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원장 권혁세) 금융소비자보호처(이하 금소처)는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사와 소비자 간 빈번하게 발생하는 분쟁을 조정하고 민원 상담을 하는 등 소비자의 편에서 도움을 주는 기관이다. 5월 15일 신설된 금소처는 금융 분쟁과 피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도록 소비자 금융 교육도 하고 있다. 문정숙(57) 금융소비자보호처장(부원장보)은 “공급자와 소비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 공급자와 소비자 간 정보 격차 줄이는 것이 목표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의 소비자 업무는 민원과 분쟁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금융 위기가 도래하고 대내외적으로 금감원의 소비자 보호 기능을 강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죠. 그래서 금융사 관리·감독 기능과는 별도로 금감원 내에 소비자 보호 기능을 강화한 금소처를 만들게 된 거예요.”
금소처는 금융 시장에서 소비자가 궁금해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하는 한편 사후적인 민원과 분쟁 해결에도 앞장서고 있다. 민원이 많이 발생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비정기적으로 ‘소비자 경보’를 발령해 금융 소비자가 유의할 만한 사항을 알려준다. 6월에는 ‘카드사 리볼빙 서비스 수수료’, 7월에는 ‘해외여행 시 원화로 카드 결제할 때 유의사항’에 대해 경보를 발령했다.
문 처장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사의 비정상적 영업 행위와 불합리한 관행으로 피해를 봤다며 금감원에 걸려온 상담전화는 38만여 건이다. 이 중에서 민원으로 접수된 것이 8만5천여 건이 넘고 분쟁으로 확대 접수된 건 3만4천여 건에 이른다. 문 처장은 “금소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금소처를 만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전화다. 국번 없이 1332번. 금융 관련 상담은 물론 금융사로부터 받은 피해 등 민원을 전화로 접수할 수 있다. 상담을 위해 은행, 증권, 생명보험, 손해보험, 카드 등 각 금융 분야의 전문 상담원이 대기하고 있다. 직접 여의도 금감원을 찾아오거나, 대전·광주·부산·대구 등 4개 금감원 지원을 방문해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금감원과 금소처가 운영하는 금융소비자포털(consumer.fss.or.kr)도 활용할 것.
문 처장은 “금융 분야는 일반적인 재화를 사는 것과는 달리 공부가 좀 더 필요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금융 상품을 살 때는 시간을 투입하고 적극적으로 정보를 탐색하고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보통은 집이나 회사에서 가깝고 편한 곳에 있는 금융 회사에 가서 상담원이 권유하는 대로 금융 상품을 사는 경우가 많죠. 특히 사인할 때 정보를 충분히 숙지하지 않고 사인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손해를 볼 수가 있어요.”
일반 재화와 달리 금융 상품 살 때는 공부 필요해
문 처장은 사후적인 조치 외에 사전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소비자를 위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를 위해 1년에 20만 명 이상의 소비자에게 금융 교육을 하고 있다.
“금융 교육이 필요한 학교와 금융 교육을 해줄 수 있는 금융 회사 간 네트워킹을 하고, 지방 단체와도 MOU를 맺었어요. 금융 지식이 필요한 이들에겐 6월부터 금융 전문가들을 태운 ‘금융 사랑방 버스’가 방방곡곡 달려가고 있죠. 다문화 가정이나 탈북 가정, 군부대, 저소득층, 농어촌, 대학생 등 금융 혜택이 취약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서 금융 고충을 상담하고 분쟁을 해결하고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여풍’이 거세다 한들 아직 금융계에서는 여성 고위 공직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유독 남초 현상이 강한 금융계에서 문 처장의 성과가 돋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9년 12월 금감원에 첫발을 내딛은 문 처장은 소비자경제학자
1세대다. 스무 장이 넘는 이력서에는 그간의 경력과 수상 기록, 논문, 강연 등 소비자경제학 전문가로 살아온 30여 년이 담겨 있다. 문 처장은 20여 년간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책자문위원을 역임했고,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 옛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등 정부부처와 우리금융·한국전력공사 사외이사 등 기업 외에도 한국소비문화학회·한국소비자정책교육학회 회장직을 맡아 활발히 활동했다.
1 민원인의 금융 분쟁 조정을 위해 분쟁조정위원회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문 처장. 2 서민들의 금융 애로를 덜어주기 위해 금소처는 금융 사랑방 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3 미국 연방 준비은행 호가드 박사와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좌담회 중인 문 처장. 4 문 처장이 등촌동 사회복지관에서 김장을 도와주고 있다. 5 금융감독원 원장 직속 준독립기관으로 5월 15일 출범한 금소처.
숙명여대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가정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선진국에서는 주요 트렌드였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소비자’라는 개념에 주목했다. 1980년대 초반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그는 미국 캔자스주립대에서 소비자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 숙명여대에서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20여 년간 학생을 가르쳤다.
“미국에서 유학하며 성공한 여성 리더들의 모습을 자주 봤어요.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일에는 양보 없는 전문가인 데다 가정 문제를 포함한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점이었죠. 젊은 시절 보고 배운 그들의 생활상은 제게 큰 자극이 됐죠.”
여대 출신에 경제학 안에서도 비주류인 소비자경제학을 택했기에 험한 길은 예정돼 있었다. 경쟁력을 갖추고자 몇 배로 노력했음은 물론이다. 새벽까지 공부하고 치열하게 노력해 이 자리까지 온 그는 “훌륭한 선원은 험한 파도가 키운다”는 말의 산증인이다.
마흔에 결혼, 남편은 고요한 강물 같은 남자
수평적인 교수 사회에 익숙해 있다가 수직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금감원에 들어오니 적응이 쉽지만은 않았다. 금감원 직원 간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관계를 원활히 하려 정면돌파를 택했다. 문 처장은 원내 취미 소모임 중 트레킹 담당을 맡아 용소계곡, 서울 성곽 등을 돌며 친목을 다지고 있다.
성공한 여성 리더들은 대부분 결혼을 아주 일찍 했거나 아예 안 한 경우가 많다. 문 처장은 이들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독신주의자는 아니었지만, 학문과 일적 성취에 매달리다 보니 결혼이 늦어져 마흔네 살에 첫아이를 얻었다. 마흔 살에 선배의 소개로 만난 남편 태석준 교수는 현재 청주 서원대 경영학과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문 처장의 말에 따르면 “깊고 고요한 강물 같은 남자”라고. 남편과 아이 사진을 들어 보이곤 “인상이 선하지 않냐”며 웃음 짓는 문 처장은 금세 금소처 수장에서 한 가정의 아내로 돌아와 있었다.
금감원에 들어오기 전에는 10여 개가 넘는 조찬 모임에 참여했다는 문 처장은 요즘도 꾸준히 경제 관련 조찬 모임에 나가고 저녁에는 금융 소모임에 참석한다. 금융 소비자를 위해 이곳저곳 일을 벌이다 보니 체중도 5kg이나 빠졌다. “지금도 가슴속에는 꺼지지 않는 불같은 열정이 있다”는 문 처장. 그는 “소비자경제학 교수 1세대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한국 사회가 공급자 중심 경제에서 소비자 중심 경제로 이행하고 있어요. 그간 금융 소비자의 문제를 사후 해결하는 측면이 강했다면, 이제는 사전 예방하는 식으로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고 싶어요. 금소처가 앞으로도 소비자에게 좀 더 쉽고 친절한 곳으로 다가설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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