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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정연순의 도전하는 인생

곱창집 아줌마 가수 되다

글·권이지 기자 | 사진·이기욱 기자

2013. 09. 13

연예인 단골집으로 유명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곱창집. 이곳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해온 주인 정연순 씨는 가게를 나서면 가수로 변신한다. 데뷔 1년 차를 맞이한 가수 정연순의 남다른 인생 스토리.

정연순의 도전하는 인생


어머니는 노래를 좋아했다. 어린 딸을 앞에 두고 ‘비 내리는 고모령’과 ‘봄날은 간다’ ‘차이나타운’을 불렀다. 뜻도 모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던 딸은 어느새 동네에서 노래 잘하기로 소문이 났다. 자연스레 가수를 꿈꿨지만 결혼을 하면서 날개를 접었다. 40년이 지난 후 다시 멋지게 날아올랐다. 정연순(60) 씨 이야기다. 지난해 9월 정식으로 데뷔해 프로 가수가 된 그는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소녀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 솜씨로 이웃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는 동네 사람들의 추천으로 노래자랑 대회에 나갔고, 부상으로 밥솥이나 시계 같은 살림살이를 받기도 했다. 인근 지역에서 모두 그를 알 정도였다. 1972년 정씨는 외가가 있던 전남 여수 KBS에서 주최한 ‘여수 여름의 향연 콩쿠르’에서 당당히 우승하고 전속 가수가 됐다. 하지만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사랑과 가수의 꿈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다. 결국 그는 사랑을 택했고, 부산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전업주부로 살림하고 두 아들 키우는 데 몰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꿈도 사라지려니 했지만, 정씨 가슴속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노래는 여전히 그의 삶을 맴돌았다. 부산 당감동성당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틈나는 대로 부산 지역 병원에 봉사 활동을 나가 노래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졌다. 고된 일상도 노래를 부르면 웃음이 됐다.
2000년 두 아들의 뒷바라지를 할 겸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해 강남구 역삼동에 ‘부산양곱창’을 열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가게는 나날이 번창했다. 특히 톱스타들 가운데 단골이 많다. 가수 이효리, 결혼 전부터 자주 놀러 왔다는 백지영, 배우 정준이 단골 중에 단골이고 얼마 전 결혼한 이병헌도 종종 방문했다. 채식 선언 이후에 발길이 뜸하지만 정연순 씨는 “이효리 씨는 까다롭지 않은 데다 소탈한 모습이 정말 예뻤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장사가 잘될수록 그의 마음은 더욱 허전했다. 못다 핀 가수의 꿈을 꼭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었다. ‘여수 여름의 향연 콩쿠르’에서 우승한 지 40년이 지난 2012년 9월, 정연순 씨는 장태민 작곡가의 눈에 들어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다. 11월에는 ‘사랑해/날마다’라는 데뷔 앨범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데뷔 곡이자 타이틀 곡인 ‘사랑해’는 상대가 다정하고 날 진정 사랑하는 사람임을 알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한 여자가 무뚝뚝한 남자를 향해 애교 섞인 투정을 부린다는 내용을 담은 폴카 리듬의 노래다. 그는 맑은 음색과 밝은 표정이 주목받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정씨는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OBS 토크쇼, 춘천 MBC, 부산 KBS 등에 출연하며 전국을 누비고 있다. 2012년 ‘제13회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에서 신인가수대상과 한국가요공로·문화예술대상 신인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백지영·현미 축하 받고, 남편과 두 아들 응원 받고

정연순의 도전하는 인생

무대에서는 노래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가게에서는 맛있는 음식으로 손님을 즐겁게 하는 정연순 씨.



연예인들이 즐겨 찾는 곱창집 주인 아주머니의 가수 데뷔. 단골 가수 손님들에게는 나이 많은 후배가 생긴 터였다. 정씨는 “처음에는 알릴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쉬쉬했지만,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작은 사장’ 큰아들이 적극적으로 홍보했다”며 부끄러워했다. 데뷔 소식을 들은 단골 연예인들은 그를 볼 때마다 축하 인사를 건넨다.
“대단한 가수가 된 것이 아니라서 부끄럽지만 단골인 백지영 씨와 현미 선생님이 제 데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축하한다고 해주셨어요.”
그의 가장 큰 지원군은 역시 남편과 두 아들이었다. 남편 김의견 씨는 “늦었지만 잘 시작했다. 젊을 때의 꿈을 이루게 돼서 기쁘다”며 아내를 응원했다. 남편은 서울뿐 아니라 고향인 부산에서도 아내를 위한 홍보 활동을 적극 펼치고 있다.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둘째 아들 김태진 씨는 1999년 ‘시기’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가수 선배이기도 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 이주노가 프로듀싱해 ‘Shigi’라는 앨범을 낸 바 있다. 현재는 가게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개인 음악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정연순 씨가 가수의 꿈을 실현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돼준 것은 봉사다. 부산 당감동성당에서 그는 15년간 성가대 소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서울로 올라온 후에도 ‘강남어머니봉사회’ 사람들과 함께 교도소나 병원, 복지회관을 오가며 노래로 사람들을 어루만졌다.
“봉사 활동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만, 6년 동안 꾸준히 노래교실을 다녔어요. 노래 선생님이 가수로 데뷔하라고 권유하셨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다가 지인의 소개로 작곡가 장태민 선생님을 알게 됐고, 그분께 곡을 받아 데뷔하게 됐죠.”



정연순의 도전하는 인생


장태민 작곡가는 첫 녹음을 하던 정씨에게 “처음이 아닌 것 같다. 프로다”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가수 데뷔로 꿈을 이뤘지만, 그는 본업도 잊지 않았다. 사장인 정연순 씨가 보이지 않으면 서운해하는 손님들이 적잖았기 때문이다. 장사 하랴, 노래 부르랴 체력적으로 힘들 법도 한데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전혀 힘들지 않다”며 웃었다.
“제가 없으면 가게가 허전하대요. 직원들이 잘해줘도 뭔가 아쉬운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게는 비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매일 오후에 가게에 나갔다가 밤 11시쯤 집에 들어가요. 새벽 5시에 다시 가게에 나와서 직원들 퇴근시키고 잠깐 쉬죠.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그때 노래 연습을 해요. 제가 맡은 일을 성실히 해야 많은 사람들이 좋게 봐주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평생 노래를 했지만 막상 가수라는 타이틀로 활동한 지 1년이 되는 지금의 소회는 무엇일까.
“가수라는 단어에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혼자서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니고 많은 분들이 제 노래를 보고 들으니까요. 저를 도와주신 분들께 누가 되지 않고, 또 어디 가서 정연순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책임감도 크고요. 앞으로도 쭉 최선을 다해서 제 이름 석 자를 모든 사람이 기억하는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40년 만에 가수의 꿈을 이룬 정연순 씨. 꿈을 소중히 품었지만 이루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응원의 메시지도 남겼다.
“노래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가수의 꿈을 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꿈은 이뤄지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지 말고 늦게라도 시작해보세요. 꿈꾸던 소망을 이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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