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보증 콤비’ 김은숙 작가와 신우철 PD의 일곱 번째 드라마는 ‘신사의 품격(이하 신품)’. 남자판 ‘섹스 앤 더 시티’로 불리며 일과 직장에서는 안정될 나이지만 친구들과 있을 땐 철부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수컷’들의 솔직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이에 드라마 속 4인방처럼 잘나가는 40대 중년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극 중 도진(장동건)과 태산(김수로)의 마음을 헤아리듯 ‘남자의 마흔(청년정신)’이란 책을 낸 정신과 의사 김정일(54), 최윤(김민종)처럼 속 깊은 변호사 송수현(47), 이종혁 못지않은 꽃중년 탤런트 박용진(46)과 체코와 러시아에서 무대미술을 공부하고 돌아와 지역문화예술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서두원 광명문화예술센터장(43)이 드라마 관전기와 실제 남자들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서두원 저희 문화예술센터 여직원들도 드라마 ‘신품’ 이야기를 자주 해요. 너무 멋진 남자들만 나온다면서요.
송수현 어느 날은 아내와 딸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 나란히 앉아 뭔가를 열심히 재밌게 보더라고요. 그게 ‘신품’이었어요. 너무 열심히 봐서 EBS 강의 보나 했다니까요.
박용진 심지어 길거리에서 네 사람의 개성만점 스타일을 따라한 남성들을 많이 볼 수 있고 주인공 김도진(장동건)의 말투도 유행하고 있죠.
김정일 아, 말의 어미를 “~하는 걸로”라고 끝내는 일명 ‘걸로체’ 말씀이군요. “합의는 안 하는 걸로~” “야구 하는 거 안 싫은 걸로~”. 은근히 감각적이면서 중독성이 있네요.
박용진 “그럼 사치스럽게 말고 가치스럽게 신어요” “이수 씨는 나한테 우먼이 아니라 휴먼이야” “내 인생에 반짝이는 건 너 하나로 족해” “내 손금에 한 줄은 너야, 내가 평생 쥐고 살” 등 제가 볼 때는 닭살스러운 대사도 여심을 휘어잡고 있죠.
서두원 주인공들이 마시는 음료나 김도진이 자주 먹는 빵까지 덩달아 인기라고 하죠.
박용진 제 아내까지 “장동건이 케이크 먹는 모습을 보니 맛있어 보인다”며 오늘 사오라고 했어요.
청순과 섹시,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의 매력
서두원 사실 남자들은 상대 여배우에게 더 관심이 가지 않나요? 연애 상대로 누가 좋으냐고 물으면 다들 예쁘고 매력적이라 선뜻 결론이 안 날 듯합니다.
김정일 맞아요. 많은 남성이 연애에 숙맥인 듯 어설퍼 보이지만 청순한 외모와 순진하고 소탈한 성격을 지닌 서이수(김하늘)와의 데이트를 즐거워할 것 같습니다. 천방지축 철부지 같지만 풋풋하고 귀여운 임메아리(윤진이)와의 데이트도 유쾌할 것 같고요.
송수현 지적인 외모와 원숙한 매력에 재력까지 갖춘 박민숙(김정난)과도 대화가 잘 통할 것 같은 기대감이 있죠. 쿨한 연애관에 도도함, 화려함을 겸비한 섹시한 매력의 홍세라(윤세아)와의 데이트는 화끈할 것 같습니다.
서두원 불혹에도 본능적으로 예쁜 여자를 찾는 네 남자가 짧은 치마를 입고 허리를 숙인 여인의 엉덩이를 대놓고 쳐다보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아내가 남자들은 다 저러냐고 하면서 혀를 끌끌 차던데 당연한 거 아닙니까? 생물학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그리워하도록 만들어졌는데요.
박용진 제 아내는 사별한 아내를 가슴에 담은 채 친구의 어린 여동생의 적극적인 구애에 흔들리는 최윤에게 마음이 간다고 하더군요.
김정일 나이 차가 많은 어린 여자와의 연애나 결혼이 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죠.
송수현 물론 아니죠. 오히려 나이 든 남성과 젊은 여성 커플이나 연륜 있는 여성과 풋풋한 젊은 남성의 결합이 사회적으로 더 좋다는 속설도 있잖아요.
서두원 요즘은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나이 차는 크게 문제되는 것 같지 않아요.
김정일 사실 제가 스물두 살 연하 여성과 재혼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물리적인 나이 차는 있지만 살면서 의식하지 못해요. 주변 친구들이 가끔 걱정 섞인 질문을 하지요. “나이 차가 그렇게 나는데 감당이 되냐?”고요. 감당이 됩니다. 오히려 내가 넘칩니다. 내 몸과 정신은 최고의 컨디션을 찾았고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서두원 대단하십니다. 드라마에서 최윤과 임메아리의 사랑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네요. 여성의 시각에서 배우자로 적합한 남자를 고른다면 저는 최윤을 뽑겠습니다. 제 딸이 열 살인데 너무 예뻐서 누구에게도 보내기 싫거든요. 그렇다고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굳이 드라마 캐릭터 중 사위감을 고른다면 최윤이 아닐까요. 삶에 대한 태도가 가장 진지해요.
김정일 딸의 배우자로 그 네 명 중 골라야 한다면 저는 김도진을 선택하겠습니다. 집착이 없으면서도 솔직한 남자니까요. 감성적으로 끌리는 사람에게 열중하되 예의는 지키는 진실한 남자, 멋있죠.
송수현 김도진의 성격이 김 선생님과 비슷한 점이 많은가보죠?
김정일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솔직하다는 점에서 비슷할까요? 잘 생기고…, 그건 아닌가? 지금부터 조용히 있을게요(웃음).
박용진 여자들이 연애는 육체적으로 멋있고 매력 있는 사람에게 끌리는 경향이 많지만 결혼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경제적 조건을 더 신경 쓰는 것 같아요. 또한 자신만 일편단심 사랑해주는 다정다감한 순정파를 원하죠. 그런데 이 드라마의 남자들 모두 경제적으론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죠? 그 고민을 일단 접고 본다면 제 딸이 임태산(김수로) 같은 사람을 만났으면 해요. 상대방에 대한 깊은 배려와 큰오빠 같은 믿음직함, 건장한 체격 등이 남자다워서 좋아요. 마초적 기질이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네 명 중 가장 신사답지 않을까요.
남자도 섹스보다 대화 원해
박용진 그럼, 드라마에서 이정록(이종혁)이 수시로 다른 여자를 만나는 이유는 뭘까요. 연상의 아내가 자기 말을 잘 안 들어줘서일까요?
김정일 드라마 초반이라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누나나 엄마 같은 연상의 여인이라 소통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죠. 아니면 성적인 욕구가 만족되지 않거나 몰래 하는 사랑의 스릴을 즐기고 싶다 등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네요.
송수현 저는 이혼 소송을 많이 담당했는데, 불륜과 간통을 저지른 남성들의 상당수가 아내와의 소통이 안 돼 외로워하다 새로운 이성에게 빠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그들은 그게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죠. 남이 하면 불륜이지만 자기가 하면 로맨스인 게 현실이죠.
서두원 아내와 소통이 잘 되고 관계가 나쁘지 않아도 매력적인 이성을 만나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요?
박용진 당연히 흔들릴 수 있죠. 하지만 일단 결혼을 했으니 책임감으로 욕구와 충동을 자제해야죠.
송수현 그렇죠. 내가 중심이 잡혀 있어야죠. 사실 저는 사람들과 야한 농담도 적당히 하고 주변에서 매력적인 여성들을 자주 보거든요. 하지만 중심이 잡혀 있으면 이상형이 다가왔을 때 호기심 때문에 잠시 마음이 흔들려도-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은 아내라고 마음을 잡죠. 아내는 제 전부이지만 어쩌다 부부싸움을 할 때 ‘내가 당신 아니면 없는 줄 알아?’라고 긴장감을 조성하죠.
서두원 드라마에서 “호기심이 진심 된다”는 대사가 나오던데(웃음).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고 삶에 지쳐 있는 사람들이 불륜에 빠지기 쉬운 것 같긴 해요.
김정일 ‘플레이보이’의 대부 휴 헤프너는 ‘결혼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바람직하지만 평생 한 여자만 사랑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말했죠.
서두원 어떤 면에서 맞는 말 같네요. 생물학적으로 모든 인간은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을 안고 가야 하는 존재 아닌가요? 가끔 ‘지금의 아내가 정말 내가 원했던 여자였던가? 내가 원하는 여자가 또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는 없나요?
김정일 결혼할 때 앞으로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또 생기면 헤어져 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건 어떨까요? 수위가 좀 높았나요? 어떤 중년 남성은 “애인을 한 명 사귀고 싶다. 섹스 때문이 아니라 그녀와 함께 밤새 하염없이 얘기하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섹스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기 얘기를 잘 들어주는 여자라는 것이죠. 요즘 비아그라, 시알리스, 레비트라 등 발기촉진제를 찾는 중년 남성들이 많습니다. 술자리나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이 얘기가 나오면 벌떼 같은 관심을 보이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한두 통의 전화가 걸려오죠. “거 있잖아요, 그거 처방 받으려면 어떻게 해요?”라고요. 하지만 최고의 비아그라는 사랑하는 여자의 인정과 칭찬이죠. 어떤 면에서 신사는 여자 즉 숙녀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일 수도 있어요.
불혹을 넘긴 네 남자의 일과 사랑을 그려 화제를 모으는 ‘신사의 품격’.
신사의 품격은 존중과 배려, 그리고 소통
서두원 드라마는 19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서태지의 ‘하여가’가 여기저기 울려퍼지던 시절의 X세대 이야기인데, 피할 수 없는 좌절을 맛본 것도 아니고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쉽게 공부해서 어느 정도의 실력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주인공이죠. 아직은 진정한 품격을 가진 신사라고 하기엔 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가정이나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배려심이 있어야 진정한 신사라고 봅니다. 개인적인 것에서 공동체적인 것으로의 성찰의 확장이 필요하죠.
송수현 제가 생각하는 신사의 덕목은 사람과 삶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과 매너에서 자발적 의무감이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성적인 욕구가 갈급해도 연인이나 아내가 그에 맞추기 어렵다면 참고 기다려줄 수 있고 지켜줄 수 있어야죠. 어디선가 말 그대로 ‘확 필이 꽂히는 사람’이 나타나 자신을 흔들어도 중심을 가지고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연인과 부부가 모임에 나가서 파트너에 대해 진심어린 칭찬의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신사가 아닐까요?
김정일 현실적으로 우리네 일상에서 품격을 갖춘 진정한 신사란 어떤 남자일까요? 저는 연인과 부부관계에서 한눈 팔지 않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늘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흔이란 나이는 새로운 출발을 해도 되는 나이, 인생을 리뉴얼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아직까지 신사로서의 품격을 갖추지 못한 40대가 있다면 드라마의 네 주인공이 여러 사건과 사랑, 각종 변수를 겪으며 성장해가는 모습에 공감하면서 신사로서의 품격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존중과 배려, 소통이 드라마의 주요 키워드 같아요.
■ 장소협찬 | 망고식스(02-6716-7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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