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수 화백의 침실 겸 작업실이었던 1층 온돌방. 화가의 생활공간이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8월 10일 배우 이병헌의 아내가 된 이민정의 집안은 늘 화제였다. 친할아버지는 부장판사 출신이고 아버지는 광고회사 간부를 지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엄친딸’ 소리를 들었다. 거기에 외할아버지가 서울대 교수를 지낸 고(故) 박노수 화백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박노수 화백의 2남4녀 중 한 명이 이민정의 어머니 박진화 씨. 이민정의 어머니는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외삼촌은 박찬규 KAIST 교수와 박민규 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이다. 2013년 2월 타계한 박노수 화백의 가옥이 최근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공개됐다. 화가의 숨결이 살아 있는 이곳에서 소문으로만 접한 ‘명문가’의 가치를 만났다.
세상의 시선을 허락한 서울시문화재자료 1호
서울 종로구 옥인동 골목을 돌아 수성계곡으로 향하다 보면 인왕산 끝자락에 눈길을 끄는 집 한 채가 있다. 가을을 맞이하는 비가 내리던 9월 11일. 인근 주민들이 ‘비밀의 정원’이라고 부를 만큼 베일에 싸여 있던 이 가옥의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한국화가 남정 박노수 화백이 살던 고즈넉한 가옥이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현판을 내걸고 다시 태어난 것이다.
고 박노수 화백의 외손녀인 배우 이민정.
박노수 가옥은 화신백화점과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박길룡이 1937년 절충식 기법으로 지은 가정집이다. 한옥 건축기술에 중국인 기술자들이 참여, 한식과 서양식 절충 건축으로 탄생했는데 전반적으로 프랑스풍을 취하고 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1층 위에 서까래가 보이는 지붕을 얹은 2층 구조가 이채롭다. 1층은 온돌과 마루, 2층은 마루방 구조로 돼 있으며 벽난로가 3개 설치돼 있다. ‘빨강머리 앤’에 나올 법한 다락방이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분 좋은 소리로 비거덕거리는 마룻바닥이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채 화가의 정취를 전하고 있었다. 현관에는 추사 김정희가 ‘여의륜(如意輪)’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정원은 꼼꼼한 주인의 정성어린 손길을 말해주듯 정갈하게 꾸며져 있었다.
조선후기 문신이자 친일파인 윤덕영이 딸을 위해 좋은 터를 잡아 집을 지었다는 이 가옥은 광복 후 수차례 소유주가 바뀌다 1973년 박노수 화백이 구입해 세월의 풍파 속에 증축과 수리를 거쳐왔다. 1991년 가옥의 역사적·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문화재자료 1호로 지정됐지만 이 가옥은 박노수 화백이 40여 년을 가족과 함께 거주하며 수백 점의 천작을 남긴 엄연히 개인적인 공간이었다. 박 화백은 지난 2월 유명을 달리하기 전인 2011년 11월, 종로구에 가옥을 포함한 5백여 점의 작품 및 4백90여 점의 고가구와 고미술 등을 기증했다. 이후 오랜 보수공사를 거쳐 종로구 최초 구립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화풍
1 남정 박노수 화백(1927~2013)의 생전 모습. 박 화백은 전통적인 화제를 취하면서도 간결한 운필과 강렬한 색감, 대담한 터치 등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해 전통 속에서 현대적 미감을 구현해낸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4백 년 이상 된 분재를 보면 그 분재의 생명력도 놀랍지만 수백 년에 걸쳐 분재를 이어 받아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데 더 놀랍다. 전통양속이 더욱 나은 것으로 이어지려면 그만큼의 항상심이 필요하다.”
자신이 살던 집을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개관하며 전통을 유지하고자 했던 고인의 뜻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노수 화백은 한국화의 전통과 현대를 잇는,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다. 대학 정규교육을 받은 아카데미즘 화가 1세대로 독창적인 이상적 세계를 창조해낸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1927년 충남 연기에서 태어나 1940년 청전 이상범의 문하에 들어간 박 화백은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후 근원 김용준, 월전 장우성을 사사했다. 1953년 대한민국 국무총리상, 1955년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한편 대한민국 예술원상, 5·16민족상, 3·1문화상, 대한민국 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1956년부터 7년간 이화여대에서, 1962년부터 20년 동안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한 박 화백은 1982년 교수직에서 물러나 전업작가의 삶을 선언했다. 그 뒤 ‘달과 소년’ ‘고사’ ‘월화취적’ 등 그를 대표하는 수많은 대작을 완성했다.
수목이 우거진 한국화 속으로 사람이 빨려 들어가는 장면. 영화 ‘전우치’에 등장하는 설정이지만 박 화백의 그림이 딱 그런 형세다. 1980년 작 ‘류하’는 푸르다 못해 파란 버드나무 밑으로 이제 막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온 듯한 소년이 서 있는 그림이다. 작품의 묘한 분위기는 그림을 보는 사람 또한 소년의 발걸음을 따라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만든다.
미술관 개관에 맞춰 시작된 ‘달과 소년’전을 안내한 학예사는 바로 박 화백의 막내딸이었다. 미술을 전공한 박이선 학예사는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에 상주하며 관람객을 맞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나고 자란 집에 아버지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어서 기분이 새롭다”며 “현재 종로구청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수백 점의 작품을 장르와 성격에 따라 분류해 전시회를 이어갈 예정이다”고 전했다. ‘달과 소년’전은 오는 12월 25일까지 열린다.
2 ‘달과 소년’, 화선지에 수묵담채, 1987년, 66×135cm. 그림 속 소년은 화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라고 한다. 3 고사(高士), 화선지에 수묵담채, 연도 미상, 34.6×34.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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