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묵묵히 걷다 보니 목적지에 다다른 사람처럼 배우 남주혁(27)은 의연하다. 2020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과 tvN 드라마 ‘스타트업’, 영화 ‘조제’까지 흥행 3연타를 이뤄내고도 “열심히 일했을 뿐 이런 결과를 얻게 될 줄 몰랐다”며 겸손하게 말한다. 함께 연기한 동료들이 “누구보다 질문이 많고 열정적으로 촬영에 임하는 배우”라고 칭찬할 때도 도리어 상대 배우의 장점을 말하는 데 여념이 없다. 마냥 연기가 좋아 연예계에 뛰어든 이 열정 많고 순수한 20대 청년에게 누가 호감 갖지 않을 수 있을까.
남주혁은 원래 농구 선수를 꿈꾸던 소년이었다.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던 그는 중학교 때까지 농구 선수 생활을 하다가 부상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며 그 꿈을 접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경기도 수원으로 이사해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큰 키를 강점으로 모델에 도전했다. 운 좋게 한 모델 에이전시에 들어간 남주혁은 2013년 송지오 옴므 패션쇼를 시작으로 각종 런웨이 무대에 서게 됐다.
그가 본격적으로 빛을 보기 시작한 건 2014년부터다. 그해 악동뮤지션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계기로 JTBC 예능 프로그램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 고정 출연하면서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당시 함께 출연한 방송인 강남이 한국말이 서툴러 자신과 남주혁의 이름을 합쳐 ‘강나면주’라고 엉뚱하게 부른 것이 화제가 됐고, 준수한 외모와 출중한 농구 실력으로 여학생은 물론 남학생에게까지 호감을 샀다. 이를 발판으로 2015년 남주혁은 수많은 스타를 배출한 KBS 드라마 ‘학교’ 시리즈 ‘후아유-학교 2015’의 주인공을 맡으며 첫 주연 배우 신고식을 치렀다. 하지만 연기 경험이 부족했던 터라 혹평을 받았고, 그해 MBC ‘화려한 유혹’에서 주인공 주상욱의 아역을 맡아 차근히 연기력을 다져가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남주혁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나갔다. 2016년 tvN ‘치즈인더트랩’에서 연하남의 정석 권은택 역할을 맡아 훈훈한 매력을 선보였고, 그의 첫 사극인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에서 고려 여인들의 여심을 흔드는 외모에 반듯한 성정을 지닌 13황자 백아 역을 연기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예능에서도 남주혁의 순박한 매력은 빛을 발했다.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과 함께 출연한 tvN ‘삼시세끼 고창편’에서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대선배들 사이에 막내로 묵묵히 허드렛일을 해내 반듯하면서도 근면 성실한 청춘의 정석을 보여주는 듯했다.
2017년 이후 남주혁은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이며 주연 배우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MBC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스타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불운한 수영 선수 정준형으로 등장해 성장 스토리를 선보였고, 만화를 원작으로 한 tvN ‘하백의 신부’에서 물의 신이자 신계 차기 황제로 출연해 다소 연기하기 까다로운 판타지 로맨스물도 소화해냈다. 2019년 tvN ‘눈이 부시게’에서 올곧은 매력의 청년 이준하로 분해 김혜자, 한지민 등과 호연했고 많은 이로부터 인생 드라마라는 평을 받았다.
이즈음 남주혁은 연기에 물이 올라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다. 2018년 영화 ‘안시성’에서 연개소문의 명에 따라 안시성 성주 양만춘을 암살하기 위해 잠입한 태학도 수장 사물 역을 맡아 조인성과 박성웅 등에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덕분에 남주혁은 ‘안시성’ 한 작품으로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을 비롯해 무려 5개 신인상을 받았다.
2020년은 남주혁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보건교사 안은영’을 필두로 ‘스타트업’에 이어 ‘조제’까지 각각 매력이 돋보이는 캐릭터를 연기해 호평받았다. 가장 최근 출연작인 영화 ‘조제’는 일본 다나베 세이코 작가의 단편소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 원작은 평범한 남자 츠네오가 다리가 불편한 소녀 조제를 만나 사랑에 빠져 깊게 교감하는 내용이다. 앞서 2004년 츠마부키 사토시가 주연한 동명의 작품이 국내에서도 개봉돼 많은 이에게 명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2020년 12월 10일 개봉한 ‘조제’에서는 한지민이 조제를, 남주혁이 원작의 츠네오인 영석을 연기했다. 영화 개봉에 앞서 남주혁과 온라인 인터뷰를 진행했다.
첫 영화 주연작으로 ‘조제’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4년 전쯤 원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봤는데 그때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이후 ‘조제’라는 작품이 제게 들어왔을 때 저만의 영석을 만들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무엇보다 김종관 감독님과 작품을 같이하고 싶었고, 감독님을 믿었기 때문에 함께하게 됐어요. 완성된 작품을 보니 정말 치열하게 연기했던 순간도 떠오르고 관객 입장에서 몰입이 돼 울컥하기도 하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시간이 지나도 많은 분들에게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저 또한 같은 마음이에요.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 부담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래서 일부러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원작을 안 봤어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원작을 봤다면 100% 따라 하게 될 것 같았거든요. 저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고 감독님이 생각하는 작품 속 영석이를, 다른 배역들 사이에 잘 녹아드는 영석이를 표현하고 싶어 그런 쪽으로 노력을 했어요. 아무래도 원작이 있다 보니 보시는 분들이 츠네오와 비교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오롯이 관객이 느끼고 평가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주인공 영석은 취업 준비를 하던 중 조제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평범한 20대 청년이에요. 어떤 점에 끌렸나요.
시나리오를 볼 때도 평범한 친구로 느껴졌어요. 개인적으로 그 평범함을 극대화시키고 싶은 욕심이 생겼죠. 관객이 정말 우리 주변에 어딘가 살아가고 있을 것 같은 남자로 생각하게끔 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드라마에서 보여준 제 모습은 밝고 긍정적이며 난관을 극복해가는 청춘이었는데 ‘조제’에서는 그와는 다른, 평범하면서도 섬세한 내면을 드러내야 하는 역할이라 매력적이었어요.
작품 속에서 영석이 조제와 사랑에 빠지는데, 배우로서 어떻게 이해했는지 궁금해요.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 속에서 영석은 우연히 조제를 만나요. 첫 만남에 그녀의 공간을 보게 되고 이야기 나누면서 가까워지고 이후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제가 생각할 때 영석이는 ‘사랑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 것 같아요. 그런 생각으로 연기하다 보니 저 역시 ‘집에만 갇혀 사는 조제에게 진짜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조제를 데리고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는 조제의 신발 밑창이 새하얗게 그대로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기했고요. 조제의 휠체어를 밀고, 조제를 등에 업고 다니는 연기를 하면서 영석의 감정이 깊어지는 걸 느꼈어요.
연기하기가 까다로웠던 장면이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눈이 내리는 날 조제의 집에 다시 찾아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 가장 까다로웠어요. 계속 찍으면서도 ‘이게 아닌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어요. 밤 신이라 아침에는 해가 뜨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마무리를 해야 했는데 숙소에 들어가서도 잠이 안 오더라고요. 결국 감독님께 “저녁에 시간이 되면 다시 한번 찍고 싶다”며 “이런 부분들이 부족했고 더 깊게 표현하고 싶다”고 양해를 구했는데, 감독님도 흔쾌히 다시 해보자고 하셔서 감사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유원지에서 대관람차를 타다가 조제가 내리지 않으려고 문을 닫는 신요. 주인공들의 감정적 교류가 관객에게 전달하는 힘이 컸을 뿐 아니라 휠체어, 풍선, 관광객 등 유원지의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주는 힘도 크다고 느꼈어요.
한지민 씨와 ‘눈이 부시게’ 이후 두 번째로 호흡을 맞췄어요. 어땠나요.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다시 만날 수 있을 줄 몰랐어요. 작품에 들어가면 상대 배우와 초반에 호흡을 좀 맞춰야 하는데 저희는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어서 촬영하기 편했어요. 또 전작과 전혀 다른 인물을 연기하니까 소통이 필요했는데 그런 부분에서 의견 교환하기도 수월했고요.
한지민 씨가 “현장에서 질문이 많은 배우”라고 평가했는데 현장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는지도 궁금해요.
지민 선배는 조언해주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조언이라기보다 저와 동등한 위치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 했고, 연기하기 좋은 상황을 만들어줬어요. 연기를 저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해온 선배인데도 가르치려 하기보다 상대 배우의 의견을 경청하는 등 배울 게 많았어요. 자신의 모습을 찍지 않아도 맞은편에서 100% 몰입할 수 있도록 맞춰주는 태도도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했고요. 존중과 배려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멜로 연기를 많이 했어요.
작품을 찍으면서 느꼈는데 제가 생각하는 멜로의 매력은 인물과 인물이 주고받는 대사들에 있다고 생각해요. 대사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깊이 공감하고, 서로에게 깊이 빠져드는 모습에서 메시지가 전달되거든요. 하나의 독립된 개체였던 인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서로에게 서서히 다가가며 생기는 감정들, 기억들이 멜로라는 장르의 매력인 것 같아요.
2020년 드라마부터 영화까지 연달아 3편을 선보였는데 힘들지 않았나요.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웃음). 늘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방송과 개봉 시기가 한 해에 몰린 거예요. 힘들지는 않은데 약간의 스트레스와 부담은 있죠. 혹시 캐릭터가 다 겹쳐 보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있고요. 체력적인 부담은 이제야 좀 오는 것 같아요. 연기할 때는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이 캐릭터를 어떻게 살릴까에 온전히 집중하다 보니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경험이 부족해서 모자라 보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온전히 작품 속 인물로 녹아들고 싶다는 욕심이 동시에 생기고요. 그때그때 순간을 즐기며 연기하는 편인데 이제 차기작 검토하면서 열심히 체력을 관리하려고요.
‘스타트업’과 ‘조제’에서 20대 청춘으로 등장해요. 어느 쪽 캐릭터와 비슷한가요.
‘스타트업’의 남도산과 ‘조제’의 영석, 둘 다 저와 비슷한 지점은 없어요. 두 캐릭터 모두 선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어느 한쪽과 닮았다기보다는 조금씩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20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한데요.
스스로 저를 봤을 때… 그냥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거 같아요. 열심히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순간들이 감사하고, 심지어 열심히 몰두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라는 점도 감사하고요. 물론 힘든 순간도 있지만 정말 치열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멋진 20대를 보내고 있지 않나 싶어요. 일 외적으로 개인적인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럴 때도 주로 연기에 대한 고민을 하는데, 전 고민하는 순간마저도 감사해요.
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덕분인지 ‘안시성’과 ‘눈이 부시게’ 이후 성장했다는 평을 받았어요.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연기적으로 성장했다고 느낀 순간은 없어요. 앞으로도 모르고 싶은 순간이에요. 설령 연기가 늘었다고 해도 저 혼자 잘해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작품을 같이 만드는 사람들, 배우, 절 도와주는 많은 분의 노력이 제 연기가 좋아 보이게끔 하는 거라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감사한 평이지만 아직까지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제작보고회 때 메이킹 필름을 보고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됐어요. 감수성이 풍부한 편인가 봐요.
승부욕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은 많아요. 어릴 때 농구 시합을 정말 많이 했는데 연습 경기든 실제 경기든 이기려고 애를 썼죠. 경기에 져서 슬퍼서 운적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눈물이 없다고 하긴 어려울 거 같아요(웃음). 저라는 사람 자체가 감수성이 아직까지 풍부한 거 같고,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울기도 해 눈물이 없는 편은 아니에요. 어릴 때는 이런 감정들을 숨기고 살았는데 지금은 굳이 내 자신을 숨길 필요 있나 싶어요. 그것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니까 지금은 그런 감정들을 연기할 때 다 표현해내려 하고 있어요.
남주혁에게 연기란 어떤 의미인가요.
좋아하는 일이고, 할 수 있어서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늘 힘들어요. 잘하고 싶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잘 표현하기 어려울 때도 많고요. 먼 훗날 뒤돌아봤을 때 ‘그런 고민의 시간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하게 됐구나’라는 걸 느끼는 순간이 오면 좋겠어요.
사진제공 매니지먼트 숲
남주혁은 원래 농구 선수를 꿈꾸던 소년이었다.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던 그는 중학교 때까지 농구 선수 생활을 하다가 부상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며 그 꿈을 접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경기도 수원으로 이사해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큰 키를 강점으로 모델에 도전했다. 운 좋게 한 모델 에이전시에 들어간 남주혁은 2013년 송지오 옴므 패션쇼를 시작으로 각종 런웨이 무대에 서게 됐다.
그가 본격적으로 빛을 보기 시작한 건 2014년부터다. 그해 악동뮤지션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계기로 JTBC 예능 프로그램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 고정 출연하면서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당시 함께 출연한 방송인 강남이 한국말이 서툴러 자신과 남주혁의 이름을 합쳐 ‘강나면주’라고 엉뚱하게 부른 것이 화제가 됐고, 준수한 외모와 출중한 농구 실력으로 여학생은 물론 남학생에게까지 호감을 샀다. 이를 발판으로 2015년 남주혁은 수많은 스타를 배출한 KBS 드라마 ‘학교’ 시리즈 ‘후아유-학교 2015’의 주인공을 맡으며 첫 주연 배우 신고식을 치렀다. 하지만 연기 경험이 부족했던 터라 혹평을 받았고, 그해 MBC ‘화려한 유혹’에서 주인공 주상욱의 아역을 맡아 차근히 연기력을 다져가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남주혁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나갔다. 2016년 tvN ‘치즈인더트랩’에서 연하남의 정석 권은택 역할을 맡아 훈훈한 매력을 선보였고, 그의 첫 사극인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에서 고려 여인들의 여심을 흔드는 외모에 반듯한 성정을 지닌 13황자 백아 역을 연기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예능에서도 남주혁의 순박한 매력은 빛을 발했다.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과 함께 출연한 tvN ‘삼시세끼 고창편’에서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대선배들 사이에 막내로 묵묵히 허드렛일을 해내 반듯하면서도 근면 성실한 청춘의 정석을 보여주는 듯했다.
2017년 이후 남주혁은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이며 주연 배우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MBC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스타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불운한 수영 선수 정준형으로 등장해 성장 스토리를 선보였고, 만화를 원작으로 한 tvN ‘하백의 신부’에서 물의 신이자 신계 차기 황제로 출연해 다소 연기하기 까다로운 판타지 로맨스물도 소화해냈다. 2019년 tvN ‘눈이 부시게’에서 올곧은 매력의 청년 이준하로 분해 김혜자, 한지민 등과 호연했고 많은 이로부터 인생 드라마라는 평을 받았다.
이즈음 남주혁은 연기에 물이 올라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다. 2018년 영화 ‘안시성’에서 연개소문의 명에 따라 안시성 성주 양만춘을 암살하기 위해 잠입한 태학도 수장 사물 역을 맡아 조인성과 박성웅 등에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덕분에 남주혁은 ‘안시성’ 한 작품으로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을 비롯해 무려 5개 신인상을 받았다.
2020년은 남주혁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보건교사 안은영’을 필두로 ‘스타트업’에 이어 ‘조제’까지 각각 매력이 돋보이는 캐릭터를 연기해 호평받았다. 가장 최근 출연작인 영화 ‘조제’는 일본 다나베 세이코 작가의 단편소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 원작은 평범한 남자 츠네오가 다리가 불편한 소녀 조제를 만나 사랑에 빠져 깊게 교감하는 내용이다. 앞서 2004년 츠마부키 사토시가 주연한 동명의 작품이 국내에서도 개봉돼 많은 이에게 명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2020년 12월 10일 개봉한 ‘조제’에서는 한지민이 조제를, 남주혁이 원작의 츠네오인 영석을 연기했다. 영화 개봉에 앞서 남주혁과 온라인 인터뷰를 진행했다.
2020년 드라마와 영화 흥행 3연타를 이루고 전성기를 맞은 남주혁.
4년 전쯤 원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봤는데 그때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이후 ‘조제’라는 작품이 제게 들어왔을 때 저만의 영석을 만들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무엇보다 김종관 감독님과 작품을 같이하고 싶었고, 감독님을 믿었기 때문에 함께하게 됐어요. 완성된 작품을 보니 정말 치열하게 연기했던 순간도 떠오르고 관객 입장에서 몰입이 돼 울컥하기도 하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시간이 지나도 많은 분들에게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저 또한 같은 마음이에요.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 부담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래서 일부러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원작을 안 봤어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원작을 봤다면 100% 따라 하게 될 것 같았거든요. 저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고 감독님이 생각하는 작품 속 영석이를, 다른 배역들 사이에 잘 녹아드는 영석이를 표현하고 싶어 그런 쪽으로 노력을 했어요. 아무래도 원작이 있다 보니 보시는 분들이 츠네오와 비교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오롯이 관객이 느끼고 평가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주인공 영석은 취업 준비를 하던 중 조제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평범한 20대 청년이에요. 어떤 점에 끌렸나요.
시나리오를 볼 때도 평범한 친구로 느껴졌어요. 개인적으로 그 평범함을 극대화시키고 싶은 욕심이 생겼죠. 관객이 정말 우리 주변에 어딘가 살아가고 있을 것 같은 남자로 생각하게끔 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드라마에서 보여준 제 모습은 밝고 긍정적이며 난관을 극복해가는 청춘이었는데 ‘조제’에서는 그와는 다른, 평범하면서도 섬세한 내면을 드러내야 하는 역할이라 매력적이었어요.
작품 속에서 영석이 조제와 사랑에 빠지는데, 배우로서 어떻게 이해했는지 궁금해요.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 속에서 영석은 우연히 조제를 만나요. 첫 만남에 그녀의 공간을 보게 되고 이야기 나누면서 가까워지고 이후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제가 생각할 때 영석이는 ‘사랑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 것 같아요. 그런 생각으로 연기하다 보니 저 역시 ‘집에만 갇혀 사는 조제에게 진짜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조제를 데리고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는 조제의 신발 밑창이 새하얗게 그대로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기했고요. 조제의 휠체어를 밀고, 조제를 등에 업고 다니는 연기를 하면서 영석의 감정이 깊어지는 걸 느꼈어요.
연기하기가 까다로웠던 장면이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눈이 내리는 날 조제의 집에 다시 찾아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 가장 까다로웠어요. 계속 찍으면서도 ‘이게 아닌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어요. 밤 신이라 아침에는 해가 뜨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마무리를 해야 했는데 숙소에 들어가서도 잠이 안 오더라고요. 결국 감독님께 “저녁에 시간이 되면 다시 한번 찍고 싶다”며 “이런 부분들이 부족했고 더 깊게 표현하고 싶다”고 양해를 구했는데, 감독님도 흔쾌히 다시 해보자고 하셔서 감사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유원지에서 대관람차를 타다가 조제가 내리지 않으려고 문을 닫는 신요. 주인공들의 감정적 교류가 관객에게 전달하는 힘이 컸을 뿐 아니라 휠체어, 풍선, 관광객 등 유원지의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주는 힘도 크다고 느꼈어요.
한지민 씨와 ‘눈이 부시게’ 이후 두 번째로 호흡을 맞췄어요. 어땠나요.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다시 만날 수 있을 줄 몰랐어요. 작품에 들어가면 상대 배우와 초반에 호흡을 좀 맞춰야 하는데 저희는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어서 촬영하기 편했어요. 또 전작과 전혀 다른 인물을 연기하니까 소통이 필요했는데 그런 부분에서 의견 교환하기도 수월했고요.
한지민 씨가 “현장에서 질문이 많은 배우”라고 평가했는데 현장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는지도 궁금해요.
지민 선배는 조언해주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조언이라기보다 저와 동등한 위치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 했고, 연기하기 좋은 상황을 만들어줬어요. 연기를 저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해온 선배인데도 가르치려 하기보다 상대 배우의 의견을 경청하는 등 배울 게 많았어요. 자신의 모습을 찍지 않아도 맞은편에서 100% 몰입할 수 있도록 맞춰주는 태도도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했고요. 존중과 배려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멜로 연기를 많이 했어요.
작품을 찍으면서 느꼈는데 제가 생각하는 멜로의 매력은 인물과 인물이 주고받는 대사들에 있다고 생각해요. 대사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깊이 공감하고, 서로에게 깊이 빠져드는 모습에서 메시지가 전달되거든요. 하나의 독립된 개체였던 인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서로에게 서서히 다가가며 생기는 감정들, 기억들이 멜로라는 장르의 매력인 것 같아요.
2020년 드라마부터 영화까지 연달아 3편을 선보였는데 힘들지 않았나요.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웃음). 늘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방송과 개봉 시기가 한 해에 몰린 거예요. 힘들지는 않은데 약간의 스트레스와 부담은 있죠. 혹시 캐릭터가 다 겹쳐 보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있고요. 체력적인 부담은 이제야 좀 오는 것 같아요. 연기할 때는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이 캐릭터를 어떻게 살릴까에 온전히 집중하다 보니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경험이 부족해서 모자라 보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온전히 작품 속 인물로 녹아들고 싶다는 욕심이 동시에 생기고요. 그때그때 순간을 즐기며 연기하는 편인데 이제 차기작 검토하면서 열심히 체력을 관리하려고요.
‘스타트업’과 ‘조제’에서 20대 청춘으로 등장해요. 어느 쪽 캐릭터와 비슷한가요.
‘스타트업’의 남도산과 ‘조제’의 영석, 둘 다 저와 비슷한 지점은 없어요. 두 캐릭터 모두 선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어느 한쪽과 닮았다기보다는 조금씩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20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한데요.
스스로 저를 봤을 때… 그냥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거 같아요. 열심히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순간들이 감사하고, 심지어 열심히 몰두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라는 점도 감사하고요. 물론 힘든 순간도 있지만 정말 치열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멋진 20대를 보내고 있지 않나 싶어요. 일 외적으로 개인적인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럴 때도 주로 연기에 대한 고민을 하는데, 전 고민하는 순간마저도 감사해요.
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덕분인지 ‘안시성’과 ‘눈이 부시게’ 이후 성장했다는 평을 받았어요.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연기적으로 성장했다고 느낀 순간은 없어요. 앞으로도 모르고 싶은 순간이에요. 설령 연기가 늘었다고 해도 저 혼자 잘해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작품을 같이 만드는 사람들, 배우, 절 도와주는 많은 분의 노력이 제 연기가 좋아 보이게끔 하는 거라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감사한 평이지만 아직까지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제작보고회 때 메이킹 필름을 보고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됐어요. 감수성이 풍부한 편인가 봐요.
승부욕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은 많아요. 어릴 때 농구 시합을 정말 많이 했는데 연습 경기든 실제 경기든 이기려고 애를 썼죠. 경기에 져서 슬퍼서 운적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눈물이 없다고 하긴 어려울 거 같아요(웃음). 저라는 사람 자체가 감수성이 아직까지 풍부한 거 같고,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울기도 해 눈물이 없는 편은 아니에요. 어릴 때는 이런 감정들을 숨기고 살았는데 지금은 굳이 내 자신을 숨길 필요 있나 싶어요. 그것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니까 지금은 그런 감정들을 연기할 때 다 표현해내려 하고 있어요.
남주혁에게 연기란 어떤 의미인가요.
좋아하는 일이고, 할 수 있어서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늘 힘들어요. 잘하고 싶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잘 표현하기 어려울 때도 많고요. 먼 훗날 뒤돌아봤을 때 ‘그런 고민의 시간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하게 됐구나’라는 걸 느끼는 순간이 오면 좋겠어요.
사진제공 매니지먼트 숲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