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1일 스위스 다보스의 벨베데레 호텔.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하는 귀빈들의 사교 클럽으로 통하는 유서 깊은 이곳에서 ‘한국의 밤’ 행사가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과 해외 유명 기업 CEO, 국내 경영인들로 성황을 이룬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한식 메뉴가 포함된 만찬. 이날 행사에 참가한 인사들은 비빔밥, 닭강정, 만두 샐러드 등 한식의 깔끔한 맛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 이어 글로벌 스타 싸이가 영어로 건배 제의를 하면서 “가수인 내가 세계적인 경제인들이 모이는 자리에 온 것 자체가 창조경제라고 생각한다”고 농담을 던져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했다. 한식과 한류, 박근혜 정부의 모토인 ‘창조경제’를 글로벌 리더들에게 동시에 각인시킨 의미 깊은 행사였다.
엔터테인먼트와 사업 조화시키는 탁월한 능력
이날 만찬 메뉴를 준비하고, 싸이를 행사에 참석하도록 제안한 이는 다름 아닌 이미경(56) CJ E&M 총괄 부회장이다. 대외 활동을 활발히 하며 미디어 노출도 적당히 활용하는 다른 재벌가 여성 경영인들과 달리, 이미경 부회장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극도로 꺼려왔다. ‘CJ E&M을 세계적인 콘텐츠 기업으로 키운 작은 거인’ 정도로 인식되던 그는 ‘한국의 밤’ 행사 며칠 후에는 뉴욕에 근거를 둔 통신사 블룸버그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블룸버그 마켓츠’(Bloomberg Markets)와 처음으로 공식 인터뷰를 하며 신비주의 베일을 벗어 던졌다.
그의 달라진 행보의 배경에는 횡령과 탈세 혐의로 징역을 선고받은 데다 신장이식 수술을 받는 등 여러모로 곤경에 처한 동생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재현 회장 구속 전부터 재계 안팎에서는 그의 외삼촌인 손경식 공동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이 CJ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미경 부회장도 ‘블룸버그 마켓츠’와의 인터뷰에서 “전에 비해 더 오랫동안 일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사업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고, 재무제표 같은 것을 보는 시간도 길어졌다”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이미경 부회장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너가의 일원이라기보다는 전문경영인에 가까운 관록과 능력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지난해만 해도 그가 이끄는 CJ E&M은 ‘설국열차’ ‘베를린’ 같은 영화들을 투자·배급하고, CGV를 통해 지난 한해 전체 극장 관객 2억 명 중 절반인 1억 명을 끌어 모았으며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와 ‘꽃보다 할배’로 대박을 냈고, MAMA(Mnet Asia Music Awards)로 한류를 세계에 널리 전파했다. CJ의 가장 큰 장점은 문화 콘텐츠와 기업의 다른 부문들이 막강한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점이다. 맥스봉을 먹으며 ‘응사’를 보고, 채널을 돌리다 CJ 오쇼핑에서 옷을 구입하고, 그걸 입고 CGV에 가서 CJ가 투자한 영화를 본 후, 제일제면소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것은 충분히 상상 가능한 일상이다. CJ 제품의 매출을 증대시킬 수 있는 한류의 인기 요소를 선별해내는 감각, 이미경 부회장이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는 부분이 바로 그 지점이다.
이미경 부회장의 경영 능력은 자신의 말처럼 DNA에 각인돼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블룸버그 마켓츠’ 인터뷰에서 “할아버지에게 사업은 단 한 번도 편하게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산업을 일궈내고 일자리를 만들어 국가에 기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 가르침은 나와 동생의 DNA 속에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손녀이자, ‘비운의 황태자’로 더 유명한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맏딸이다. 경기여고, 서울대 가정관리학과를 거쳐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동아시아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 중국 후단대에서 역사교육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는 동안 문화에 관심 가져
CJ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원래 학자의 길을 가고자 했던 그가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하버드대에서 공부할 때 한국에 대한 열악한 인식을 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당시 하버드대에는 한국학을 비롯해 일본학, 중국학, 몽골학까지 동아시아 관련된 다양한 강의가 있었다. 일본이나 중국 강의에는 학생들이 엄청나게 몰려 대강당에서 수업을 하는데, 한국 관련 강의를 듣는 학생은 고작 15~20명에 불과했다. 심지어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해 교수를 고용하는 데도 한계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했던 그는 1년 반 동안 월급을 받지 않고 무료로 TA(Teaching Assistant)를 자원해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때 학생으로 김용 세계은행 총재를 만났고 좋은 친구로까지 발전하게 됐다. 그리고 당시 문화적 충격은 결국 ‘훌륭한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1994년 제일제당에 입사, 경영에 발을 디딘 그가 엔터테인먼트통으로 이름을 알린 계기는 1995년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프리 카젠버그가 공동 창립한 드림웍스와 계약을 성사시키면서부터. 당시 이미경 부회장은 미국으로 직접 날아가 협상을 주도하며 카젠버그와 스필버그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CJ는 드림웍스에 3천억원을 투자하는 조건으로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의 영화 배급권을 얻었다. 이 계약은 두 회사에 모두 윈윈으로 작용해서 드림웍스는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회사로, CJ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제프리 카젠버그는 지난해 한국 방문 때 인터뷰에서 “이미경 부회장은 최고의 파트너다. CJ의 투자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드림웍스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CJ는 드림웍스의 지분을 정리해 더 이상 동업 관계는 아니지만, 드림웍스 작품의 국내 배급을 맡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이미경 부회장은 격식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고 콘텐츠를 중시하는 실리적인 스타일이라고 한다. CJ가 영화판에 입성한 이후 충무로의 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대기업식의 투명 회계, 사전 조사와 분석 등이 이뤄지면서 훨씬 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이다. ‘어거스트 러쉬’와 같은 해외 합작 영화를 제작하거나, ‘해운대’ ‘타워’ ‘베를린’ 등 블록버스터를 제작해 한국 영화의 판을 키운 것도 CJ의 긍정적인 영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경 부회장은 요즘 여성 경영인들이 꼭 갖춰야 할 경쟁력 중 하나인 패션에서는 주관이 뚜렷하다. 천편일률적인 정장보다 독창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블랙 컬러에 자신의 단점인 왜소한 체격을 커버할 수 있는 하이웨이스트 원피스나, 롱스커트에 볼레로를 매치한 의상을 즐겨 입는다.
이혼, 유전병… 그가 맞닥뜨린 시련들
그는 사업가로서는 승승장구했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그늘이 많은 삶을 살았다. 어릴 때는 아버지의 부재가 가장 큰 시련이었다. 이맹희 전 회장은 젊어서는 너무 바빠 가정을 돌볼 여유가 없었고,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는 부친과 갈등을 겪으며 해외로 떠도느라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이런 환경 때문에 맏딸인 그의 어깨는 늘 무거웠다. 이런 남다른 집안 환경 탓에 그와 이재현 회장,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 3남매는 재계에서도 우애가 두텁기로 유명하다.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그는 ‘샤르코-마리-투스’라는 유전성 신경질환을 앓고 있다.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의 이상으로 다리를 절게 되는 이 질환은 삼성가 3세 가운데 이미경 부회장이 가장 심하고, 이재현 회장도 50대를 넘기면서 증세가 심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경 부회장은 이른 나이인 20대 때 이 증세가 처음 나타났다고 한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젊고 똑똑한 재원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힘든 시련이었다. 그는 ‘블룸버그 마켓츠’에서 발병 초기의 충격에 대해 “처음에는 누구나 자신에게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분노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불교신자인 그는 고통스러울 때마다 명상을 통해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에게 그런 시련이 주어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니 분노가 가라앉더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살펴보면 이미경 부회장은 재벌가의 딸이지만 주어진 것에 만족하기보다 새로운 길을 끊임없이 찾아나서는 스타일로 보인다. 지금 그가 내세우는 목표는 “전 세계 사람이 일주일에 한번 한국 음식을 먹고, 때때로 한국 음악을 들으며, 일 년에 두어 번 한국영화를 보게 하는 것”이다. “이미경 부회장의 반대쪽에 배팅하지 말라”고 조언한 제프리 카젠버그의 분석이 옳다면, 이미경 부회장의 꿈이 이뤄질 날이 머지않을 것 같다.
엔터테인먼트와 사업 조화시키는 탁월한 능력
이날 만찬 메뉴를 준비하고, 싸이를 행사에 참석하도록 제안한 이는 다름 아닌 이미경(56) CJ E&M 총괄 부회장이다. 대외 활동을 활발히 하며 미디어 노출도 적당히 활용하는 다른 재벌가 여성 경영인들과 달리, 이미경 부회장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극도로 꺼려왔다. ‘CJ E&M을 세계적인 콘텐츠 기업으로 키운 작은 거인’ 정도로 인식되던 그는 ‘한국의 밤’ 행사 며칠 후에는 뉴욕에 근거를 둔 통신사 블룸버그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블룸버그 마켓츠’(Bloomberg Markets)와 처음으로 공식 인터뷰를 하며 신비주의 베일을 벗어 던졌다.
그의 달라진 행보의 배경에는 횡령과 탈세 혐의로 징역을 선고받은 데다 신장이식 수술을 받는 등 여러모로 곤경에 처한 동생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재현 회장 구속 전부터 재계 안팎에서는 그의 외삼촌인 손경식 공동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이 CJ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미경 부회장도 ‘블룸버그 마켓츠’와의 인터뷰에서 “전에 비해 더 오랫동안 일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사업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고, 재무제표 같은 것을 보는 시간도 길어졌다”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이미경 부회장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너가의 일원이라기보다는 전문경영인에 가까운 관록과 능력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지난해만 해도 그가 이끄는 CJ E&M은 ‘설국열차’ ‘베를린’ 같은 영화들을 투자·배급하고, CGV를 통해 지난 한해 전체 극장 관객 2억 명 중 절반인 1억 명을 끌어 모았으며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와 ‘꽃보다 할배’로 대박을 냈고, MAMA(Mnet Asia Music Awards)로 한류를 세계에 널리 전파했다. CJ의 가장 큰 장점은 문화 콘텐츠와 기업의 다른 부문들이 막강한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점이다. 맥스봉을 먹으며 ‘응사’를 보고, 채널을 돌리다 CJ 오쇼핑에서 옷을 구입하고, 그걸 입고 CGV에 가서 CJ가 투자한 영화를 본 후, 제일제면소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것은 충분히 상상 가능한 일상이다. CJ 제품의 매출을 증대시킬 수 있는 한류의 인기 요소를 선별해내는 감각, 이미경 부회장이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는 부분이 바로 그 지점이다.
이미경 부회장의 경영 능력은 자신의 말처럼 DNA에 각인돼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블룸버그 마켓츠’ 인터뷰에서 “할아버지에게 사업은 단 한 번도 편하게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산업을 일궈내고 일자리를 만들어 국가에 기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 가르침은 나와 동생의 DNA 속에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손녀이자, ‘비운의 황태자’로 더 유명한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맏딸이다. 경기여고, 서울대 가정관리학과를 거쳐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동아시아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 중국 후단대에서 역사교육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는 동안 문화에 관심 가져
CJ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원래 학자의 길을 가고자 했던 그가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하버드대에서 공부할 때 한국에 대한 열악한 인식을 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당시 하버드대에는 한국학을 비롯해 일본학, 중국학, 몽골학까지 동아시아 관련된 다양한 강의가 있었다. 일본이나 중국 강의에는 학생들이 엄청나게 몰려 대강당에서 수업을 하는데, 한국 관련 강의를 듣는 학생은 고작 15~20명에 불과했다. 심지어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해 교수를 고용하는 데도 한계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했던 그는 1년 반 동안 월급을 받지 않고 무료로 TA(Teaching Assistant)를 자원해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때 학생으로 김용 세계은행 총재를 만났고 좋은 친구로까지 발전하게 됐다. 그리고 당시 문화적 충격은 결국 ‘훌륭한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탁월한 사업 능력을 바탕으로 CJ E&M을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키운 이미경 부회장. 한때 사업 파트너였던 제프리 카젠버그는 “이미경 부회장의 반대쪽에 배팅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이미경 부회장은 격식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고 콘텐츠를 중시하는 실리적인 스타일이라고 한다. CJ가 영화판에 입성한 이후 충무로의 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대기업식의 투명 회계, 사전 조사와 분석 등이 이뤄지면서 훨씬 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이다. ‘어거스트 러쉬’와 같은 해외 합작 영화를 제작하거나, ‘해운대’ ‘타워’ ‘베를린’ 등 블록버스터를 제작해 한국 영화의 판을 키운 것도 CJ의 긍정적인 영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경 부회장은 요즘 여성 경영인들이 꼭 갖춰야 할 경쟁력 중 하나인 패션에서는 주관이 뚜렷하다. 천편일률적인 정장보다 독창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블랙 컬러에 자신의 단점인 왜소한 체격을 커버할 수 있는 하이웨이스트 원피스나, 롱스커트에 볼레로를 매치한 의상을 즐겨 입는다.
이혼, 유전병… 그가 맞닥뜨린 시련들
1 지난해 11월 뉴욕에서 열린 ‘한국영화의 밤’에서 할리우드 인사 및 배우들과 함께한 이미경 부회장(왼쪽에서 두 번째). 2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한국의 밤’ 행사에서 이미경 부회장은 비빔밥, 닭강정 등을 포함한 만찬 메뉴를 선보였다.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그는 ‘샤르코-마리-투스’라는 유전성 신경질환을 앓고 있다.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의 이상으로 다리를 절게 되는 이 질환은 삼성가 3세 가운데 이미경 부회장이 가장 심하고, 이재현 회장도 50대를 넘기면서 증세가 심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경 부회장은 이른 나이인 20대 때 이 증세가 처음 나타났다고 한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젊고 똑똑한 재원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힘든 시련이었다. 그는 ‘블룸버그 마켓츠’에서 발병 초기의 충격에 대해 “처음에는 누구나 자신에게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분노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불교신자인 그는 고통스러울 때마다 명상을 통해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에게 그런 시련이 주어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니 분노가 가라앉더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살펴보면 이미경 부회장은 재벌가의 딸이지만 주어진 것에 만족하기보다 새로운 길을 끊임없이 찾아나서는 스타일로 보인다. 지금 그가 내세우는 목표는 “전 세계 사람이 일주일에 한번 한국 음식을 먹고, 때때로 한국 음악을 들으며, 일 년에 두어 번 한국영화를 보게 하는 것”이다. “이미경 부회장의 반대쪽에 배팅하지 말라”고 조언한 제프리 카젠버그의 분석이 옳다면, 이미경 부회장의 꿈이 이뤄질 날이 머지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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