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박경림(33)이 3천 명의 여자들 앞에 들고 나온 강연 주제는 ‘행복을 위한 치유’. 박경림은 요즘 20~30대 여성들의 가장 큰 특징으로 ‘남들에게 행복해 보이고 싶어 하는 욕망’을 꼽았다. 온라인상에 개인의 일상을 공개하고 자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요즘, 미니홈피나 SNS에 맛있는 음식 사진을 올리고 공연 관람 후기와 쇼핑 일지를 쓰는 등의 행동들은 결국 남에게 나의 행복을 알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는 것. 그렇지만 박경림은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내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남에게 얘기할 줄 알아야 진정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보통 친구와 얘기하면 남의 걱정을 많이 하죠. 일명 뒷담화라고 하는데, ‘그 얘기 들었어?’라고 시작한 대화는 ‘에휴, 걔는 어떡하니, 걱정이다’로 마무리 지어져요(웃음). 철없는 10대 때는 대놓고 ‘걔 정말 재수 없지 않냐?’하고 말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 들면 지능적으로 변해서 상대를 걱정하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말을 포장하죠(웃음). 다들 공감하시죠? 하하. 결국 친구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지만 정작 내 얘기는 하나도 하지 못하고 수다가 끝나버려요. 그러고 나면 뭔가 마음이 공허하고, 스트레스 지수는 더욱 높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나요? 저는 몇 년 사이 그런 경험을 참 많이 했어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쏟아내지 못하니까 마음이 정말 힘들더라고요.”
“행복해 보이려고만 애쓰지 말고 고민도 속 시원히 털어놓으세요”
그동안 그가 자신의 고민과 걱정거리를 홀가분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데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우선 그의 직업이 연예인이고, 결혼 후 가족이 생기면서 감수해야 할 일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박경림은 지난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박경림 우환설’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여러분의 기억 한편에는 서럽게 울고 있는 제 모습이 있을 거예요(웃음). MBC ‘세바퀴’에 출연해 상황극을 하다가 벌어진 일이었어요. 당시 탤런트 김민희 선배님과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의 한 장면을 재연했죠, 그때 제가 ‘엄마 없더라도 아빠 말 잘 들어야 해. 안 그러면 엄마는 너무 슬플 거야’ 하고 대사를 하던 중 갑자기 아들 민준이 생각이 나는 바람에 감정이 격해져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 말았죠. 그러자 한 출연자가 ‘박경림 씨, 집에 우환 있어요? 왜 이렇게 울어요’ 하고 농담을 했는데, 다음 날 인터넷에 ‘박경림 우환설! ’이란 제목의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하더라고요(웃음). 거기까진 괜찮았어요. 그런데 며칠 동안 몇십 개 인터넷 매체가 기사를 받아쓰면서 어느 순간 기사 제목이 ‘박경림 우환설! ’ ‘박경림 불화! ’로 변하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우환 있는 여자가 돼버렸어요(웃음).”
그 일을 계기로 박경림은 자신의 문제가 자기에서 그치지 않고 가정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남편과 다투거나 시집과 문제가 있을 때 선뜻 누군가에게 속 시원히 고민거리를 털어놓지 못하게 됐다고. 결국 아무 말 못하고 속앓이 하는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그는 다시금 ‘어떤 상황에서도 내 얘기를 풀 수 있는 상대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나의 아픔을 누군가에게 고백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나에게는 죽을 만큼 힘든 일도, 남이 볼 때는 하찮은 일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참 재미있는 건, 누구나 나쁜 일에 대해서는 철저히 절대적이 돼요. 내 아픔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느끼는 거죠. 만약 남자친구랑 헤어져 아주 슬퍼하고 있는데,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접해요. 그래도 나는 나의 슬픔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객관적으로 보면 말이 안 되지만, 그게 우리의 모습이에요. 반대로 기쁜 일에서는 상대적이에요. 내게 아무리 기쁜 일이 생겼더라도 상대에게 더 좋은 일이 생겼다는 걸 알면 내 행복이 별 볼일 없어 보이거든요. 하지만 슬픔과 기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반대되면 좋겠어요. 기쁨은 절대적으로, 슬픔은 상대적으로요.”
해질 무렵 날씨가 제법 쌀쌀했지만 청중들은 박경림의 위트 있는 말솜씨에 매료돼 시종 밝은 표정이었다.
그래야만 어떤 시련이 와도 나보다 더 힘든 상황인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슬픔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박경림은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도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며 또 다른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울증 걸릴 걸로 따지면 저는 한도 끝도 없어요(웃음). 인터넷 댓글만 봐도 ‘사각탱이야, 니 별로 돌아가라’부터 ‘목소리가 왜 그러냐. 골초냐’ 등 무시무시한 얘기가 많거든요. 저도 처음에는 그런 걸 볼 때마다 많이 속상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분들도 고마운 나의 팬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처럼 생각의 차이인 것 같아요. 비록 제가 여러분의 고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누군가에게 걱정거리를 털어놓는 순간 나의 불행은 더 이상 불행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예요. 고민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거든요.”
‘민준이 엄마’에서 방송인 박경림으로 전환 중
그렇다면 요즘 박경림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일까. 그는 “언젠가부터 대중이 나를 점점 멀게 느끼는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문제는 자신에게 있었다고 시인했다. 예전만큼 노력하지 않았으며, 육아를 핑계로 한동안 방송의 치열함을 외면하고 살았다는 것. 신인시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아침 8시 MBC 방송국 10층에 있는 도서관으로 출근했던 자신을 돌이켜보면 저절로 반성하게 된다고 한다.
“당시 제가 라디오 진행을 하고 싶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웃음을 쳤어요. ‘네 목소리를 들으면 청취자들이 주파수를 잘못 맞춘 줄 안다’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죠(웃음). 또 제가 ‘MC가 되고 싶어요’ 하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저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가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날마다 MBC 10층 도서관으로 갔어요. 아무도 저의 출퇴근에 관심 없었지만 작가실, PD실을 찾아가 ‘오늘도 경림이는 10층에 있습니다’ 하고 제 존재를 알렸죠. 점심 식사 후에 또 방송국을 한 바퀴 돈 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밤 10시가 되면 작가, PD분들께 퇴근한다 얘기하고 집으로 갔어요. 그렇게 6개월이 흐르니까 하늘도 저를 돕더라고요(웃음). 엄청난 폭설로 연예인들이 제시간에 방송국에 도착하지 못하자 몇 개 프로그램에서 저를 대타로 쓴 거예요. 그날 ‘경림아~’ 하고 도서관으로 저를 찾으러 온 직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요(웃음). 결국 저는 그 일을 계기로 라디오 개편 때 고정 프로그램을 7개나 맡았죠.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제 모습은 많이 달라졌어요. 특히 아이가 태어난 뒤 ‘민준이 엄마’로 사느라 방송인 박경림을 많이 놓쳐버렸던 게 사실이고요.”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한 채 일에만 몰두할 수는 없다. 결국 박경림은 얼마 전 자기만의 새로운 원칙을 세웠다. 프로그램을 정할 때 쉽게 할 수 있는 건 피하고, 방송이 있을 때 최소한 3시간 일찍 현장에 나가자고 약속한 것. 또 그동안 ‘아이 때문에, 남편 때문에’ 등의 이유로 적극적이지 못했다면 다시 방송인 박경림으로 돌아가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다고 다짐 했다.
이처럼 그가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건 결혼 6년 차에 접어들면서 어느 정도 육아에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경림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이라면 누구나 혼란기를 겪는다. 그럴 때일수록 좌절하지 말고 현재 상황에서 최선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자신에게 맞는 생활 패턴을 만들어가는 게 방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저도 한때는 ‘이러다 일을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정도 아이가 자라니까 엄마가 어떻게 하면 될지 답이 보이더라고요. 하루 종일 아이와 놀아주지 못할 거라면 함께 있는 시간만이라도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끔 온몸으로 놀아주려고 해요. ‘선택과 집중’은 육아에도 통하더라고요(웃음). 고민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여러분도 아까운 청춘을 고민하며 살지 마시고, 그 시간이 기쁘든 슬프든 기꺼이 즐기세요. 놀 땐 미친 듯이 노는 것, 그게 행복한 인생을 위한 지름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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