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이자 문필가였고, 인형이 되기를 거부했던 신여성 나혜석(1896~1948)은 1934년 ‘삼천리’라는 잡지에 실린 그의 ‘이혼고백서’에서 ‘정조는 취미다’라고 주장해 뭇매를 맞았다. 시대를 앞서간 그의 주장은 80여 년이 지나서야 법의 심판대에서 인정을 받았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2월 26일 형법 241조의 간통죄 처벌 규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이로써 간통죄는 법 제정 6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한민국 형법에서 간통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다룬 것은 1953년부터지만 그 기원은 고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헌법재판소는 2008년 10월 30일 간통죄 처벌 조항에 대한 합헌 결정문에서 ‘간통죄는 우리 민족 최초의 법인 고조선의 8조법금(法禁)에서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통설’이라고 밝힌 바 있다.
1905년 공포된 대한제국 형법대전에서는 유부녀가 간통을 저지른 경우 그와 상간한 사람을 6개월 이상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제정된 조선형사령에서는 유부녀와 그 상간자의 간통을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케 했다. 그때는 유부남과 상간녀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어 간통한 유부녀만 죗값을 치렀다.
이후 30여 년간 부인의 간통만을 문제 삼던 간통법은 1953년 대한민국 형법이 제정될 당시 간통한 남녀 모두 같은 처벌을 받도록 개정됐다. 남녀평등처벌원칙에 따라 ‘일벌죄’에서 ‘쌍벌죄’로 바뀐 것이다. 이에 앞서 대법원은 1952년 부인의 간통만 처벌하도록 한 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최근까지 간통죄는 1953년 제정된 법 조항을 그대로 적용했다. 형법 241조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간통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그와 간통을 저지른 제3자도 같은 처벌을 받게 했다. 이후 간통죄의 존폐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1990년부터 2008년까지 4번에 걸쳐 간통죄 위헌 여부를 다루는 헌법 재판이 열렸고, 모두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는 2월 26일 앞서 선고한 네 차례의 합헌 결정을 뒤집고 ‘국가가 법률로 간통을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성에 대한 국민의 법 감정이 변했고 처벌의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국민의 인식 변화와 성 개방 풍조, 여성의 경제력 상승 등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전 세계적으로 간통죄가 폐지되는 추세고, 더 이상 간통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들에게 자유롭게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간통죄가 정책상 예방 효과를 거두기 어려워졌고, 공갈 등 다른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의 이 같은 결정에 따라 간통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2008년 10월 30일 이후 간통 혐의로 기소되거나 유죄가 확정된 5천4백66명은 공소 취소나 재심 청구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게 됐다.
간통죄는 현재 유교권인 아시아에서도 대만, 필리핀 등의 국가에서만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대만은 간통죄 법정형이 1년 이하 징역이다. 중국은 현역 군인의 부인과 간통한 경우에만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일본은 1947년 간통죄를 없앴다. 서방 국가들은 이보다 앞서 간통죄를 폐지했다. 프랑스는 프랑스대혁명 때인 1791년 간통죄 처벌 규정을 없앴고 이후 간통죄를 잠시 되살렸다가 1975년 형법 개정 때 다시 폐지했다. 덴마크(1930년), 스웨덴(1937년), 오스트리아(1996년)까지 유럽연합(EU) 회원국 대부분이 간통죄를 폐지했다. 미국은 52개 주 가운데 20여 개 주에서 간통죄를 형법에 두고 있지만 실제로 처벌된 사례는 거의 없다. 세계적 추세와 달리 중동 지역의 일부 이슬람 국가는 간통죄를 엄하게 다스린다. 이란에서는 지금도 간통한 여성을 가슴까지, 상대 남성을 허리까지 땅에 묻고 돌팔매질하는 형벌에 처한다.
최무룡, 김지미, 정윤희, 황수정 등 ‘흑역사’
많은 논란이 일던 간통죄가 폐지됐지만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찬반 의견이 여전히 비등하게 맞서고 있어서다. 찬성표가 많은 직종 중 하나는 연예인이다. 사생활이 노출되기 쉬운 연예인들은 간통 여부와 상관없이 간통죄로 고소만 당해도 이미지가 실추된 게 사실. 게다가 간통죄는 일단 경찰에 고소가 들어가면 수사가 불가피해 연예인으로서의 생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특히 간통죄의 위헌 논란이 일기 전인 1980년대까지는 간통죄를 구속 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바로 언론 매체의 사회면을 장식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방송 출연 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일쑤였다.
연예계의 ‘간통죄 1호’로 기록된 스타는 1950년대 간통죄로 피소돼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배우 최은희(89)다. 18세에 12세 연상인 촬영기사와 결혼한 최은희는 신상옥 감독과 간통한 혐의로 고소된 사실이 알려지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법원은 두 사람을 처벌하지 않았고 이후 둘은 결혼했다. 최은희는 2013년 한 아침 방송에 출연해 “기자들이 전남편과 이미 이혼한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전남편과는 혼인신고도 안 했는데, 헤어진 상태에서 전남편이 나와 신 감독과의 사랑을 질투해 우리를 고소했다. 법정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걸로 밝혀졌지만 그 때문에 영화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다. 젊은 총각 감독이 대선배의 부인을 꼬드겼다고 오해했다”고 밝혔다.
1962년엔 당대 톱스타였던 배우 최무룡과 떠오르는 신인 배우였던 김지미(75)가 간통으로 피소됐다. 이들을 고소한 사람은 최무룡의 아내이자 최민수의 모친인 배우 강효실이었다. 당시 강효실은 최민수를 출산하고 10여 일 만에 이들의 간통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최무룡과 김지미는 피소 후 간통 혐의를 시인했고 결국 구속됐다. 하지만 김지미가 자신의 집까지 팔아 강효실에게 위자료 명목으로 3백만원을 주고 합의를 해 구속 일주일 만에 두 사람 모두 풀려났다.
1975년 1월에는 당시 22세였던 태진아(62)가 26세 연상의 대기업 사장 부인 김모 씨와 간통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후 김씨와 그의 남편이 이혼에 합의하면서 고소가 취하됐고 태진아는 구속 10여 일 만에 석방됐다. 그해 6월에는 배우 김영애(64)가 밴드 마스터 이종옥과의 간통 혐의로 고소를 당한다. 당시 김영애는 언론 매체를 통해 “배우 생활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헤어질 수 없는 사이다. 언젠가는 결혼식을 올릴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두 사람은 결국 1979년 정식 부부가 되지만 2000년 남남으로 갈라섰다.
1984년 터진 당대 최고의 미녀 스타 정윤희(61)의 간통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던졌다. 정윤희를 간통죄로 고소한 당사자는 조규영(69) 당시 중앙산업개발 회장의 부인이었다. 바로 구속됐던 정윤희는 조 회장이 위자료를 제시해 부인의 합의를 이끌어낸 후 석방됐고 그해 조 회장과 결혼하며 연예계를 은퇴했다. 1989년엔 가수 유연실(52)이 간통 현장을 남편에게 들켜 경찰에 연행된다. 이후 남편의 고소 취하로 풀려난 유연실은 남편과 위자료 문제 등으로 다퉈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2002년 드라마 ‘허준’에서 예진 아씨 역으로 열연하며 뭇 남성의 로망으로 등극했던 황수정(43)도 간통 혐의로 피소됐다. 황수정은 당시 서울 강남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던 유부남 강모 씨와 함께 필로폰 등을 투약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고, 그 와중에 강씨의 부인에게 간통 혐의로 피소된 것. 이후 강씨의 부인이 강씨와 합의한 후 고소를 취하하면서 이 사건은 종결됐지만 이미지가 추락해 방송 활동을 재개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김주하, 옥소리·탁재훈과 희비 엇갈려
간통죄 폐지 후 희비가 엇갈린 연예인도 있다. 간통죄 위헌 결정의 효력이 발효되는 시점인 2008년 10월 30일 이후 형이 확정되거나 재판에 계류 중이던 간통 사건의 당사자인 배우 옥소리(47)와 가수 탁재훈(47), 최근 MBC에 사표를 낸 앵커 출신 방송인 김주하(43)가 그들.
옥소리는 이례적으로 두 건의 간통 혐의로 피소됐다. 남편인 박철이 2007년 이탈리아 요리사 G씨에 이어 팝페라 가수 정모 씨와의 간통 혐의로 고소한 것.
이후 그는 정씨와의 간통 혐의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에 간통죄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다. 당시 옥소리의 변호사는 “간통죄는 민사 법정에서 다뤄야 할 문제이지 형사 법정에 세워야 할 문제가 아니다. 간통죄는 이미 파탄 난 혼인만 존재하는 상태에서 혼인의 원상 회복과는 무관하게 배우자의 복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08년 10월 30일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간통죄 합헌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12월 17일 그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정씨에게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08년 10월 30일 이후 형이 확정된 만큼 이들은 재심을 청구할 자격이 있다. 재심을 청구해 무죄가 선고되면 전과 기록이 삭제되고, 경우에 따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수도 있다. 피소 직전 해외로 출국해 기소 중지 상태였던 G씨와 옥소리의 간통 사건도 간통죄 폐지로 종결됐다. G씨의 지명수배도 풀렸다. 옥소리는 G씨와 4년 전 해외에서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탁재훈도 간통죄 폐지의 수혜자로 꼽힌다. 그의 아내 이효림 씨는 2월 남편이 세 명의 여성과 부정한 사이였다는 주장을 펴며 탁재훈을 간통 혐의로 고소했지만 간통죄 위헌 판결로 수사할 명분이 사라졌다. 간통죄 고소는 효력을 잃었지만 이씨가 탁재훈과 세 여성을 형사고소하기에 앞서 민사적 해결을 위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이혼소송이 진행 중이라 탁재훈에게 유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탁재훈 씨가 가족에게 생활비를 안 주고 내연녀에게 돈을 줬다는 이씨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씨에게 위자료를 지불해야 함은 물론 재산분할 과정에서 불리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이혼소송 중인 김주하는 탁재훈과 반대로 간통제 폐지의 피해자로 거론된다. 김주하는 전남편이 미국에서 혼외자를 출산했다는 한 매체의 보도 내용을 근거로 전남편을 간통 혐의로 고소했지만 이 역시 자동으로 취소됐다. 그의 법적 대리인 양소영 변호사는 “만일 성관계를 입증할 증거인 아이를 낳은 게 사실이라면 실형도 받을 수 있는데 간통죄가 폐지돼 김주하 씨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주하의 이혼소송은 가정 폭력이 쟁점인데 이미 그에 관한 1심과 전남편이 제기한 항소심에서 유죄가 확정된 만큼 남편에게 폭력 등 귀책사유에 대한 위자료를 받을 수 있다”면서 “이혼소송 1심에서는 그에 따른 위자료로 5천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났는데 가정 파탄의 책임에 비해 너무 적은 것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항소심에서는 그보다 많은 1억원 정도가 위자료로 책정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주하는 최근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예방 강사로 위촉됐다.
■ 디자인 · 이지은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2월 26일 형법 241조의 간통죄 처벌 규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이로써 간통죄는 법 제정 6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한민국 형법에서 간통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다룬 것은 1953년부터지만 그 기원은 고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헌법재판소는 2008년 10월 30일 간통죄 처벌 조항에 대한 합헌 결정문에서 ‘간통죄는 우리 민족 최초의 법인 고조선의 8조법금(法禁)에서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통설’이라고 밝힌 바 있다.
1905년 공포된 대한제국 형법대전에서는 유부녀가 간통을 저지른 경우 그와 상간한 사람을 6개월 이상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제정된 조선형사령에서는 유부녀와 그 상간자의 간통을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케 했다. 그때는 유부남과 상간녀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어 간통한 유부녀만 죗값을 치렀다.
이후 30여 년간 부인의 간통만을 문제 삼던 간통법은 1953년 대한민국 형법이 제정될 당시 간통한 남녀 모두 같은 처벌을 받도록 개정됐다. 남녀평등처벌원칙에 따라 ‘일벌죄’에서 ‘쌍벌죄’로 바뀐 것이다. 이에 앞서 대법원은 1952년 부인의 간통만 처벌하도록 한 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최근까지 간통죄는 1953년 제정된 법 조항을 그대로 적용했다. 형법 241조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간통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그와 간통을 저지른 제3자도 같은 처벌을 받게 했다. 이후 간통죄의 존폐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1990년부터 2008년까지 4번에 걸쳐 간통죄 위헌 여부를 다루는 헌법 재판이 열렸고, 모두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는 2월 26일 앞서 선고한 네 차례의 합헌 결정을 뒤집고 ‘국가가 법률로 간통을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성에 대한 국민의 법 감정이 변했고 처벌의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국민의 인식 변화와 성 개방 풍조, 여성의 경제력 상승 등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전 세계적으로 간통죄가 폐지되는 추세고, 더 이상 간통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들에게 자유롭게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간통죄가 정책상 예방 효과를 거두기 어려워졌고, 공갈 등 다른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의 이 같은 결정에 따라 간통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2008년 10월 30일 이후 간통 혐의로 기소되거나 유죄가 확정된 5천4백66명은 공소 취소나 재심 청구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게 됐다.
간통죄는 현재 유교권인 아시아에서도 대만, 필리핀 등의 국가에서만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대만은 간통죄 법정형이 1년 이하 징역이다. 중국은 현역 군인의 부인과 간통한 경우에만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일본은 1947년 간통죄를 없앴다. 서방 국가들은 이보다 앞서 간통죄를 폐지했다. 프랑스는 프랑스대혁명 때인 1791년 간통죄 처벌 규정을 없앴고 이후 간통죄를 잠시 되살렸다가 1975년 형법 개정 때 다시 폐지했다. 덴마크(1930년), 스웨덴(1937년), 오스트리아(1996년)까지 유럽연합(EU) 회원국 대부분이 간통죄를 폐지했다. 미국은 52개 주 가운데 20여 개 주에서 간통죄를 형법에 두고 있지만 실제로 처벌된 사례는 거의 없다. 세계적 추세와 달리 중동 지역의 일부 이슬람 국가는 간통죄를 엄하게 다스린다. 이란에서는 지금도 간통한 여성을 가슴까지, 상대 남성을 허리까지 땅에 묻고 돌팔매질하는 형벌에 처한다.
최무룡, 김지미, 정윤희, 황수정 등 ‘흑역사’
많은 논란이 일던 간통죄가 폐지됐지만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찬반 의견이 여전히 비등하게 맞서고 있어서다. 찬성표가 많은 직종 중 하나는 연예인이다. 사생활이 노출되기 쉬운 연예인들은 간통 여부와 상관없이 간통죄로 고소만 당해도 이미지가 실추된 게 사실. 게다가 간통죄는 일단 경찰에 고소가 들어가면 수사가 불가피해 연예인으로서의 생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특히 간통죄의 위헌 논란이 일기 전인 1980년대까지는 간통죄를 구속 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바로 언론 매체의 사회면을 장식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방송 출연 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일쑤였다.
연예계의 ‘간통죄 1호’로 기록된 스타는 1950년대 간통죄로 피소돼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배우 최은희(89)다. 18세에 12세 연상인 촬영기사와 결혼한 최은희는 신상옥 감독과 간통한 혐의로 고소된 사실이 알려지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법원은 두 사람을 처벌하지 않았고 이후 둘은 결혼했다. 최은희는 2013년 한 아침 방송에 출연해 “기자들이 전남편과 이미 이혼한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전남편과는 혼인신고도 안 했는데, 헤어진 상태에서 전남편이 나와 신 감독과의 사랑을 질투해 우리를 고소했다. 법정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걸로 밝혀졌지만 그 때문에 영화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다. 젊은 총각 감독이 대선배의 부인을 꼬드겼다고 오해했다”고 밝혔다.
1962년엔 당대 톱스타였던 배우 최무룡과 떠오르는 신인 배우였던 김지미(75)가 간통으로 피소됐다. 이들을 고소한 사람은 최무룡의 아내이자 최민수의 모친인 배우 강효실이었다. 당시 강효실은 최민수를 출산하고 10여 일 만에 이들의 간통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최무룡과 김지미는 피소 후 간통 혐의를 시인했고 결국 구속됐다. 하지만 김지미가 자신의 집까지 팔아 강효실에게 위자료 명목으로 3백만원을 주고 합의를 해 구속 일주일 만에 두 사람 모두 풀려났다.
1975년 1월에는 당시 22세였던 태진아(62)가 26세 연상의 대기업 사장 부인 김모 씨와 간통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후 김씨와 그의 남편이 이혼에 합의하면서 고소가 취하됐고 태진아는 구속 10여 일 만에 석방됐다. 그해 6월에는 배우 김영애(64)가 밴드 마스터 이종옥과의 간통 혐의로 고소를 당한다. 당시 김영애는 언론 매체를 통해 “배우 생활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헤어질 수 없는 사이다. 언젠가는 결혼식을 올릴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두 사람은 결국 1979년 정식 부부가 되지만 2000년 남남으로 갈라섰다.
1984년 터진 당대 최고의 미녀 스타 정윤희(61)의 간통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던졌다. 정윤희를 간통죄로 고소한 당사자는 조규영(69) 당시 중앙산업개발 회장의 부인이었다. 바로 구속됐던 정윤희는 조 회장이 위자료를 제시해 부인의 합의를 이끌어낸 후 석방됐고 그해 조 회장과 결혼하며 연예계를 은퇴했다. 1989년엔 가수 유연실(52)이 간통 현장을 남편에게 들켜 경찰에 연행된다. 이후 남편의 고소 취하로 풀려난 유연실은 남편과 위자료 문제 등으로 다퉈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2002년 드라마 ‘허준’에서 예진 아씨 역으로 열연하며 뭇 남성의 로망으로 등극했던 황수정(43)도 간통 혐의로 피소됐다. 황수정은 당시 서울 강남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던 유부남 강모 씨와 함께 필로폰 등을 투약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고, 그 와중에 강씨의 부인에게 간통 혐의로 피소된 것. 이후 강씨의 부인이 강씨와 합의한 후 고소를 취하하면서 이 사건은 종결됐지만 이미지가 추락해 방송 활동을 재개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김주하, 옥소리·탁재훈과 희비 엇갈려
간통죄 폐지 후 희비가 엇갈린 연예인도 있다. 간통죄 위헌 결정의 효력이 발효되는 시점인 2008년 10월 30일 이후 형이 확정되거나 재판에 계류 중이던 간통 사건의 당사자인 배우 옥소리(47)와 가수 탁재훈(47), 최근 MBC에 사표를 낸 앵커 출신 방송인 김주하(43)가 그들.
옥소리는 이례적으로 두 건의 간통 혐의로 피소됐다. 남편인 박철이 2007년 이탈리아 요리사 G씨에 이어 팝페라 가수 정모 씨와의 간통 혐의로 고소한 것.
이후 그는 정씨와의 간통 혐의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에 간통죄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다. 당시 옥소리의 변호사는 “간통죄는 민사 법정에서 다뤄야 할 문제이지 형사 법정에 세워야 할 문제가 아니다. 간통죄는 이미 파탄 난 혼인만 존재하는 상태에서 혼인의 원상 회복과는 무관하게 배우자의 복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08년 10월 30일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간통죄 합헌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12월 17일 그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정씨에게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08년 10월 30일 이후 형이 확정된 만큼 이들은 재심을 청구할 자격이 있다. 재심을 청구해 무죄가 선고되면 전과 기록이 삭제되고, 경우에 따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수도 있다. 피소 직전 해외로 출국해 기소 중지 상태였던 G씨와 옥소리의 간통 사건도 간통죄 폐지로 종결됐다. G씨의 지명수배도 풀렸다. 옥소리는 G씨와 4년 전 해외에서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탁재훈도 간통죄 폐지의 수혜자로 꼽힌다. 그의 아내 이효림 씨는 2월 남편이 세 명의 여성과 부정한 사이였다는 주장을 펴며 탁재훈을 간통 혐의로 고소했지만 간통죄 위헌 판결로 수사할 명분이 사라졌다. 간통죄 고소는 효력을 잃었지만 이씨가 탁재훈과 세 여성을 형사고소하기에 앞서 민사적 해결을 위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이혼소송이 진행 중이라 탁재훈에게 유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탁재훈 씨가 가족에게 생활비를 안 주고 내연녀에게 돈을 줬다는 이씨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씨에게 위자료를 지불해야 함은 물론 재산분할 과정에서 불리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이혼소송 중인 김주하는 탁재훈과 반대로 간통제 폐지의 피해자로 거론된다. 김주하는 전남편이 미국에서 혼외자를 출산했다는 한 매체의 보도 내용을 근거로 전남편을 간통 혐의로 고소했지만 이 역시 자동으로 취소됐다. 그의 법적 대리인 양소영 변호사는 “만일 성관계를 입증할 증거인 아이를 낳은 게 사실이라면 실형도 받을 수 있는데 간통죄가 폐지돼 김주하 씨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주하의 이혼소송은 가정 폭력이 쟁점인데 이미 그에 관한 1심과 전남편이 제기한 항소심에서 유죄가 확정된 만큼 남편에게 폭력 등 귀책사유에 대한 위자료를 받을 수 있다”면서 “이혼소송 1심에서는 그에 따른 위자료로 5천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났는데 가정 파탄의 책임에 비해 너무 적은 것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항소심에서는 그보다 많은 1억원 정도가 위자료로 책정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주하는 최근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예방 강사로 위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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