없어요. 협회에 들어오는 분들도 과거에는 IT 소프트웨어 대표님이 많았는데 이제는 법률, 특허, 패션, 교육 사업 등 다양해졌어요.
어떤 분들이 협회에 들어오면 도움받을 수 있나요.
아이디어는 있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분들이죠. 그러면 협회에 속한 개발업체와 매칭해드려요. 규모가 큰 IT 기업에 임원으로 계신 분들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사업을 구상하기도 할 텐데 협회로 오시면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본인의 경험으로 후배들의 역량을 키우는 데 봉사를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IT와 관련 있는 건 모두 물어보는 곳’, 이렇게 자리 잡혔으면 좋겠어요.
“남녀 동수 될 때까지 협회가 도울 것”
여성을 위한 단체가 별도로 필요한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사실 저도 부정적인 편이었어요. 남자와 함께 경쟁하면 되지 왜 여성으로 구성된 단체가 필요한가 생각했죠. 하지만 모두가 이야기하듯, 수적으로 동일해야 가장 공평한 거잖아요. 제가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만나는 사람이 다 남자예요. 무조건 여성이니까 도와달라기보다는 여성이 양적으로 성장할 때까지, 동수가 될 때까지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거죠. 지금 협회에 소속된 분들은 남성 위주의 IT업계에서 4050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이에요. 그만큼 능력은 되지만 주변에 아는 사람이 적어서 불리한 경우가 생기죠. 협회는 그럴 때 콘택트 포인트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30 세대 사이에서는 과거와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되나요.
특히 해외에는 IT업계에 종사하는 여성이 엄청 많아요. 특히 CEO 중에요. 미국·홍콩·일본 등 서로 다른 곳에 거주하는 젊은이들이 차린 IT 스타트업의 대표와 만난 적이 있어요. 홍콩에 사는 여성이었습니다. “왜 대표를 맡게 됐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말도 잘하고, 발표도 잘해서 됐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여성 숫자가 더 늘어나는 건 시간문제일 거라고 봐요. 과거와 달리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졌고, 시험으로만 뽑는 분야는 여성이 훨씬 많잖아요.
IT 중에서도 주로 어떤 분야에 진출하나요.
사실 너무 다양해서 딱 어디라고 말할 수 없어요. 협회만 봐도 인공지능(AI)·데이터·게임·펫·디지털 장의사·교육·지식 서비스 등 다채로워요. 통계를 내는 게 무의미할 만큼이죠.
IT 기업인들은 주로 어떤 어려움을 겪나요.
결국 기본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필요한 것들이에요. 해킹이나 지식재산권 문제도 있지만, 아무래도 투자 문제가 커요. 이건 여성이 운영하는 기업 규모가 작기 때문이고도 하고요. 저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정 비율을 할당해서 투자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여성 기업인이 스스로 어떻게 규모를 키울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투자를 잘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죠. 협회 차원에서 IR(Investor Relations·투자 유치를 원활하게 하는 활동) 자료를 만드는 걸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연이 만들어준 필연
박 협회장은 한국 보안업계 1세대로 불린다. 2000년 정보 보안 솔루션 회사, 시큐어소프트에 입사해 보안연구소 실장을 역임했다. 2005년 초에는 시큐어소프트 보안연구소에서 독립한 엠큐릭스 대표가 됐다. 10년 뒤 다시 그는 창업에 도전한다. 사물인터넷(IoT) 보안 전문 회사 시옷을 세운 것. 사물 간 인터넷 연결은 편리성을 증진했지만, 동시에 해킹에는 취약해졌다. 최근에는 미래 차 보안 솔루션 회사로 발돋움하며 지난해 7월 현대·기아차 부품 공급사와 계약을 맺었다. 아이오닉5 등에 시옷의 보안 기술이 적용될 예정이다.소위 ‘잘나가는 기업’의 대표시기도 합니다.
여기서도, 다른 협회에서도 제안이 많이 들어왔는데 사실 고사를 해왔어요. 이젠 제가 맡을 수밖에 없겠다 생각해서 하게 됐죠. 또 하다 보니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요(웃음). 제가 앞만 보고, 일을 하면 거기에 몰두하고 집중하는 스타일입니다.
회사 일과 병행하기 어렵지 않나요.
회사를 두 개 운영하는 느낌이죠(웃음). 생각보다 참석해야 하는 행사가 너무 많더라고요. 하지만 그만큼 협회 인지도가 높아졌구나 생각하기도 하고, 그게 시옷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죠. 홍보의 기회잖아요. 또 회사 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됐기 때문에 홍보도 필요하거든요. 시옷 임원들도 그런 지점을 숙고해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요즘엔 전자 결재도 다 되니까 병행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내 여성 임원 비율이 높습니다.
여자라고 해서 선호하지는 않아요. 회사의 CTO(최고기술책임자), CFO(최고재무책임자) 다 여자인데 능력을 보고 뽑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시옷의 전문 분야인 ‘미래 차 보안 솔루션’ 개념이 생소합니다.
2015년 설립 당시 IoT 보안 기업으로 시작했어요. 사물인터넷의 시옷에서 따 회사 이름을 만들었죠. 영어로는 CIoT인데 크립토그래피(cryptography·암호) IoT라는 뜻이에요. 이제는 사물, 그러니까 차량에도 소프트웨어가 필수죠. 자동차를 업그레이드하려면 예전에는 공장에 가야 했지만 지금은 휴대폰처럼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하잖아요. 그게 미래 차의 시작이고요. 유럽에서는 차량에 무조건 보안 시스템을 깔도록 법으로 의무화했어요. 저희가 만든 기술로 소프트웨어 다운로드 과정에서 변조가 되는지, 중간에 해킹을 당하는지를 체크하죠.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보안의 중요성은 더 커질 거라고 봐요.
처음 보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서 통신 펌웨어 개발을 했었어요. 이건 사실 우연인데,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죠. 만약 그때 전산실에 들어갔으면 지금까지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둘째를 임신하고 몸이 안 좋아서 잠시 일을 쉬다가 다시 회사를 알아보던 그때 시큐어소프트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통신 프로토콜을 잘 알고 있으니 보안 일도 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2005년 모바일 보안업체, 엠큐릭스의 대표가 됩니다.
시큐어소프트가 어려워지면서 네트워크, 암호, 컨설팅 분야로 회사가 쪼개졌어요. 그 과정에서 암호 분야를 맡은 엠큐릭스의 대표가 됐죠. 사실 당시에 저는 학계로 가려고 했어요. 일과 함께 박사 공부, 겸임교수도 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직원들이 함께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한 달 정도 고민하다가 하늘이 못 하는 걸 시키겠나 해서 시작했습니다.
후회는 없었나요.
했죠(웃음). 회사 일에다 박사 학위를 준비할 때라 더 힘들었죠. 게다가 두 딸은 초등학생이었거든요. 집에서는 교수를 하지, 무슨 사업을 하냐고 그랬어요.
육아가 힘드셨겠네요.
당시에 고려대에 다녔거든요. 그래서 일단 주말마다 딸들을 데리고 학교에 갔죠. 오전에는 학내에 있는 아이스링크장을 끊어주고 저는 도서관에 갔어요. 그리고 점심때 만나서 같이 밥을 먹고, 딸들을 다시 영풍문고에 보냈죠. 학내 잔디광장에도 많이 갔고요. 딸들이 그랬어요. 고대는 지겨워서 절대 안 간다고(웃음).
그래도 자녀분들이 엄마 말을 잘 따라줬나 봐요.
굉장히 독립적인 아이들이 됐고요. 엄마한테 세세한 걸 기대하는 게 없죠(웃음).
“깊이 파기보다는 넓게 세상 봐야”
IT업계가 성장하며 자녀를 IT업계로 보내고자 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요.외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요즘에는 다 IT 관련 전공을 시키더라고요. 인사이트가 있는 사람들의 판단이니 의미가 있는 거겠죠. 저도 딸들에게 IT 전공을 시키고 싶었지만 말을 안 듣더라고요. 절대 안 들어요(웃음). 컴퓨터공학이 과거에는 테크니컬한 영역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범위가 넓어졌어요. 그만큼 유연한 성향의 여성들이 할 역할이 많죠. 다만 겸임교수나 멘토링을 하다 보면 아직까지는 실습에서 남학생들이 우위를 보이는 것 같아요. 같은 팀에서 남학생들이 개발하면 여학생들이 발표하는 역할을 하죠. 사업에서는 여자가 사람 만나는 걸 하고요. 실무적인 훈련도 스스로 많이 해야 한다고 봐요.
박 협회장은 “어린 자녀들에겐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요즘엔 로봇 블록 같은 것도 시중에 많이 나와 있어요. 대학생들은 미국 실리콘밸리 같은 곳에 견학을 가보면 좋겠죠. 판교만 가도 IT 기업이 정말 많잖아요. 결국은 경험입니다.”
“반복을 싫어하신다”는 인터뷰를 봤습니다.
맞아요. 그래서 IT가 좋아요. 만약에 다른 쪽 일을 했으면 지겨웠을 거예요. 모바일이든, 사물인터넷이든 보안 환경이 계속 바뀌잖아요. 사업도 마찬가지고요. 매일매일 배워야 하지만 그게 저한테 잘 맞아요.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IT 쪽은 세대교체가 훨씬 빠르지 않나요.
그렇죠. 하지만 역할이 달라지니까 괜찮아요. 제가 계속 개발자로 일하면 젊은 사람들과 경쟁하기 어렵죠. 저는 현재 매니징을 하는 역할이고, 지금까지 쌓은 경험이나 노하우를 이용하기 때문에 똑같은 경쟁 선상에 있지는 않아요.
17년의 경험으로 성장하는 단계에 있는 창업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유연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는 매번 1등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요. 1등 하려고 깊이 파는 순간 기술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있어요. 계속 2등이어도 상관없으니,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하죠. 그러려면 계속 공부해야 하고요.
어떻게 트렌드를 파악하세요.
결국은 사람이죠. 요즘엔 매체가 많아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창구도 많지만 결국 사람을 만나서 듣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넓은 시야를 가지기 어려워요. 특히 사업을 하려면 더 그래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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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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