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목소리가 들리는 고등학생과 풋풋한 재벌 상속자, 친남매처럼 지내다 남편이 된 쓰레기 오빠에게 끌린 지 얼마나 됐다고 이제는 외계인에게까지 설레는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외계인 좇는 NASA 연구원의 심정으로 살펴본 ‘별에서 온 그대’만의 ‘어마무시한’ 인기 비결.
끝나지 않은 전지현 EFFECT
영화 ‘도둑들’의 히트는 결코 ‘요행’이 아니었다. 전지현(33)이 이렇게 화려한 재기의 날개를 펼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그는 2012년 영화 ‘도둑들’에 이어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에서 일곱 살 연하의 김수현(26)과 다시금 호흡을 맞추며 인기몰이 중이다.
‘태희혜교지현이’가 시트콤 제목으로 쓰일 정도로 전지현이 김태희·송혜교와 함께 손꼽히는 매력의 여배우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에겐 늘 ‘CF형 스타’라는 불편한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2000년 차태현과 찍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흥행 이후 작품에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히트작은 없어도 광고계는 그를 사랑했다.
그렇다고 줄창 CF만 찍진 않았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거의 매년 거르지 않고 작품 활동을 했는데, 다만 흥행에 실패해 잊혔을 뿐이다. 작품마다 죽을 쑤던 시기에도 ‘엽기적인 그녀’는 죽지 않고 살아나 2008년 일본에서 드라마로 리메이크됐다.
아직은 엽기적이어도 괜찮아
결국 전지현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걸로 돌아왔다. 영화 ‘도둑들’의 예니콜로 와이어 액션을 소화하고, 걸쭉한 욕을 뱉고, 당시 신예 스타이던 김수현과 데뷔 후 첫 키스신까지 찍으며 대세가 된 것. 그의 인기를 되찾아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했던 ‘엽기적인 그녀’ 이미지였다.
1997년 잡지 모델로 데뷔한 전지현은 박신양, 차태현, 이정재, 장혁, 정우성, 황정민 등 당대 최고의 남배우들과 호흡을 맞췄지만 키스신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런 그와 ‘도둑들’ ‘별그대’에서 두 차례 키스한 유일한 국내 배우가 바로 김수현이다. 그전까지는 2011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에서 휴 잭맨과 찍은 키스신이 유일했다.
스스로의 ‘금기’였던 키스신까지 찍으며 배우로 한층 더 도약한 전지현. 그를 보고 “언제까지 ‘엽기적인 그녀’로 먹고살 건가”라는 비판 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지만, 결혼 후 은막 너머로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연예계에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30대 여배우가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잘나가는 음식점 주인은 때가 되면 선택을 해야 한다. 다양한 메뉴로 사업을 확장할지, 특정 메뉴로 전문성을 강화할지 말이다. 전지현은 일단 ‘로코 전문점’을 택했다. 앞으로 좀 더 많은 메뉴를 팔아치우는 배우로 거듭날 그를 기대해본다.
김수현이 도민준일 수밖에 없는 이유
지난해 ‘여성동아’에서 인터뷰한 영화 ‘관상’의 자문을 맡은 관상가 김용남 씨가 연예인 중 최고 관상을 가진 사람으로 꼽은 게 김수현이었다. 그는 김수현이 “20대 초반부터 기세를 타기 시작해 말년까지, 그 운세를 밀고 나갈 상”이라고 했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영화 ‘도둑들’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별그대’까지 2년 동안 4연속 흥행 기록을 쓰고 있는 김수현이 ‘제목이 좋아 택한 드라마’가 바로 ‘별그대’다.
“느낌 좋은 제목들이 있잖아요. ‘쩐의 전쟁’ ‘뿌리 깊은 나무’ ‘해를 품은 달’ 같은 거. 연기적으로는 도민준이 가지고 있는 어떤 세월을 표현해보고 싶어서 도전하게 됐어요.”
깊이와 젊음 겸비
연출을 맡은 장태유 PD는 “김수현은 원톱 주인공 남자 배우로 초고속 성장한 배우라 이번 작품에 최적이었다”고 말했다.
“도민준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내적인 카리스마와 깊이가 있는 배우가 맡아야 해서 섭외가 어려웠어요. 젊은 배우는 연기적 깊이가 부족했고, 연기에 연륜이 있는 배우는 얼굴에도 연륜이 있었거든요. 김수현 씨 말고는 다른 대안을 찾기 힘들었어요.”
그렇다면 김수현은 도민준과 얼마나 닮았을까. 김수현은 “도민준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걸어다니는 사전 같은 인물이고, 나는 굉장히 공부가 필요한 사람”이라며 자세를 낮췄다.
아찔했던 ‘별그대’ 캐스팅 비화!
전지현 지금은 그가 아닌 천송이를 상상할 수 없지만 원래 전지현은 ‘별그대’를 고사했었다. 영화 ‘도둑들’ ‘베를린’의 연타석 홈런으로 수많은 작품에서 러브콜을 받던 차라 영화에 출연하려 했던 것. 김수현과 제작진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전지현 표 천송이’를 만날 수 있게 됐다.
박해진 ‘송이 바라기’ 이휘경을 연기하고 있지만, 원래 그는 소시오패스 이재경을 연기할 예정이었다. 그는 이재경 동생 휘경 역에 캐스팅된 배우 최민이 부상으로 하차하자 제작진의 설득으로 배역을 바꿨다.
카메오 극에 재미를 주는 카메오 섭외는 대부분 박지은 작가와 장태유 PD의 ‘인맥’발이다. 박 작가의 전작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방귀남 역으로 ‘국민 남편’이 된 유준상은 이휘경의 직장 상사 유 과장 역으로 깜짝 출연했다. 패션 물품을 처분하러 온 천송이에게 면박을 주는 스타일리스트 역으로 출연한 스타일리스트 정윤기는 절친인 전지현의 부탁으로 출연했다고.
글·구희언 기자 | 사진·동아일보 출판사진팀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시스 HB엔터테인먼트 클립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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