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 여동생의 된장녀 변신기 문근영
‘청담동 앨리스’는 ‘메리는 외박 중’ 이후 2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이다. 첫 방송을 앞두고 문근영(26)은 인터뷰에서 “(연기하는 게) 무서워졌다”고 말했다. 어떤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때보다 조금씩 그 맛을 알아갈 때가 더 힘든 법이다. 1999년 영화 ‘길 위에서’로 데뷔했으니, 어느덧 연기 경력 14년째. 지금까지는 쫓기듯 달려왔다면 이제는 자신을 돌아보며 본격적인 성인 배우로 도약을 준비하는 시기다. ‘가을동화’에서 보여줬던 앳된 모습도 이제는 보기 좋게 살이 붙어 성숙한 여자의 느낌이 묻어난다. ‘청담동 앨리스’에서 그가 연기하는 한세경은 고정된 인물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다. 잘만 하면 그의 비상에 날개가 될 수 있는 역할이다.
이 드라마는 평범한 여자의 청담동 며느리 되기 프로젝트로, 진정한 결혼 조건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담는다. 여기서 문근영은 명문대 디자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의류회사 신입사원 한세경으로 등장한다.
10여 년간 동네에서 빵집을 하면서 가족을 보살폈던 아버지는 가게 앞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며 망해버린다. 꼭짓점에서 대출 끼고 5억원에 산 아파트는 날로 가격이 하락해 3억원이 됐다. 계속 이자를 갚았지만 원금 2억5천만원은 고스란히 남았다. 6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는 어머니 병원비와 수술비로 늘어난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돼 이별을 고했다.
세경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도 고학점(4.2점), 공모전 수상,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 등 화려한 스펙을 쌓았지만 취업문 뚫기는 하늘의 별따기. 3년 도전 끝에 가까스로 의류회사 디자인실에 입사했지만 그에게 주어진 일은 사장 부인의 쇼핑 심부름꾼 인턴이다. 세경은 이 일을 통해 지금껏 살아왔던 세상과 전혀 다른 이상한 나라(청담동)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자신이 모시는 사모님이 고등학교 때 자신보다 한참 못했던 친구라면? 여기서 세경이 선택한 카드는 친구로부터 조건 좋은 남자 꼬시는 노하우를 전수받아 신데렐라가 되는 것이다. 문근영은 세경 역이 솔직해서 와 닿았다고 말했다.
“캔디형 여주인공이 차 사고로 남자 주인공을 만나고, 남자 주인공이 ‘날 이렇게 대한 건 네가 처음이야’라고 하는 게 아니라, 여주인공이 오히려 ‘나도 돈 많고 집안 좋은 남자 만나서 멋지게 잘살 거야’라고 목적을 드러내니까 솔직해서 좋았어요. 캔디처럼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아’가 아니라 울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아니까 울지 않는 거죠. 그 친구가 처해 있는 상황이나 현실이나 이런 것들, 그 속에서 마음이나 감정이나 그런 것들을 최대한 정말 진심을 다해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 나눠주며 “감 잡으세요”라고 하는 센스
실제 청담동에 대한 이미지를 묻자 문근영은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동네가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더라. 너무 조용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문근영은 청담동과는 거리가 먼, 광주광역시에서 나고 자랐다. 화려함은 청담동에 미치지 못하지만 인심은 넘치고도 남는다. 그래서인지 문근영은 제작진에게 마음씀씀이이가 예쁘다는 칭찬을 많이 듣는다. 한 제작진에 따르면 “한 번은 근영 씨가 촬영장에 일찍 도착해 제작진에게 깎은 감을 나눠주면서 ‘감 잡으세요’라고 말하더라. 감도 먹고, 드라마도 잘됐으면 하는 뜻이었다. 특히, 그 감은 광주에 살고 있는 근영 씨 부모가 직접 딴 것이라고 했다. 근영 씨는 세트장에 귤을 사가지고 와서 나눠주기도 하고, 밤 촬영 때는 사탕을 들고 나타나 한 움큼씩 집어준다”고 전했다.
한때 문근영은 상큼하고 귀여운 이미지 때문에 국민 여동생으로 사랑을 받았다. 심지어 그런 열풍을 타고 지질한 남자 3명이 문근영을 납치한다는 설정의 ‘문근영은 위험해’라는 소설도 나왔다. 저자인 임성순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문근영이 결혼한다면 그 상대자를 살해할 거야”라고 한 지인의 말에서 작품의 모티프를 따왔다고 말했다. 살해 위협을 무릅쓰며 그와 결혼할 사람은 어떤 남자일까. 문근영은 배우자 조건에 대해 “서로 얘기할 거리가 많으면 좋겠다. 관심 분야가 같건 취향이 비슷하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제가 서른 살에 결혼해도 50년을 배우자와 살 텐데 늘 똑같은 것만 하고 살면 지루할 것 같아요. 죽을 때까지 새롭게 뭔가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겠고 또 저만 사랑해주면 좋겠어요(웃음).”
◆ 지질하고 뒤끝 있는 명품남 박시후
박시후(35)가 맡은 인물은 명품 회사 아르테미스코리아의 장 띠에르 샤 회장. 극 중 아르테미스는 모든 여성들이 하나씩 갖고 싶어 하는 럭셔리 브랜드. 말하자면 샤넬이나 루이비통쯤 된다. 그의 원래 이름은 차승조. 로얄백화점 차일남 사장의 외아들이지만 윤주(소이현)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하다가 아버지에게 내쫓김당했다. 하지만 윤주가 승조보다 더 사랑했던 것은 로얄백화점 며느리 자리. 그가 집안에서 버림받자 윤주도 미련 없이 그의 곁을 떠난다. 뒤늦게 여자들의 심리와 속물근성에 눈을 뜬 승조는 이를 명품 브랜드 마케팅 전략에 활용해 유통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떠오른다.
이런 복잡한 과거 때문에 승조는 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겉보기와 달리 지질한 면도 많다. 날마다 여성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댓글을 달아대는 된장녀 경멸증에, 남자에게 빌붙는 여자에게 극도의 거부증을 갖고 있으며 당한 만큼 꼭 되갚아줘야 하는 뒤끝 있는 남자다.
박시후는 이런 이중적인 캐릭터를 잘 살려 극의 웃음을 책임진다. 차일남 회장이 로얄백화점과 아르테미스의 콜래보레이션을 부탁하기 위해 찾아오자 “아버지가 먼저 저를 까셨잖아요”라고 단칼에 거절하거나, 옛 연인 윤주 앞에 멋지게 나타나 통쾌하게 복수를 한 후 뒤돌아서서 포복절도하며 깨방정을 떠는 모습은 폭소를 자아낸다. 박시후는 기존의 인물들과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정말 스펙트럼이 넓은 캐릭터라 장면마다 새로운 연기를 하는 것 같아요. 대본 볼 때마다 제가 뭔가를 제대로 보여드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있어요.”
문근영 얼굴에 소이현 몸매가 이상형
박시후는 2005년 데뷔 이래 ‘공주의 남자’ 등에서 주로 무게 잡는 역을 맡아왔기에 이번 드라마로 박시후의 재발견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의 아버지는 1세대 패션 모델로 60여 편의 CF에도 출연한 박용후 씨. 연예인의 끼와 재능을 타고난 것 같은데 뜻밖에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다고 한다. 데뷔 전 쪽방에서 지내며 단역 배우로 활동한 것. 나이에 비해 늦게 얼굴을 알린 것도, 경력에 비해 연기력이 뛰어난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청담동 앨리스’ 덕분에 연기할 맛이 난다는 그에게도 한 가지 고민이 있다. 함께 호흡을 맞추는 문근영이 동안이라 신경이 쓰인다고. 그 덕분에 피부과에 자주 들락거리게 됐다는 그에게 소이현과 문근영 중 누가 이상형에 가까운지 물었더니 “소이현 몸매에 문근영 얼굴, 그리고 항상 남자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는 마음씨 착한 여성이면 좋겠다”는 답을 내놓는다. 눈이 너무 높아서일까. 7년째 여자친구가 없단다.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는데, 그런 게 과연 있을까요. 겪어봐야 알 것 같아요.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갑자기 다가온다던데 평생 안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어요.”
◆ 신데렐라 그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소이현
동화책에 나오는 공주 이야기는 늘 “왕자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을 맺는다. 과연 그럴까. 소이현이 연기하는 서윤주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답이 있다. 윤주는 문근영이 연기하는 세경의 고교 동창. 평범한 서민 여자였지만 유명 패션회사 ‘지앤의류’ 안주인 자리를 꿰차며 청담동에 입성한 인물이다. 청담동 사모님답게 그는 언제나 고고하고 도도한 표정과 태도를 잃지 않는다. 하지만 아름다운 가면 뒤에는 남자를 이용해 신분 상승을 이루려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어두운 과거가 있다.
결혼 후 삶도 늘 행복하지만은 않다. “네가 마음에 들어서 며느리로 삼은 것은 아니다”라며 대놓고 무시하는 시어머니, 출신 계급이 다르다며 은근히 무시하는 시누이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과거 남자친구 문제까지 겹쳐 마음은 늘 바늘방석이다.
“이번 윤주 캐릭터는 평소 제 모습과도 다르고 그동안 한 번도 안 해봤던 역이라는 점에서 재미있어요. 지인들도 이런 제 모습을 새로워하시더라고요. 윤주가 청담동에 입성하기 위해 꼼꼼히 적었던 ‘시크릿 다이어리’를 한번 볼 수 있는지 묻는 분들도 있었어요. 드라마 속 윤주를 싫어하고 얄미워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삶을 닮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듣고 조금 놀라기도 했고요.”
윤주의 삶 선망하는 사람 많아 놀랐다
이번 드라마의 또다른 관람 포인트는 윤주의 화려한 의상과 액세서리. 큰 키와 작은 얼굴의 소이현은 매회 세련되면서도 기품 넘치는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그가 입는 옷과 착용하는 액세서리는 다음날 포털 사이트에서 ‘어느 브랜드 제품이냐’는 질문이 끝도 없이 달린다. 여배우로서는 한 번쯤 탐낼 만한 역이다. 특히 극 중 윤주가 세경에게 사오라고 한 다이아몬드 액세서리는 1억9천만원짜리.
그런데 정작 소이현은 “비싼 친구(옷과 액세서리)들을 모시고 촬영해야 해서 정말 피곤하다”며 “쉬는 시간에도 FD와 코디가 달려와 흰 장갑을 끼고 액세서리를 빼놓았다가 촬영에 들어가면 다시 착용한다. 나는 뒷전이다”고 귀여운 투정을 부렸다. 극 중 윤주의 으리으리한 저택에 대해서도 소이현은 “1백 평 넘는 펜트하우스라서 멋지고 화려하지만 나는 실제로는 아담한 집이 더 좋다”며 소탈한 면모를 보였다.
드라마가 방송 시작과 함께 큰 화제가 된 점에 대해 소이현은 “앨리스라는 제목 때문에 굉장히 동화 같은 이야기면서도 동시에 현실성이 정말 잘 녹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