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은 이른바 ‘벤츠 여검사’ 사건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사건은 11월 말 서울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여자 검사 이씨(37)가 부산 지역에서 일할 때 최모 변호사(50)로부터 벤츠 승용차와 샤넬 가방 등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은 최 변호사의 또 다른 내연녀인 A씨. 부산에서 대학 강사로 일하고 있다는 A씨는 2011년 7월 “빚을 갚지 않는다”며 최 변호사를 부산지검에 고소하고 대검찰청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탄원서의 내용은 A씨의 절도 사건을 수임받은 최 변호사가 채무를 갚지 않을 뿐 아니라 검사장급 인사에게 사건을 청탁한다는 명목으로 수표와 상품권 등을 받아갔다는 것. 또한 이 검사가 부산지검에 근무할 당시 최 변호사와 내연 관계를 맺으면서 벤츠 자동차, 법인카드, 명품 가방 등을 받은 의혹도 포함돼 있다. 최 변호사와 역시 내연 관계였던 A씨는 돈과 여자 문제로 사이가 틀어지자 이 사건을 폭로하게 된 것이다.
이 검사는 2011년 초 수도권으로 근무지는 옮긴 뒤에도 최 변호사와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이 사건이 불거지자 검찰에 사표를 제출했다. 현재 최 변호사는 변호사법 위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상해, 감금치상, 무고 등의 혐의로 구속돼 조사를 받고 있다. 임신 6개월의 유부녀인 이 검사도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 이 사건의 자세한 내막을 취재하기 위해 12월 중순 부산을 찾았다.
진정인 대학 강사 A씨
“최 변호사에게 결혼 각서 받았지만 관계 악화되자 감금·폭행당했다”
12월 초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두하고 있는 최모 변호사.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진정인 A씨가 살고 있는 부산 해운대구 빌라. 달맞이길에 위치한 이 빌라는 부산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부산의 한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는 그는 두 달여 전 이곳으로 이사 왔다고 한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 A씨는 집을 비운 상태였다. 이웃 주민들에 의하면 그는 작은 체구에 곱상한 외모의 소유자로, 주로 집 안에서 생활하는 조용한 성격이라고 한다.
A씨가 최 변호사를 처음 만난 것은 2010년 6~7월 경. 최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대학 재학 시절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사로 임용된 뒤 부장판사까지 역임하다가 2002년 변호사로 개업한 엘리트 법조인이다. 법복을 벗은 후에는 최근까지 부산과 창원에서 로펌을 운영해왔다. A씨는 공갈 및 협박 사건, 절도 사건 등에 휘말리면서 최 변호사와 가까워졌고, 이후 A씨 관련 소송은 모두 최 변호사가 맡았다.
A씨는 2012년 1월호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최 변호사는 검찰과 법원에 로비를 해서 관련 사건을 모두 해결해주겠다며 환심을 샀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최 변호사에게 로비 명목으로 제공한 것은 1천만원짜리 수표와 골프채, 1백만원 상당의 와인과 명품 지갑, 상품권이다. 하지만 그가 최 변호사에게 제공한 돈과 물품이 실제 로비에 쓰였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황. A씨 역시 “당시에는 최 변호사를 믿었었는데 지금 와 생각하면 (로비 대상자에게) 정말 줬을까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A씨는 두 사건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A씨는 이 밖에도 “최 변호사에게 7억원을 빌려주었으며, 이 가운데 차용증을 받고 빌려준 것은 3억8천만원이고, 2억원은 돌려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씨는 어떻게 최 변호사를 믿고 거액을 맡겼을까. 우선 판사 출신 변호사라는 점이 신뢰감을 준 데다 애정 관계로 엮여 있었기 때문이다. A씨 주장에 따르면 최 변호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에게 사귀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최 변호사가 아내와는 별거한 지 10년이 됐으며, 곧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하겠다는 각서도 써줬다는 것이 A씨의 주장.
체포 영장이 발부돼 부산지검으로 압송되고 있는 이모 검사.
또 그는 최 변호사의 다른 내연녀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의사 B씨는 최 변호사와 10년 정도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한다. 최 변호사에게 다른 내연녀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B씨가 먼저 A씨에게 연락해왔고, A씨는 B씨의 이야기를 통해 최 변호사가 이모 검사와 또 다른 내연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벤츠 여검사’로 불리는 이 검사는 서울예고, 한양대 법대를 거쳐 사시에 합격한 후 변호사, 법률구조공단 부산지구에서 일했고 2007년 부산지검에 검사로 임용됐다. 최 변호사와는 2005년 법률구조공단에 근무할 때부터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최 변호사는 이 검사에게 법무법인 명의의 벤츠 승용차를 제공하고 법인카드와 샤넬 핸드백 등을 제공하며 사건을 청탁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는 지난해 12월 초 부산지검이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를 공개하며 신빙성을 얻고 있다. ‘피의자 이름을 알려줘’라는 이 검사의 메시지에 최 변호사는 사건 내용을 설명해줬고, 이에 이 검사는 동료 검사에게 사건을 청탁했음을 알려주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또 다른 문자 메시지에는 이 검사가 ‘백(샤넬)값 보내도! 5백40만원’이라고 보낸 내용도 있었다.
이모 검사의 영장 실질 심사가 열린 부산법원 법정 주변에서는 철저한 통제가 이뤄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최 변호사에게 이 검사와의 관계를 정리하라고 종용했다. 이에 최 변호사는 2011년 5월 이 검사에게 ‘벤츠 승용차를 돌려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내기도 했다. A씨는 최 변호사 주변에 유독 여자가 많았던 이유에 대해 “지식도 풍부하고, 상대방이 하고 싶어하는 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줄 아는 남자”라고 말했다. 또 수시로 “예쁘다. 날 좋아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직접 요리를 해주는 등 자상한 면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최 변호사의 복잡한 사생활에 염증을 느낀 A씨가 먼저 헤어질 것을 요구했고, 이에 최 변호사가 감금·폭행을 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2011년 3월엔 폭행으로 전치 11주의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다고. 하지만 A씨는 폭행 등과 관련해서는 자세한 언급을 피하며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이창재 특별검사의 조사에 성실히 응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건을 진정한 이유에 대해 “최 변호사가 구속되기를 바랐던 것보다 사람들이 내 말이 사실이란 걸 알아주길 바랐다”고 심경을 밝혔다.
최 변호사 주변인들
“점잖고 조용한 사람, 수십억원 담보 잡힌 집은 경매로 넘어가”
최 변호사가 최근까지 거주했던 부산의 아파트. 12월 중순 경매로 넘어갔다.
A씨의 주장대로라면 최 변호사는 여러 여성들과 문란한 관계를 유지하며 치정과 법률적 업무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해온 셈이다. 하지만 최 변호사 주변 사람들은 그를 “점잖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최 변호사가 최근까지 거주한 부산 금정구의 아파트는 해운대와 함께 부산에서 입지가 좋은 곳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이곳에서도 가장 넓은 81평형(10억원 상당)에 거주했다. 부인과 자녀들이 있지만 서울에 살고, 부인만 가끔 부산 아파트에 들르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이웃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서 서울에서 유학하게 됐다. 최 변호사 부인은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부산) 집을 자주 비웠다. 최 변호사와 그의 부인 모두 조용한 성격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사건이 터지자 주변 사람들도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사건이 알려진 후 이 아파트에서 최 변호사를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취재 결과 그의 집은 수십억원에 달하는 과도한 부채로 인해 이미 경매에 넘어간 상태였다. 창원에도 최 변호사 소유의 아파트가 있었지만 최근 이마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다. 그는 변호사 개업 이후 상당한 부를 축적했으나 중국 부동산 사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해 큰 빚을 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 변호사는 함께 투자했던 동업자들과의 관계도 틀어져 2011년 5월 두 사람을 횡령 혐의로 고소했는데, 이 검사에게 벤츠 등을 제공하며 잘 처리되도록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사건이다. 당시 검찰은 최 변호사의 동업자들을 불구속 기소했으나, 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에 대해 이 검사는 최 변호사와의 친분으로 벤츠 등을 제공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가로 사건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 변호사가 운영하는 법무법인 관계자는 “최 변호사가 언급된 여인들과의 관계는 인정하고 있지만 사건 청탁을 한 부분은 부인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폭행을 당했다는 A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감금은 인정하지만 폭행은 사실이 아니다”라는게 최 변호사의 해명이라고 전했다. 이 사건 이후 법무법인의 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새로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의뢰받은 사건도 사임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아직까지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최 변호사는 이 사건으로 인해 부와 명예, 그리고 사랑까지 모든 것을 잃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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