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고 의자에 앉기도 전에 전날 밤에 꾼 ‘아기가 된 아들을 안고 있는 꿈’ 이야기부터 털어놓았다. 인터넷 검색으로 역술적 해몽을 해보니 ‘벅찬 일로 고민할 일이 생길 징조’라던데, 김현철(39) 원장의 정신분석학적 해석은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다.
“이 꿈의 핵심은, 현실에서는 여섯 살인 아이가 꿈에서 젖먹이로 변해 있다는 점이에요. 힘들었던 시기로 돌아간 거죠. 중압감을 느끼는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과거로 퇴행해봤더니 거기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거예요. 현재를 부정하거나 회피할 수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경고하고 있는 것 같네요. 수험생으로 돌아가거나 군대에 다시 가는 꿈과 비슷한 거죠. 꿈만 해석하면 그렇습니다. 초면에 제가 뭘 알겠습니까. 하하.”
내친김에 유독 생생히 꿨던 꿈을 하나 더 이야기하니 김현철 원장은 기자에게 “스스로가 만든 기준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에게 관대해질 필요가 있으며, 생활의 변화와 여유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시원한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용한 꿈풀이에 어떤 효험이 숨어 있는 걸까?
꿈은 억압된 감정의 탈출구
“당연하죠. 꿈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정신 건강에 좋으니까요. 그냥 아침에 일어나 냉수 한 잔 마시듯이 꿈 이야기를 해보세요. 꿈 일기를 쓰면 더 좋고요.”
정신과 전문의 김현철 원장의 꿈풀이는 명쾌하다. 김 원장은 대구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며 ‘두 시의 데이트 박경림입니다’와 ‘윤하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해 심리 상담을 하고 있다. 지난해 ‘무한도전’에 출연하기도 했고, ‘나상담’‘개꿈은 없다’ 같은 팟캐스트 강연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정신과 의사가 꿈풀이를 하는 게 신선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오히려 “꿈이 정신분석학의 기초”라고 말한다.
“1980년대 말 정신질환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우울증을 꿈풀이로 치료했거든요. 지금도 정신과 전문의가 되려면 심리 치료 상담 내용을 기록해 제출해야 하는데, 거기에 꼭 꿈 상담 내용이 들어가야 될 만큼 아주 기초적인 거죠. 꿈은 정신과적 증상을 진단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고 또 치료의 열쇠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그걸 대중은 모르고 있어요. 꿈이라면 로또, 아니면 태몽으로 풀이하거든요. 의학적으로 중요한 거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대중이 모르면 아무 쓸모가 없으니까 방송에도 나가고 책도 쓰면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 보통의 개인 병원에서 꿈풀이를 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꿈풀이를 제대로 하는 분들을 보면 1시간씩 상담을 한다. 나는 흉내만 낼 뿐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환자와 그렇게 상담할 여유가 없으니까. 더욱이 요즘 나오는 약이 잘 듣기 때문에 약만 잘 맞게 처방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심리 치료에서 약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시간이 촉박할수록 꿈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낯가리고 어색해하던 환자도 꿈 이야기는 쉽게 털어놓는다.
▼ 꿈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나.
‘꿈은 현재 겪고 있는 증상 혹은 고민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이건 정신 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이론이다. 그는 꿈을 타고난 잠재 능력을 창조적으로 전개시켜 온전한 인격 발달로 이끌어 주는 생명수로 봤다. 꿈이 무한하기 때문에 꿈을 아는 만큼 내가 넓어질 수 있는 거다. 꿈도 일종의 뇌 활동인데, 뇌는 잉여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꿈은 없다고 하는 거다.
▼ 어떤 꿈을 꾸든 이유 있다는 건가.
꿈은 감정 처리 기관이다. 컴퓨터가 자동으로 하드 디스크를 복구하는 것처럼, 자는 동안 노이로제 같은 응어리진 감정들을 꿈을 통해 스스로 처리를 하는 거다. 꿈은 우리에게 무의식의 내용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자신이 부정하고자 하는 감정, 평소 자신을 힘들게 했던 억압된 감정들이 담겨 있다.
▼ 꿈이 알아서 처리를 한다면 왜 계속 불편한 감정이 남는 건가.
무의식 속에 감춰진 욕구를 의식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이 부정적으로 치부했던 감정이 있는데 그 감정이 마음속에 생기면 찔리고 불안한 거다. 예를 들면 경쟁심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던 사람은 경쟁심이 생겼을 때 그 감정에 죄책감을 느끼고 억누르려고만 한다. 그렇게 시기심, 질투심, 적개심, 공격성, 성적 욕구 등 억압된 감정들이 부정적인 모습으로 꿈속에 등장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거다. 터부시하던 감정들을 받아들이라고 꿈에서 보여주고, 손잡아주라고 경고하지만 그 감정을 무시하기 때문에 불편한 감정이 계속 남는 거다.
▼ 꿈이 보여주는 부정적인 감정과 손을 잡아도 되나.
모든 감정과 욕망은 타당하다.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이고 기분이 좋은 게 옳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그 밖의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폄하하기 때문에 마음이 죽는 거다. 자기 검열이 심하고 삶에 금기가 많은 사람일수록 억압된 감정으로 내면의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도덕적인 결벽이랄까. 조금씩은 해도 되는데, 너무 억압됐다는 증거다.
▼ 비약적일 수 있지만, 억압됐던 감정을 실천에 옮겨도 된다는 말로 들린다.
감정에 충실한 것과 감정을 존중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감정에 충실한 것은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고, 감정을 존중한다는 것은 현재 느끼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 감정에 충실하자는 게 아니라 감정을 존중하자는 거다. 폭력적인 감정을 느꼈다면, 그러한 감정을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하지 말고 그 감정 자체를 존중해줘야 한다는 거다.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제대로 화를 내지 못 할 만큼 분노를 억누르는 사람에게 화를 내라고 말해봐야 그렇게 하질 못한다. 하라고 해도 못할 거니까, 의사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는 풀어줘도 된다고 말하는 거다.
▼ 이성적으로 용납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꿈도 있다. 그런 꿈을 꿀 때 부끄럽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하다.
단적인 예로 사이코패스는 사람을 죽이는 꿈을 꾸지 않는다. 보통의 사람에게는 엄청나게 무서운 꿈이지만 사이코패스는 현실에서 충족되는 욕망이기 때문에 그런 꿈을 꾸지 않는 거다. 반대로 엄격한 규율을 따르는 독실한 신자가 성적 욕망이 가득한 꿈을 꾸기도 한다. 꿈이 억압된 무의식을 보여줄 뿐, 꿈의 실체 그대로를 진정 바라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 꿈의 메시지를 계속 무시하면 어떻게 되나.
결국 노이로제에 빠진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꾸는 꿈이 쫓기는 것인데, 쫓기는 사람도 쫓는 사람도 바로 자신이다. 아무리 도망쳐도 따라오는 것은 스스로가 부정적으로 치부했던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인 거다.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기보다 외부의 기준과 시선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자신의 알맹이는 빠지고 텅 비는 거다. 그게 요즘 좀비 영화가 유행하는 이유기도 하다. 죽었지만 살아 있고, 살았지만 죽은 좀비의 모습이 껍데기만 남은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아를 확장시키는 꿈 읽기
김현철 원장은 최근 발간한 ‘어젯밤 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나무의 철학)에 꿈풀이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꿈에서의 암은 자기 연민·절망·혹독함 등을 의미하고, 물은 자신의 감정을 말하며, 먼지는 과오를 뜻한다고 했다. 또 신발은 정체성을, 춤은 성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꿈은 전체적인 줄거리와 꾼 당사자의 상황과 연관 지어 풀이해야 하지만, 꿈에 등장하는 메시지는 생뚱맞고 복잡해 보인다.
▼ 꿈의 메시지가 너무 어렵다. 어떤 방법으로 풀이하는 건가?
꿈에 관한 해석은 프로이트와 융을 시작으로 지금껏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 분야다. 이미 시중에도 꿈 이론서가 많이 나와 있다. 꿈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임상과 연구를 통해 내놓은 결과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응용하는 것뿐이다.
▼ 그 꿈풀이라는 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해몽과는 많이 다르다.
꿈의 큰 목적 중 하나가 ‘소망 충족’이라는 점에서 꿈풀이와 해몽은 공통점이 있다. 해몽은 ‘살아남는 것’에 중점을 두는 반면, 정신분석학적인 입장에서는 ‘소망 충족’ 또한 심리적인 성장의 역할로 보고 있다.
▼ 가장 흔한 예지몽 중에 태몽이 있다. 태몽은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 잡아왔는데 그 또한 잘못된 꿈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임신을 하면 신체적 변화가 오니까, 임신 사실을 알기 전에 몸이 먼저 변화를 읽는다. 그것이 꿈에 나타나는 건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태몽 중에는 생명에 대한 설렘이나 성욕을 의미하는 꿈들이 많다. 만약 임신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라면, 자신의 아이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담긴 꿈을 꾸는 거다. 예를 들어 용꿈을 꾸었다면 용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신비한 존재로서 자기 자식이 그런 능력을 가졌으면 하는 소망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한다.
▼ 꿈으로 미래를 내다볼 수는 없나.
개인적인 미래를 내다볼 수는 없다. 데자뷔 또한 뇌의 착각일 뿐이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예지몽은 조금 다르다.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집단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꿈을 꾼다는 거다. 융의 이론인데, 실제로 병원에 환자가 유난히 많이 몰리거나 하면 사회적인 사건이나 변화가 생긴다. 보통 봄가을에 우울증 환자들이 많은데, 그와 상관없이 일시적으로 환자가 몰리고 나면 대규모 파업 같은 큰일이 터지더라. 감정이 예민한 사람들이 사회 변화에 대한 불안을 먼저 느끼는 거다.
▼ 아이들도 꿈을 꾼다. 높은 데서 떨어지는 꿈을 꾸면 키가 크려고 그런 거라고 들었다. 자면서 자꾸 웃는 아이도 있고, 부모에게 훈계를 듣는 꿈도 꾼다.
높은 데서 떨어지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꿈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그 긴장을 조금 낮출 수 있는 거다. 키와는 상관이 없다. 아이가 자면서 웃는 것은 일상이 너무 심심해서일 것이다. 재미있는 일이 없으니 꿈을 통해 재미있는 장면을 보여주는 거다. 그런 꿈을 꾼다는 건 실제로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뜻도 된다. 부모에게 혼나는 꿈을 자주 꾼다면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상에서 더 신중하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 회사원들은 업무와 관련된 꿈을 많이 꾼다. 실수를 한다거나, 일에 차질이 생겨서 동동거리는 꿈.
업무에 강박적으로 완벽하려고 하는 성향을 반영한 것 같다. 업무적인 스트레스를 꿈에서 반복하면서 정서적 충격에 숙달되려는 본성이다. 꿈속에서 무의식의 강력한 불안과 능동적으로 맞붙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여러 번 반복되고 그 꿈으로 인해 불쾌한 감정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아진다면 심리적으로 상당한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 감정을 존중한다는 게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나.
20대 중반의 물리학 박사에게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이뤘는데, 자신은 오히려 공허하다고 했다. 이는 성취감을 느꼈다고 해서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취를 하면 기분은 좋을 거다. 하지만 하루이틀이면 좋은 기분은 사라지고 만다. 오늘은 없고 내일만 바라보는 삶이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거다. 지금 자신의 감각과 감정을 존중하지 않으면 절대 행복해질 수가 없다.
▼ 감정을 존중하면 행복해진다는 것인가.
사실 정신과 치료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다. 개인적인 불행을 보편적인 불행으로 돌리는 게 목표다. 나는 힐링, 희망 이런 게 상대적인 불행을 준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다 힐링되거나 행복한 것 같은데 자신만 불행한 느낌. 지극히 개인적일 것 같은 불행이 다른 사람들도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불행이라는 것을 알면 그만큼 덜 불행하게 생각될 것이다.
▼ 궁극적으로 꿈을 통해 찾을 수 있는 게 뭘까.
참된 ‘나’.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갈등도 있는데, 나란 존재를 채우기 전에 학업과 스펙의 무한경쟁에 단련되기 바쁘다. 결핍의 상태에서 갈등만 하면 끝이 없다. 만 1세까지 엄마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으며 양자 관계를 쌓고, 이후에는 아빠와의 올바른 삼각관계, 올바른 대인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현대인들은 어른이 돼도 양자 관계에만 머문다.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셀카를 찍고 SNS를 통해 과시하려고만 한다. 진정한 자신을 알고 감정의 상처를 느끼기 위해서는 정서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꿈은 무한한 우주와 같으니까.
▼ 꿈을 꿀 때마다 해석을 해야 하나.
꼭 해석을 할 필요는 없다. 또 전문가의 분석이 모두 옳은 것만도 아니다. 꿈을 일기처럼 적거나, 꿈에서 본 장면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감정 처리를 도울 수 있다. 억압된 갈등과 정서를 그저 의식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나머지는 우리 뇌가 알아서 해준다. 평소 자신의 갈등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반복적으로 알아가면 자기 내면의 욕정에 대해 적절한 방어 태세를 갖추며 성숙한 자아를 확보할 수 있다. 꿈을 알아간다는 건, 자아를 확장시키는 것과 같다.
“이 꿈의 핵심은, 현실에서는 여섯 살인 아이가 꿈에서 젖먹이로 변해 있다는 점이에요. 힘들었던 시기로 돌아간 거죠. 중압감을 느끼는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과거로 퇴행해봤더니 거기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거예요. 현재를 부정하거나 회피할 수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경고하고 있는 것 같네요. 수험생으로 돌아가거나 군대에 다시 가는 꿈과 비슷한 거죠. 꿈만 해석하면 그렇습니다. 초면에 제가 뭘 알겠습니까. 하하.”
내친김에 유독 생생히 꿨던 꿈을 하나 더 이야기하니 김현철 원장은 기자에게 “스스로가 만든 기준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에게 관대해질 필요가 있으며, 생활의 변화와 여유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시원한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용한 꿈풀이에 어떤 효험이 숨어 있는 걸까?
꿈은 억압된 감정의 탈출구
“당연하죠. 꿈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정신 건강에 좋으니까요. 그냥 아침에 일어나 냉수 한 잔 마시듯이 꿈 이야기를 해보세요. 꿈 일기를 쓰면 더 좋고요.”
정신과 전문의 김현철 원장의 꿈풀이는 명쾌하다. 김 원장은 대구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며 ‘두 시의 데이트 박경림입니다’와 ‘윤하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해 심리 상담을 하고 있다. 지난해 ‘무한도전’에 출연하기도 했고, ‘나상담’‘개꿈은 없다’ 같은 팟캐스트 강연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정신과 의사가 꿈풀이를 하는 게 신선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오히려 “꿈이 정신분석학의 기초”라고 말한다.
“1980년대 말 정신질환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우울증을 꿈풀이로 치료했거든요. 지금도 정신과 전문의가 되려면 심리 치료 상담 내용을 기록해 제출해야 하는데, 거기에 꼭 꿈 상담 내용이 들어가야 될 만큼 아주 기초적인 거죠. 꿈은 정신과적 증상을 진단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고 또 치료의 열쇠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그걸 대중은 모르고 있어요. 꿈이라면 로또, 아니면 태몽으로 풀이하거든요. 의학적으로 중요한 거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대중이 모르면 아무 쓸모가 없으니까 방송에도 나가고 책도 쓰면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 보통의 개인 병원에서 꿈풀이를 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꿈풀이를 제대로 하는 분들을 보면 1시간씩 상담을 한다. 나는 흉내만 낼 뿐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환자와 그렇게 상담할 여유가 없으니까. 더욱이 요즘 나오는 약이 잘 듣기 때문에 약만 잘 맞게 처방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심리 치료에서 약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시간이 촉박할수록 꿈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낯가리고 어색해하던 환자도 꿈 이야기는 쉽게 털어놓는다.
▼ 꿈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나.
‘꿈은 현재 겪고 있는 증상 혹은 고민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이건 정신 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이론이다. 그는 꿈을 타고난 잠재 능력을 창조적으로 전개시켜 온전한 인격 발달로 이끌어 주는 생명수로 봤다. 꿈이 무한하기 때문에 꿈을 아는 만큼 내가 넓어질 수 있는 거다. 꿈도 일종의 뇌 활동인데, 뇌는 잉여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꿈은 없다고 하는 거다.
▼ 어떤 꿈을 꾸든 이유 있다는 건가.
꿈은 감정 처리 기관이다. 컴퓨터가 자동으로 하드 디스크를 복구하는 것처럼, 자는 동안 노이로제 같은 응어리진 감정들을 꿈을 통해 스스로 처리를 하는 거다. 꿈은 우리에게 무의식의 내용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자신이 부정하고자 하는 감정, 평소 자신을 힘들게 했던 억압된 감정들이 담겨 있다.
▼ 꿈이 알아서 처리를 한다면 왜 계속 불편한 감정이 남는 건가.
무의식 속에 감춰진 욕구를 의식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이 부정적으로 치부했던 감정이 있는데 그 감정이 마음속에 생기면 찔리고 불안한 거다. 예를 들면 경쟁심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던 사람은 경쟁심이 생겼을 때 그 감정에 죄책감을 느끼고 억누르려고만 한다. 그렇게 시기심, 질투심, 적개심, 공격성, 성적 욕구 등 억압된 감정들이 부정적인 모습으로 꿈속에 등장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거다. 터부시하던 감정들을 받아들이라고 꿈에서 보여주고, 손잡아주라고 경고하지만 그 감정을 무시하기 때문에 불편한 감정이 계속 남는 거다.
▼ 꿈이 보여주는 부정적인 감정과 손을 잡아도 되나.
모든 감정과 욕망은 타당하다.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이고 기분이 좋은 게 옳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그 밖의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폄하하기 때문에 마음이 죽는 거다. 자기 검열이 심하고 삶에 금기가 많은 사람일수록 억압된 감정으로 내면의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도덕적인 결벽이랄까. 조금씩은 해도 되는데, 너무 억압됐다는 증거다.
▼ 비약적일 수 있지만, 억압됐던 감정을 실천에 옮겨도 된다는 말로 들린다.
감정에 충실한 것과 감정을 존중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감정에 충실한 것은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고, 감정을 존중한다는 것은 현재 느끼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 감정에 충실하자는 게 아니라 감정을 존중하자는 거다. 폭력적인 감정을 느꼈다면, 그러한 감정을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하지 말고 그 감정 자체를 존중해줘야 한다는 거다.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제대로 화를 내지 못 할 만큼 분노를 억누르는 사람에게 화를 내라고 말해봐야 그렇게 하질 못한다. 하라고 해도 못할 거니까, 의사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는 풀어줘도 된다고 말하는 거다.
▼ 이성적으로 용납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꿈도 있다. 그런 꿈을 꿀 때 부끄럽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하다.
단적인 예로 사이코패스는 사람을 죽이는 꿈을 꾸지 않는다. 보통의 사람에게는 엄청나게 무서운 꿈이지만 사이코패스는 현실에서 충족되는 욕망이기 때문에 그런 꿈을 꾸지 않는 거다. 반대로 엄격한 규율을 따르는 독실한 신자가 성적 욕망이 가득한 꿈을 꾸기도 한다. 꿈이 억압된 무의식을 보여줄 뿐, 꿈의 실체 그대로를 진정 바라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 꿈의 메시지를 계속 무시하면 어떻게 되나.
결국 노이로제에 빠진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꾸는 꿈이 쫓기는 것인데, 쫓기는 사람도 쫓는 사람도 바로 자신이다. 아무리 도망쳐도 따라오는 것은 스스로가 부정적으로 치부했던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인 거다.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기보다 외부의 기준과 시선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자신의 알맹이는 빠지고 텅 비는 거다. 그게 요즘 좀비 영화가 유행하는 이유기도 하다. 죽었지만 살아 있고, 살았지만 죽은 좀비의 모습이 껍데기만 남은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아를 확장시키는 꿈 읽기
김현철 원장은 최근 발간한 ‘어젯밤 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나무의 철학)에 꿈풀이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꿈에서의 암은 자기 연민·절망·혹독함 등을 의미하고, 물은 자신의 감정을 말하며, 먼지는 과오를 뜻한다고 했다. 또 신발은 정체성을, 춤은 성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꿈은 전체적인 줄거리와 꾼 당사자의 상황과 연관 지어 풀이해야 하지만, 꿈에 등장하는 메시지는 생뚱맞고 복잡해 보인다.
▼ 꿈의 메시지가 너무 어렵다. 어떤 방법으로 풀이하는 건가?
꿈에 관한 해석은 프로이트와 융을 시작으로 지금껏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 분야다. 이미 시중에도 꿈 이론서가 많이 나와 있다. 꿈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임상과 연구를 통해 내놓은 결과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응용하는 것뿐이다.
▼ 그 꿈풀이라는 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해몽과는 많이 다르다.
꿈의 큰 목적 중 하나가 ‘소망 충족’이라는 점에서 꿈풀이와 해몽은 공통점이 있다. 해몽은 ‘살아남는 것’에 중점을 두는 반면, 정신분석학적인 입장에서는 ‘소망 충족’ 또한 심리적인 성장의 역할로 보고 있다.
▼ 가장 흔한 예지몽 중에 태몽이 있다. 태몽은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 잡아왔는데 그 또한 잘못된 꿈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임신을 하면 신체적 변화가 오니까, 임신 사실을 알기 전에 몸이 먼저 변화를 읽는다. 그것이 꿈에 나타나는 건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태몽 중에는 생명에 대한 설렘이나 성욕을 의미하는 꿈들이 많다. 만약 임신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라면, 자신의 아이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담긴 꿈을 꾸는 거다. 예를 들어 용꿈을 꾸었다면 용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신비한 존재로서 자기 자식이 그런 능력을 가졌으면 하는 소망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한다.
▼ 꿈으로 미래를 내다볼 수는 없나.
개인적인 미래를 내다볼 수는 없다. 데자뷔 또한 뇌의 착각일 뿐이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예지몽은 조금 다르다.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집단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꿈을 꾼다는 거다. 융의 이론인데, 실제로 병원에 환자가 유난히 많이 몰리거나 하면 사회적인 사건이나 변화가 생긴다. 보통 봄가을에 우울증 환자들이 많은데, 그와 상관없이 일시적으로 환자가 몰리고 나면 대규모 파업 같은 큰일이 터지더라. 감정이 예민한 사람들이 사회 변화에 대한 불안을 먼저 느끼는 거다.
▼ 아이들도 꿈을 꾼다. 높은 데서 떨어지는 꿈을 꾸면 키가 크려고 그런 거라고 들었다. 자면서 자꾸 웃는 아이도 있고, 부모에게 훈계를 듣는 꿈도 꾼다.
높은 데서 떨어지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꿈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그 긴장을 조금 낮출 수 있는 거다. 키와는 상관이 없다. 아이가 자면서 웃는 것은 일상이 너무 심심해서일 것이다. 재미있는 일이 없으니 꿈을 통해 재미있는 장면을 보여주는 거다. 그런 꿈을 꾼다는 건 실제로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뜻도 된다. 부모에게 혼나는 꿈을 자주 꾼다면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상에서 더 신중하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 회사원들은 업무와 관련된 꿈을 많이 꾼다. 실수를 한다거나, 일에 차질이 생겨서 동동거리는 꿈.
업무에 강박적으로 완벽하려고 하는 성향을 반영한 것 같다. 업무적인 스트레스를 꿈에서 반복하면서 정서적 충격에 숙달되려는 본성이다. 꿈속에서 무의식의 강력한 불안과 능동적으로 맞붙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여러 번 반복되고 그 꿈으로 인해 불쾌한 감정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아진다면 심리적으로 상당한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 감정을 존중한다는 게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나.
20대 중반의 물리학 박사에게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이뤘는데, 자신은 오히려 공허하다고 했다. 이는 성취감을 느꼈다고 해서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취를 하면 기분은 좋을 거다. 하지만 하루이틀이면 좋은 기분은 사라지고 만다. 오늘은 없고 내일만 바라보는 삶이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거다. 지금 자신의 감각과 감정을 존중하지 않으면 절대 행복해질 수가 없다.
▼ 감정을 존중하면 행복해진다는 것인가.
사실 정신과 치료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다. 개인적인 불행을 보편적인 불행으로 돌리는 게 목표다. 나는 힐링, 희망 이런 게 상대적인 불행을 준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다 힐링되거나 행복한 것 같은데 자신만 불행한 느낌. 지극히 개인적일 것 같은 불행이 다른 사람들도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불행이라는 것을 알면 그만큼 덜 불행하게 생각될 것이다.
<b>김현철 정신과 전문의</b><br>경북대 의과대학 졸업. 현재 대구에서 정신건강의학과 ‘공감과 성장’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불안하니까 사람이다’ ‘우리가 매일 끌어안고 사는 강박’ 등이 있다.
참된 ‘나’.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갈등도 있는데, 나란 존재를 채우기 전에 학업과 스펙의 무한경쟁에 단련되기 바쁘다. 결핍의 상태에서 갈등만 하면 끝이 없다. 만 1세까지 엄마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으며 양자 관계를 쌓고, 이후에는 아빠와의 올바른 삼각관계, 올바른 대인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현대인들은 어른이 돼도 양자 관계에만 머문다.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셀카를 찍고 SNS를 통해 과시하려고만 한다. 진정한 자신을 알고 감정의 상처를 느끼기 위해서는 정서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꿈은 무한한 우주와 같으니까.
▼ 꿈을 꿀 때마다 해석을 해야 하나.
꼭 해석을 할 필요는 없다. 또 전문가의 분석이 모두 옳은 것만도 아니다. 꿈을 일기처럼 적거나, 꿈에서 본 장면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감정 처리를 도울 수 있다. 억압된 갈등과 정서를 그저 의식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나머지는 우리 뇌가 알아서 해준다. 평소 자신의 갈등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반복적으로 알아가면 자기 내면의 욕정에 대해 적절한 방어 태세를 갖추며 성숙한 자아를 확보할 수 있다. 꿈을 알아간다는 건, 자아를 확장시키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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