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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그가 뜬다

예측불허 웃음폭탄 제조기 개그맨 김경진 집중탐구

“어류학자 꿈꾸던 엉뚱 소년이 개그계 블루칩으로 떠오르기까지”

글 정혜연 기자 사진 장승윤 기자

2010. 09. 16

개그맨 김경진을 보노라면 개그 DNA는 타고 나는 게 아닐까 싶다. 어눌한 말투, 개성 있는 외모, 독특한 사고방식… 덕분에 그는 가는 곳마다 웃음폭탄을 터뜨린다. 2007년 MBC 공채개그맨으로 데뷔, 지난해 연예대상 신인상을 받은 뒤 개그계 블루칩으로 자리잡은 김경진을 만났다.

예측불허 웃음폭탄 제조기 개그맨 김경진 집중탐구


경쾌한 단발 파마머리, 안경 너머 감은 듯 뜬 눈, 웃을까 말까한 입… 개그맨 김경진(28)을 만난 열에 아홉은 자연스레 웃음보를 터뜨린다. 태어날 때부터 개그맨이었을 것 같은 그는 지난 8월 초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 화제를 낳았다. 고교시절 전교 1등이었던 성적표를 공개한 데 이어 지금껏 뽀뽀 한번 해보지 못했다는 사실과 함께 후배 개그맨 양해림에게 사랑고백까지 한 것. 방송 후 이슈가 된 그는 박명수가 차린 ‘거성엔터테인먼트’의 첫 번째 소속 연예인으로 활동하게 됐다는 소식까지 전해 한동안 인터넷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지난 8월 중순 점점 더 궁금해지는 개그맨 김경진을 만났다. 가장 먼저 당당하게 사랑을 고백한 뒷얘기부터 물었다. 인터넷에 “양해림의 아버지가 잘 만나보라는 말을 했다”는 후속 기사가 오른 뒤였다. 그는 쑥스러워하며 “깊이 말씀 드릴 건 없다”고 말했다.
“그냥 관심이 있다는 정도예요. 방송 후 둘이서 두 번 정도 밥을 같이 먹었는데 사귄다고 할 순 없죠. 만나보고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열린 결말이라고 보시면 돼요(웃음).”
전교 1등 성적표에 대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가 다니던 학교는 상업고등학교였는데 수업을 하면 전체 학생 중 다섯 명 정도가 깨어 있고 나머지는 모조리 엎드려 잤다고. 전교생 중 유일하게 엄마의 권유로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했던 그는 자연히 전교 수석을 했다. 하지만 수능 성적은 4백점 만점에 1백20점이 나왔다며 멋쩍게 웃었다. 평소 존경하는 선배라고 밝혀 온 박명수와 함께 일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든든하다”고 말했다.
“아시다시피 박명수 선배가 살가운 성격은 아니에요. 그런데 마음에 드는 후배는 잘 챙겨 주시는 편이죠. 요즘 한창 더워지니까 야외에서 촬영할 일이 있으면 ‘탈수증 생기지 않게 물 많이 마시고 다녀’라고 말씀해 주세요. 제가 수입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잘 아는 터라 시간이 날 때면 불러서 밥도 사주시고요. 일거리를 만들어 줄 때면 정말 고맙고 믿음직스러워요.”

개그맨은 얼떨결에 합격, 원래 꿈은 어류학자·영화감독
초등학교 때부터 학급 장기자랑 대회에 제일 먼저 뛰어나가 개그를 선보였을 듯 하지만 김경진은 의외로 혼자만의 세계를 즐기는 조용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성격이 활달한 편이 아니라서 친구도 많지 않은 그에게 유일한 벗이 돼준 건 열대어 ‘아로와나’였다고.
“왜인지 모르겠는데 열대어가 정말 좋더라고요. 제가 기르던 아로와나는 아마존산이었는데 너무 예뻐서 부모님 몰래 인삼도 먹이고 그랬어요(웃음). 하루는 물을 갈아주려고 고무장갑을 끼고 아로와나를 들다가 미끄러져 떨어뜨렸어요. 그 자리에서 바로 죽어버려서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요. 어린 나이에 충격적인 경험이었던 터라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여하간 그 당시에는 열대어 사랑이 지극해서 나중에 어류학자가 되겠다고 말하고 다녔죠.”
어류학자의 꿈은 꽤 오랜 시간 지속됐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갈수록 각종 자료를 심도있게 스크랩할 정도가 된 것. 동영상으로도 찍어서 보관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겨 비디오카메라까지 샀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본 영화 한 편으로 한순간에 꿈이 바뀌었다. 친구들과 영화관에서 ‘공동경비구역 JSA’를 본 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감동을 받은 것. 여태껏 그가 찍은 영상과 너무나도 비교가 됐다. 김경진은 “그때 처음으로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치솟았다”고 말했다.

예측불허 웃음폭탄 제조기 개그맨 김경진 집중탐구


이후 그는 영화감독의 꿈을 안고 동아방송대학 영상제작과에 들어갔다. 전액 장학생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전국 각지에서 인재들이 몰려든 탓에 보기 좋게 밀려났다.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던 그였는데 오랫동안 영화감독의 꿈을 안고 한 길을 달려온 재능 있는 동기들을 보자 주눅이 들었다. 계속되는 좌절로 그는 근 일 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멍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의 앞에 영장이 날아왔고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작품을 하나 만들고 군대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단돈 15만원으로 ‘나는 그 후로 달걀을 먹지 못했다’는 단편영화를 찍었는데 시사회 때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좀 엉뚱한 스토리였는데 다들 웃기면서도 메시지가 담겨 있다며 정말 재미있어하더라고요. 제게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한 첫 경험이었죠.”
그는 군대에서 영창에 다녀온 것을 계기로 또 하나의 재능을 발견했다. 영창은 어느 날 사이좋지 않았던 선임병에게 화장실에서 심하게 구타당하는 모습을 중대장에게 들켜 가게 된 것. 자신은 잘못한 게 없는데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찍혀 영창에 간 것이 억울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영창 견학을 온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구경거리가 되는 경험을 한 뒤 그는 자신을 뒤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군대에 복귀할 즈음, 때마침 부대개편이 이뤄졌고 부대원이 모두 바뀌었다. 이때다 싶어 그는 “꿈과 희망이 가득한 군생활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각종 체육대회 응원부장, 중대 장기자랑 MC 등을 도맡아 했다. 덕분에 포상휴가를 18번이나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후임들에게 포상휴가를 나눠줬더니 좋아하더라고요. 이런 걸로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구나 싶어서 기분 좋았죠. 덕분에 성격도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보초를 서면서도 하늘에 떠있는 별이 레드카펫으로 보일 정도였죠(웃음). 제대하고 나서 영화감독의 꿈은 잠시 미뤄두고 오랫동안 개그맨 시험을 준비하던 형과 함께 시험을 봤어요. ‘안녕하십니까. 김경진입니다’라고 말했을 뿐인데 심사위원들 반응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그해 MBC ‘개그야’가 전성기를 달릴 때여서 경쟁률이 역대 최고였다는데 운 좋게 1등으로 입사했어요.”

신종플루 위험에도 몸 사리지 않고 덤벼들어 신인상까지 받아
2007년 MBC 공채개그맨으로 데뷔한 김경진은 곧바로 공개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야’에 투입됐다. 개그맨 합격 소식을 전했을 때 “그거 사기야, 얼른 고향으로 돌아와”라고 말했던 부모도 TV에 그가 나오자 그제야 사실임을 인식했다. 김경진이 입사할 때는 많은 인기를 얻었던 ‘개그야’였지만 점점 시청률이 떨어지자 MBC에서는 KBS에서 활동 중이던 박준형 정종철 등을 영입해 쇄신을 꾀했다. 그때 그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박준형 선배가 MBC로 오면서 회사에서 거는 기대가 컸어요. 저 또한 개그계의 전설인 준형 선배에게 한 수 배울 기회를 얻어 매우 기뻤죠. 덕분에 ‘개그야’에서 ‘호모사피엔스’라는 시사개그 코너도 생겼었어요. 준형 선배가 특정 분야에 대해 질문을 하면 제가 전문가로서 대답을 해주는 코너였는데 정말 엉뚱하게 답해서 꽤 반응이 좋았죠. 마니아도 생겼을 정도였으니까요(웃음).”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제작진의 노력에도 시청률이 날이 갈수록 떨어져 결국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된 것. 그를 비롯한 MBC의 많은 개그맨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잘 나가는 신인 개그맨이었지만 일이 이렇게 되고나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후로 김경진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기회를 잡기위해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했다. 방송사 소속 개그맨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법하지만 일반인들과 함께 ‘무한도전’의 돌아이 콘테스트에 나가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정말 특이한 행동과 사고방식을 선보인 덕분에 김경진은 또 한번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이후 MBC 신구세대 개그맨이 함께 하는 ‘하.땅.사’라는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기대감을 안고 합류했던 김경진은 아이디어를 무수히 짜내며 의욕적으로 임했다. 영상제작에 일가견이 있던 그는 UCC개그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코너를 만들어 보통 사람들이라면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며 큰 웃음을 줬다.



예측불허 웃음폭탄 제조기 개그맨 김경진 집중탐구

천성적으로 웃길 것 같지만 김경진도 알고보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열성파 개그맨이다.



“한번은 오랑우탄의 빵을 빼앗아 먹기에 도전했어요. 작년 겨울 한창 신종플루가 유행하고 있을 때 동물원에 갔는데 섭외한 오랑우탄이 콧물을 줄줄 흘리더라고요. 사육사 말로는 신종플루에 걸려서 그렇다고 했죠. 먹던 빵을 빼앗아 먹으면 분명 저도 신종플루에 걸릴 것 같았어요. 한참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웃길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서 그냥 해버렸어요. 그 UCC가 완전 대박이 났죠. 덕분에 지난해 연예대상 신인상을 받을 수 있었어요.”
김경진은 자신이 신인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담당 작가가 그해부터는 한명씩 상을 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와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던 최다니엘이 신인상을 받을 거라 예상한 것. 때문에 그는 수상소감도 준비하지 않고 있던 터였다. 시상대에 오른 그는 횡설수설하며 코앞에 앉아 있던 유재석 박명수 등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내려오면서 부모, 개그맨 선후배 등 정작 고마워해야할 사람들 이름은 전혀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시청자 여러분 가정에 핵폭탄 터뜨리겠습니다’라고 말했겠어요(웃음). 부모님 이름도 깜빡했는데 어찌나 서운해 하시던지 죄송스러워서 혼났어요. 더군다나 박준형 선배는 절 굉장히 예뻐하며 같이 코너를 짜자고 먼저 손 내밀어 주셨는데 감사 인사를 빼먹어 진짜 미안했죠. 선배가 ‘MBC 와서 얻은 첫 수확이 너였는데 서운하다’고 말씀하셔서 더 그랬어요. 시상식이 끝나면 보통 상 받은 사람이 한턱 내면서 파티를 하잖아요? 전 개그맨 선후배들이 서운해하면서 피하는 바람에 혼자 집으로 돌아왔어요. 뭐 지금은 또 다 풀려서 괜찮아졌어요. 하지만 그 경험으로 사람이 어떤 자리에 있든 초심을 잃지 않고 도움을 준 이들에게 늘 감사하며 살아야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깨달았죠.”

“데뷔 3년차 개그맨, 더 열심히 해서 후배들 본보기가 되고 싶어요”
김경진은 신인상을 받기는 했지만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유일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던 ‘하.땅.사’가 폐지돼 기회는 더 줄어들었다고. 올해 초 ‘일밤 - 몸몸몸’이라는 프로그램에 여러 명의 MC 중 하나로 투입되기는 했지만 처음 해보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라 적응하지 못하고 8주 만에 퇴출됐다. 이후로 버라이어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그는 “MBC에서 기회를 많이 줬는데 능력 부족으로 잘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데뷔 3년차인데 제가 동기들 중 그나마 이름을 알린 편에 속해요. 요즘 MBC 개그맨 후배들은 프로그램에 나설 기회가 없어 여러모로 고민이 많아요. 제게 상담요청을 해오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럴 때면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니 열심히 준비해라’고 말해줘요. 사실 저도 2년 동안 많이 힘들었어요. 그냥 앉아 있는데 써줄리 만무하잖아요. 고시원 쪽방에서 각종 코미디 프로그램 녹화본을 돌려보며 분석도 많이 하고 나만의 개그를 창조하려고 애썼더니 그나마 이 정도로 이름 알리게 됐죠.”
올해로 스물여덟 살인데 결혼 생각은 없을까. 그는 “아직은 아닌 것 같다”며 딱 잘라 말했다.
“더 벌어야 해요. 기본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돼야 결혼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은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거든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3년 동안 매년 세금을 환급받았어요. 수입이 모두 은행 대출 갚는 데 다 들어가거든요. 이제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고 있는데 올해는 많이 벌어서 꼭 세금을 내게 됐음 좋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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