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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기부영웅’ SKC 최신원 회장 여성들에게 전하는 힐링 메시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훈훈하고 넉넉하게 나누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글 · 김지영 기자 | 사진 · 조영철 기자

2015. 08. 25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인 아노소사이어티 총대표이자 SK그룹의 맏형인 최신원 SKC 회장. 그는 베푸는 삶을 즐기는 아시아의 ‘기부영웅’으로 국적과 세대를 초월해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손꼽힌다. 선대부터 이어져온 아름다운 나눔 인생을 통해 최 회장이 각박한 이 시대에 던지는 ‘힐링’ 메시지.

‘기부영웅’ SKC 최신원 회장 여성들에게 전하는 힐링 메시지
철옹성 같은 집무실에서 남을 부리는 자로만 군림하는 기업가가 있는가 하면, 지위 고하나 빈부 차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든 온정을 베푸는 기업가도 있다. SK그룹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차남으로 현재 SK가의 맏형인 최신원(63) SKC 회장은 후자를 대표하는 기업가로 평가받는다.

1981년 선경인더스트리 대리로 입사해 선경인더스트리 이사, 선경그룹 전무, SK유통 대표이사를 거쳐 2000년부터 15년째 석유화학 전문기업 SKC의 대표이사 겸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조직 안에서든, 밖에서든 ‘나눔’을 실천해왔다. “기업은 이해관계자의 행복 추구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조직 구성원과는 조직의 성장과 비전을, 고객들과는 가치를 나누고 이를 통해 축적한 부와 재능은 우리 사회와도 나눠야 한다”는 그의 경영철학도 나눔을 적극적인 경영활동의 하나로 여기는 남다른 기업가 정신에서 비롯됐다.

나눔과 기부의 실천을 기업가의 사회적·도덕적 책무로 여기는 최 회장은 2000년대 초반 ‘을지로 최’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밝히지 않고 기부를 하다가 2008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명단에 오르며 남모르게 해온 선행이 알려졌다. 그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설립한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2009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 아시아판은 최 회장의 이런 행보를 높이 평가하며 그를 ‘기부영웅(Hero of Philanthropy)’으로 선정했다. 2011년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이듬해 아너소사이어티 총대표직을 맡으며 보다 진취적으로 나눔 활동을 펼친 이 기부영웅은, 가진 것이 많은 이웃에게는 베푸는 삶의 보람과 기쁨을 체험하게 하고, 경제적으로 고통 받는 이웃에게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며 나눔 문화 전도사를 자처해왔다.

현재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은 모두 8백43명. 이 가운데 최 회장이 직접 유치한 회원은 5월 말 한식구가 된 제주도 고깃집 주인 양정기 씨까지 40명. 최 회장은 해마다 사재를 자선단체와 군부대, 학교 등에 기부하는데 그 액수가 평균 20억원에 달한다.



최 회장의 나눔 활동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2013년 세계공동모금회(UWW) 산하 리더십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됐다. 현재까지 유일한 아시아 국가의 위원이다. UWW 리더십위원회는 글로벌 고액 기부자 모임인 ‘자선라운드테이블’을 발족해 2013년 첫해는 프랑스 파리, 지난해는 영국 런던에서 열었다. 올해 이 행사는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9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리더십위원회 초청으로 해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최 회장이 파리 회의에서 나눔에 대한 연설로 감동을 자아낸 데 이어, 지난해 런던 회의에서 이 모임의 서울 유치를 적극 주도한 덕분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서울 자선라운드테이블 개최를 두 달여 앞둔 7월 7일 오후, 서울 중구에 자리한 그의 집무실을 찾았다. SKC 회장실에 들어서자 맞은편 벽에 걸린 커다란 액자가 눈길을 끌었다. 액자 안에는 사자성어가 쓰여 있었다. ‘정사역천(精思力踐)’. 최신원 회장은 “고 남덕우 전 총리의 글씨”라고 일러주며 “생각을 살펴 하고 힘써 실천한다는 뜻인데, 저 말에도 나누며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정사역천’의 지향점을 ‘나눔’에 두고 살아온 그다운 해석이다.

선친에게 물려받은 ‘나눔’ 유전자의 힘

‘기부영웅’ SKC 최신원 회장 여성들에게 전하는 힐링 메시지

최신원 회장은 2012년부터 아너소사이어티 총대표로 활동하며 한국의 기부문화 확산에 앞장서왔다.

▼ 일반적인 기업 오너처럼 기업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에 그치지 않고 해마다 거액의 사재를 기부하는 분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했습니다.

저라고 다른 게 뭐가 있겠어요.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주변에 베푸는 것을 보고 자라서 사는 게 힘든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거 하나가 남과 다르다면 다를 수도 있겠지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게 마음가짐이에요. 삶의 행복과 불행은 가진 게 많고 적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달렸지요. 저도 욕심을 내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왜 기부를 하겠어요. 인간이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베푸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지요. 악착같이 긁어서 자기 호주머니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만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요. 자기 것을 조금이라도 내놓을 줄 아는 그런 마음이 중요해요.

▼ 나눔과 기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선친의 영향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어머니와 조부모님 모두 생활 자체에 나눔과 이웃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으셨어요. 그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자라다 보니 나눔과 기부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적 할아버지는 가뭄이 들어 물이 귀할 때 이웃에게 모내기를 할 수 있도록 물을 기꺼이 나누어주셨고, 어머니는 쌀을 씻을 때 일정량을 따로 모아두었다가 동네 어려운 주민들에게 조용히 나눠주시곤 하셨어요. 또한 아버지가 처음 SK의 전신인 선경직물을 재건했을 때도 일자리가 없는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대학병원에서 주기적인 검진을 받았음에도 뒤늦게 폐암 진단을 받아 손쓸 겨를도 없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당시 진단을 늦게 했던 의사를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정확히 진찰할 수 있는 장비가 없었으니까요. 그것을 아셨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진찰 장비를 그 대학병원에 기증하고 본인과 같이 진단이 늦어 아까운 생명을 잃는 사람이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처럼 아버지는 1950~60년대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이웃을 돌아보고 나누는 삶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분이셨어요. 어려운 이웃은 다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죠. 저도 그런 아버지의 나눔 정신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아 실천에 옮기는 겁니다.

▼ 선친께서 생전에 나눔의 중요성을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예를 하나 들게요. 한국전쟁이 났을 때 아버지가 북한군에게 붙잡혔어요. 근데 할아버지가 많이 베풀었던 사람이 북한군 안에 있었어요. 그 양반이 아버지를 한 대 갈기면서 ‘이놈의 새끼 나와’ 하며 끌고 나와 슬쩍 풀어주셨답니다. ‘인마, 빨리 도망가’ 하고요. 나눔이라는 게 바로 그런 거예요. 정이고, 덕이죠. 밥 한 숟갈 떠서 옆에 놔두는 거요. 나눔이 거창한 게 아니에요.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주고, 좋은 신랑감을 찾아주는 것도 나눔이에요. 지금도 똑같아요. 북한에서 넘어오신 분들이 지금 굉장히 많은데, 우리가 잘 관리해야 그분들이 정착해 우리 사회에 도움 되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기부영웅’ SKC 최신원 회장 여성들에게 전하는 힐링 메시지

최신원 회장의 나눔 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그의 아버지, SK그룹 창업주 고 최종건 회장의 생전 사진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주말마다 가족들과 식사 모임, “얼굴만 봐도 행복합니다”

▼ 자녀들에게도 나눔과 기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저희 가족들은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 함께 점심식사를 해요. 이제는 모두 결혼한 자식들(장녀 유진 씨, 차녀 영진 씨, 아들 최성환 SKC 상무)과 그 아이들이 낳은 손자 손녀를 보노라면 아버지이자 할아버지로서 무척 행복해요. 그 자리에서 가족들에게 늘 강조하지요.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소유가 아니니 이를 통해 남들과 더 나누고 배려하는 삶을 살라고 말이죠. 제가 부모님을 보면서 나눔의 기쁨을 자연스럽게 배운 것처럼 제 자식들도 저의 나눔과 기부 활동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배우고 느끼고 있어요. 저와 뜻을 같이해줘 더없이 기쁘죠. 특히 둘째 딸의 결혼식 축의금을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을 때도 결혼식의 의미가 더 뜻깊어졌다며 가족들 모두 좋아했어요.

▼ 자녀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가요.

대화하는 것도 즐기지만, 실은 가족들 얼굴만 봐도 좋아서 일요일마다 다 불러요. ‘이리 오너라’ 해서 밥 먹고 커피도 한잔씩 하고 그러죠. 얼굴 한 번 더 본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데요. 가족도 자주 봐야 정이 새록새록 깊어지거든요. 제게 여동생 넷에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걔네들도 시간이 맞으면 꼭 와요. 동생들에게 잔소리는 안 해요. 며느리에게도 ‘네 남편을 성심껏 잘 모셔라’ 하는 얘기 외에는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싸움이 안 나죠.

▼ 어머니에게도 무척 잘하신다고 들었어요. 맛있는 음식점에 가면 그 음식을 사다 어머니께 갖다 드리고, 매주 식사도 같이하신다면서요.

그거야 자식으로서 당연한 거죠. 자랑할 일은 아니에요. 뭘 살 때는 상하는 게 아니면 여동생 네 명 것도 같이 사요. 매주 만나니까 그때 가져가라고 챙겨주죠.

▼ 요즘은 요리 잘하는 남자가 인기가 좋습니다. 회장님도 가족을 위해 요리해보셨는지요.

저는 국내외를 다니다 괜찮은 음식을 맛보면 반드시 워커힐호텔 주방장들이 그곳 요리법을 배우게 해요. 워커힐호텔 ‘피자힐’에서 인기를 끌었던 ‘김치 피자’도 제가 낸 아이디어로 탄생했죠(웃음). 하지만 제가 직접 요리를 해본 적은 없어요. 그래도 가족들과 외식을 하게 되면 ‘최신원표’ 레시피로 만든 된장찌개를 끓여 즐기곤 해요. 된장찌개에 차돌박이와 김치를 듬뿍 넣어 팔팔 끓이면 된장의 구수한 맛이 김치의 칼칼함, 차돌박이의 고소함이 잘 어우러져 더욱 감칠맛이 나요. 하하하.

▼ 가훈은 뭔가요.

‘남을 생각하는 미덕을 가져라. 한 번 생각하고 두 번 생각하고 세 번 생각하라’요. 남을 생각해야 베풀 수 있거든요. 사실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건 자신의 행복인 동시에 전체의 행복이지요.

▼ 누구나 그런 마음으로 기업을 경영하면 좋겠네요. 보통 기업이 대물림되는데, 오너 일가가 계속 경영권을 승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기업의 역사를 가꾸고 계승하는 차원에서 총책임자로서의 오너는 꼭 있어야 하고, 오너 집안에서 승계하는 게 맞다고 봐요. 다만 오너가 모든 걸 다 잘할 순 없으니까 잘하지 못하는 분야는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 많은 재벌 그룹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가족 간의 큰 다툼이 일었는데 SK그룹은 아무런 잡음 없이 어떻게 원만한 승계가 이뤄질 수 있었습니까.(SK그룹은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이 48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한 후 그의 동생인 최종현 2대 회장이 이끌었다. 최종현 회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에는 창업주의 장남인 고 최윤원 SKC케미컬 대표이사 회장과 차남인 최신원 회장 등이 참석한 가족회의에서 후계자로 결정된 2대 회장의 장남 최태원 SK 회장이 SK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했다.)

싸우려고 하면 싸울 수도 있지만 참은 거지요. 2대 회장이 돌아가셨을 적에 저희 5형제(창업주의 세 아들과 2대 회장의 두 아들)가 합의해서 최태원 회장한테 모든 권한을 넘겨줬어요. 그 분위기를 누가 주도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회사를 잘 경영해서 형제 간에 우애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게 할지를 합의하는 게 중요했어요. 합의는 원만하게 이뤄졌어요. 다들 사인을 쉽게 했어요. 제가 먼저 하고, 그다음에 우리 형, 그다음에 재원(최태원 회장의 동생, SK 수석 부회장)이가 하고…. 제가 항상 강조해온 말이 있어요. ‘나는 분가는 안 한다. 울타리 안에 항상 있겠다,’ 지금의 SK그룹을 창업한 사람이 저희 아버지신데 제가 그걸 깨부술 수는 없잖아요. 온전히 지켜야죠. 형제 간에 서로 양보심이 없으면 뭐가 되겠어요. ‘너, 내놔’ 그러면 저와 (최)태원이가 만날 싸워야 해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가족 간에는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 비우고 살아야 해요.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하면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없어요.

아이스 버킷 챌린지 체험도 화끈하게 한 ‘을지로 최’

‘기부영웅’ SKC 최신원 회장 여성들에게 전하는 힐링 메시지
▼ 사람은 40세가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회장님 인상이 참 선하세요.

어디를 가든 제 나이로 안 봐요. 염색만 하면 30대, 40대로 보여요. 하하하. 사는 즐거움이 별거 아니에요. 인생을 젊게 살아야 즐거워요.

▼ 운동도 꾸준히 하십니까.

매일같이 걸어요. 식사하러 갈 때 웬만한 거리는 걸어갔다 걸어와요. 사람들이 알은체하면 ‘죄송합니다. 잘못 보셨습니다’라고 얘기해요. 사람이 겸손할 줄 알아야지, ‘네, 맞습니다’ 할 순 없잖아요.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는 거나 마찬가지죠.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내세우기보다는 감추고 낮추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 회장님은 화도 잘 안 내실 것 같아요.

저도 화, 많이 냅니다. 비서실장에게 물어보세요. 은근히 독기가 있어요. 더군다나 제가 해병대 출신 아닙니까. 하하하.

▼ 왜 해병대를 가셨습니까.

원래 육군에 가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해병대를 추천하셔서 가게 됐어요. 처음엔 겁도 났지만 악에 받쳐 견디게 되더라고요. 그 악이 바로 인내심인 거죠. 제 성격이 원래 내성적이었는데 해병대를 다녀와서 다 바뀐 거예요. 그 전에는 누구 앞에서 얘기를 하려고 하면 얼굴이 시뻘게지고 말이 안 나왔어요. 여자 앞에서는 부끄러워서 고개도 못 들었어요. 해병대를 제대하고 나서 박력이 생기고 여자도 알게 됐죠. 하하하.

▼ 아들 최성원 SKC 상무도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했던데, 기부나 나눔에 대한 생각도 아버지를 닮았습니까.

아들이 유럽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런던비즈니스스쿨(LBS)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이고 우리나라에 2백50~3백 명 정도 졸업생이 있는데, 그 당시 아들과 손편지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많이 했어요. 그 대학에서도 월급의 몇 퍼센트는 기부하도록 배워선지 기부나 나눔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요. 그래서 저도 뭔가 자꾸 느끼게끔 해주고 있지요.

▼ 만일 로열 패밀리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지금처럼 나눔 문화에 적극 참여하고 계실까요.

물론입니다. 다만 기부하는 금액은 지금보다 적을 수는 있겠지요. 그게 얼마가 됐건, 제가 경제활동을 통해 얻는 수익의 일부를 지금처럼 나누고 있을 겁니다.

▼ 2003년부터 한동안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을지로 최’로 기부한 이유가 있습니까.

선친이나 조부모님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나누고 베풀었던 것처럼 기부 자체에 의미를 뒀기 때문에 굳이 신분을 밝힐 필요가 없었지요.

▼ 2014년 9월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여해 화제가 됐는데, 그때 기분이 어땠나요.

한 언론사 대표의 지명을 받아서 수원에 위치한 사회복지시설 경동원 앞 잔디밭에서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여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얼음물을 옆에서 부어주는 직원들이 그날 날씨가 너무 더워 얼음이 금방 녹을까 봐 얼음을 잔뜩 넣어두었다고 해요. 정말 얼음 반, 물 반이어서 물이 아주 차가웠고 머리에 뿌려질 때는 별이 보이는 듯했어요. 루게릭병 환자의 고통이 어떤 건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죠. ‘아, 정말 해냈구나. 도전하길 잘했다’ 싶더군요. 다른 사람들도 이런 경험을 통해 좋은 일을 많이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다음 날 기부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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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손편지, 쌀가마, 동남아 인형에 감동

최 회장에게 “나누고 베풀면서 사니 삶의 보람을 느낄 때도 많을 것 같다”고 운을 떼자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는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도움으로 고향을 다녀온 다문화 여성들이 직접 쓴 감사의 편지와 현지에서 사온 인형을 선물로 받고 감동했던 순간과, 젊은 시절부터 온갖 고생을 하다 어렵게 개업한 식당으로 큰 성공을 거둔 후 5월 말 아너소사이어티의 새 식구가 된 단골 고깃집 사장님에 대한 고마움, 수년째 연탄을 실어 나른 경기도 여주의 수혜 할머니들이 지역 복지센터를 통해 감사의 손편지와 직접 재배한 쌀 한 가마니를 보내와 나눔의 정을 새삼 느꼈던 일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최 회장은 현재 ‘선경 최종건장학재단’을 11년째 운영하고 있다. 재단 이사장직은 그의 어머니 노순애 여사가 맡고 있다. 최 회장은 “평소 인재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신 선친의 뜻을 받들어 세웠고 어머니도 그 뜻을 함께 이어가고 싶어하셨다”며 “2004년 선경(현 SK)의 근원지인 수원 지역 저소득층 자녀들 위주로 장학금을 전달했는데 점차 그 범위를 넓혀 이제는 서울, 수원 및 경기 일원, 진천·천안, 태안, 울산 등 여러 지역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학생들이 매년 손글씨로 감사의 편지를 보내오면 한장 한장 꼼꼼히 읽어봅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장학금을 받고 도움을 받은 것처럼 나중에 커서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 나눠주겠다는 내용을 보내왔을 때는 정말 주는 즐거움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껴요.”

▼ 국내 대기업들의 나눔과 기부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제가 다른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해 평가를 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기업들이 사회공헌에 많은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것으로 생각돼요. 지원하는 기업과 대상자, 사회가 서로 상생하며 더불어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을 펼칠 때 간과해선 안 될 덕목은 무엇인지요.

상생과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고 번 돈으로 사회공헌 활동이나 나눔 활동을 한다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닌 사회 구성원 모두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업 활동과 나눔 활동을 한다면 풀리지 않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 SKC에도 다양한 나눔 프로그램이 자발적 참여로 활성화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SKC의 사회공헌 활동은 SK그룹이 추구하는 ‘행복 경영’에 뿌리를 두고 ‘행복한 참여’ ‘행복한 상생’ ‘행복한 변화’의 원칙 실현을 지향하고 있어요. SKC 사회공헌 활동의 특징은 일회성에 그치는 강압적인 기부나 봉사를 지양하고, 임직원의 자발적인 참여로 지속 가능한 사회공헌 활동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매칭 펀드, 끝전 기부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인데 이러한 자발적 참여는 ‘세상은 더불어 사는 곳이고 내 이웃과 나누는 행동만으로도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높아진다. 나눔은 모두가 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모두를 행복하게끔 해주는 행위’라는 SKC의 사회공헌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죠. 임직원들이 개개인의 기부 활동은 물론 지역 소외계층을 돌보고 환경을 개선하는 봉사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어서 더없이 고맙고 기쁩니다.

다 같이 행복한 사회 만들어가는 데 마중물 역할 하고 싶어

▼ 사재를 출연한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공개해주실 수 있습니까.

사실 군부대 위문, 장학재단 지원 외에도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를 진행하다 보니 정확한 금액은 확인하기 힘들어요. 다만 2003년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기부한 금액만 대략 27억원이 조금 더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기부금이 좀 더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지원될 수 있게 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저는 새터민과 다문화가정 지원 활동에 힘쓰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 제가 보낸 기부금으로 더 많은 곳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Choi’s happy fund’를 조성했는데 그 펀드가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지요. 그 펀드를 통해 다문화가정의 고향 방문과 함께 성폭력 피해 청소년들의 사회 복귀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 UWW의 자선라운드테이블이 9월 서울에서 열립니다. 이 모임을 유치하려고 애쓴 이유가 있나요.

그동안 UWW의 리더십위원회는 대부분 유럽에서 그 모임을 가져 비유럽 국가의 나눔 활동은 알려질 기회가 적었습니다. 아시아인으로는 제가 최초로 그 모임에 참가하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두 가지 이유로 자선라운드테이블 서울 유치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어요. 첫째,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나눔 문화를 공유하고 전파할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한국에도 아너소사이어티라는 성공적인 기부 문화가 있고 이러한 한국의 성공적인 고액 기부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싶었어요. 더불어 우리 사회와 아시아의 나눔 문화를 한 단계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어떤 분들이 참여합니까.

UWW 회장과 리더십위원회 회장을 비롯해 리더십위원회 위원 및 각국의 나눔 문화를 선도하는 대표자들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서울 자선라운드테이블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지명도 및 사회적 위치가 있는 저명인사를 Keynote Speaker로 섭외할 예정이고 한국의 아너소사이어티를 벤치마킹해 중국에도 이 같은 고액 기부자 모임을 만들기 위해 고액 기부를 한 중국인 기부자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또한 한국에서 개최되는 행사인 만큼 각 지역 아너소사이어티 대표를 포함한 회원들의 참여가 활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이번 모임의 어젠다와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서울 자선라운드테이블 개최 의미 자체가 글로벌 모금 문화의 확산과 글로벌 이슈에 전 세계가 동참하고자 하는 것이며 이를 반영한 서울선언문이 채택될 예정입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위의 취지에 맞는 선언문이 채택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둘째는 나눔 문화에 대한 다양한 벤치마킹 활동이 이뤄질 것입니다. 우선 대한민국의 고액 기부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 대한 소개와 이 모임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벤치마킹이 있을 예정입니다. 또한 이와 더불어 대륙별로 각국의 나눔 활동, 나눔 문화 및 성공 사례 등이 발표될 예정입니다.

▼ 앞으로 꼭 이루고 싶으신 소망이 있습니까.

보다 많은 사람이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며 나누는 삶에 동참해 다 같이 행복한 사회, 온기가 넘치는 지구촌을 만들어나가는 데 마중물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가깝게는 이제 곧 열리는 UWW 서울 자선라운드테이블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나눔 문화가 한층 발전하고 성숙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기부 문화가 어려서부터 교육을 통해 몸에 밸 수 있도록 학교에서 가르쳤으면 합니다. 미국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거든요. 그 덕분에 좋은 일을 해서 부모에게 용돈을 받는 습관, 그 돈을 아껴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해 기부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죠. 이 땅에 사는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지금보다 훈훈하고 넉넉하게 나누는 세상이면 좋겠고, 꼭 그렇게 되리라 믿어요.

디자인 ·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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