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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마흔의 김지호, 비로소 도전할 용기를 내다

글·구희언 기자 사진·이기욱 기자, KBS 제공

2014. 03. 14

몸은 35세, 지능은 7세인 동옥이는 2년 만에 연기 활동을 재개하는 김지호에게 커다란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한껏 들떠 있었다.

마흔의 김지호, 비로소 도전할 용기를 내다
‘왕가네 식구들’의 바통을 이어받은 KBS 새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를 히트시킨 이경희 작가와 김진원 PD가 다시 뭉친 작품이다. 가난한 소년이 검사로 성공한 뒤 14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는 휴먼 드라마의 제목으로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그러나 김진원 PD는 “반어적인 제목”이라며 “사람들은 참 좋은 시절을 과거나 미래에서 찾는다. 돌이켜보면 현재가 과거이자 미래일 텐데, 지금도 주변을 잘 둘러보면 행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지었다”고 했다. “‘왕가네 식구들’이 스피드 스케이팅처럼 기록을 보는 드라마라면, ‘참 좋은 시절’은 기록 단축보다 좋은 점수를 받는 데 관심이 있는 피겨 스케이팅 같은 드라마”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렇게 야심 차게 출발하는 작품에서 큰 축을 담당하는 건 김지호(40)다. 그는 2012년 영화 ‘부러진 화살’ 이후 육아에 전념하고자 활동을 자제해왔다. 그런 그를 매료시킨 건 캐릭터와 작품의 힘이었다. 김지호가 연기할 인물은 오만하고 까다로운 검사 강동석(이서진)의 2분 차 쌍둥이 누나이자, 어린 시절 사고의 후유증으로 35세지만 7세의 지능을 갖게 된 강동옥이다. 어릴 적엔 동생보다 영특했지만 불의의 사건으로 낮은 지능을 갖게 돼 동석과 어미인 장소심(윤여정)에게 평생의 미안함으로 남는 존재.

“지난해 6월에 남편과 제주도에 놀러 갔다가 윤여정 선생님으로부터 이경희 작가님이 이 작품을 쓰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때 농담처럼 남편이 ‘이번에 같이 해야지’ 했는데 다른 분이 캐스팅되셨더라고요. 그러다 그 분의 출연이 무산된 후 작가님이 경상도 사투리가 되는 사람을 찾다 제 아버지가 마산 출신인 걸 듣고 연락해오셨어요. 그때는 사투리도 해야 하고 7세 지능을 가진 사람을 연기하는 게 엄두가 안 나 거절했는데, 배역이 돌고 돌아 다시 왔을 때는 ‘이게 인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이 배역은 여러 여배우의 손을 거쳐 그에게로 왔다. 초기에 거론된 건 황수정이었으나 캐스팅이 불발됐고, 이후 캐스팅된 장신영은 코뼈 골절로 하차했다. 돌고 돌아왔기에, 그만큼 애착이 갈 수밖에 없다. 그는 “오랜만에 본, 서사가 있는 대본이었다. 캐스팅도 좋아서 이분들과 함께라면 배울 것도 많고 신나게 촬영할 수 있겠다 싶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사실 제가 도전을 피하는 스타일이에요. 마흔 살이 되고부터 스스로 미션을 준 게, ‘좀 두렵고 어려워도 도전해보자’였어요. 잘못해서 욕을 먹더라도 말이죠. 언제나 칭찬받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용기 내서 동옥 역을 하게 됐죠.”

동옥의 오빠 강동탁 역의 류승수는 “많은 분이 물망에 올랐지만, 워낙 어려운 역할인 만큼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걱정과 기대가 많았다. 김지호 씨가 캐스팅됐다는 이야기에 ‘역할은 따로 주인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그간 평범한 아이 엄마로 살았다”던 김지호에게 동옥은 운명 같았다고.

“혼자 대본을 읽는데 가슴이 찡하고 목이 꽉꽉 막혀오는 게 동옥을 사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느낌을 받고 한번 해보자, 동옥을 통해 맑고 예쁜, 사람들이 잃어버린 순수함을 표현해보자고 결심했어요.”

열 살 딸 떠올리며 극 중 인물 연기해

마흔의 김지호, 비로소 도전할 용기를 내다

그는 딸의 행동을 연구하고,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하며 때묻지 않은 동옥을 완성해 나갔다.

오랜만에 현장에 돌아온 김지호의 든든한 지원군은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윤여정과 최화정. 그는 “친한 선배와 언니 덕에 현장이 즐겁다. 두 사람의 도움으로 연기 패턴을 더 빨리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사실 초반에 촬영 장면이 많지 않아서 힘들어요. 죽 이어서 촬영하는 게 아니라 한 번 찍고 열흘 있다 촬영하고, 다시 열흘 있다 촬영하는 식이라 현장에 갈 때마다 감정선을 새롭게 다져야 하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힘들었는데, 윤여정 선생님이 부족한 부분이나 더 가야 할 부분을 챙겨주셨죠. 감독님도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하시는 편이라, 신을 찍다가도 아닌 것 같으면 수정해가면서 본래 느낌을 살리려 노력하고 있어요.”

연기 선생은 딸 효우(10). 김지호는 “지능이 7세에 멈췄다고 하면 바보 캐릭터라 생각하는데, 바보는 아니다”라며 운을 뗐다.

“7~8세 정도면 언어적인 면은 거의 다 발달했다고 봐야 한다더라고요. 7세 지능이라 해서 말이 어눌하거나 바보스럽진 않고, 또래들이 보이는 반응에 비해 사회 물을 덜 먹은 느낌일 거예요. 순수하고 맑은 느낌? 말로는 하기 쉽지만 그 ‘맑다’는 지점을 표현하는 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연기할 때 딸을 자주 떠올려요. 아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공포를 느낄 땐 어떻게 할까? 등을 생각하죠.”

이외에도 그는 동옥의 감성을 이해하기 위해 이경희 작가와 장시간에 걸쳐 의견을 나누며 켜켜이 캐릭터를 쌓아나갔다. “동옥은 정신 지체 장애를 가졌다기보다, 두메산골 안에서 세상과 접촉할 기회가 없어서 때묻지 않은 것뿐”이라는 이 작가의 설명을 듣고는 정신과 의사와 상담까지 받아가며 캐릭터를 완성했다.

김지호의 숙제는 전성기의 김지호를 뛰어넘는 것이다. 그는 “연기 생활을 한 지 20년 가까이 돼가는데, 경력에 비해 많은 작품을 하지 않았기에 누가 이야기하면 그 20년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간 CF에서의 건강하고 밝은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연기할 때 약간 마이너스였던 것 같아요. 이번에 배우로서 조금 다른 모습에 도전하면서 더 많이 연구했고, 고민했고, 긴장했어요. 이 작품이었기에 이 정도의 열정으로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 역할로 이미지의 폭을 넓혀가며 늘 해오던 게 아닌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역할의 크기를 떠나서요.”

그렇다면 김지호의 ‘참 좋은 시절’은 언제일까. 그는 “지금도 참 좋은 시절”이라며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지금, 매 순간이 좋은 시절이라 생각하며 살고 싶고, 그렇게 되길 바라요. 아무래도 저 동옥화됐나 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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