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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빈티지한 가방이 더 럭셔리해 보이는 이유

오한별 객원기자

2026. 02. 11

요즘은 스크래치가 있고, 손때가 묻고, 형태가 흐트러진 가방이 오히려 ‘부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처럼 빈티지한 느낌의 가방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패션계는 반듯하게 각을 세운 형태나 새것 같은 광택 대신, 오래 사용한 듯한 실루엣과 자연스러운 흐트러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마티유 블라지는 2026년 봄 샤넬 컬렉션 데뷔작에서 샤넬의 시그니처인 2.55 백 내부 가장자리와 플랩에 형태를 조정할 수 있는 와이어를 삽입했다. 가방을 오래 휘두르고, 물건을 마구 쑤셔 넣은 듯한 인상을 의도적으로 만든 장치다. 미우치아 프라다 역시 ‘의도적인 불완전함’이라는 아이디어를 여러 시즌에 걸쳐 반복해왔다. 볼링 백과 갤러리아 백의 가장자리를 어둡게 처리해 마모된 듯한 빈티지 효과를 더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연출은 단순한 스타일링 실험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 패션 시장에서 ‘낡아 보이는 가방’은 가장 비싼 선택이자 쿨한 태도로 읽힌다. 새것보다 험한 가방이 더 럭셔리해 보이는 시대. 이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험하게 든 가방이 ‘쿨함’이 될 때

낡은 명품 백이 럭셔리를 해석하는 새로운 기준이 된 이 흐름을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은 스타일 아이콘들이었다. 특히 제인 버킨은 명품을 완벽한 상태로 보존해야 한다는 통념에서 일찌감치 벗어난 인물이다. 그는 가방을 조심스럽게 다루기보다 삶의 일부처럼 사용해왔다. 2025년 7월, 제인 버킨이 실제로 사용했던 오리지널 버킨 백은 소더비 경매에서 약 137억 원에 낙찰되며 역대 최고가 핸드백 기록을 세웠다. 가방에는 스크래치와 마모, 얼룩과 발자국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바로 그 시간의 흔적이 가방의 가치를 증명했다. 이 사례는 명품의 가치가 더 이상 ‘보존 상태’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비슷한 장면은 메리 케이트 올슨에게서 반복된다. 현재 패션 피플의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브랜드 ‘더로우’를 이끄는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명품을 험하게 드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왔다. 헐렁한 트레이닝팬츠 차림이든, 모피 재킷을 걸친 순간이든 그의 손에는 늘 거의 닳아 해진 에르메스 버킨 백이 들려 있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가방이었지만, 그의 스타일 안에서는 귀하게 모셔둔 명품으로 보이지 않았다.

패션이 끊임없이 새로움을 요구하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같은 가방을 망가질 때까지 사용하는 태도는 일종의 반항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이 가방들은 소유자의 취향과 삶의 궤적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 흐름이 추상적인 미감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은, 최근 다시 ‘잇 백’으로 떠오른 가방들을 보면 분명해진다. 2000년대 초반 등장한 발렌시아가의 르 시티 백은 ‘새것일수록 완벽해야 한다’는 명품의 공식을 처음부터 거부한 디자인이었다. 매장에 진열된 새 제품조차 각이 잡히지 않고 어딘가 처진 듯한 실루엣을 띠는 이유다. 르 시티 백이 다시 지금의 잇 백으로 떠오른 이유는, 낡아 보여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낡아질 수 있도록 설계된 가방이기 때문이다. 완벽함을 유지하기보다 변화 자체를 전제로 한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이 가방은 현재의 럭셔리 감각을 정확히 대변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시장에서도 확인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 앤 마켓’은 전 세계 럭셔리 리셀 시장 규모가 2024년 약 324억 달러(약 47조 7000억 원)에서 2025년 약 383억 달러(약 56조 470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 ‘더 리얼리얼(The RealReal)’의 2025년 리세일 보고서에 따르면, 사용감이 많은 ‘보통(fair)’ 상태 제품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32% 증가했다.

이는 완벽한 상태의 명품보다 실제로 사용된 흔적이 남은 아이템에 대한 선호가 분명해졌음을 의미한다. 물론 중고 시장을 통해 고가의 명품 가방을 보다 현실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점도 이 흐름을 주도한다. 하지만 핵심은 인식의 전환에 있다. 소비자들은 이제 ‘새것 같은 명품’이 아니라, 삶의 흔적과 서사를 담은 물건을 원하는 것이다.

가방을 새것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험해져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 완벽함을 유지할 필요가 없을 만큼의 여유, 그리고 삶의 흔적을 숨기지 않는 태도. 새것보다 낡은 가방이 더 럭셔리해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명품백 #올드머니 #샤넬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발렌시아가 소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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