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 15cm는 족히 돼 보이는 주황색 킬 힐을 신고 다섯 시간째 뜨거운 조명을 받고 서 있는 이혜영(41). TV조선 스타일 쇼 ‘이혜영의 여자 ·’ 녹화장에서 만난 그는 잠깐씩 녹화가 중단될 때마다 의자에 앉아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대본을 살폈다. 그러다 카메라에 다시 불이 들어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차고 유쾌한 목소리로 진행을 이어갔다.
녹화가 끝나자 이혜영은 옥스퍼드 소재의 편안한 셔츠에 회색 앙고라 카디건을 걸치고, “달아오른 발을 식혀야 한다”며 슬리퍼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편안해진 건 비단 옷차림새뿐이 아니었다. 지난해 7월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려 많은 여성들의 부러움을 산 그는 근황을 묻는 질문에 “하루하루가 마음 편안하고 행복하다”며 수줍게 웃었다. ‘여자 ·’ 첫 회 방송에서는 자신의 행복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에 자신이 결혼식 때 입었던,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이브닝드레스와 웨딩슈즈를 결혼을 앞둔 방청객 한 명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인터뷰는 신혼 이야기로 흘렀다. 연애 기간 동안 남자친구에 대해 철저히 비밀로 일관해온 그는 결혼식도 미국 하와이에서 비공개로 치러 많은 팬들의 궁금증을 샀다. 이날도 이혜영은 남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이혜영의 남편은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기업 인수합병 전문가로 상당한 재력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2009년 일명 ‘소개팅’으로 처음 만났다.
“이제 싱글 생활을 접고 싶다는 생각이 한창 들 때였어요. 여기저기에 ‘소개팅 좀 시켜달라’고 떠벌리고 다닐 정도였어요(웃음). 어느 날 아는 분이 전화를 해서 저와 잘 어울릴 것 같은 남자가 있으니 만나보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막상 약속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아 나가지 않으려 했더니 주선자가 안 나오면 분명 후회할거라고 해서 친구 한 명과 함께 약속 장소에 나갔어요. 그런데 남자가 10분이나 늦는 거예요. 살짝 마음이 상하려고 하는데, 2층 계단을 올라오면서 저를 보고 눈이 점점 커지는 한 남자가 보였어요. 당시 남편은 저를 소개받는 줄 모르고 있었더라고요. 상기된 표정으로 친구가 아닌 제 앞에 당당히 앉는 모습을 보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혜영은 남편의 눈빛에 반했다고 한다. 강렬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에서 웬지모를 진심이 느껴졌다. 이혜영은 이날 남편과 주고받은 대화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남편의 눈빛만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느낀 두 사람은 결혼하기 전까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데이트를 즐겼다. 사람들 눈을 의식해 비밀데이트를 했을 것 같지만 그는 “숨기려고 애쓰지는 않았지만 다른 모르는 분들은 남편을 제 매니저로 생각한 것 같다”며 웃었다.
이혜영은 남편의 가장 큰 장점으로 남자다운 넓은 마음씨를 꼽았다. 연애할 때는 물론이고 결혼해서 지금까지 두 사람은 사소한 말다툼 한 번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혜영은 자신이 진행을 맡은 ‘여자 &’ 첫 회 방송에서 결혼식 때 입은 이브닝드레스를 방청객 한 명에게 선물했다(왼쪽).
“저와 같은 분야의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생각이나 말이 참 잘 통해요. 저도 독특하지만 저희 신랑도 저 못지않거든요(웃음). 지금껏 단 한 번도 남편이 화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어요. 그만큼 속이 깊고 배포가 큰 사람이죠. 무엇보다 연예인으로서의 제 삶도 많이 이해해줘요. ‘여자 ·’ 방송도 인터넷 다시보기로 한 회도 놓치지 않고 다 보고 있어요. 지난주에는 1차 삼겹살, 2차 노래방으로 방송 식구들 회식도 시켜줬어요(웃음). 평소에도 남편과 소주를 자주 마셔요. 꼬리곰탕에 소주, 매운 닭발에 소주, 차돌배기에 소주, 주로 이런 식이에요(웃음).”
시한부 선고받은 아버지가 가고 싶어했던 하와이에서 웨딩마치
이혜영은 인터뷰에 앞서 ‘여자 ·’ 첫 회 방송에서도 결혼생활을 살짝 공개했다. 당시 그는 결혼을 결심한 계기에 대해 “남편을 만나는 매 순간 멋진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를 만나기 위해 그동안 내가 그렇게 험난한 길을 걸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며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결혼식은 하와이 시간으로 오후 6시 노을이 질 무렵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그가 결혼식 장소로 하와이를 택한 데는 남다른 사정이 있다. 결혼 얘기가 오갈 무렵 친정아버지가 암에 걸려 4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은 것. 평소 하와이 카우아이섬 헬리콥터 투어를 해보고 싶어 했던 아버지를 위해 두 사람은 하와이로 결혼식 장소를 결정했다.
“처음부터 가족끼리 조용한 분위기에서 치르고 싶기도 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하와이 구경을 시켜드리고 싶었어요. 결혼식 때는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어요. 신부로서 벅찬 감동과 함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애달픈 마음 등, 마치 시작과 마지막이 공존하는 기분이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버지는 결혼식에서 좋은 기운을 받으셔서인지 하와이 다녀오신 뒤 암세포가 몰라보게 줄어들었어요. 다들 기적이라고 할 정도였죠. 한 달 전에는 암 절제 수술까지 받으셔서 이제는 거의 다 완치되셨어요.”
이혜영은 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동안 날마다 병실을 지켰다고 한다. 남편도 이틀에 한 번씩 거르지 않고 병실로 찾아왔다고. 그는 “아마 병원에서 저를 보신 분들은 효녀라고 했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2011년 7월 노을이 질 무렵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로맨틱한 결혼식을 올린 이혜영.
화가 시어머니 격려 속에 화가의 꿈 키워
남다른 패션 감각을 지닌 이혜영은 결혼 후 남편의 스타일링에도 각별히 신경을 쓴다. 남편이 총각 때 입었던 옷의 절반 가까이를 친정아버지에게 드리고 젊고 세련된 느낌의 옷들로 옷장을 새로 채웠다고 한다. 그 덕분에 남편은 지인들로부터 결혼 후 젊어졌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클래식한 멋을 좋아해서 남편도 영국 신사 풍으로 코디해줘요. 피케셔츠에 스웨터를 입는다거나 청바지도 일자 스타일의 바지를 롤업을 해서 입는 식이죠. 남편이 이제는 외출 때마다 제게 풀 착장을 원해요(웃음).”
커플룩도 소화 가능한지 물어보자 그는 “당연하다”며 반색했다. 그렇다고 똑같은 디자인과 컬러의 옷을 입는 건 아니다. 한두 가지 포인트만 맞추면 그게 바로 이혜영식 커플룩. 주로 남편 옷을 먼저 코디한 뒤 자신의 옷을 고르는데, 남편이 면 소재 셔츠를 입으면 자신도 비슷한 소재의 옷을 입고, 청바지를 입으면 디자인은 달라도 비슷한 색깔의 청바지를 입으며, 남편이 짧은 피코트를 입으면 그는 조금 긴 피코트를 입는 식으로 커플룩을 맞춘다고 한다.
“결혼 전에는 안방이 제 옷방이었는데 결혼 후에는 작은 방을 옷장으로 쓰다 보니 미처 옷을 다 풀어놓지 못했어요. 20대 때부터 모아둔 옷과 구두 등이 많은데, 아직 창고에 그대로 쌓여 있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조만간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기로 했어요.”
나중에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명품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에르메스 버킨백과 샤넬 가방을 꼽았다. 딸을 낳으면 성인이 됐을 때 자신이 오랫동안 들어 낡은 백을 유니크한 느낌으로 리폼해 줄 생각이라고 한다. 옷이나 액세서리도 마찬가지. 이혜영은 “엄마가 사용한 물건을 딸이 이어받아 쓴다는 건 명품을 떠나 모녀간의 역사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며 말했다.
최근 이혜영의 관심은 패션을 넘어 예술로까지 번졌다. 어려서부터 해보고 싶었던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 그는 어린 시절 사생대회에서 여러 번 상을 받기도 했지만 미술학원에 보내달라고 조를 형편이 아니란 걸 알고 꿈을 접었다. 성인이 된 뒤로는 일에 치여 사느라 그림을 그릴 여유가 없었다.
“아직 누구에게 보여줄 만큼의 실력은 안돼요.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을 그려야겠다 싶어서 화방에 들어가 초보자용 유화 용품을 샀어요. 그날부터 그리기 시작해 현재 7점 정도 완성했어요. 시어머니가 화가이신데 며칠 전 제 그림을 보시더니 ‘혹시라도 네 감정이 흔들릴 수 있으니 아직은 아무 말 안 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 느낌대로 마음껏 그려보라고 격려해주셔서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최근 새로운 목표가 하나 생겼어요. 20년 후, 60대가 됐을 때 멋진 화가가 되는 거예요(웃음). 이렇게 얘기해놓고 안되면 어떡하죠(웃음)?”
발랄함의 대명사인 이혜영의 입에서 60대란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조금은 어색했다.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냐고 묻자 “나이 드는 걸 슬퍼하는 여자일수록 안 예쁜 것 같다”며 웃었다. 40대에 접어들고 보니 오히려 벌써부터 50대의 모습이 기대되고, 심지어 우아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중년의 여성을 보면 빨리 나이 들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나중에 백발의 할머니가 되더라도 지나가는 남성이 한번쯤 쳐다볼 만한 멋진 할머니로 늙고 싶다”고 말했다.
“나이 들어 외적인 아름다움은 줄어들어도 내면은 더욱 아름다운 여자가 되고 싶어요. 그렇다고 지적인 매력만 넘치길 바라는 건 아니고, 인생을 대하는 마음가짐 자체가 따뜻하고 여유로우면 좋겠어요. 내면의 아름다움은 분명 겉으로도 드러나기 마련이어서 그렇게 나이 들다 보면 분명 할머니가 돼서도 매력적인 여자로 인정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불현듯 남편은 그에게서 어떤 매력을 느낄지 궁금했다. 이혜영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착해서 좋대요”라고 말하고는 까르르 웃는다. 그러면서 그는 “어디가 착하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처음 남편한테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은 무척 좋았다. 그동안 예쁜 여자는 많이 봤을 테니 예쁘다, 섹시하다는 말보다 착하다는 표현이 가슴에 더 와닿았다”고 말했다.
명품 각선미로 유명한 그는 여전히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필라테스와 헬스를 번갈아가면서 하고 있다. 오로지 몸매 가꾸기 수단으로 운동을 하는 건 아니다.
“아름다움의 기본은 건강함이라고 생각해요.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거란 말처럼 내 건강은 내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운동이 너무 하기 싫은 날이 있죠. 그래도 결국은 꼭 가요. 사실 결혼 전에는 일주일에 5일 운동을 했는데 요즘은 조금 게을러져서 3일로 줄였어요(웃음).”
2세는 하늘의 뜻에 맡길 생각이다. 아직은 엄마가 된 자신의 모습이 상상이 안 간다는 그는 “부딪쳐봐야 실감이 날 것 같다. 뭐든 자연스럽게 이뤄지면 좋겠다”고 의연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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