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은 매일같이 오후 5시쯤 퇴근해 가족을 위한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아내가 요리한 날 설거지는 당연히 남편의 몫이다. 식사를 마치면 아이들과 블록 쌓기 등을 하며 한참을 놀아주거나 동화책을 잔뜩 쌓아놓고 책도 읽어준다. 아이들 공부도 도와주고 집안일도 한다. 주말이면 산이나 들, 공연장이나 박물관으로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고 휴가 기간이면 온 가족이 힘을 합쳐 집 앞 뜰에 뚝딱뚝딱 오두막을 짓기도 한다.
스웨덴에서 스웨덴 여성과 결혼해 세 아이를 낳아 키운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황선준 원장은 스웨덴의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런 꿈같은 이야기가 가능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최근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스칸디 교육법이 탄생했다. 스칸디 교육법은 스웨덴으로 대표되는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속한 북유럽 국가가 가진 공통적인 교육법을 일컫는다. 저녁 6시만 되면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고, 근무 시간도 하루 평균 8시간을 넘지 않는, 그래서 모든 것이 가족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아빠들이 참여하는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
엄마뿐 아니라 아빠에게도 직접적인 애정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더 높은 자존감과 성취감을 갖게 된다고 한다. 황선준 원장과 그의 가족들이 그동안 스웨덴을 떠날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평범한 스웨덴 가족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남자의 태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해 지기 전 퇴근은커녕 야근이나 회식으로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은 주말이면 이불 속에서 피로와 싸우느라 아이들과 놀아줄 틈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 교육은 늘 엄마의 몫이다.
물론 황선준 원장이 스웨덴으로 간 것은 이런 일과는 전혀 상관 없었다. 26년 전,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 과정까지 마친 황 원장은 스웨덴 국가 장학생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스웨덴 여성 레나 씨와 6년여의 열애 끝에 결혼을 해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아 키우며 20여 년을 스웨덴의 남자이자 스웨덴 여성의 남편으로, 그리고 스칸디 대디로 살았다. 그러는 동안 대학 강의교수와 연구원을 거쳐 감사원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스웨덴 국립교육청 간부로 지냈다. 그리고 2011년,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원장으로 임명되며 한국으로 돌아왔고, 작년에는 스웨덴의 중학교에서 상담교사로 근무하던 아내 레나 씨도 한국으로 와서 함께 지내고 있다. 황 원장에게 스웨덴에서의 삶은 일종의 도전이었다고 한다.
합리적 교육은 남녀 평등에서 시작된다
스웨덴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레나 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황 원장이 레나 씨를 ‘천사’로 기억했던 것과 달리 레나 씨는 남편을 ‘어둡고 말 없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눈치’나 ‘한(恨)’처럼 한국어의 독특한 표현에 대한 설명도 참 재미있었죠. ‘아리랑’이나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편에 대한 관심이 커졌던 것 같아요.”
그렇게 연애하다 한지붕 아래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 ‘사랑’ 그 하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우스갯소리지만 경상도 남자가 집에 돌아와서 하는 말이라고는 ‘아는?(아이들은?), 밥 도(밥 줘), 자자’, 이 세 마디밖에 없다던데, 그게 스웨덴에서 통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스웨덴에서는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은 남성이 직업을 가져야 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이 때문에 집안일이나 육아는 남편이 아내를 ‘도와주는’ 차원을 넘어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황 원장이 이것을 납득하고 실행하는 데까지 많은 조율이 필요했다.
“사소한 다툼이나 오해가 생길 때, 여러 번 곱씹으며 아내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했어요. 아내도 다혈질적이고 고집스러운 저의 성격 때문에 기다려주고 차분히 설명하려고 애썼죠. 아내의 합리적인 설명을 듣다 보면 결국 제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레나 씨가 20년간 한국 남자와 살면서 지금까지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바로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이라고 했다.
“한국에 와서 주변의 한국 남자들이나 TV 드라마 주인공들이 늘 소리 지르며 화 내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제 남편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죠(웃음). 물론 스웨덴 남자들도 화를 내지만 한국 남자들처럼은 아니거든요(웃음). 하지만 지금껏 아무리 남편이 화를 낸다고 해도 옳지 않은 일을 따른 적도, 따를 생각도 없어요.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는 남녀의 문제에서 시작돼 ‘자녀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과 남성의 위치를 결정하는 문제는 그 사회의 ‘어린이’의 위치를 결정하는 중대한 요인이라는 것이 레나 씨의 설명이다.
“제가 스웨덴에 간 지 10년 만에 아내와 아이 셋을 모두 데리고 아예 한국에 들어와 살려고 했어요. 그때 취업 준비도 할 겸 한국에 잠깐 머문 적이 있는데, 아내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됐죠.”

황선준·레나 부부는 첫째 아이를 낳은 후 결혼식을 올렸다. 아이와 책을 읽고 바깥나들이를 하는 것은 이들의 일상. 오른쪽 하단의 두 사진은 스웨덴에서 살던 황선준·레나 부부의 집 앞이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두 사람의 바람이었다고 한다.
철석같이 한국에서 살겠다고 약속했던 아내가 ‘한국에서 못 살겠다’고 마음을 바꾼 것은 한국에 있는 황 원장의 친구 아내들이 대학 교육까지 받고도 일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나, 조카들이 학원이나 과외 때문에 놀지도 못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잠재적인 사회상을 아파트의 놀이터에서 발견한 아내의 통찰력에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주차장은 겨울에도 해가 드는 양지에 있고, 아이들이 뛰어놀아야 할 놀이터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응달에 있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누구 하나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게 이상하다는 거죠. 아내는 중학교에서 전문 상담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만 지내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한국에 살면서 아내가 걱정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가 없었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토론하는 교육의 힘

황선준 원장이 스웨덴에서 처음 받았던 충격만큼 아내도 한국의 교육 환경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레나 씨가 원했던 것은 남편과 평등하게 살면서 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