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영(32)은 TV 속 모습보다 실물이 훨씬 예쁜 배우다. 하지만 그동안 그의 미모는 캐릭터에 가려질 때가 많았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2010)에는 남장 여자 유생으로 등장하고, ‘영광의 재인’(2011)과 ‘힐러’(2014) 등의 작품에서도 선머슴 같은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최근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서 완벽한 여신 미모로 원작 웹툰의 여주인공 김미소가 빙의된 듯한 연기를 선보여 방영 내내 호평을 받았다. 김미소는 언니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취직해 9년간 비서로 이영준(박서준) 부회장을 보필했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의 꿈을 찾겠다며 사의를 표한 김 비서에게 이영준은 그동안 숨겼던 마음을 드러내고, 두 사람은 달콤한 로맨스를 코믹하게 엮어간다.
총명하고 당찬 ‘김 비서’를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그를 7월 말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방송이 이제 막 끝나선지 그는 말투도, 외모도 영락없는 김 비서였다.
예뻐졌다는 반응이 많더군요. 살을 많이 뺐다면서요.
원작 웹툰을 보니 김미소는 몸매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친구더라고요. 언니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돼지껍데기도 마다할 정도로요. 그 장면을 보고 큰일 났구나 싶었어요. 저는 정반대 스타일이었거든요. 마침 그때 운동을 막 시작한 터여서 트레이너에게 부탁을 드렸어요. “지금 무조건 살을 빼야 하는 상황이다. 급하게 뺀 느낌이 아닌 꾸준히, 체계적으로 관리한 듯한 몸매를 만들 수 있게 도와달라”고요. 그때부터 넉 달간 매일 PT(퍼스널 트레이닝)를 받으며 운동을 했어요. 집에도 운동기구를 사다 놓고 촬영장에 가기 전 유산소 운동을 했죠. 식단도 닭가슴살 위주로 조절했고요. 그렇게 했더니 체지방이 줄고 근육량이 늘었어요. 몸무게는 4kg 정도 줄었고요. 옷을 입어보니 확실히 태가 다르더라고요(웃음).
다이어트를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요즘 먹방이 너무 많아져 밤에 TV를 틀면 유혹을 참기 힘들더라고요. 허기를 달래려고 시중에서 파는 깔라만시, 곤약젤리 같은 다이어트 식품을 종류별로 다 먹어봤어요. 제 경험으로는 배고픔을 달래기엔 깔라만시가 가장 괜찮더라고요.
이전에는 몸매 관리를 전혀 안 했나요.
하나도 안 한다고 하기가 민망해서 인터뷰할 때 그런 질문을 받으면 필라테스를 한다는 식으로 말씀드렸어요. 필라테스를 배우려고 등록을 했던 건 사실이거든요. 근데 10회권을 끊으면 몇 달을 쓸 정도로 열심히 하질 않았어요. 1년 전 끊은 수강증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극 중 하이웨이스트 스커트와 포니테일 헤어스타일로 등장했는데, 스타일링 콘셉트는 어떻게 잡았나요.
스타일링 콘셉트가 ‘웹툰에 100% 맞추자’였어요. 그래서 헤어를 포니테일 스타일로 하고 앞머리를 옆으로 길게 늘어뜨린 거예요. 메이크업도 눈초리까지 캐릭터와 일치시켰고요. 근데 하이웨이스트 스커트는 요새 유행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기성복 중엔 없더라고요. 같은 디자인의 스커트를 색깔별로 15장을 따로 제작했죠. 그중에는 색상이 너무 튀어 아직 못 입어본 것도 있어요. 제 몸에 맞춘 거라고 저한테 준다는데 영영 입을 일이 없을 것 같아요. 그 스커트를 입으면 밥 먹기가 힘들거든요. 하하하.
예전엔 보이시한 이미지였는데 이번엔 천생 여자였어요.
‘힐러’라는 드라마를 찍을 땐 털털한 기자 역할이라 미용실에서 헤어, 메이크업을 다 하는 데 20분이 걸렸어요. 샴푸한 후 파마머리를 툭툭 털고 비비크림 하나 바르면 끝이었죠. 그런데 이번엔 헤어, 메이크업을 완성하는 데 1시간 반이 걸릴 정도로 공을 들였어요.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속눈썹을 붙인 건 처음이거든요. 귀찮은 걸 싫어해 예전에는 뷰러와 마스카라만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속눈썹을 한 올 한 올 열심히 붙였더니 화면에서 느낌이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그렇게 완벽하게 세팅을 해서 차로 이동할 때도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편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포니테일이 망가질까 봐요.
우리 시대의 ‘미생’이기도 한 김미소를 연기하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극 초반에 김미소가 이영준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해요. “이제는 누군가의 가장이 아닌 김미소의 인생을 찾고 싶다”고요. 제가 미소에게 애정을 갖게 된 계기가 그 대사였어요. 미소는 저보다 어린 29세인데도, 10년 가까이 가족과 남을 위해서만 살다가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해 하던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참 멋지더라고요. 비록 미소보다 훨씬 좋은 여건에 있긴 하지만 저 역시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살고 있고, 일하며 느끼는 감정이나 부담은 김미소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저도 박민영의 인생을 좀 찾고 싶을 때가 있었기에 김미소의 생각에 공감했고, 미소와 빨리 친해질 수 있었어요.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사이 연기자로서의 위기가 있었나요.
배우로서 그동안 업&다운이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자존감이 떨어질 때가 몇 번 있었어요. 석사 학위를 받기 전, ‘힐러’에 출연하기 전, 그리고 이번 작품을 하기 전에요. 제 멘탈이 캐릭터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서 전작이 너무 어둡게 끝나면 후유증이 심했어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드니까 정신적으로도 무너져 밸런스가 안 맞았어요. 그렇게 작품 때문에 겪는 아픔을 작품으로 치유해왔던 것 같아요.
그럼 이번에는 치유가 됐겠네요.
맞아요(웃음). 미소로 사는 하루하루가 신나더라고요. 드라마 쫑파티 때 저와 친한 스크립터가 “화면 속의 박민영이 진심으로 연기를 즐기는 게 보여서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제 눈이 늘 즐거워 보였대요. 미소의 분량이 많아 잠을 거의 못 잤는데도 피곤한 줄 모르겠더라고요. 스태프들이 다 잘 때도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는 장면을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이번 작품을 즐길 수 있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코미디가 섞인 작품을 한 건 데뷔작인 ‘거침없이 하이킥!’(2006) 이후 10여 년 만인데 코믹 연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PD님도 “편집은 신경 쓰지 말고 뭐든 다 해보라”며 편하게 연기할 기회를 주셔서 정말 신나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고요. 현장이 만날 웃음바다였어요. 이번처럼 여주인공 캐릭터가 막힘이 없고 개연성이 분명한 작품을 한 건 처음이에요. 제가 맡은 역할에서 당위성을 찾으려 고민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한순간도 없었죠.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었나 봐요.
제가 맡은 캐릭터의 말과 행동이 납득이 돼야 제 목소리와 표정에 이를 담아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최면을 걸듯 제 자신을 이해시키고 그 안에서 당위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는데 아무리 애써도 그게 잘 안 돼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역할도 있거든요.
‘박민영의 인생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땐 언제인가요.
연기 생활을 하는 중간 중간 슬럼프가 왔을 때요. 그럴 땐 배우로서 제가 하고 싶은 연기, 하고 있으면 행복한 연기를 찾고 싶어요. 연기 활동을 그만두고 다른 길을 가고 싶다는 게 아니고요. 이제 연기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어요. 제가 여행을 참 좋아하는데, 일을 안 하고 떠나면 마음이 불편해서 놀 수가 없어요. 작품에 열정을 쏟고 난 뒤의 휴가가 진짜 힐링이 되더라고요. 저한테 힐링의 대상은 연기예요. 제가 소화할 수 있는 연기를 찾느냐, 못 찾느냐가 제 행복의 크기를 결정짓더라고요.
극 중 박서준 씨와 스킨십을 하는 장면이 많았어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은요.
이영준 부회장이 미소가 입은 블라우스의 리본을 푸는 장면요. 원작에선 리본이 아닌 단추를 푸는데, 단추로는 야릇한 느낌이 안 살 것 같아서 스타일리스트에게 한복 저고리 고름처럼 긴 리본이 달린 블라우스를 준비해달라고 특별히 부탁했어요. 그 덕분에 PD님께 칭찬도 듣고 제가 그리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었죠. 무엇보다 촬영 감독님이 앵글을 굉장히 예쁘게 잡아주셔서 만족스러웠어요. 원작엔 정말 야하게 표현돼 있거든요(웃음).
박서준 씨와 정말 잘 어울리고 함께하는 신에서 너무 행복해 보였어요. 종영 직후 불거진 열애설이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요.
제가 봐도 이영준과 김미소가 참 잘 어울렸어요. 촬영 현장에서 연기 호흡도 잘 맞았고요. 박서준 씨와는 작품을 같이한 게 처음이어서 촬영 초반에는 대하기가 좀 어색했는데, 첫 방송을 한 달 반 정도 남겨두고 9년 전 회상 신을 찍을 때부터 편해졌던 것 같아요. 신입 사원인 미소가 이영준의 해외 출장에 동행해 넥타이를 매주는 신이었죠. 상대 배우가 어떤 스타일인지 파악되니 그때부터 호흡이 잘 맞더라고요. 정말 재미있게 찍은 작품이라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 소문 때문에 좋은 여운을 뺏긴 것 같아 아쉬워요. 그 소문은 정말 사실이 아니에요. 저는 친하면 친하다, 사귀면 사귄다고 솔직하게 인정해요. 처음엔 굳이 해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소문의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너무 많더라고요. 열심히 한 다른 배우들의 인터뷰가 열애설에 가려지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도 들었고요. 저는 LA건, 도쿄건 그분과 같이 간 적이 없어요. 엄마랑 같이 갔어요. 여행을 주로 엄마랑 가거든요. 제 인스타그램에서 캡처한 신발과 모자 사진이 그분의 것과 같다는 것을 열애설의 근거로 제시했던데 같은 아이템을 가진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요. 이번 드라마의 FD도 제 것과 같은 발렌시아가 모자를 갖고 있어요. 진짜 커플이면 인스타그램에 그런 사진을 올리지 않았겠죠. 만약 정말 호감이 가는 사람과 진지하게 사귀게 되면 제가 먼저 교제 사실을 알릴 거예요. 소속사와 상의해서요.
좋아하는 남성상은 어떤 스타일인가요.
이상형이 딱히 정해져 있진 않은데 성격 좋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에게 호감이 가더라고요.
일과 결혼한 건 아니죠.
그러고 싶진 않아요. 하하하.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나침반 같은 존재가 있나요.
제 나침반은 엄마인 것 같아요. 항상 저를 엇나가지 않게 다잡아 주시거든요. ‘항상 정직하게 일하고 정직하게 보상받자’가 제 모토예요. 제가 한 만큼 인정받고, 제가 한 만큼 사랑받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이번 작품처럼 주변에서 평소보다 좋은 반응을 보인 경우에도 들뜨지 않았고요. 제 구심점은 가족이에요. 그들이 상처 받는 게 싫어서 더 열심히 제 길을 가는 거예요.
어느덧 30대가 됐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 계획인가요.
저를 가장 잘 챙겨줄 수 있는 건 제 자신밖에 없더라고요. 스스로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영양제도 제 손으로 사서 꾸준히 먹고 있고, 운동도 하게 된 거예요. 저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연기를 평생 하고 싶어요. 그렇기에 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작품보다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작품을 계속 만나면 좋겠어요.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나무엑터스
그런 그가 최근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서 완벽한 여신 미모로 원작 웹툰의 여주인공 김미소가 빙의된 듯한 연기를 선보여 방영 내내 호평을 받았다. 김미소는 언니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취직해 9년간 비서로 이영준(박서준) 부회장을 보필했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의 꿈을 찾겠다며 사의를 표한 김 비서에게 이영준은 그동안 숨겼던 마음을 드러내고, 두 사람은 달콤한 로맨스를 코믹하게 엮어간다.
총명하고 당찬 ‘김 비서’를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그를 7월 말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방송이 이제 막 끝나선지 그는 말투도, 외모도 영락없는 김 비서였다.
예뻐졌다는 반응이 많더군요. 살을 많이 뺐다면서요.
원작 웹툰을 보니 김미소는 몸매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친구더라고요. 언니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돼지껍데기도 마다할 정도로요. 그 장면을 보고 큰일 났구나 싶었어요. 저는 정반대 스타일이었거든요. 마침 그때 운동을 막 시작한 터여서 트레이너에게 부탁을 드렸어요. “지금 무조건 살을 빼야 하는 상황이다. 급하게 뺀 느낌이 아닌 꾸준히, 체계적으로 관리한 듯한 몸매를 만들 수 있게 도와달라”고요. 그때부터 넉 달간 매일 PT(퍼스널 트레이닝)를 받으며 운동을 했어요. 집에도 운동기구를 사다 놓고 촬영장에 가기 전 유산소 운동을 했죠. 식단도 닭가슴살 위주로 조절했고요. 그렇게 했더니 체지방이 줄고 근육량이 늘었어요. 몸무게는 4kg 정도 줄었고요. 옷을 입어보니 확실히 태가 다르더라고요(웃음).
다이어트를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요즘 먹방이 너무 많아져 밤에 TV를 틀면 유혹을 참기 힘들더라고요. 허기를 달래려고 시중에서 파는 깔라만시, 곤약젤리 같은 다이어트 식품을 종류별로 다 먹어봤어요. 제 경험으로는 배고픔을 달래기엔 깔라만시가 가장 괜찮더라고요.
이전에는 몸매 관리를 전혀 안 했나요.
하나도 안 한다고 하기가 민망해서 인터뷰할 때 그런 질문을 받으면 필라테스를 한다는 식으로 말씀드렸어요. 필라테스를 배우려고 등록을 했던 건 사실이거든요. 근데 10회권을 끊으면 몇 달을 쓸 정도로 열심히 하질 않았어요. 1년 전 끊은 수강증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극 중 하이웨이스트 스커트와 포니테일 헤어스타일로 등장했는데, 스타일링 콘셉트는 어떻게 잡았나요.
스타일링 콘셉트가 ‘웹툰에 100% 맞추자’였어요. 그래서 헤어를 포니테일 스타일로 하고 앞머리를 옆으로 길게 늘어뜨린 거예요. 메이크업도 눈초리까지 캐릭터와 일치시켰고요. 근데 하이웨이스트 스커트는 요새 유행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기성복 중엔 없더라고요. 같은 디자인의 스커트를 색깔별로 15장을 따로 제작했죠. 그중에는 색상이 너무 튀어 아직 못 입어본 것도 있어요. 제 몸에 맞춘 거라고 저한테 준다는데 영영 입을 일이 없을 것 같아요. 그 스커트를 입으면 밥 먹기가 힘들거든요. 하하하.
예전엔 보이시한 이미지였는데 이번엔 천생 여자였어요.
‘힐러’라는 드라마를 찍을 땐 털털한 기자 역할이라 미용실에서 헤어, 메이크업을 다 하는 데 20분이 걸렸어요. 샴푸한 후 파마머리를 툭툭 털고 비비크림 하나 바르면 끝이었죠. 그런데 이번엔 헤어, 메이크업을 완성하는 데 1시간 반이 걸릴 정도로 공을 들였어요.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속눈썹을 붙인 건 처음이거든요. 귀찮은 걸 싫어해 예전에는 뷰러와 마스카라만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속눈썹을 한 올 한 올 열심히 붙였더니 화면에서 느낌이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그렇게 완벽하게 세팅을 해서 차로 이동할 때도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편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포니테일이 망가질까 봐요.
우리 시대의 ‘미생’이기도 한 김미소를 연기하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극 초반에 김미소가 이영준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해요. “이제는 누군가의 가장이 아닌 김미소의 인생을 찾고 싶다”고요. 제가 미소에게 애정을 갖게 된 계기가 그 대사였어요. 미소는 저보다 어린 29세인데도, 10년 가까이 가족과 남을 위해서만 살다가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해 하던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참 멋지더라고요. 비록 미소보다 훨씬 좋은 여건에 있긴 하지만 저 역시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살고 있고, 일하며 느끼는 감정이나 부담은 김미소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저도 박민영의 인생을 좀 찾고 싶을 때가 있었기에 김미소의 생각에 공감했고, 미소와 빨리 친해질 수 있었어요.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사이 연기자로서의 위기가 있었나요.
배우로서 그동안 업&다운이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자존감이 떨어질 때가 몇 번 있었어요. 석사 학위를 받기 전, ‘힐러’에 출연하기 전, 그리고 이번 작품을 하기 전에요. 제 멘탈이 캐릭터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서 전작이 너무 어둡게 끝나면 후유증이 심했어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드니까 정신적으로도 무너져 밸런스가 안 맞았어요. 그렇게 작품 때문에 겪는 아픔을 작품으로 치유해왔던 것 같아요.
그럼 이번에는 치유가 됐겠네요.
맞아요(웃음). 미소로 사는 하루하루가 신나더라고요. 드라마 쫑파티 때 저와 친한 스크립터가 “화면 속의 박민영이 진심으로 연기를 즐기는 게 보여서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제 눈이 늘 즐거워 보였대요. 미소의 분량이 많아 잠을 거의 못 잤는데도 피곤한 줄 모르겠더라고요. 스태프들이 다 잘 때도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는 장면을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이번 작품을 즐길 수 있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코미디가 섞인 작품을 한 건 데뷔작인 ‘거침없이 하이킥!’(2006) 이후 10여 년 만인데 코믹 연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PD님도 “편집은 신경 쓰지 말고 뭐든 다 해보라”며 편하게 연기할 기회를 주셔서 정말 신나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고요. 현장이 만날 웃음바다였어요. 이번처럼 여주인공 캐릭터가 막힘이 없고 개연성이 분명한 작품을 한 건 처음이에요. 제가 맡은 역할에서 당위성을 찾으려 고민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한순간도 없었죠.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었나 봐요.
제가 맡은 캐릭터의 말과 행동이 납득이 돼야 제 목소리와 표정에 이를 담아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최면을 걸듯 제 자신을 이해시키고 그 안에서 당위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는데 아무리 애써도 그게 잘 안 돼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역할도 있거든요.
‘박민영의 인생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땐 언제인가요.
연기 생활을 하는 중간 중간 슬럼프가 왔을 때요. 그럴 땐 배우로서 제가 하고 싶은 연기, 하고 있으면 행복한 연기를 찾고 싶어요. 연기 활동을 그만두고 다른 길을 가고 싶다는 게 아니고요. 이제 연기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어요. 제가 여행을 참 좋아하는데, 일을 안 하고 떠나면 마음이 불편해서 놀 수가 없어요. 작품에 열정을 쏟고 난 뒤의 휴가가 진짜 힐링이 되더라고요. 저한테 힐링의 대상은 연기예요. 제가 소화할 수 있는 연기를 찾느냐, 못 찾느냐가 제 행복의 크기를 결정짓더라고요.
극 중 박서준 씨와 스킨십을 하는 장면이 많았어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은요.
이영준 부회장이 미소가 입은 블라우스의 리본을 푸는 장면요. 원작에선 리본이 아닌 단추를 푸는데, 단추로는 야릇한 느낌이 안 살 것 같아서 스타일리스트에게 한복 저고리 고름처럼 긴 리본이 달린 블라우스를 준비해달라고 특별히 부탁했어요. 그 덕분에 PD님께 칭찬도 듣고 제가 그리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었죠. 무엇보다 촬영 감독님이 앵글을 굉장히 예쁘게 잡아주셔서 만족스러웠어요. 원작엔 정말 야하게 표현돼 있거든요(웃음).
박서준 씨와 정말 잘 어울리고 함께하는 신에서 너무 행복해 보였어요. 종영 직후 불거진 열애설이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요.
제가 봐도 이영준과 김미소가 참 잘 어울렸어요. 촬영 현장에서 연기 호흡도 잘 맞았고요. 박서준 씨와는 작품을 같이한 게 처음이어서 촬영 초반에는 대하기가 좀 어색했는데, 첫 방송을 한 달 반 정도 남겨두고 9년 전 회상 신을 찍을 때부터 편해졌던 것 같아요. 신입 사원인 미소가 이영준의 해외 출장에 동행해 넥타이를 매주는 신이었죠. 상대 배우가 어떤 스타일인지 파악되니 그때부터 호흡이 잘 맞더라고요. 정말 재미있게 찍은 작품이라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 소문 때문에 좋은 여운을 뺏긴 것 같아 아쉬워요. 그 소문은 정말 사실이 아니에요. 저는 친하면 친하다, 사귀면 사귄다고 솔직하게 인정해요. 처음엔 굳이 해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소문의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너무 많더라고요. 열심히 한 다른 배우들의 인터뷰가 열애설에 가려지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도 들었고요. 저는 LA건, 도쿄건 그분과 같이 간 적이 없어요. 엄마랑 같이 갔어요. 여행을 주로 엄마랑 가거든요. 제 인스타그램에서 캡처한 신발과 모자 사진이 그분의 것과 같다는 것을 열애설의 근거로 제시했던데 같은 아이템을 가진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요. 이번 드라마의 FD도 제 것과 같은 발렌시아가 모자를 갖고 있어요. 진짜 커플이면 인스타그램에 그런 사진을 올리지 않았겠죠. 만약 정말 호감이 가는 사람과 진지하게 사귀게 되면 제가 먼저 교제 사실을 알릴 거예요. 소속사와 상의해서요.
좋아하는 남성상은 어떤 스타일인가요.
이상형이 딱히 정해져 있진 않은데 성격 좋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에게 호감이 가더라고요.
일과 결혼한 건 아니죠.
그러고 싶진 않아요. 하하하.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나침반 같은 존재가 있나요.
제 나침반은 엄마인 것 같아요. 항상 저를 엇나가지 않게 다잡아 주시거든요. ‘항상 정직하게 일하고 정직하게 보상받자’가 제 모토예요. 제가 한 만큼 인정받고, 제가 한 만큼 사랑받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이번 작품처럼 주변에서 평소보다 좋은 반응을 보인 경우에도 들뜨지 않았고요. 제 구심점은 가족이에요. 그들이 상처 받는 게 싫어서 더 열심히 제 길을 가는 거예요.
어느덧 30대가 됐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 계획인가요.
저를 가장 잘 챙겨줄 수 있는 건 제 자신밖에 없더라고요. 스스로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영양제도 제 손으로 사서 꾸준히 먹고 있고, 운동도 하게 된 거예요. 저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연기를 평생 하고 싶어요. 그렇기에 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작품보다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작품을 계속 만나면 좋겠어요.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나무엑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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