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연우진(38)의 ‘단짠’ 행보가 흥미롭다. 영화 ‘궁합’ ‘특송’을 비롯해 드라마 ‘내성적인 보스’ ‘이판사판’ ‘7일의 왕비’ ‘연애 말고 결혼’ 등을 통해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오가며 사랑받아온 그다. 그런데 최근 개봉한 영화와 새 드라마에서 선보이는 모습은 성격부터 외모까지 확연히 다르다.
먼저 JTBC 드라마 ‘서른, 아홉’을 보자. 연우진은 이 작품에서 훈훈한 피부과 의사 김선우를 연기한다. 손예진의 상대역으로 등장해 젠틀한 미소와 댄디한 슈트 핏으로 마음을 사로잡더니, 겨우 세 번째 만남에서 상대를 침대로 이끄는 ‘어른 연애’를 보여줬다. 과연 ‘멜로 장인’ ‘키스 장인’으로 불리는 연우진다웠다. 그 덕분인지 드라마는 2회 만에 시청률 5.1%를 기록하며 최근 장기 부진에 빠진 JTBC 드라마의 구세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2월 23일 개봉한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는 병사 ‘무광’ 역을 맡아 ‘욕망’ 또는 ‘쾌락’이라는 말로 표현될 법한 농도 짙은 멜로를 선보인다. 자기 신념을 지키려는 열망과 은밀한 유혹 사이에서 갈등하는 감정 연기는 물론 수위 높은 전라 베드신까지 소화해냈다. 데뷔 14년 만에 선보인 파격 변신이다. 외모도 완벽히 바꿨다. 평소보다 6kg 정도 감량하고 구릿빛 피부로 태닝까지 하니, 달달한 ‘도시남’ 모습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거친 수컷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영화는 1970년대 사회주의 국가를 배경으로, 출세를 꿈꾸는 모범 사병 무광이 사단장(조성하)의 젊은 아내 수련(지안)을 만나고, 넘어서는 안 될 벽과 위험한 유혹 사이에서 갈등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를 연출한 장철수 감독의 복귀작이다. 연우진과의 만남은 이 영화 개봉 직전, 화상으로 이뤄졌다.
드라마와 영화가 동시에 공개됐어요. 배우로서 어떤 심정인가요.
2022년이 되면서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있었는데, 하나하나를 잘 실천해나가고 있는 기분이에요. 많이 설레고요.
파격적인 내용의 영화인데, 출연을 결심한 이유가 있나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한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예요. 욕망이 인간을 잠식하면서 나타나게 되는 본성이 굉장히 재미있게 표현됐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꼭 하고 싶었고, 다른 배우가 하면 배가 아플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죠. 상업적인 면을 고려했다면 아마 다른 선택을 했을 거예요. 도전 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tvN 드라마 ‘연애 말고 결혼’을 마친 직후 이 영화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당시 혁신적인 것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장철수 감독님과 처음 만나던 날이 떠오르네요. 제게 선물을 하나 주셨어요. 갑자기 사무실에서 사다리를 꺼내시더니 캐비닛 위에 있던 오래된 군복 같은 체크무늬 남방을 내려서 주시더라고요. “무광을 꼭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시면서요.
영화 속 캐릭터가 2월 중순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서른, 아홉’의 배역과는 완전히 다른 게 흥미롭네요.
두 작품은 사랑을 굉장히 다르게 표현하고 있어요. 그 안에서 제가 각각 다른 모습으로 각인된다면 굉장히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영화를 통해서는 조금 더 깊이 있는 연기와 제 생각이 잘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이 작품에서 수련(지안)과 함께 쾌락의 끝을 보고, 그로 인해 공허한 기분을 연기하며 참 많은 생각을 했어요. 다른 멜로 작품이었다면 아마 그런 감정을 감추려고 했을 텐데, 이 영화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벌인 행동에 어떤 당위성을 부여하려 하고, 사회주의에서 금기로 여기는 행동을 감행하거든요. ‘사랑과 멜로라는 감정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각할 여지가 참 많은 작품이었어요.
영화는 파격적이고 강렬한 서사뿐 아니라 ‘색계’를 능가하는 농도 짙은 베드신으로도 눈길을 끈다. 영화 초반부터 전라 노출이 시작돼 러닝타임 내내 옷을 입지 않은 장면이 더 많다고 느껴질 정도다. 작품 공개 이후 연우진의 ‘파격 노출’ 또한 화제가 되는 상황. 로맨스 드라마에서 사랑받아오던 배우로서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물었다.
“파격적일 수밖에 없는 영화예요. 부담감을 느낀다기보다는, 오히려 제가 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만큼 이 영화만이 가진 특수성과 개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베드신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다만 그 이면에 있는 본능적 욕망을 좇아가는 인간의 디테일한 감정들을 잘 표현해내고 싶었습니다.”
연기할 때 가장 염두에 둔 부분이 있다면요.
인물의 심리 변화에 초점을 뒀습니다. 무광은 강인한 군인이었지만 욕망에 사로잡혀 나약한 존재가 되고 말아요. 결국 잘못된 선택으로 파국에 이르고요.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감정 변화를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베드신도 후반부에 가면 굉장히 짐승 같고, 다소 변태적으로까지 표현되는데, 쾌락의 끝을 쫒아가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려 한 노력의 결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베드신은 그 어떤 장면보다 상대방과의 호흡이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물리적인 시간이 한정돼 있어서 현장에서 지체를 할 수 없었어요. 최대한 집중하려 했죠. 또 어려운 신이 많아서 “감독님과 상대 배우를 존중하면서 촬영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촬영장에 가면 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영화 제목 팻말을 보며 ‘오늘 하루도 열심히 복무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베드신 촬영 전날엔 늘 지안 배우님, 감독님, 촬영감독님과 모여서 회의를 했어요. 감독님과 상의해 전반적인 동선을 맞춰보고 “우리가 여기서 연기를 할 테니 촬영과 조명을 맞춰 달라” 같은 말씀도 드렸죠.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계속 집중에 대한 강박을 갖고 있어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었어요. 여담이지만 영화 촬영 중 현장에 놀러 오겠다고 하신 감독님이 계셨는데, 제가 계속 옷을 벗고 있어서 “창피하니까 놀러 오지 마시고 개봉하면 영화로 보세요”라고 말씀드린 생각이 나네요.
영화를 보는 내내 무광의 그을린 피부와 탄탄한 몸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군인 무광의 비주얼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고향인 강원도 강릉에서 햇볕을 맞으면서 태닝을 했어요. 태닝 숍에 한 번 가보긴 했는데, 그보다는 자연적인 모습이 더 좋을 것 같았거든요. 강릉 바닷가를 거닐며 작품 구상을 하고, 강릉 순두부와 강릉 커피를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했어요. 그 덕분에 노 메이크업으로 촬영할 수 있었는데, 그런 노력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다만 지금까지도 피부 톤이 예전으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얼마 전 ‘서른, 아홉’ 제작발표회에 갔는데 저만 너무 새까맣더라고요(웃음).
무광은 20대 후반의 캐릭터인데 30대 후반에 그 나이를 표현하기에 부담은 없었나요.
작품에서 20대 후반의 무광뿐 아니라 15년 후 모습도 연기하거든요. 분장의 힘을 빌리지 않고 최대한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하려고 했어요. 흰머리 정도만 살짝 메이크업을 했죠. 그러다 보니 7~8년 전보다 지금이 오히려 더 이 작품을 하기에 적절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사이 작품을 보는 눈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받은 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저는 내내 이 작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연기 변신에 대한 욕심, 한 인간의 파격적인 사랑을 표현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한 해 한 해 지나며 느껴지는 감정이 사뭇 달라졌고요. 작품의 본질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고 할까요. 욕망을 좇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나에 대해서도 솔직해질 수 있는 작업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오랜 기다림 끝에 첫 촬영을 하셨을 때는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지난 8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2014년 잠깐 촬영을 준비했을 때 장철수 감독님과 따로 만나 시간을 보내곤 했거든요. 같이 공연을 보고 연기 연습도 했죠. 그런 기억이 떠올랐어요.
막상 영화 제작이 확정된 뒤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어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정말 전투적으로 임했죠. 배우들과 감독님이 새벽까지 모여 대본리딩을 했어요. 크랭크인 전까지는 ‘이걸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는데, 막상 촬영이 시작되니 일사천리로 모든 게 잘 진행됐어요.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을 울린 장면은 어떤 것일까요.
무광이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모든 쾌락의 끝을 맛보고 나면 인간은 정말 솔직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공허함 끝에 나온 “집에 가고 싶다”는 말에는 “살고 싶다”는 의미 또한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어쩌면 가장 인간답고 스스로에게 솔직한 대사가 아니었나 싶어서 어떻게 연기할지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연우진의 실제 모습은 로맨틱 가이나 욕망 덩어리가 아닌, 가족을 소중히 생각하는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다. ‘가족’이 가장 큰 힘이고 원천이며, 책임감이 지금의 배우 연우진을 있게 했다고 말한다.
초반에 언급했던 버킷 리스트에는 어떤 게 있는지 공개해줄 수 있나요.
배낭여행으로 순롓길에 한번 다녀오고 싶습니다. 순롓길을 걸으며 거기서 만나는 제 인생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싶어요. 최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그 영향도 있는 것 같고, 요즘 뭔가 변화의 시점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여행을 한번 다녀오고 싶어요.
이번 영화를 위해 간헐적 단식과 운동을 통해 체중을 많이 줄였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체중을 유지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배우들끼리 만나면 연기보다 다이어트 얘기를 더 많이 할 정도로 모든 배우가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아요. 저 역시 많은 방법을 해봤는데, 제 몸에 잘 맞는 게 간헐적 단식이더라고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될 수 있으면 오후 6~7시에 저녁 식사를 하고 12시간 정도 공복을 유지했어요. 먹을 수 있는 시간 동안은 다양한 영양분을 섭취하면서 운동도 열심히 했고요. 지금은 촬영할 때보다는 조금 살이 올라 가장 이상적인 몸무게인 듯해요. 이 몸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광처럼 무언가에 강렬하게 빨려 들어가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제까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잘 복무해온 것 같아요. 가족이 가장 큰 힘이고 제가 이렇게 연기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에요. 그래서 우리 가족에게 잘하고 싶어요. 지금도 가족들에게 잘 빨려 들어가 있는데 앞으로도 그랬으면 합니다. 그리고 또 언젠가, 어느 곳에도 도망가지 못할 만큼 빨려 들어갈 누군가가 제 옆에 생긴다면 그분과 함께 가족을 이뤄 더 열심히 복무할 수 있겠죠.
드라마 ‘서른, 아홉’의 상대 배우 손예진 씨가 최근 결혼 발표를 하셨는데, 축하 인사는 건네셨나요.
서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스타일이 아니라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결혼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어요. 개인적으로 ‘손예진 배우’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결혼 후 인생 2막에서 선보일 선배님의 연기가 굉장히 기대 됩니다.
2022년은 연우진 씨의 30대 막바지 해인데, 이루고 싶은 목표나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좀 고립된 삶을 살아온 것 같아요. 혼자 고민하고 그것에 대한 해답도 혼자 찾으려고 한 것 같은데, 40대에는 좀 더 소통을 많이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동안 제가 쳐온 벽을 거둬내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연기도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연우진 #서른아홉 #인민을위해복무하라 #여성동아
사진제공 날개엔터테인먼트
먼저 JTBC 드라마 ‘서른, 아홉’을 보자. 연우진은 이 작품에서 훈훈한 피부과 의사 김선우를 연기한다. 손예진의 상대역으로 등장해 젠틀한 미소와 댄디한 슈트 핏으로 마음을 사로잡더니, 겨우 세 번째 만남에서 상대를 침대로 이끄는 ‘어른 연애’를 보여줬다. 과연 ‘멜로 장인’ ‘키스 장인’으로 불리는 연우진다웠다. 그 덕분인지 드라마는 2회 만에 시청률 5.1%를 기록하며 최근 장기 부진에 빠진 JTBC 드라마의 구세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2월 23일 개봉한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는 병사 ‘무광’ 역을 맡아 ‘욕망’ 또는 ‘쾌락’이라는 말로 표현될 법한 농도 짙은 멜로를 선보인다. 자기 신념을 지키려는 열망과 은밀한 유혹 사이에서 갈등하는 감정 연기는 물론 수위 높은 전라 베드신까지 소화해냈다. 데뷔 14년 만에 선보인 파격 변신이다. 외모도 완벽히 바꿨다. 평소보다 6kg 정도 감량하고 구릿빛 피부로 태닝까지 하니, 달달한 ‘도시남’ 모습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거친 수컷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영화는 1970년대 사회주의 국가를 배경으로, 출세를 꿈꾸는 모범 사병 무광이 사단장(조성하)의 젊은 아내 수련(지안)을 만나고, 넘어서는 안 될 벽과 위험한 유혹 사이에서 갈등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를 연출한 장철수 감독의 복귀작이다. 연우진과의 만남은 이 영화 개봉 직전, 화상으로 이뤄졌다.
드라마와 영화가 동시에 공개됐어요. 배우로서 어떤 심정인가요.
2022년이 되면서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있었는데, 하나하나를 잘 실천해나가고 있는 기분이에요. 많이 설레고요.
파격적인 내용의 영화인데, 출연을 결심한 이유가 있나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한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예요. 욕망이 인간을 잠식하면서 나타나게 되는 본성이 굉장히 재미있게 표현됐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꼭 하고 싶었고, 다른 배우가 하면 배가 아플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죠. 상업적인 면을 고려했다면 아마 다른 선택을 했을 거예요. 도전 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tvN 드라마 ‘연애 말고 결혼’을 마친 직후 이 영화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당시 혁신적인 것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장철수 감독님과 처음 만나던 날이 떠오르네요. 제게 선물을 하나 주셨어요. 갑자기 사무실에서 사다리를 꺼내시더니 캐비닛 위에 있던 오래된 군복 같은 체크무늬 남방을 내려서 주시더라고요. “무광을 꼭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시면서요.
영화 속 캐릭터가 2월 중순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서른, 아홉’의 배역과는 완전히 다른 게 흥미롭네요.
두 작품은 사랑을 굉장히 다르게 표현하고 있어요. 그 안에서 제가 각각 다른 모습으로 각인된다면 굉장히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영화를 통해서는 조금 더 깊이 있는 연기와 제 생각이 잘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이 작품에서 수련(지안)과 함께 쾌락의 끝을 보고, 그로 인해 공허한 기분을 연기하며 참 많은 생각을 했어요. 다른 멜로 작품이었다면 아마 그런 감정을 감추려고 했을 텐데, 이 영화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벌인 행동에 어떤 당위성을 부여하려 하고, 사회주의에서 금기로 여기는 행동을 감행하거든요. ‘사랑과 멜로라는 감정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각할 여지가 참 많은 작품이었어요.
‘로맨틱 가이’ 연우진의 파격적 연기 변신
연우진은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 욕망에 모든 것을 던지는 ‘거친 수컷’의 매력을 선보였다.
“파격적일 수밖에 없는 영화예요. 부담감을 느낀다기보다는, 오히려 제가 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만큼 이 영화만이 가진 특수성과 개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베드신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다만 그 이면에 있는 본능적 욕망을 좇아가는 인간의 디테일한 감정들을 잘 표현해내고 싶었습니다.”
연기할 때 가장 염두에 둔 부분이 있다면요.
인물의 심리 변화에 초점을 뒀습니다. 무광은 강인한 군인이었지만 욕망에 사로잡혀 나약한 존재가 되고 말아요. 결국 잘못된 선택으로 파국에 이르고요.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감정 변화를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베드신도 후반부에 가면 굉장히 짐승 같고, 다소 변태적으로까지 표현되는데, 쾌락의 끝을 쫒아가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려 한 노력의 결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베드신은 그 어떤 장면보다 상대방과의 호흡이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물리적인 시간이 한정돼 있어서 현장에서 지체를 할 수 없었어요. 최대한 집중하려 했죠. 또 어려운 신이 많아서 “감독님과 상대 배우를 존중하면서 촬영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촬영장에 가면 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영화 제목 팻말을 보며 ‘오늘 하루도 열심히 복무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베드신 촬영 전날엔 늘 지안 배우님, 감독님, 촬영감독님과 모여서 회의를 했어요. 감독님과 상의해 전반적인 동선을 맞춰보고 “우리가 여기서 연기를 할 테니 촬영과 조명을 맞춰 달라” 같은 말씀도 드렸죠.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계속 집중에 대한 강박을 갖고 있어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었어요. 여담이지만 영화 촬영 중 현장에 놀러 오겠다고 하신 감독님이 계셨는데, 제가 계속 옷을 벗고 있어서 “창피하니까 놀러 오지 마시고 개봉하면 영화로 보세요”라고 말씀드린 생각이 나네요.
영화를 보는 내내 무광의 그을린 피부와 탄탄한 몸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군인 무광의 비주얼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고향인 강원도 강릉에서 햇볕을 맞으면서 태닝을 했어요. 태닝 숍에 한 번 가보긴 했는데, 그보다는 자연적인 모습이 더 좋을 것 같았거든요. 강릉 바닷가를 거닐며 작품 구상을 하고, 강릉 순두부와 강릉 커피를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했어요. 그 덕분에 노 메이크업으로 촬영할 수 있었는데, 그런 노력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다만 지금까지도 피부 톤이 예전으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얼마 전 ‘서른, 아홉’ 제작발표회에 갔는데 저만 너무 새까맣더라고요(웃음).
개봉을 기다린 8년의 시간
장철수 감독은 큰 성공을 거둔 전작 ‘은밀하게 위대하게’ 개봉 후인 2014년부터 이 영화 제작을 준비했으나, 2020년이 돼서야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30대 초반에 시나리오를 받은 연우진은 그사이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영화 제작이 6년이나 지연되고 개봉하기까지 8년이 걸린 작품을 하면서 연우진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무광은 20대 후반의 캐릭터인데 30대 후반에 그 나이를 표현하기에 부담은 없었나요.
작품에서 20대 후반의 무광뿐 아니라 15년 후 모습도 연기하거든요. 분장의 힘을 빌리지 않고 최대한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하려고 했어요. 흰머리 정도만 살짝 메이크업을 했죠. 그러다 보니 7~8년 전보다 지금이 오히려 더 이 작품을 하기에 적절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사이 작품을 보는 눈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받은 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저는 내내 이 작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연기 변신에 대한 욕심, 한 인간의 파격적인 사랑을 표현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한 해 한 해 지나며 느껴지는 감정이 사뭇 달라졌고요. 작품의 본질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고 할까요. 욕망을 좇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나에 대해서도 솔직해질 수 있는 작업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오랜 기다림 끝에 첫 촬영을 하셨을 때는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지난 8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2014년 잠깐 촬영을 준비했을 때 장철수 감독님과 따로 만나 시간을 보내곤 했거든요. 같이 공연을 보고 연기 연습도 했죠. 그런 기억이 떠올랐어요.
막상 영화 제작이 확정된 뒤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어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정말 전투적으로 임했죠. 배우들과 감독님이 새벽까지 모여 대본리딩을 했어요. 크랭크인 전까지는 ‘이걸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는데, 막상 촬영이 시작되니 일사천리로 모든 게 잘 진행됐어요.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을 울린 장면은 어떤 것일까요.
무광이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모든 쾌락의 끝을 맛보고 나면 인간은 정말 솔직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공허함 끝에 나온 “집에 가고 싶다”는 말에는 “살고 싶다”는 의미 또한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어쩌면 가장 인간답고 스스로에게 솔직한 대사가 아니었나 싶어서 어떻게 연기할지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연우진의 실제 모습은 로맨틱 가이나 욕망 덩어리가 아닌, 가족을 소중히 생각하는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다. ‘가족’이 가장 큰 힘이고 원천이며, 책임감이 지금의 배우 연우진을 있게 했다고 말한다.
초반에 언급했던 버킷 리스트에는 어떤 게 있는지 공개해줄 수 있나요.
배낭여행으로 순롓길에 한번 다녀오고 싶습니다. 순롓길을 걸으며 거기서 만나는 제 인생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싶어요. 최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그 영향도 있는 것 같고, 요즘 뭔가 변화의 시점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여행을 한번 다녀오고 싶어요.
이번 영화를 위해 간헐적 단식과 운동을 통해 체중을 많이 줄였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체중을 유지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배우들끼리 만나면 연기보다 다이어트 얘기를 더 많이 할 정도로 모든 배우가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아요. 저 역시 많은 방법을 해봤는데, 제 몸에 잘 맞는 게 간헐적 단식이더라고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될 수 있으면 오후 6~7시에 저녁 식사를 하고 12시간 정도 공복을 유지했어요. 먹을 수 있는 시간 동안은 다양한 영양분을 섭취하면서 운동도 열심히 했고요. 지금은 촬영할 때보다는 조금 살이 올라 가장 이상적인 몸무게인 듯해요. 이 몸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광처럼 무언가에 강렬하게 빨려 들어가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제까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잘 복무해온 것 같아요. 가족이 가장 큰 힘이고 제가 이렇게 연기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에요. 그래서 우리 가족에게 잘하고 싶어요. 지금도 가족들에게 잘 빨려 들어가 있는데 앞으로도 그랬으면 합니다. 그리고 또 언젠가, 어느 곳에도 도망가지 못할 만큼 빨려 들어갈 누군가가 제 옆에 생긴다면 그분과 함께 가족을 이뤄 더 열심히 복무할 수 있겠죠.
드라마 ‘서른, 아홉’의 상대 배우 손예진 씨가 최근 결혼 발표를 하셨는데, 축하 인사는 건네셨나요.
서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스타일이 아니라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결혼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어요. 개인적으로 ‘손예진 배우’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결혼 후 인생 2막에서 선보일 선배님의 연기가 굉장히 기대 됩니다.
2022년은 연우진 씨의 30대 막바지 해인데, 이루고 싶은 목표나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좀 고립된 삶을 살아온 것 같아요. 혼자 고민하고 그것에 대한 해답도 혼자 찾으려고 한 것 같은데, 40대에는 좀 더 소통을 많이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동안 제가 쳐온 벽을 거둬내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연기도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연우진 #서른아홉 #인민을위해복무하라 #여성동아
사진제공 날개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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