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를 지망하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요즘 최고의 롤 모델은 단연 계한희(27)다. 2009년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에 세계 3대 패션 스쿨인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학교 최연소 입학자로 출전해 화제를 모은 그는 이듬해 온스타일 ‘팔로우 미’에서 영국 유학 생활을 공개하고, 디자이너로서의 발전 가능성을 보이며 패션 피플 사이에서 동경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졸업과 동시에 2011 F/W 런던패션위크에 브랜드 KYE(카이)로 데뷔한 그는 2012 S/S 런던 컬렉션에서 ‘남성복 부문 주목할 만한 신인상’을 수상했고, 2013 S/S 서울패션위크 데뷔 후 K-pop스타들이 선호하는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렸다. ‘빅뱅’ 지드래곤, ‘투애니원’ 씨엘, 모델 이수혁 등과는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 2013년 한국 정부의 패션 진흥 프로젝트인 ‘컨셉코리아’ 수상자로 선정돼 뉴욕패션위크에 데뷔한 그는 지금까지 5회 연속 컬렉션을 발표했고, 세계 다수의 언론 매체를 통해 ‘주목받는 신진 디자이너’로 인정받았다. 이처럼 화려한 이력을 발판 삼아 드디어 2014년 11월 말, 신인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꿈꾸는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Samsung Fashion&Design Fund)’ 제10회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한국 출신 디자이너들에게 세계로 향하는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자 제일모직이 2005년부터 시작한 SFDF는 그동안 총 17팀에게 2백50만 달러(약 27억 5천만원)를 지원했으며 2012년 시작된 SFDF Scholarship을 통해 뉴욕과 런던, 서울의 패션학도 28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이러한 삼성의 지원으로 그동안 SFDF와 인연을 맺은 젊은 디자이너들은 뉴욕, 런던, 파리, 밀라노 등 글로벌 패션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지난 12월 중순, 서울 강남구 신사동 KYE 작업실에서 계한희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진한 스모키 메이크업에 긴 생머리로 기자를 맞았다. 많은 사람들이 ‘포스’의 원천이라고 부르는. 또한 진중함과 발랄함을 오가는 말투는,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스트리트 패션임에도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소재와 디테일로 상업적 매력을 유지하는 KYE의 옷들과 닮아 있었다. 그에게 먼저 SFDF 수상 관련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사회적 문제, 위트와 유머로 풀고 싶어
“학교 다닐 때부터 받고 싶었던 상인데 두 번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삼수’ 끝에 드디어 받았어요(웃음). 특히 10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해에 받아서 더욱 감사하고 기뻐요. SFDF는 세계적으로 공신력 있는 어워드인 만큼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고 싶어하는 상이죠. SFDF 수상자로 선정되기까지 과정이 꽤 긴데, 후보 디자이너들의 활동지를 몇 차례에 걸쳐 직접 방문해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를 철저히 탐색해요. 이번에 저와 함께 뽑힌 박종우 디자이너의 경우 일본이 본거지라 SFDF 관계자들께서 일본을 직접 방문했고, 저의 경우는 뉴욕에서 하는 쇼를 몇 년 동안 지켜보셨어요. 그렇기에 10만 달러(약 1억원)라는 상금보다도 수상자 스스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어 의미가 깊죠.”
SFDF 수상에 앞서 지난해 초 처음 열린 루이비통 그룹 주최 세계 영 패션 디자이너 선발대회(LVMH Prize)에서는 아시아인으로 유일하게 준결승에 진출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그는 샤넬의 칼 라거펠트, 루이비통의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등 세계 패션 거장들로부터 “천재적”이라는 평을 받아 또 한 번 놀라움을 안겼다. 하지만 그는 천재라는 표현 대신 “특출나게 감각적이진 않지만 디자인에 진정성을 담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와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뮤지션과 미술가들이 자신의 생각을 음악과 그림으로 풀어내는 것처럼 저 역시 순수 예술가는 아니지만 디자이너로서 작품에 저만의 메시지를 담으려고 해요. 옷에 사회적 이슈를 담아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매개체로 삼고 싶어요. 그렇다고 너무 무겁거나 진지하지만은 않아요. KYE가 진정 추구하는 건 패션의 위트와 유머, 즐거움이거든요.”
실제로 계한희 디자이너는 사회적인 문제를 디자인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예술적 모티프를 상업적인 제품으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그는 ‘학교 폭력’ ‘한국의 젊은 실업자와 집이 없는 사람들’ 같은 사회적 이슈를 그만의 독창적인 해석으로 의상에 접목한다. 대표적으로 2014 F/W 컬렉션 ‘Contrast and identity’는 블랙과 화이트, 체인, 로프 등의 요소를 럭셔리하고 시크하게 변형해 흥미를 자아냈다. 모든 컬러와 물체를 고정된 이미지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새로운 특성을 창조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계한희는 “화이트와 블랙은 선과 악, 옮음과 그름 등 상호 분리된 세계가 아닌 새롭게 혼합된 시크한 컬러로 재탄생했고, 체인과 로프는 압박이나 자유의 결여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두 컬러를 서로 연결하는 문양”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Youth in hives’를 테마로 한 2015 S/S 컬렉션은 체인 모티프와 입체적인 벌 패턴이 어우러져 모던하면서도 섹시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벌의 소멸이 곧 지구 생명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생태계에 대한 경고로 메인 모티프인 벌을 오브제로 차용, 벌집을 체인에 비유하고 레이저 커팅 기법을 통해 여백의 구조물을 표현했다. 또한 가죽과 우븐을 믹스 매치해 단순한 실루엣에 디테일을 추가했다.
수익보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높이기 위해 노력
현재 KYE 제품은 단독 브랜드 숍 없이 국내에서는 편집 숍 여섯 군데에서만 판매하고 있다. 매출의 80%는 해외 수출이 차지하는데, 주로 뉴욕·런던·캐나다·중국·홍콩 등 해외 편집 숍에서 KYE 옷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중국과 홍콩에서 반응이 좋다고 한다. 지난 6월에는 CJ오쇼핑과 (사)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가 K-fashion 육성을 위해 론칭한 ‘CFDK’ 브랜드를 통해 허환·김문수 디자이너와 함께 합리적인 가격으로 홈쇼핑 판매를 진행했는데 방송 중 전 상품이 매진돼 대중성도 인정받았다.
계한희는 촉망받는 디자이너인 동시에 중고생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엄친딸’이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최연소’ 입학자라는 타이틀로 유명세를 탄 만큼 그에게 한동안 이메일과 SNS를 통해 입시 노하우 및 디자이너 관련 진로를 물어오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한 명 한 명에게 답을 보냈지만 어느 순간 일일이 응대할 수 없는 상황이 돼 2014년에는 자신의 멘토링을 담은 책 ‘좋아 보여’를 펴냈다. 책에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가 뭔지 꾸준히 고민하고 결국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할 수 있었던 계한희의 성장스토리와 함께 실전에 강한 입시 노하우를 공개했다.
“요즘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친구들이 많은데, 사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열악한 현실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아요. 아직 저도 시작 단계라 부족한 점이 많지만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다 해주고 싶어요. 지금까지 극복하지 못할 위기는 없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죠(웃음).”
회사원인 아버지와 동양화를 전공한 어머니 사이에서 외동딸로 자란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6세 때 한국으로 와 서울국제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와 달리 외국인 친구들 사이에서 자유분방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어려서부터 무엇이 자신과 잘 맞는지를 끊임없이 탐구한 결과 일찌감치 진로를 정할 수 있었다. 미술과 옷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방학 때면 해외 유명 중·고등학교를 직접 찾아가 3D 아트, 파인 아트, 의상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계절학기를 듣기도 했다. 그 결과 패션디자이너를 최종 목표로 정했고, 그때부터 온갖 옷 가게와 편집 매장을 둘러보며 고등학생 용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옷들을 당당하게 구경하고 입어봤다. 또 압구정동 한 커피숍에 앉아 한국에 수입이 안 되는 외국 브랜드의 옷들을 실컷 구경하며 놀기도 했다.
가장 든든한 서포터즈는 부모
계한희는 고2 때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입학허가서를 받아 고3 때 진학이 가능했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졸업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1년 더 한국에서 공부한 뒤 0학년 대신 1학년으로 월반해 대학에 진학했다. 그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최연소 입학자이자 졸업자인 이유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화려한 타이틀을 안고 대학 문을 통과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미국식 교육에 익숙했던 그는 과정을 더욱 중시하는 유럽식 교육 방식에 적응하기 위해 매일 밤을 새우며 공부했다고 한다.
“원래 노는 걸 좋아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했어요. 대학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들어간 이유도 그 래서죠. 저희 학교는 대학보다 대학원 과정을 더욱 쳐주는데, 그건 졸업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에요.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갈 때 30%가 제적을 당하고 졸업쇼도 재학생 중 30%만 선출돼 열 수 있죠. 작품 준비 기간에는 혹시 정보가 유출될까 봐 학생들이 쓰레기 하나도 다 집으로 가져가요.”
이처럼 치열하고 숨 막히는 과정 속에서 그가 힘이 들 때마다 가장 큰 의지가 된 사람은 부모님이라고 한다. 요즘도 부모님은 그에게 가장 든든한 서포터즈기 돼주고 있다.
“처음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했을 때는 차라리 순수 예술을 하라며 반대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워낙 자립심을 강조하셔서 서운한 마음에 운 적도 있지만 결국 지금의 저를 만든 건 그부모님의 그런 교육 철칙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저보다 더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제가 미처 보지 못한 컬렉션까지 다 챙겨서 보고 얘기해주세요(웃음). 이런 말을 하면 동료 디자이너들이 부러워해요. 부모님과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는 게 행복하죠.”
부모에게서 독립한 그는 두 살 된 퍼그 ‘휘남이’와 함께 살고 있다. 10년 넘게 채식 중이고 옷 다음으로 좋아하는 건 영화와 맛있는 음식. 이번 SFDF에서 받은 상금은 전액 차기 컬렉션 준비에 쓸 생각이다. 새해 계획은 의상 디자인 외에도 다양한 예술 분야를 접목해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지난 10월에는 W호텔에서 한 달 동안 ‘카이 메뉴’를 선보였는데, 올해는 대림미술관 구슬모아당구장과 함께 아트 전시를 계획 중이에요. 예술과 디자인의 접점을 찾는 과정이 흥미롭고, 앞으로도 이런 시도를 많이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이제 4년 차 된 신인 디자이너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옷을 선보이고, 품위 있는 컬렉션을 많이 여는 거예요. 앞으로 많이 기대해주세요(웃음).”
■ 디자인·최진이 기자
졸업과 동시에 2011 F/W 런던패션위크에 브랜드 KYE(카이)로 데뷔한 그는 2012 S/S 런던 컬렉션에서 ‘남성복 부문 주목할 만한 신인상’을 수상했고, 2013 S/S 서울패션위크 데뷔 후 K-pop스타들이 선호하는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렸다. ‘빅뱅’ 지드래곤, ‘투애니원’ 씨엘, 모델 이수혁 등과는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 2013년 한국 정부의 패션 진흥 프로젝트인 ‘컨셉코리아’ 수상자로 선정돼 뉴욕패션위크에 데뷔한 그는 지금까지 5회 연속 컬렉션을 발표했고, 세계 다수의 언론 매체를 통해 ‘주목받는 신진 디자이너’로 인정받았다. 이처럼 화려한 이력을 발판 삼아 드디어 2014년 11월 말, 신인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꿈꾸는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Samsung Fashion&Design Fund)’ 제10회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한국 출신 디자이너들에게 세계로 향하는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자 제일모직이 2005년부터 시작한 SFDF는 그동안 총 17팀에게 2백50만 달러(약 27억 5천만원)를 지원했으며 2012년 시작된 SFDF Scholarship을 통해 뉴욕과 런던, 서울의 패션학도 28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이러한 삼성의 지원으로 그동안 SFDF와 인연을 맺은 젊은 디자이너들은 뉴욕, 런던, 파리, 밀라노 등 글로벌 패션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지난 12월 중순, 서울 강남구 신사동 KYE 작업실에서 계한희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진한 스모키 메이크업에 긴 생머리로 기자를 맞았다. 많은 사람들이 ‘포스’의 원천이라고 부르는. 또한 진중함과 발랄함을 오가는 말투는,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스트리트 패션임에도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소재와 디테일로 상업적 매력을 유지하는 KYE의 옷들과 닮아 있었다. 그에게 먼저 SFDF 수상 관련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사회적 문제, 위트와 유머로 풀고 싶어
“학교 다닐 때부터 받고 싶었던 상인데 두 번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삼수’ 끝에 드디어 받았어요(웃음). 특히 10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해에 받아서 더욱 감사하고 기뻐요. SFDF는 세계적으로 공신력 있는 어워드인 만큼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고 싶어하는 상이죠. SFDF 수상자로 선정되기까지 과정이 꽤 긴데, 후보 디자이너들의 활동지를 몇 차례에 걸쳐 직접 방문해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를 철저히 탐색해요. 이번에 저와 함께 뽑힌 박종우 디자이너의 경우 일본이 본거지라 SFDF 관계자들께서 일본을 직접 방문했고, 저의 경우는 뉴욕에서 하는 쇼를 몇 년 동안 지켜보셨어요. 그렇기에 10만 달러(약 1억원)라는 상금보다도 수상자 스스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어 의미가 깊죠.”
SFDF 수상에 앞서 지난해 초 처음 열린 루이비통 그룹 주최 세계 영 패션 디자이너 선발대회(LVMH Prize)에서는 아시아인으로 유일하게 준결승에 진출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그는 샤넬의 칼 라거펠트, 루이비통의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등 세계 패션 거장들로부터 “천재적”이라는 평을 받아 또 한 번 놀라움을 안겼다. 하지만 그는 천재라는 표현 대신 “특출나게 감각적이진 않지만 디자인에 진정성을 담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와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뮤지션과 미술가들이 자신의 생각을 음악과 그림으로 풀어내는 것처럼 저 역시 순수 예술가는 아니지만 디자이너로서 작품에 저만의 메시지를 담으려고 해요. 옷에 사회적 이슈를 담아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매개체로 삼고 싶어요. 그렇다고 너무 무겁거나 진지하지만은 않아요. KYE가 진정 추구하는 건 패션의 위트와 유머, 즐거움이거든요.”
실제로 계한희 디자이너는 사회적인 문제를 디자인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예술적 모티프를 상업적인 제품으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그는 ‘학교 폭력’ ‘한국의 젊은 실업자와 집이 없는 사람들’ 같은 사회적 이슈를 그만의 독창적인 해석으로 의상에 접목한다. 대표적으로 2014 F/W 컬렉션 ‘Contrast and identity’는 블랙과 화이트, 체인, 로프 등의 요소를 럭셔리하고 시크하게 변형해 흥미를 자아냈다. 모든 컬러와 물체를 고정된 이미지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새로운 특성을 창조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계한희는 “화이트와 블랙은 선과 악, 옮음과 그름 등 상호 분리된 세계가 아닌 새롭게 혼합된 시크한 컬러로 재탄생했고, 체인과 로프는 압박이나 자유의 결여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두 컬러를 서로 연결하는 문양”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Youth in hives’를 테마로 한 2015 S/S 컬렉션은 체인 모티프와 입체적인 벌 패턴이 어우러져 모던하면서도 섹시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벌의 소멸이 곧 지구 생명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생태계에 대한 경고로 메인 모티프인 벌을 오브제로 차용, 벌집을 체인에 비유하고 레이저 커팅 기법을 통해 여백의 구조물을 표현했다. 또한 가죽과 우븐을 믹스 매치해 단순한 실루엣에 디테일을 추가했다.
계한희는 20대 혈기왕성한 신인 디자이너답게 의상 디자인 외에도 패션과 아트를 접목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싶다고 한다.
현재 KYE 제품은 단독 브랜드 숍 없이 국내에서는 편집 숍 여섯 군데에서만 판매하고 있다. 매출의 80%는 해외 수출이 차지하는데, 주로 뉴욕·런던·캐나다·중국·홍콩 등 해외 편집 숍에서 KYE 옷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중국과 홍콩에서 반응이 좋다고 한다. 지난 6월에는 CJ오쇼핑과 (사)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가 K-fashion 육성을 위해 론칭한 ‘CFDK’ 브랜드를 통해 허환·김문수 디자이너와 함께 합리적인 가격으로 홈쇼핑 판매를 진행했는데 방송 중 전 상품이 매진돼 대중성도 인정받았다.
계한희는 촉망받는 디자이너인 동시에 중고생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엄친딸’이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최연소’ 입학자라는 타이틀로 유명세를 탄 만큼 그에게 한동안 이메일과 SNS를 통해 입시 노하우 및 디자이너 관련 진로를 물어오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한 명 한 명에게 답을 보냈지만 어느 순간 일일이 응대할 수 없는 상황이 돼 2014년에는 자신의 멘토링을 담은 책 ‘좋아 보여’를 펴냈다. 책에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가 뭔지 꾸준히 고민하고 결국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할 수 있었던 계한희의 성장스토리와 함께 실전에 강한 입시 노하우를 공개했다.
“요즘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친구들이 많은데, 사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열악한 현실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아요. 아직 저도 시작 단계라 부족한 점이 많지만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다 해주고 싶어요. 지금까지 극복하지 못할 위기는 없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죠(웃음).”
회사원인 아버지와 동양화를 전공한 어머니 사이에서 외동딸로 자란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6세 때 한국으로 와 서울국제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와 달리 외국인 친구들 사이에서 자유분방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어려서부터 무엇이 자신과 잘 맞는지를 끊임없이 탐구한 결과 일찌감치 진로를 정할 수 있었다. 미술과 옷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방학 때면 해외 유명 중·고등학교를 직접 찾아가 3D 아트, 파인 아트, 의상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계절학기를 듣기도 했다. 그 결과 패션디자이너를 최종 목표로 정했고, 그때부터 온갖 옷 가게와 편집 매장을 둘러보며 고등학생 용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옷들을 당당하게 구경하고 입어봤다. 또 압구정동 한 커피숍에 앉아 한국에 수입이 안 되는 외국 브랜드의 옷들을 실컷 구경하며 놀기도 했다.
가장 든든한 서포터즈는 부모
kye의 시그니처 문양 로프와 체인. 사회문제를 하이패션으로 풀어났다는 평을 받는다.
“원래 노는 걸 좋아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했어요. 대학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들어간 이유도 그 래서죠. 저희 학교는 대학보다 대학원 과정을 더욱 쳐주는데, 그건 졸업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에요.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갈 때 30%가 제적을 당하고 졸업쇼도 재학생 중 30%만 선출돼 열 수 있죠. 작품 준비 기간에는 혹시 정보가 유출될까 봐 학생들이 쓰레기 하나도 다 집으로 가져가요.”
이처럼 치열하고 숨 막히는 과정 속에서 그가 힘이 들 때마다 가장 큰 의지가 된 사람은 부모님이라고 한다. 요즘도 부모님은 그에게 가장 든든한 서포터즈기 돼주고 있다.
“처음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했을 때는 차라리 순수 예술을 하라며 반대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워낙 자립심을 강조하셔서 서운한 마음에 운 적도 있지만 결국 지금의 저를 만든 건 그부모님의 그런 교육 철칙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저보다 더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제가 미처 보지 못한 컬렉션까지 다 챙겨서 보고 얘기해주세요(웃음). 이런 말을 하면 동료 디자이너들이 부러워해요. 부모님과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는 게 행복하죠.”
부모에게서 독립한 그는 두 살 된 퍼그 ‘휘남이’와 함께 살고 있다. 10년 넘게 채식 중이고 옷 다음으로 좋아하는 건 영화와 맛있는 음식. 이번 SFDF에서 받은 상금은 전액 차기 컬렉션 준비에 쓸 생각이다. 새해 계획은 의상 디자인 외에도 다양한 예술 분야를 접목해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지난 10월에는 W호텔에서 한 달 동안 ‘카이 메뉴’를 선보였는데, 올해는 대림미술관 구슬모아당구장과 함께 아트 전시를 계획 중이에요. 예술과 디자인의 접점을 찾는 과정이 흥미롭고, 앞으로도 이런 시도를 많이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이제 4년 차 된 신인 디자이너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옷을 선보이고, 품위 있는 컬렉션을 많이 여는 거예요. 앞으로 많이 기대해주세요(웃음).”
■ 디자인·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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