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스케이트 선수 김연아(22)가 교생 선생님이 됐다.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 4학년인 그의 교생 실습 일정이 공개된 것은 자신이 주최하는 아이스쇼 프로그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였다. 당시 김연아는 “5월에 아이스쇼를 마치면 곧바로 교생 실습에 들어간다”라며 “학생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좋은 경험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교생 실습을 목전에 둔 5월 4~6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E1 올댓스케이트 스프링 2012’를 열고 새로운 갈라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날 김연아는 1부에서 남장을 하고 등장했다. 모자를 눌러쓴 바지 정장 차림에 재즈 선율의 ‘올 오브 미(All of me)’에 맞춰 경쾌하면서도 시원시원한 동작의 안무를 선보이며 사랑에 빠진 남자의 설레는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모자와 정장 재킷을 벗어던지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여인으로 돌아오는 퍼포먼스를 선보여 관중을 사로잡았다.
2부에서도 반전이 있었다. 영국 여가수 아델의 히트곡 ‘섬원 라이크 유(Someone like you)’가 흐르는 가운데 1부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 김연아. 연한 물빛의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청초한 분위기를 뽐냈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고독한 노랫말에 어울리는 표현과 표정 연기가 일품이었다. 더블 악셀과 트리플 토 루프를 선보이며 여왕의 건재함을 알린 그는 아이스쇼 말미에 눈물을 보이는 등 벅찬 감정을 내보였다. 그가 빙판에 선 것은 지난해 8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축하 아이스쇼 이후 9개월 만의 일이었다.
블랙 앤드 화이트의 우아한 모습으로 첫 수업
5월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진선여자고등학교. 2교시가 시작될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은 좀처럼 교실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모두 운동장으로 몰려나와 목을 빼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이날은 김연아가 진선여고에서 4주간 교생 실습을 하는 첫날이자 언론에 공개하는 유일한 날이었다. 공식 발표가 있기 며칠 전부터 트위터 등 SNS에서는 ‘김연아가 진선여고에서 교생 실습을 한다’는 소식이 퍼져 진선여고 학생들은 다른 학교 학생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이날 그는 진선여고 회당기념관 내 도서관에서 2학년 학생들에게 ‘피겨 스케이팅 이론’을 가르쳤다. 2009년 고려대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한 김연아는 올해 4학년이 됐다. 5학기 이상 등록한 학부생은 4주간의 교생 실습을 이수해야 교사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김연아 측 관계자는 “모교인 군포 수리고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훈련과 교생 실습을 병행해야 하는 일정 때문에 서울 시내 학교로 배정받았다”고 했다. “남학교는 배제했다”고도 귀띔했다. 학생들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될 것을 염려해서였다. 그의 수업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은 건물 밖에서 열성적으로 “김연아”를 연호했다.
눈부시게 터지는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도서관에 김연아가 등장했다. 이날 김연아의 패션 콘셉트는 블랙 앤드 화이트. 모노톤 스트라이프 상의에 화이트 재킷, 통이 넓은 블랙 팬츠로 시크한 매력을 살리고 귀걸이와 팔찌를 착용해 우아함도 강조했다.
“오늘 처음으로 교생 실습을 하게 됐는데요. 조금 긴장되지만 재밌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평소 인터뷰 할 때도 약간은 무뚝뚝한 말투가 인상적인 그답게 특유의 말투로 수업을 진행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이나 국제적인 피겨 스케이팅 대회 등 큰 무대에서도 떠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강심장’으로 불린 김연아. 그러나 이날만큼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교실에는 빙판에서 도도한 카리스마로 관중을 사로잡던 피겨 여왕 대신 앳된 얼굴의 교생 선생님이 자리해 있었다.
그는 “솔직히 피겨 스케이팅을 몸으로만 했지 이론은 잘 몰랐는데 준비하면서 많이 배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경기에서 신었던 스케이트화를 들고 나와 각 부분의 명칭과 기능을 설명했다. 또 직접 경기에서 선보인 점프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학생들의 집중을 유도했다. 스케이트화를 들고 “냄새는 안 납니다”라며 재치 있게 냄새 맡는 듯한 모션을 취해 학생들을 웃겼다. 슬슬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저랑 아사다 마오 선수가 비교되면서 트리플 악셀이 많이 알려져 제가 트리플 악셀을 구사하는 줄 알고 계신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는 트리플 악셀을 못합니다(웃음).”
솔직한 교생 선생님의 모습에 학생들이 “괜찮아요”를 연호했다. 쑥스러운 듯 웃던 그도 “괜찮아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악셀 점프에 왜 악셀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아는 사람 있어요?”
그의 물음에 한 학생이 번쩍 손을 들더니 “처음 시도한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외쳤다. 김연아는 “누가 알려준 것 아니냐”며 웃더니 “맞다”고 하며 악셀 점프의 유래를 설명했다. 시청각 자료로는 자신이 참가한 경기 영상을 보여줬다. 영상에 집중한 학생들이 김연아가 공중회전을 할 때마다 “우아~”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방청객 같은 학생들의 반응에 선생님으로서 애써 근엄함을 유지하려던 그도 함께 웃고 말았다.
오전에는 선생님, 오후에는 선수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TV로만 보던 김연아 선수를 실제로 보니까 친근하고 잘 웃어줘서 좋았다”며 “교생 선생님으로서 정말 최고인 것 같고, 준비를 잘해온 것 같다”고 평했다. 다른 학생도 “처음인데 아주 잘하셨다”라며 교생 선생님을 치켜세웠다. 김연아 선수의 아이스쇼에도 다녀왔다는 한 선생님은 “현장에서 보는 모습과 또 이렇게 교단에 서서 보는 모습이 다르다”라며 “정말 매력적이다, 학생들보다 내가 더 설렌다”며 상기된 얼굴이었다.
이날 현장에는 학생보다 많은 취재진이 몰려 김연아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실감케 했다. 선생님들도 설레기는 마찬가지. 자신의 수업이 아닌데도 김연아를 보기 위해 많은 선생님이 교실 뒤편에서 수업을 참관했다. 1시간여의 첫 수업을 마친 김연아는 교생 실습에 임한 소감을 밝혔다.
“제가 너무 두서없이 말해서 이해가 잘 안 되더라도 봐주시고요(웃음). 앞으로 교생 실습 하면서 더 노력하고, 좋은 교생 선생님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그는 훈련을 위해 곧바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학교를 떠나는 김연아의 모습을 보려고 진선여고 학생 들뿐 아니라 옆의 진선여중 학생까지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는 교생 실습 기간에도 수업이 끝나면 서울 노원구 태릉빙상장에서 개인 훈련을 계속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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