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여진구(16)는 MBC 아침 방송 ‘기분 좋은 날’과의 인터뷰에서 2013년 연말에 받고 싶은 상에 대해 “아역상은 이제 그만 받고 싶다. 신인상을 받는다면 기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이하 ‘화이’)를 보면서 어쩌면 그 꿈은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이’는 다섯 명의 범죄자 아버지 석태(김윤석), 기태(조진웅), 진성(장현성), 범수(박해준), 동범(김성균)에 의해 길러진 소년 화이(여진구) 이야기다. 누구 하나 빠지는 연기자가 없지만 영화가 공개되자 모든 이들의 관심이 여진구에게 집중됐다. 누군가는 그를 “괴물 같은 신인”이라고 표현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작은 거인”이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정작 여진구는 실감이 나지 않는 표정이다.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탓에 여진구는 자신이 연기한 영화의 완성본도 보지 못했다.
“사실 감독님이 몰래 보여주실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웃음). 영화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또 많은 분들이 칭찬해줘서 감사하기도 하고…. 잘 나왔다면 감독님과 아빠들(그는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을 ‘아빠’라고 불렀다)이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처음엔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아빠들 앞에서 내가 준비한 것을 잘해낼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아빠들이 현장에서 잘 챙겨주시고, 액션 신 찍을 때도 다들 몰입하신 덕분에 저도 묻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직 미성년자, ‘화이’ 완성본 못 봤다
여진구는 ‘아빠들’과의 첫 만남에 무척 긴장했던 일화를 털어놓았다. 아빠들 캐스팅 소식을 접하고는 무척 설레기도 했단다.
“처음에는 어떤 분들이 캐스팅됐는지 몰랐어요. 감독님과 이야기하던 중 우연히 선배님들 이름을 들었는데, 너무 쟁쟁한 분들이라 놀랐어요. 상견례를 하러 갔을 때는 떨려서 문을 못 열겠더라고요. 그런데 실제로는 굉장히 자상하세요. 촬영장에서는 다섯 분 모두 저를 친아들처럼 대해주셨어요.”
‘화이’는 배우 문소리의 남편이자 ‘지구를 지켜라’로 주목을 받았던 장준환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이 집중된 영화다. 장준환 감독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여진구는 “대단한 감독님이라는 얘기만 들었을 뿐 어떤 분인지는 잘 몰랐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를 지켜라’ 개봉 당시 여진구는 여섯 살에 불과했다.
“함께 작업하면서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항상 작품에 빠져 있었고 어떤 질문을 해도 바로바로 해답을 주셨죠. 욕심도 크고 열정도 많으시고…(웃음). 똑같은 연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지루하고 지칠 수도 있는데, 감독님은 매 순간 새로운 주문을 하셨기 때문에 신선하고 재밌었어요.”
범죄 조직에 납치돼 과거를 모르고 자란 화이는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아빠들에 대한 증오와 키워준 정, 친부모와 이별한 아픔, 범죄자 아버지 조직에 대한 분노 사이에서 대혼란에 빠진다. 아직 어린 소년이 소화하기엔 감정의 진폭이 크고 무거운 역이다. 다섯 아빠는 촬영 틈틈이 대화도 많이 나누고, 함께 운동도 하면서 여진구가 배역에 몰입하고 또 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한다.
극 중에서 여진구는 격투는 물론이고 운전, 총 쏘기 등 다양한 액션 신을 소화한다. 여진구는 “액션 신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 때문에 재미있게 촬영했다. 단, 운전하는 건 좀 어려웠다”고 말했다. 영화 속 화이는 항상 교복을 입고 나오지만 학교엔 다니지 않는다. 이처럼 평범하지 않은 화이의 삶에 대해 “실제 여진구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만약 화이처럼 누군가에 의해 통제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실제론 외향적이고 장난도 잘 치지만, 붙임성이나 애교는 없는 편이에요.”
주로 아역을 연기하던 여진구. 그가 어느새 성장해 자신만의 색깔로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엄친아,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성적 떨어져 걱정
중학교 때 전교 부회장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여진구는 엄친아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는 성적에 대한 걱정이 커졌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촬영장에 나와 있는 시간이 더 많은 탓에 절대적인 학습량 면에서는 친구들을 따라갈 수 없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성적이 괜찮은 편이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부터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어요. 영어는 잘하는 편이지만 수학은 정말 싫어해요. 그래도 되도록 학교생활을 많이 하려고 해요. 운동과 게임, 수다 떠는 걸 좋아해서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고요. 어떻게 보면 불규칙한 생활을 하는 저와 잘 놀아주는 친구들이 고맙기도 해요.”
그가 학교생활과 연기를 병행하면서도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었던 데는 부모의 힘이 컸다. 부모는 그가 자만하지 않도록 늘 주의를 준다고 한다.
“더 큰 당근을 줄 법도 한데 일부러 엄격하게 지도하시는 것 같아요(웃음). ‘화이’를 보고도 아직 부족한 게 많다고 하셨어요. 감정이 세거나 약한 부분도 짚어주셨죠. 아직 더 경험해야 할 것도 많다고 말씀하시고요. 물론 가끔 칭찬해줄 때도 있지만 일정한 선을 넘지는 않으시더라고요.”
굵은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모습이 꽤 의젓해 보인다. 2006년 영화 ‘새드무비’로 데뷔한 그 꼬마가 이렇게 컸나 싶어 대견스러운 생각마저 든다. 사실 ‘무사 백동수’ ‘뿌리 깊은 나무’ ‘해를 품은 달’ ‘보고 싶다’ 그리고 현재 출연 중인 tvN 시트콤 ‘감자별 2013 QR3’(이하 ‘감자별’)에 이르기까지 여진구는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이 같기도 하고, 남자 같기도 한 그 눈빛에 마음을 빼앗긴 누나 팬들도 제법 많다.
멜로 연기 경력도 얕볼 수 없다. ‘해를 품은 달’에서 김유정·김소현 등 쟁쟁한 아역 여배우들과 함께 주연 배우들의 어린 시절을 맡아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멋지게 그려내기도 했고, ‘감자별’에서는 하연수와의 러브 라인도 있다. 하지만 여진구는 아직 사랑 연기는 어렵다고 한다.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는 “귀엽고 잘 웃고 애교 많은 사람이 좋다. 나이는 상관없다. 엄마보다 젊으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엄마는 1976년생, 우리 나이로 서른여덟 살이다.
요즘 그의 최고 관심사는 ‘감자별’이다. 촬영을 시작한 지 두 달 남짓 됐는데 밝고 가족 같은 분위기라서 현장에 가는 것이 즐겁다는 것. 9월 24일 방송분에서는 여진구가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이때 그의 엉덩이가 모자이크 처리됐는데 마치 벗고 있는 것처럼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장면에 대해 묻자 여진구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워했다.
“친구들도 정말 벗은 거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분명히 반바지를 입고 찍었어요. 감독님이 피부톤으로 모자이크 처리한다고 말씀하시기에 무심코 ‘네’라고 대답했는데…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요. 방송을 보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배우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관심사. 최근 가장 재밌게 본 영화는 ‘광해, 왕이 된 남자’라고 한다. 악기도 한 가지쯤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기타를 배우려다가 포기하고 지금은 피아노를 배워볼까 생각 중이란다. 여진구는 “뭐든 독학은 어려운 것 같다. 학원에 다녀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직접 만나본 여진구는 수줍은 소년이었고, 미래가 기대되는 배우였다. 낮은 목소리로 연기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그의 앞날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악역도 괜찮고 일인이역도 좋고…, 해보고 싶은 게 정말 많아요. 잘생기고 유명한 배우보다는, 연기를 할 때만큼은 거기에 푹 빠져들고 진심을 담아내는 배우가 되고 싶고요. 그러려면 아직 더 많은 노력과 경험을 해야 되겠죠? 언젠가는 사람들 앞에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을 찍는 게 욕심이자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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